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 9장 22절 24절 감동의 시작
귀신이 그를 죽이려고 불과 물에 자주 던졌나이다 그러나 무엇을 하실 수 있거든 우리를 불쌍히 여기사 도와 주옵소서
예수께서 이르시되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 하시니
곧 그 아이의 아버지가 소리를 질러 이르되 내가 믿나이다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 주소서 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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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우리나라는, 세계 10대 경제대국의 위치에서, 선진국의 문턱에 서 있습니다.
기술수준도 엄청나게 좋아져서, 이제는 회사마다 거의 차이가 없습니다.
그러나 보니, 누가 소비자들에게 잘 하는가?...서비스로 경쟁을 하는 것 같습니다.
‘고객만족’
‘고객감동’
요즈음은 ‘고객졸도’ 시대가 되었습니다.
고객이 졸도할 정도, 확실하게 서비스를 잘 하자...
그래서, ‘고객 졸도 서비스’
‘고객 졸도 경영’
책도 많이 나와 있고, 기사도 많이 나와 있습니다.
오늘 말씀에는 무명의 아버지가 나옵니다. 이름이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 아버지는 예수님을 감동시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예수님을 실망하게 만들고
'할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예수님으로부터 책망을 받게 됩니다.
1. 하나님을 감동시키는 믿음이 되어야 합니다.
성경에 주인공들은 하나같이, 하나님을 감동시킨 사람들 이었습니다.
아브라함... 하나님께서 독자 이삭을 바치라는 말씀에 그대로 순종하여, 하나님을 감동시켜 드렸습니다. 그래서 믿음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다윗은 나라의 기틀이 닦일 때, 하나님께 성전을 짓겠다고 하여, 하나님을 감동시켜드리고, 믿음이 좋은 왕의 모범이 되었습니다.
다니엘의 세친구들도 있습니다. 풀무불에 던져질 지언정 우상에게 절하지 않겠다고 하여 하나님을 감동시켜 드릴 때, 하나님께서 지혜를 주시고, 형통함을 주시고, 바벨론의 총리의 자리에 오르게 하여 주십니다.
가버나움의 백부장...예수님..오실 필요도 없습니다. 나도 내 밑에 수하에게 말하면 그대로 행하는데...예수님 그저 말씀만 하옵소서. 그러면 내 종이 낫겠나이다. 예수님을 감동시켜 드릴 때, 예수님께서 이만한 믿음을 이스라엘에서도 못 보았다고 큰 칭찬을 받았습니다.
성경의 주인공들은 그냥 믿음이 조상이 되고,
운이 좋아서 총리에 올라가고,
어쩌다가 종의 병이 낫고,
그런 요행의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하나같이 믿음으로 하나님을 감동시켜드릴 때, 하나님께서도 그 사람을 높혀 주시고, 존귀하게 해주시고, 복되게 해 주셨습니다.
성경의 주인공들이 존귀하게 되고, 높혀지고, 형통하고 복되게 되는 비결은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올해도 이제 마무리를 하게 됩니다.
내일은 성탄절이고, 2017년은 모두 지나가게 됩니다.
그렇다면, 올해 나는 하나님을 감동시켜 드린적이 있습니까?
나의 믿음을 보시고, 하나님께서 감동하셔서, 나를 만나주시고, 나를 찾아와주시고, 나를 높혀 주시고...
자 그런 믿음의 역사가 나에게는 있었느냐? 하는 것입니다.
조금 더 들어가서,
하나님을 감동시켜드린 성경의 주인공들은, 공통점이 있었습니다.
잘될 때, 하나님을 생각하였다. 그리고 하나님을 감동시켜 드렸던 것입니다.
힘들 때에는 반사적으로 하나님께 매어 달리게 됩니다.
하나님 이 문제가 해결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 이 고난이 나에게서 지나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럴때, 하나님께서 그 부르짖음을 들으시고, 그 멍애를 덜어 주십니다.
자기를 억누르던 멍애가 벗어지면, 문제가 넘어가면..
갑자기 여유가 생깁니다. 그러면서 하나님께 매어달리던 간절한 마음이 사라집니다.
심지어는, 우연히 잘 되었겠지..행운이었겠지..그러면서 여상하게 넘어가 버립니다.
사람이 잘될 때는, 하나님을 잊어버린다.
사람이 평안하게 되면, 하나님을 잊어버립니다.
그리고, 가정이 평안하고, 몸에 아픈것이 없고, 사업에 걱정이 사라지만...그때부터는..자신을 기쁘게 하기 시작합니다.
