고린도전서 13장 4절 11절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시기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무례히 행하지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며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사랑은 언제까지나 떨어지지 아니하되 예언도 폐하고 방언도 그치고 지식도 폐하리라
우리는 부분적으로 알고 부분적으로 예언하니
온전한 것이 올 때에는 부분적으로 하던 것이 폐하리라
내가 어렸을 때에는 말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깨닫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생각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다가 장성한 사람이 되어서는 어린 아이의 일을 버렸노라
-------------
8월달은 ‘긍정과 성숙함으로 충만하게 되는 달’입니다. 성숙이라 말을, 한문사전을 찾아 보았더니, 이룰성, 익을 숙입니다. 한글사전으로는 몸과 마음이 자라서 어른스럽게 됨. 이라는 뜻입니다.
8월달은 논과 밭에 열매들이 결실을 향하여 익어가듯, 우리의 믿음도 예수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이르도록 성장--성숙하여야 하겠습니다.
오늘 본문 고린도전서 13장은 유명한 ‘사랑 장’ 이 되겠습니다.
그런데 사랑장을 보니까, 사랑에 대하여 설명하는데, 오늘 본문 마지막 부분 11절에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내가 어렸을 때에는 말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깨닫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생각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다가 장성한 사람이 되어서는 어린 아이의 일을 버렸노라”
그렇습니다. 사랑이 부족하고, 사랑이 충만하지 못할때는 어린아이와 같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반대로 사랑이 부족하지 않고, 사랑이 충만한 것은장성한 어른과 같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1. 성숙한 사람은 예수님의 사랑이 충만하여야 합니다.
오늘 본문 4절, 5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시기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무례히 행하지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며“
성숙하다, 어린아이와 같다는 것은, 간단하게 한가지 만을 가지고 설명하기는 복잡합니다. 마음과 몸과 언어와 행동과 생활..등등 여러부분에서 성숙하다 어린아이와 같다~고 설명이 필요 합니다.
마찬가지로, 오늘 본문에서도--사랑은 이것이다~ 라고 단정적으로 한가지 만을 가지고 설명하기는 사랑이라는 내용이 복잡 합니다. 그래서 사랑이 충만하고, 사랑이 성숙한 사람은 이러이러 하다~고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사랑이 충만하고, 사랑이 성숙한 사람은 어떠 합니까? 4절 상반절에 보니까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시기하지 아니하며” 라고 말씀 합니다.
‘고린도전서’는 고린도교회 성도들을 향하여 보낸 ‘서신 서’ 입니다.
고린도교회는 어떤 일이 있었습니까? 먼저 나누어져 있었습니다. 고린도전서 1장을 보면, 고리도교회는 나는 바울에게, 나는 아볼로에게, 나는 게바에게, 나는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라 하며, 마음이 서로 나누어져 있었습니다.
또 고린도전서 5장을 보면, 행실에도 문제가 발생하였습니다. 고린도전서 5장 1절에 보면, ‘누가 그 아버지의 아내를 취하였다 하는도다’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세상 에서도 존경받지 못할 일을, 교회에 다니면서 행하였습니다. 그러니까 고린도교회 성도들은 어떻게 해야 할지, 눈만 껌뻑이고 있습니다.
또 고린도전서 6장에 보면, 교회 안에서 두 사람이 다툼이 생겼는데, 이 다툼을 서로 해결하지 못하고, 세상 재판에 다가 걸어서, 세상 재판으로 판결을 받게 되었습니다.
성경에는 레위기, 신명기, 잠언, 을 비롯하여 세상보다가 더 깊고, 더 세세하게, 말씀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말씀들을 통하여 충분히 서로 살펴보고, 화해하고, 화합할수 있는데도, 그렇지 못하고 세상재판으로 가서, 세상 재판에서, 신앙의 문제를 판단받게 하는 일이, 발생하게 되었습니다.
자~ 이러한 일을 볼 때, 어떻게 말릴 수가 없습니다. 누가 잘하고 누가 잘못했다고 이야기 할수도 없습니다.
사도바울은 이 모든 혼란과 상황이, 무엇 때문에 나타났다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성숙하지 못하여서--믿음이 성숙하지 못하고, 믿음생활이 성숙하지 못하여서... 성도들 간에 마음이 나뉘고, 믿음에 모범된 생활을 하지 못하고, 서로 다툼까지 발생 되었다고, 고린도전서 13장--사랑장을 통하여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9절 10절에는 말씀합니다. “우리는 부분적으로 알고 부분적으로 예언하니,
온전한 것이 올 때에는 부분적으로 하던 것이 폐하리라“
한가지 문제를 내어 보겠습니다. < 물은 전기가 통할까요? >
물에는 전기가 통하지 않습니다. 전기는 전하를 가진 이온의 흐름입니다.
