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전서 12장 7절 27절 그리스도의 지체
각 사람에게 성령을 나타내심은 유익하게 하려 하심이라. 어떤 사람에게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말씀을, 어떤 사람에게는 같은 성령을 따라 지식의 말씀을, 다른 사람에게는 같은 성령으로 믿음을, 어떤 사람에게는 한 성령으로 병 고치는 은사를, 어떤 사람에게는 능력 행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예언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영들 분별함을, 다른 사람에게는 각종 방언 말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방언들 통역함을 주시나니.
이 모든 일은 같은 한 성령이 행하사 그의 뜻대로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시는 것이니라. 몸은 하나인데 많은 지체가 있고 몸의 지체가 많으나 한 몸임과 같이 그리스도도 그러하니라
우리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다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고 또 다 한 성령을 마시게 하셨느니라. 몸은 한 지체뿐만 아니요 여럿이니, 만일 발이 이르되 나는 손이 아니니 몸에 붙지 아니하였다 할지라도 이로써 몸에 붙지 아니한 것이 아니요. 또 귀가 이르되 나는 눈이 아니니 몸에 붙지 아니하였다 할지라도 이로써 몸에 붙지 아니한 것이 아니니, 만일 온 몸이 눈이면 듣는 곳은 어디며 온 몸이 듣는 곳이면 냄새 맡는 곳은 어디냐. 그러나 이제 하나님이 그 원하시는 대로 지체를 각각 몸에 두셨으니, 만일 다 한 지체뿐이면 몸은 어디냐. 이제 지체는 많으나 몸은 하나라. 눈이 손더러 내가 너를 쓸 데가 없다 하거나 또한 머리가 발더러 내가 너를 쓸 데가 없다 하지 못하리라. 그뿐 아니라 더 약하게 보이는 몸의 지체가 도리어 요긴하고, 우리가 몸의 덜 귀히 여기는 그것들을 더욱 귀한 것들로 입혀 주며 우리의 아름답지 못한 지체는 더욱 아름다운 것을 얻느니라 그런즉 우리의 아름다운 지체는 그럴 필요가 없느니라 오직 하나님이 몸을 고르게 하여 부족한 지체에게 귀중함을 더하사, 몸 가운데서 분쟁이 없고 오직 여러 지체가 서로 같이 돌보게 하셨느니라.
만일 한 지체가 고통을 받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고통을 받고 한 지체가 영광을 얻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즐거워하느니라. 너희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지체의 각 부분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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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절을 보내고, 이제 4월달 마지막 주일이 되었습니다. 다음 주일은, 5월달을 가정의 달의 시작 되지요.
그래서 오늘은 4월달을 마무리 하며, 5월달을 준비하는 마음으로, ‘부활하신--예수님의 지체로, 부름받은 성도’ 라는 주제로 말씀을 전하려고 합니다.
지체는 한문으로 팔다리 지, 몸체, 한글사전으로는 팔다리와 몸 전체입니다.
영어 성경으로는 ‘멤버스’라고 쓰고 있습니다. 멤버는 구성원을 뜻하는 말이지요.
교회사전으로는 신체의 각부분 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지체에 대하여, 에베소서 3:6 에는 중요한 말씀이 나옵니다.
“이는 이방인들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상속자가 되고 함께 지체가 되고 함께 약속에 참여하는 자가 됨이라”
여기서 이방인은 바로 우리들입니다. 즉 유대인이 아닌 이방인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예수그리스도 안에서, 함께 상속자가 되고~
그렇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우리의 모든 죄를 대속하여 주시고, 또한 부활 승리하심으로 부활의 산소망이 있음을 보여 주시며, 유대인이나 이방인도 함께 상속자가 되도록 하여 주셨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 상속자게 되게 하여 주셨는데, 하나님의 자녀는 무엇을 상속 받습니까? 하나님의 나라, 천국을 상속받는 자로... 부름을 받고, 인정을 받게 되었습니다.
또한 함께 상속자가 된 성도들은, 함께 지체가 되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즉, 주님의 몸된 교회의 지체, 멤버가 되었습니다. 교회는 주님의 몸 이지요. 우리 한사람 한사람은, 주님의 몸을 이루는, 각지체로 부름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하여, 함께 약속에 참여하는 하는 자가 됨이라.~ 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즉 함께 부름받아, 함께 상속자가 되고, 함께 지체가 될 때, 하나님께서 주시고마 약속하신 그 말씀들에 해당되는 사람, 관계있는 사람, 하나님 약속의 당사자로 부름을 받게 되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들의 이러한 모든 변화는, 바로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하심으로, 나타나고 변화되고 적용되고, 임하게 된 내용이 되겠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으로 인하여, 예수님 안에서, 이제는 유대인이나, 이방인, 자유자, 종, 남자, 여자, 외국인, 한국인이 아니라, 바로 예수님의 지체로 그 신분과 목적과 삶의 방향이 바뀌게 되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① 각 지체는 각각 모두 중요합니다.