하나님께 감사하고, 하나님을 높혀 드리고, 하나님을 기쁘게 하기 보다는
나를 기쁘게 하고, 나를 즐겁게 하는데...관심사항이 바뀌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한가지 예를 들어보면, 다윗한 하더라도, 그렇지 않았습니다.
쫓겨 다니던 것이 끝나고,
원수들이 사라지고,
궁궐에서 평안히 살게 되자...
다윗왕은 오히려 하나님을 생각하게 됩니다.
“나는 이렇게 좋은 집에 있는데, 하나님의 법궤는 천막에 있다니..”
이 믿음이 왜 중요합니까? 그렇게 하는 사람이 별로 없기 때문입니다.
보통사람들은 원수가 사라지고, 평안하게 되고, 하는 일이 잘 되면, 하나님을 잊어버리는데...
성경의 믿음의 주인공들은, 다윗왕은, 오히려 그때에, 하나님을 생각하였던 것입니다.
다윗왕이, 나단 선지자 물어봅니다. “내가 하나님을 위하여 성전을 건축하려고 하는데, 하나님께서 기뻐하실까요? 기도해 보시고 하나님의 뜻을 가르켜 주십시요”
그럴 때, 나단 선지자가 대답합니다.
“여호와께서 왕과 함께 계시니, 마음에 있는, 모든 것을 행하소서”
요즈음 식으로 말하면,
하나님의 집을 짓는 것은, 기도할 필요도 없습니다.
당연히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그냥 계획한대로 다 행하시면, 딱~~~ 좋습니다.
성경말씀을 잘 모르면, 뭐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인지 잘 모릅니다.
기도생활이 없으면, 무엇이 하나님께서 감동받으시는 것인지 잘 모릅니다.
다윗은 평소에 기도를 너무너무 많이 했다.
대적을 칠로 갈때에는, 항상 먼저 꼭 기도합니다. “하나님 대적으로 치로 올라 갈까요?”
평소에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믿음의 삶을 통하여, 다윗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잘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잘 되었을 때, 오히려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않고,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일을 하려고 했습니다.
나단 선지자는 다윗의 말을 듣고, 그것은 당연히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왕이 잘 결정하셨습니다. 그냥 실행하시면 됩니다.
얼마나 하나님께서 감동을 받으셨는지...그 날밤에 하나님께서 다윗왕에게 나타나, 10가지 큰 복을 내려 주십니다.
“너의 이름을 위대하게 해주겠다.
“너의 나롸와 앙와고 가정을 견고하게 해주겠다...”
성경을 보면, 다윗이 그 말씀을 듣고, 얼마나 좋았는지..
그날 밤에..이불을 뒤집어 쓰고, 좋아서.. 펑펑 울면서...“하나님 감사합니다. 앞으로 잘하겠다. 항상 동행하여 주시옵소서. 그리고 좋아했다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한가지를 감동시켜 드리면, 하나님께서는 열배로, 나에게 감동받도록 해주시는 줄로 믿습니다.
2. 하나님을 감동시키드리는 방법은 무엇입니까?
오늘 본문에 말씀은 반대입니다. 예수님을 감동시켜 드린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실망시켜 드립니다.
하나님 이거 주십시요.
하나님 이것 응답해 주십시요.
이것이 부족합니다.
이런 복을 주십니다.
누구나 하나님께 부탁드리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무명의 아버지는, 아들을 너무너무 사랑했습니다.
아들의 병을 고치고 싶다는, 간절한 목표가 있었습니다.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하여 예수님을 찾았습니다.
“예수님, 무엇을 할수 있거든, 도와 주십시요..”
믿음도 없고, 말도 너무너무 부정적이고....
이 말을 들을때, 예수님은 감동하신 것이 아니라, 실망을 하게 되었습니다.
자 이런 말로 기도하는 사람의 기도가? 하나님을 감동시켜 드릴수 있겠습니까?
자 이런 말을 들을 때, 하나님께서 마음을 움직이셔서 그 기도에 응답해 주시겠습니까?
예수님께서는 책망을 하십니다. “할수 있거든이 무슨말이냐? 믿는자에게는 능치못하는 일이 없느니라.”
그렇습니다. 예수님을 감동시켜 드리기도 하고, 예수님께 실망시켜 드리는, 두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바로 말과, 행동입니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을 감동시켜 드리는 사람이, 사용하는 언어와 말이 따로 있습니다.
긍정적이고, 믿음의 말을 하였습니다.
“밤이 새도록 잡은 것이 없지만,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다시 내리리이다”
그럴 때, 두배에 가득차고도 남는 고기가 잡히게 되는 것입니다.
“그 땅의 백성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은 우리 밥이라... 여호와는 우리와 함께 하시느니라”
그럴 때,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의 주인이 되는 것입니다.