물은 수소와 산소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전기가 통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일상적이 물에는, 물에 잘 용해되는 이온, 염들이 녹게 됩니다. 그것을 ‘전해질’이라고 하지요.
그러니까, ‘전해질 수용액 상태’가 되어, 전기의 압이 가해지만, 그 속에 녹아 있는 미세한 ‘이온 염’들이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전기가 흐릅니다.
초등학생은 절대로~ 물에는 전기가 흐르지 않습니다. 라고 대답 합니다.
중학생이 되면, 물에도 전기가 흐릅니다. 라고 대답 합니다.
하지만 대학생, 대학원생이 되면, 또 틀려집니다. 물을 초고압 초고온 상태로 만들면, 전기를 가하지 않는데도 물이 산소와 수소로 분리가 되기도 하고--그것을 열분해라고 하지요. 또 10도 20도 상온에서도, 얼음이 얼기도 합니다.
무슨 말씀을 드리려는고~ 하니, 처음에는 부분적으로 아는 것을, 전부인것 처럼 생각을 합니다.
그러니까 고린도교회 성도들은 마음은 나뉘어 져야지~ 어떻게 마음을 합할수 있습니까?
어떻게 일상생활을, 믿음으로 살아갈수 있습니까?
어떻게 다툼을 세상재판으로 해결 해야지, 믿음안에서 화해하고 화합할수 있습니까? 라고 질문할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다툼, 그 생활, 그 마음을 가지고, 예수님의 십자가 앞에 서게 되면, 대답이 바뀔수 밖에 없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우리의 모든 죄를 대신 지시고, 죽으십니다. 그러면서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 삼아 주십니다.
죄는,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서는, 심판을 받고 저주를 받아야 되는데, 예수님께서는 오히려 심판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여주시고, 저주가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자가, 되게 하여 주십니다.
아니 어떻게 죄의 결과가 심판과 저주가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수가 있습니까?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내가 받을 심판을 대신 받으시고, 예수님께서 내가 받을 저주를 대신 받으셨기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나의 생각 나의 판단, 나의 마음을 가지고 바라보면, 절대로 마음이 합할수 없고, 세상에서 믿음으로 살아갈수 없고, 믿음안에서 화해할수 없다고 대답할수 밖게 없습니다.
하지만 나를 위하여 사랑의 피를 흘리신, 예수님의 십자가 아래에 서고 보니,
다툼이 변하여 하나가 되고, 생활이 변하여 회개가 되고, 마음이 낮아져 화합하는 것이, 오히려 맞게 되는 것이 아니냐?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이 어린아이와 같아서 성장하고 성숙하지 못할때는, 오래참지 못합니다. 온유하지 못합니다. 시기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그런데 믿음이 성장하고 성숙하고, 예수님의 십자가 사랑을 깨닫고 난 다음에는, 오래참는 사람, 온유한 사람, 시기하는 것이 아니라 남을 높이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 됩니다.
또, 5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무례히 행하지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며”
한번, 두 번 반복될 때, 습관으로 굳어지고, 그 사람의 성격이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저는 가끔씩 거울을 보며, 웃는 연습을 할때가 있습니다. “그래도 내가 목사의 사명을 받았는데, 인상이 웃는 모습이어야지, 인상이 나쁘면 예수님 영광 가리지 않을까?~” 하여 연습을 합니다.
그러던 어느날 거울을 보면서, 반대로 찡그리는 인상을 지어 보았습니다. 그랬더니 얼마나 힘이 드는지 모릅니다.
웃으면, 별로 힘이 않드는데, 찡그리는 인상을 지어 보았더니, 그 동안 찡그리는데 쓰이는 얼굴 근육을 않써서 그런지, 너무 힘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한편으로 감사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그래도 다행히, 찡그리는 얼굴 근육은 않쓰고, 웃는 얼굴근육을 많이 써서, 이제는 웃는 얼굴이 되게하여 주시니 감사합니다.”~
그런데 반대로, 길을 가다가 보면, 찡그리는 얼굴 근육을 열심히 써서 그런지, 그냥 걸어가는데도 자동적으로 얼굴이 찡그려져 있는 사람을, 가끔씩 보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저 사람은 평소에 얼굴을, 얼마나 찡그리면, 그냥 가만히 있는데로, 얼굴이 찡그리는 얼굴이 될까? ”
얼굴 표정만 그렇겠습니까? 평소에 말도, 그 사람의 성격이 되어, 나옵니다.