11절로 20절 말씀 까지, 좀 깁니다만, 한절씩 교독 하도록 하겠습니다.
“이 모든 일은 같은 한 성령이 행하사 그의 뜻대로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시는 것이니라
몸은 하나인데 많은 지체가 있고 몸의 지체가 많으나 한 몸임과 같이 그리스도도 그러하니라
우리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다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고 또 다 한 성령을 마시게 하셨느니라
몸은 한 지체뿐만 아니요 여럿이니
만일 발이 이르되 나는 손이 아니니 몸에 붙지 아니하였다 할지라도 이로써 몸에 붙지 아니한 것이 아니요
또 귀가 이르되 나는 눈이 아니니 몸에 붙지 아니하였다 할지라도 이로써 몸에 붙지 아니한 것이 아니니
만일 온 몸이 눈이면 듣는 곳은 어디며 온 몸이 듣는 곳이면 냄새 맡는 곳은 어디냐
그러나 이제 하나님이 그 원하시는 대로 지체를 각각 몸에 두셨으니
만일 다 한 지체뿐이면 몸은 어디냐
이제 지체는 많으나 몸은 하나라“
우리가 예수님 안에서, 예수님의 몸의 지체로 부름받고 쓰임받게 된 것은,.... 그 근원와 근거는 누구 때문입니까?
방금 읽었습니다만, 11절에 말씀합니다. “이 모든 일은 같은 한 성령이 행하사 그의 뜻대로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시는 것이니라”
그렇습니다. 성령님께서 행 하시고, 성령님께서 뜻대로 각 사람에게 은사와 능력과 재능과 임무를 나누어 주셔서, 우리는 주님의 몸의 지체로 부름을 받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지체가 되어 생활하는 것은, 누구를 닮았습니까? 본문 12절에 말씀합니다.
“몸은 하나인데 많은 지체가 있고 몸의 지체가 많으나 한 몸임과 같이 그리스도도 그러하니라”
맞습니다. 그리스도의 몸이 그러하듯, 즉 예수님의 몸은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께서 십자가에 내어 주심으로, 우리를 구원하신 예수님의 몸이지요.
그 예수님의 몸을 보니까, 가시관을 쓰신 예수님의 머리가 있습니다. 십자가에 못박히신 손과 발이 있습니다. 창에 찔리신 허리가 있습니다.
즉, 우리의 죄를 대속하시기 위하여 상하신, 예수님의 머리와 손과 발과 허리가 있는 것 처럼,~
주님의 몸된 교회에도, 머리의 역할, 손의 역할, 발의 역할, 허리의 역할을 하는 각 지체를 성령님께서 불러 주시고, 맡겨 주셨다고 하는 것입니다.
자, 한번 질문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마음속으로 답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나는 주님의 몸의 어떤 지체입니까? 나는 주님의 몸의 어떤 지체의 사명과 역할을 감당하고 있습니까? 머리 입니까? 손입니까? 발입니까? 아니면 허리입니까?
나는 주님의 몸의 어떤 지체의 사명과 역할도 감당하고 있지 않는것 같습니다.~ 라고 한다면, 빨리 이사야 선지자 처럼, “하나님 나를 쓰시옵소서, 지금 내가 여기 있나이다.”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또, 나는 손인지? 발인지? 허리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라고 한다면, 빨리 성령님께, “나에게 능력을 부어 주셔서, 섬김, 봉사, 헌신으로 주신 사명 잘~ 감당할수 있게 하옵소서” 기도하여야 하겠습니다.
아시는 분은 다~ 아시겠지만, 저도 얼마전에 코로나가 지나갔습니다.
코로나가 걸리니까? 다른것은 다~괜찬은데 목소리가 않나옵니다. 평소에는 높은 목소리, 우렁찬 목소리로 찬송하는 것을 당연시 여기고, 아무것도 아닌것 처럼, 감사함이 없이 살았던 것이 사실입니다.
그런데 막상 코로나가 걸리고 나니까, 찬송을 하려고 해도, 목소리가 않나오는데 얼마나 답답한지 모릅니다.