반대로, 하나님을 실망시켜 드리는 사람이 사용하는 언어와 말은, 부정적이고 불신앙적입니다.
“과연 그 땅은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나, 그 땅의 사람은 아낙자손 대장부라...우리는 메뚜기 같습니다.”
그 말을 듣고,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난땅 앞에서, 우리는 망했다고 울고 불고 불평을 합니다. 그래서 40년 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 생활을 하게 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오늘 본문의 무명의 아버지는, 간절함도 있었습니다. 예수님을 찾아가는 열심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간절함와 열심이 있다고, 믿음이 좋은 것은 아닙니다.
긍정적인 믿음의 말이 아니라, 부정적인 불신앙의 말을 할 때,
간절함과 열심이 있었지만, 예수님을 감동시켜 드린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실망시켜 드리고 책망받게 되었던 것입니다.
야고보서 3장 9절 10절에 보면 말씀합니다.
“이것으로 우리가 주 아버지를 찬송하고, 또 이것으로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사람을 저주하나니,
한 입에서 찬송과 저주가 나오는도다, 내 형제들아 이것이 마땅하지 아니하니라”
그리스도인은 말을 사용하여, 예수님께서 감동하시고, 사람을 감동하게 할수 있지만,
똑같은 말을 사용하여, 예수님을 실망시켜 드리고, 사람을 실망시킬수도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믿음의 말을 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주위의 사람들에게도, 믿음을 깊게 하고, 은혜를 끼치고, 용기를 북돋우워 주는 말을 하기가 쉽직 않습니다.
그 마음속에, 믿음이 없으면 믿음의 말이 나오기 힘듭니다.
그 마음속에, 주위 사람들을 향한 사랑과 덕스러움과 긍정적인 너그러움이 없으면, 그런 말이 나오기 힘듭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께서 기뻐받으시는 기도의 연습을 하고, 믿음의 연습을 하고, 말의 연습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존중과 배려를 불러일으키는 대화법으로,‘쿠션언어’가 있습니다.
상대방에게 부탁, 거절, 지시(제안), 부정적인 말 등, 껄끄러운 말을 할 때, 상대방이 느낄 부정적인 감정을 완화시키는 화술 이라고 합니다.
“다시 한 번 말씀해 주세요?”
“죄송하지만, 다시 한 번 말씀해 주시겠어요?”
“이번 주는 않되겠습니다.”
“실례가 안 된다면, 이번 주 말고 다음 주에 만나면 좋겠습니다.”
“담당부서가 아닙니다.”
“번거로우시겠지만, 해당부서로 가시면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충격을 흡수하는 쿠션을 주는 말을 넣어서, 긍정적으로 말하면,
거절이나, 부탁하는 말도, 원만하게 잘 하게 된다고 합니다.
구약성경의 에스더서를 보면, 에스더 왕비는, 유다민족의 멸족지화를 앞두고, 구션언어를 사용합니다.
“내가 잔치를 베풀어 사오니, 왕이 좋게 여기시거든, 하만과 함께 오소서!”
아하수에로 왕이 마음이 풀어 집니다.
“소원이 무엇이냐? 나라의 절반이라도 주겠노라”
“내가 만일 왕의 목전에서 은혜를 입고, 왕이 좋게 여기시면, 내 소청대로, 내 생명을 내게 주시고, 내 민족을 내게 주소서”
아하수에로 왕이 답답해 합니다. “그게 무슨 소리냐? 누가 왕비의 생명을 해하려 하느냐?”
“이 악한 하만입니다.”
그래서 하만은 죽고, 에스더 왕비는 유다민족을 구하게 됩니다.
만약 그때, 에스더 왕비가, 앞뒤 가리지 않고, “내가 못살아..못살아...” 가슴을 치고, 땅에 퍼질러 앉아서, 울고 불고....
하만을 찾아가서 삿대질을 하고, 목소리를 높혔다면...역사가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하지만, 그런 때일수록, 구션 언어를 사용하고, 지혜롭게 왕의 마음을 누그러 뜨리고,
부탁할 때 원만하게 대답하도록 신중하게 말을 잘 할 때,
유다민족을 구하고, 에스더 왕비는 높하지는 좋은결과를 가져 오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지혜로운 말로 사람을 감동시키고
그리스도인은 믿음의 말로, 예수님을 감동시키는 줄로 믿습니다.
전체적으로 말씀을 정리합니다.
믿음의 역사는 어떻게 이루어 집니까?
하나님께서 나에게 감동하시고, 나에게 역사하여 주실 때, 오늘도 그 사람은 역사의 주인공이 되는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을 감동시켜 드리는 김포상도교회 믿음의 식구들이 되시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