뿐만 아니라, 생각과 마음과 가치관도, 그 사람의 성격이 되어 나옵니다.
인터넷에 보았더니, 과격하게 글을 올린 것을 보았습니다.
“세상에 그냥 망하고, 뒤집어지고, 끝장 났으면, 좋겠습니다.~”
아니, 예수님도 믿지 않는데, 세상이 망하고 뒤집어 지고 끝장나면, 그 사람은 마지막 심판때 어떻게 되겠습니까?
부분적으로만 바라보고, 무례히 말을 하고, 부분적으로 알면서도 자신의 무익함이 나타나는지도 모르면서 살아가는 사람이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자~ 우리, 그리스도인은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부분적이며, 성숙하지 못하고, 성장하지 않는, 사랑 밖에 있는--사람이 되어서는 않되겠습니다.
온전한 예수님의 사랑을 본받아, 온전하고, 완전하고, 성장하며, 성숙한-- 믿음의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말과, 생각과 마음과, 얼굴표정과 가치관과 모든 부분에서-- 예수님의 사랑을 본받아,
무례히 행하지 아니하고,~ 온유하게 말하며~, 항상 좋게 되도록 생각하는, 성숙한 그리스도의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2. 성숙한 사람은 예수님의 사랑으로 살아갑니다.
7절, 8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사랑은 언제까지나 떨어지지 아니하되 예언도 폐하고 방언도 그치고 지식도 폐하리라“
또 예수님의 사랑을 본받는, 성숙한 그리스도인은 어떤 모습이 되어야 합니까?
모든 것을 참고,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는 사랑의 모습이 있어야 합니다.
물론 세상의 사랑은, 이런 것이 없는 사랑이 있습니다. 참지도 않고, 믿지도 않고, 견디지도 않고, 바라지도 않는 사랑이 있습니다. 이런 사랑을 이기주의적 사랑이라고 하지요.
사랑을 한다고 하지만, 기대하지 않고, 인내하지 않고, 믿지도 않습니다. 그러니까 당연히 참지도 않습니다. 조금만 충족되지 못하면, 참지 않고 바로, 사랑이 깨어 집니다.
자 이런 이기주의적 사랑, 편하고 간편하고 홀가분하여, 좋다고 생각할수 있습니다. 하지만 들에 곡식도 결실을 하려면, 햇볕이 더워도 참고, 비가와도 참아야 합니다.
또 열매가 달릴 것을 기대하고 바라면서, 맡은 역할을 감내 해야 합니다.
뿌리는 열심히 양분을 모아서 올립니다. 줄기는 그 양분을 잎으로 보내 줍니다.
잎은 광합성을 하여, 햇빛의 힘으로, 양분을 당분으로 만들어, 열매로 보냅니다.
그러면 열매는 그 당분을 차곡차고 저장하여, 가을이 되면 열매가 주렁주렁 달리게 됩니다.
만약, 뿌리가 인내하지 않고,-- 양분을 모아서 올리는 것을, 중간에 그만두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줄기와 잎도, 햇볕이 뜨겁다고--언제까지 견디고 언제까지 인내해야 하느냐?고-- 중간에 그만두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인내하지 않고 그만두기는 너무나 쉽습니다. 참지 않고, 견디지 않고, 바라지 않고, 믿지 않고, 그만두는 너무너무 쉽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중간에 그만두면, 열매는 맺힐수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이기주의적인 사랑은, 결실이 맺히지 않는다고 하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5장에는, 밤새 그물을 내렸지만 빈배로 돌아온 베드로가 나옵니다.
베드로가 밤새 깊은 곳에, 그물을 내리는 것에서,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견디고, 모든 것을 바라는 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 그물을 내릴 때, 물고기가 가득 잡히게 하여 주시옵소서” 베드로는 그런 마음으로 밤새 그물을 내리지 않았겠습니까?
아마, 물고기를 유인하기 위하여, 밑밥도 많이 뿌렸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성경을 보면, 베드로가 밤새 물고기를 많이 잡았습니까? 아닙니다. 밤이 새도록 수고 하였지만, 물고기를 하나도 잡지 못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어떻게 보면, 베드로 처럼, 밤새 그물을 내려도 빈, 그물이 되는 경우가, 오히려 다반사요, 일상 입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빈배로 항구에 돌아오지만, 큰 낙심을 하는 것이 아니라, 다음날 또 그물을 내리려고, 준비하기 위하여, 그물을 씻습니다.