그래서 그때 ‘목청’의 귀함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목청’은 전혀~ 보이지도 않고, ‘목청’은 너무나 일상적입니다. 말할 때, 말하는 것이 당연하지,~ 말하는 것을 새삼스럽게 귀하게 여기고 감사하다니, 그렇게 일부러 감사할 것을 찾아내어 감사할 필요가 있는가?~하면서, 있는지도 모르고,~ 항상 있으니까, 목청은 당연 것으로 생각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코로나라 걸리고, 목소리가 않나오니까...너무나 답답함을 경검하면서, 목청의 귀함을 알게 되었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주님의 몸된 각 지체로 부름을 받은 한사람 한사람은, 성령님께서 사명을 맡겨 주셨습니다.
그래서 그 사명을 감당하는 각 지체는, 그 지체로 불러주신 주님 앞에서, 각각 귀하고,중요하고, 역할이 요긴 하다고 하는 것입니다.
멀리 갈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한번은 제가 찬송을 인도하는데, 힘찬 찬송을 하게 되었습니다.
힘찬 찬송을 할때에는, 보통 박자에 맞추어, 박수를 하면서 힘차게 찬송을 하지요. 그런데 앞에 앉아있는 권사님 가만히 있습니다. 그래서 혼자 생각에, 권사님이 무슨 근심된 일이 생기셨나? 하고 궁금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찬송을 마치고 나중에 인사를 하는데, 보니까? 손목에 기브수를 해서~ 인사를 합니다. “목사님, 손목이 아파서, 손목에 기브스를 했습니다.”~
찬송할 때 박수하는 것만 해도, 하던 박수를 않하니까, 찬송이 약해진것 같고, 그 지체의 역할과 사명이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하물며, 안내, 봉사, 부서, 찬양, 반주...모든 부분은 예수님께서 부르시고, 맡겨주신 역할과 사명이 있으며,~
따라서 각 사람은, 예수님께서 나에게 주신 역할과 사명을 귀하게 여기고, 잘~ 감당하기를 힘써야 된다고 하는 것입니다.
로마서 6:13 에는 말씀합니다.
“또한 너희 지체를 불의의 무기로 죄에게 내주지 말고 오직 너희 자신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난 자 같이 하나님께 드리며 너희 지체를 의의 무기로 하나님께 드리라”
또한 주님께서 우리 각 사람에게 맡겨주신 사명과 역할은, 얼마가 귀중하고 중요한지, 마치 무기와 같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무기는 가만히 있는 물건이 아닙니다. 주위에 영향을 미치되, 치명적인 영향을 미치는 물건이 무기입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우리가 받은 사명과 역할과 나의 봉사의 자리는, 바로 이 무기와 같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모든 무기는 안정장치가 있습니다. 이 무기가 항상 작동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래서 자동차에는 부레이크가 있듯이, 또한 집에는 뚜거비 집이 있듯이, 무기에는 안전장치가 있습니다.
적이 있는 방향을 잘 확인하고, 안전장치를 풀고 발사를 하면, 이 무기는 적에게 엄청난 피해를 입히고, 우리는 승리할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각 지체로 부름을 받았는데, 방향이 바뀌어져, 불의의 무기가 됩니다. 즉 죄에게 내어 주고, 죄에게 쓰임이 되면, 무슨 소용이 있으며, 유익이 되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너희 지체를 의의 무기로 하나님께 드리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나는 주님의 몸의 지체가 되어, 의의 무기로, 나를 하나님께 드림으로, 죄의 세력은 물러가고, 하나님의 뜻과 계획하심이 나타나는데, 사용되 쓰임받게 하소서.~” 즉 나의 사명의 방향이 분명하고, 나의 봉사와 언행이 주님의 뜻을 이루는 지체가 되어야 된다고 하는 것입니다.
② 몸의 지체는 다양 합니다.
21절로 25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눈이 손더러 내가 너를 쓸 데가 없다 하거나 또한 머리가 발더러 내가 너를 쓸 데가 없다 하지 못하리라
그뿐 아니라 더 약하게 보이는 몸의 지체가 도리어 요긴하고
우리가 몸의 덜 귀히 여기는 그것들을 더욱 귀한 것들로 입혀 주며 우리의 아름답지 못한 지체는 더욱 아름다운 것을 얻느니라 그런즉
우리의 아름다운 지체는 그럴 필요가 없느니라 오직 하나님이 몸을 고르게 하여 부족한 지체에게 귀중함을 더하사
몸 가운데서 분쟁이 없고 오직 여러 지체가 서로 같이 돌보게 하셨느니라”
제가 신학교 다닐 때, 기숙사에서 있었던 일 입니다.
여름방학이 되면, 전도사님들이 여름수련회를 위하여, 출타를 하게 됩니다.
보통은 준비도 하고, 진행도 하고~ 수련회가 마치면, 기숙사로 돌아오기 때문에, 거의 한주간을 비우게 됩니다.
제가 있던, 기숙사 방에도, 한 전도사님이 수련회 기간이 되어, 출발을 합니다.
그런데 다음날 새벽이 되니까... 그 전도사님 책상에서 소리가 납니다. “부르르~ 부르르” 한 30분 가까이 책상이, 떨리고 소리가 그칩니다.
너무 시끄러워, 책상 설합을 열어 보려고 하니까, 열쇄로 잠궈 놓았습니다.
아침이 되어 , 방에 전도사님이 모여서 의논을 합니다. “새벽에, 저 책상에서 떠는 소리가 무엇 때문 일까요?”
한참 의논을 하다가, 결론은 ‘매미’ 라는데 의견이 모아 졌습니다.
한 전도사님이 말합니다. “저~ 진동과 소리는, 제가 잘 아는데 분명히 ‘매미’가 떠는 소리 입니다.”
그때부터 성토가 쏟아 집니다. “아니, 수련회 갈려면 곱게가지, 괜미~ 매미를 잡아서 책상 설합에 넣어놓고 간다는 말입니까? 남아있는 사람 골려 주려고 그렇게 한것 같습니다”~
그런데 다음날 새벽이 되니까.. 또~ 소리가 납니다. “부르르~ 부르르~”
그 방에 사람들이, 다~ 새벽에 잠을깨서, 고개를 갸웃 합니다. “분명히 매미인데, 왜 이 매미는 새벽만 되면 떨까요? 희안한 매미 이네요”
그렇게 매일~새벽마다 매미가 책상설합에서 울고, 토요일이 되어서 그 전도사님이 돌아 왔습니다.
다들 매미가 죽지도 않고, 일주일동안 새벽마다 울었다고 하니까, 그 전도사님이 더~ 황당해 합니다.
“아니~ 요즈음 시대에, 삐삐도 모른다는 말입니까...?. 누가 전화하면 전화건사람 전화번호가 나오는 삐삐라는 물건~입니다. 제가 새벽기도~할려고, 삐삐에 알람을 진동으로 맞추어 놓아서, 삐삐가 새벽마다 진동을 해서 그런 겁니다.”
그러면서, 삐삐도 모르고, 매미 라 했다고 놀립니다.
방에 있는 사람들은, 그럼~ 알람을 꺼놓고 갔어야지,하고 분해 합니다.
지금 생각하면 추억이지만, 당시는 그일로 인하여, 한동안 옥신각신 하고, 냉냉 했습니다.
본문으로 돌아와서, 그런데 그런 상황에서 가장 중요한 핵심, 중심은 무엇인가? 하는 것입니다.
그 당시, 그순간에는, 방에 있는 다른 사람을 배려하지 않은 것으로 인하여, 약오르고 부당하다고 생각을 하였습니다.
반대로, 수련회 준비로 바쁜데, 알람 끄는거 잊어버렸다고 그걸 그렇게 감정적으로 반응을 하나? 하고 생각을 합니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서, 지금 한발짝 떨어져서, 전체적으로 바라보면, 그때에 제일 중요한 것은, 주님께 받은 사명을 잘 감당하는 것이요,~ 매미도, 삐삐도 아니지 않겠습니까?
오늘 본문 21절에 말씀합니다.
“눈이 손더러 내가 너를 쓸 데가 없다 하거나 또한 머리가 발더러 내가 너를 쓸 데가 없다 하지 못하리라”
오늘 본문을 보니까, 눈이 손더러 말하기를 ‘내가 너를 쓸데 없다’ 하고
머리가 발더러 ‘내가 너를 쓸데 없다’고 하지 못하리라고~ 말씀 합니다.
아니, 눈이 왜 손 더러, 머리가 왜 발더러 그런 말을 하는 것입니까?
몸 전체의 입장이 아니라 그때 그순간,~ 눈은 눈에 입장에서 손을 향하여, 말을하기 때문입니다.
또, 머리도 몸 전체의 입장이 아니라 그때 그순간 머리에 입장에서 발을 향하여 말을 합니다.