예수님께서 그 배에 타지 않으셨으면, 그날은 ‘허탕’으로 마무리 되었을 것입니다.
무슨 말씀을 드리려는고 하니, 우리의 수고와 고생이, 즉각적으로 수십배의 결실로 이어지는 경우는 잘~ 없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런데, 믿음의 수고와 경건생활과, 기도에 대해서는, 다르게 생각하는 경우가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믿음의 수고는 조금만 하여도, 왜 큰 축복을 받지 못하는가? 쉽게~ 낙심합니다.
경건생활은 깊게하지 않으면서, 왜 형통하지 않는가? 실망을 합니니다.
기도는 간절히 하지 않으면서, 왜 응답을 즉각적으로 받지 못하는가? 원망을 가질때가 있습니다.
성숙한 믿음은, 모든 것을 참고, 믿으며, 바라며, 견디는 믿음입니다.
더 나가, 많은 수고가 열매맺어--결실하는 소중함을 알기에, 참고, 믿고 바라고 견디는 것을 귀하게 여기고,
또한 수고가 열매맺어 나타나는 결실을, 더욱 귀하고 소중하게 여길줄 아는 것입니다.
들에 백합화 한송이를 꽃피우기 위하여, 얼마나 많은 수고와 손길이 필요 합니까?
들에 백합화 한송이를 꽃피우려면, 사계절이 지나가야 합니다. 또 때를 따라 햇볕과 비가 내려야 하며, 적절한 온도가 유지되는, 엄청난 수고가 있어야, 합니다.
들에 백합화 한송이를 꽃이우려고, 사계절과, 해와 비를 사용하는 것은, 낭비가 아닙니까? 아닙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수고 하심이요,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믿음을 꽃피우기 위하여서는, 더 큰 수고도 마다하시 않으십니다. 우리들을 위하여, 참으시며, 바라시며, 인내하시며, 사랑으로 기다리고 계십니다.
모르는 사람은, 에게~ 백합화 한송이--뭐가 귀하다고.. 그렇게 합니까? 하지 않겠습니까?
마지막으로 다시 오늘 본문 11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내가 어렸을 때에는 말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깨닫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생각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다가 장성한 사람이 되어서는 어린 아이의 일을 버렸노라”
믿음도 마찬가지입니다. 믿음을 활짝~ 꽃 피우는 것이, 얼마나 귀하고, 소중한 것입니까?
믿음을 꺽기는 쉽습니다. 믿음을 꺼뜨리기는 쉽습니다.
한지만 반대로, 내가 직접 믿음이 성장하고 성숙하고, 믿음을 꽃피우는 것은, 참포도나무 줄기 되신 예수님께 붙어 있지 않으면, 쉽지 않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 사실을 아는 사람은, 믿음이 성장하고 성숙하게 되는 것을 귀하게 여깁니다.
또한 믿음의 결실할때, 그 귀함을 알기에, 소중히 여기고, 칭찬하고 기뻐하고, 높혀줍니다.
마지막으로 이렇게 귀한 믿음이 성장하고 성숙하여, 열매맺을 때 예수님은 어떻게 하여 주십니까?
야고보서 1:12 에 말씀합니다.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나니, 이는 시련을 견디어 낸 자가,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이기 때문이라”
오늘 말씀을 정리 합니다.
오래참고, 온유하며, 겸손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인은, 나를 위하여 사랑의 피를... 흘리신, 예수님의 십자가 아래에, 내가 서야 합니다.
그럴 때, 예수님의 사랑을 본받아, 성숙하고 장성한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는.. 사랑의 수고가 있는--성숙한 믿음에, 결실이 있게 됩니다.
그리스도인은 사랑의 수고가 있는--성숙한 믿음을 귀하게 여기고, 높이고, 존경하여야 하겠습니다.
김포상도교회 성도들은 믿음이 성장하고 성숙하고, 예수님의 사랑으로 충만하고, 그래서 범사에 결실이 있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 원 합니다.
=======
하나님 감사를 드립니다. 우리의 믿음이 성장 성숙하게 하시고, 예수님의 십자가 사랑을 본받아, 모든 것을 참으며 바라며 견디므로, 범사에 결실이 있게 하시고,
예수님 보시기에, 나의 모든 부분이 장성한 사람이 되어, 주님의 뜻데로 이루며, 순종하며, 결실하는 8월달로 보낼수 있도록,
예수님 동행하여 주시옵소서.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 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