그러니까, 눈은 눈이 제일 중요하고, 눈이 하는 것처럼 왜 손은 나 처럼 하지 못할까?
또, 머리는 머리가 제일 중요하고, 머리가 하는 것처럼, 왜 발이 나처럼 하지 못할까? 하고 말을 합니다.
하지만 눈이 제일 중요한가? 그렇지 않지요. 발이 제일 중요한가? 그렇지 않습니다.
모두가 제 역할을 할때, 하나도 요긴하지 않은것이 없고,~ 각 지체가 자기의 역할을 잘 감당함으로, 몸이 전체적으로 온전하게 되는 것입니다.
또, 24절 하반절, 그리고 25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부족한 지체에게 귀중함을 더하사, 몸 가운데서 분쟁이 없고, 오직 여러 지체가 서로 같이 돌보게 하셨느니라”
이렇게 하는 것이 지혜로운 지체요,~ 이렇게 하는 것이 성숙한 지체요, 믿음이 깊은~ 지체라고 하는 것입니다.
옛날에 윤영애 집사, 박정옥 권사, 신효식집사님 세분을 교회차에 태우고 검단네거리를 다녀오게 되었습니다.
그때 윤영애 집사님은 60대 후반, 박정옥 권사님은 70대 후반, 신효식 집사님은 80대 후반입니다.
윤영애 집사님이 “아이구~ 요즈음은 몸이 예전같지 않아요.”
그러니까 듣고 있던 박정옥 권사님이 말합니다. “내가 집사님 나이 때는, 뒤에 산골 다니면서, 토토리를~ 한푸데식 주어 왔어요.”
그러니까 듣고 있던 신효식 집사님이 웃으면서 대답합니다. “다들 못하는 소리가 없어~ 내가 웃어야 해~, 말아야 해”~
그렇습니다. 어떤 때~ 어떤 상황에서도, 다른 지체를 이해하고,~ 여유있게 용납하며, 더 큰 부르심의 목적을 이루기 위하여 힘쓰면,~ 주님께서 합력하여 선을 이루도록, 그 지체에게 역사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③ 지체는 목적대로 힘써야 합니다.
본문 26절 27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만일 한 지체가 고통을 받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고통을 받고 한 지체가 영광을 얻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즐거워하느니라, 너희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지체의 각 부분이라”
즉 나의 역할을 감당하되, 다른 지체가 고통을 당하면, 그것을 나의 고통으로 알고, 지혜있게 잘 살피며,~ 그래서 지체의 각 사람이, 함께~ 즐거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기를 힘써야 하겠습니다.
야고보서 3:5 에는 말슴합니다.
“이와 같이 혀도 작은 지체로되 큰 것을 자랑하도다 보라 얼마나 작은 불이 얼마나 많은 나무를 태우는가”
혀는 너무나 작은 지체로되 혀가 생각없이 말하면, 아무리 발이 열심히 움직여도, 혀의 말로 인하여 주위 사람들과 않좋은 일이 발생을 합니다. 그러면 그동안 열심히 움직인 발의 수고가 무슨 소용이 있게 됩니까? 그 영광이 바래게 됩니다.
그러므로, 지체는 목적대로 힘쓰되, 다른 지체를 살피고, 또 주님의 영광을 가리지 않는가? 조심하여,~ 그 지체의 열심히 온전히 좋은 열매로 이어지도록, 지혜있게, 힘써야 하겠습니다.
말씀을 정리 합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와 부활승리하심으로, 우리를 지체로 불러 주셨습니다.
지체는 소중하지 않는 지체가 없습니다. 또 치체는 모양과 기능이 모두 다릅니다. 하지만 겸손하고,~ 섬기며, 충실하게 지체의 사명과 역할을 감당할 때, 마침내 그 모든 지체들은 몸을 온전하게 합니다.
김포상도교회 성도들은 주님의 몸의 지체로써, 성숙한 믿음으로 생활하여,
온전하게 주님의 뜻이 나타나고, 또 이루어 가는, 은혜의 한주간으로 보내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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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주님의 몸의 지체로, 우리 한사람 한사람을 불러 주시니, 감사를 드립니다.
주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고, 부활승리 하신 것처럼, 우리도 지체의 사명을 잘 감당함으로 온전한 몸을 이루어, 주님의 뜻을 온전히 나타내고, 이루어 가는.... 성도의 삶을 살게 하여 주시옵소서.
한주간 동안 4월달을 잘 마무리 하고, 5월달을 잘 시작할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 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