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8장 21절 27절 구원열차
제자 중에 또 한 사람이 이르되 주여 내가 먼저 가서 내 아버지를 장사하게 허락하옵소서
예수께서 이르시되 죽은 자들이 그들의 죽은 자들을 장사하게 하고 너는 나를 따르라 하시니라
배에 오르시매 제자들이 따랐더니
바다에 큰 놀이 일어나 배가 물결에 덮이게 되었으되 예수께서는 주무시는지라
그 제자들이 나아와 깨우며 이르되 주여 구원하소서 우리가 죽겠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어찌하여 무서워하느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 하시고 곧 일어나사 바람과 바다를 꾸짖으시니 아주 잔잔하게 되거늘
그 사람들이 놀랍게 여겨 이르되 이이가 어떠한 사람이기에 바람과 바다도 순종하는가 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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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봄1차 총동원 주일 입니다. 또한 2월달을 시작하는 첫째주입니다.
2월달은 ‘찬양의 달’입니다. 열심히, 하나님을 찬양하며, 우리를 구원으로 인도하신 예수님을 찬양하며 보내어야 하겠습니다.
우리가 구원받는 것은 마치 구원열차를 타고 가는 것과 같습니다. 어릴 때 교회학교에서 배운 복음송가가 기억이 납니다.
“나는 구원열차 올라 타고서, 하늘나라 가지요
죄악역 벗어나 달려가다가, 다시 내리지 않죠
차표 필요 없어요. 주님 차장 되시니, 나는 염려 없어요
나는 구원 열차 올라 타고서, 하늘나라 가지요“
지은 사람을 찾아 보았더니 미상입니다. 작곡자를 찾아 보았더니 미상입니다.
즉, 누가 지었는지, 누가 작곡했는지 전하여 지지 않고, 복음송가만 전하여 집니다.
하지만 얼마나 잘 짓고, 잘~ 만들었는지, 우리가 구원받는 과정을 너무나 잘 표현한 것 같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왜 찬양~합니까? 하나님께서 나를 구원하여 주셨기 때문에 기뻐하며 찬양합니다.
하나님은 어떻게 나를 구원하여 주셨습니까? 예수님을 보내어 주셔서, 나를 구원 하여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어떻게 나를 구원하셨습니까?
오늘 본문에는 예수님께서 나를 어떻게 구원하셨는지 그 과정이 나오고 있습니다.
1. 구원은 신속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 22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죽은 자들이 그들의 죽은 자들을 장사하게 하고 너는 나를 따르라 하시니라“
하나님께서 부르시면, 세상에 모든 사람은 나누어 지게 됩니다. 천국에 들어가는 사람과, 지옥에 떨어지는 사람으로 나누어 집니다.
그때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향하여 갑자기 아는척 하려고 합니다. “주여, 주여.. ” 하지만 그때는 이미 다~ 정하여 졌습니다. 그때가서 아는척 한다고, 예수님께서 천국에 들어가도록 하여 주시는가?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마태복음 7:23
“그 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세상에 살때에 기회를 않주신 것이 아닙니다. 선지자를 보내시고, 성경말씀을 볼수 있도록 기회를 주시고,
봄1차 총동원 주일, 봄2차 총동원주일, 사순절, 부활절, 절기들을 통하여 초대를 하십니다. 심지어는 전도를 받게 하면서, 천국에 갈수 있도록, 불러 주십니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들이 그 당시는, 천국에 들어가라는 예수님의 부르심에 귀를 기울이지 않습니다.
도리어 예수님을 모른척 하며, 예수님의 말씀을 못들은척 하며, 어떻게든지 이 세상에 있을때는, 예수님과 관계 없으려고 합니다.
제가 신대원 공부를 할 때, 주일저녁 마다, 대구에서 서울로 출발을 하였습니다.
주일에는 교육전도사로 하루종일 교회학교에서 봉사를 합니다.
그런데 신학대학원 수업이 월요일부터 시작이 되니까 피곤하다고 자고 그 다음날 월요일에 출발을 하면 수업에 결석을 할수 밖게 없습니다.
그래서 월요일 수업을 듣기 위하여, 주일이 마치면, 주일저녁에 집에가서, 쉬는것이 아니라, 얼른~ 책과 옷가지를 챙겨서, 곧 바로 동대구 역으로 갑니다. 그러면 서울로 출발하는 막차를 탈수 있습니다.
그 막차를 타고 새벽에 서울에 도착하면, 수업에 출석할수 있게 됩니다.
그런데, 그때 혼자 다닌 것이 아니라, 눈봉사 전도사님과 함께 다녔습니다.
시각장애인 전도사님이 저에게 부탁을 합니다. “이 전도사님, 제가 눈이 않보이니까, 서울에 갈때, 저를 인도하여 주시면 어떠실 까요? ”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래서 시각장애인 전도사님과 함께, 대구에서 막차를 타고 새벽에 서울에 도착하여, 신학교에 가는 첫 마을버슬를 타고, 신학교에 들어가 수업을 들었습니다.
그렇습니다. 내가 나의 힘으로 걸어서, 뛰어서, 어떻게 하루밤만에 서울에 도착할수 있겠습니까?
서울에 가는 차에 올라탈 때, 나는 하루밤 만에, 서울에 도착할수 있게 됩니다.
어떤 사람은 스스로 걸어서, 뛰어서, 나의 힘으로 천국에 도착하고, 천국문도 나의 힘으로 열고, 천국에 나의 힘으로 들어가서, 나의 능력으로 영원히 살수 있지 않을까 막연하게 생각을 합니다.
아니, 평소에 나의 힘으로 공부를 하여도,~ 학력고사 300점을 받지 못하여 서울대학에도 들어가지 못하는 것이, 우리나라 대부분의 학생들이요, 인생인데, ~
어떻게 천국에는 그렇게 쉽게~ 나 정도라면 들어갈수 있다고 생각을 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마가복음 10장에 보면, 한 청년이 예수님께 찾아와 질문을 합니다.
“선생님이여,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성경말씀에 계명들이 있다~”
그러니까 청년이 대답합니다. “내가 어려서부터 이런 것은 다 지켰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청년을 사랑하셔서 “그럼 네가 있는 것은 다~ 나누어 주고,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
그럴 때 이 청년이 예수님을 따르지 못합니다. 근심하며 돌아 갑니다.
그 모습을 보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얘들아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천국에 들어가려면, 예수님께서 운행하시는 구원열차에 올라 타야 합니다.
예수님이 십자가 보혈로 나의 죄를 씻어 주시고, 예수님이 나를 하나님의 자녀 삼아 주시지 않으면,
나는 힘과 능력 만으로는, 세상의 어떤 사람으로 자기가 걸어서 스스로 천국에 갈 수 없으며, 자기 스스로의 힘으로, 영원히 영생하지 못하며, 자기 스스로의 능력으로 영생복락을 만들어 누릴수가 없습니다.
그르므로, 천국에 도착하고, 천국에 들어가려는 사람은, 예수님이 차장 되셔서 출발하시는 구원열차에 탑승하여, 순종하며 의탁하며 의지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제가 제일 걱정하고 불안하였던 것은, 막차를 놓치면 서울에 올수가 없으니까, 막차를 놓치지 않기 위하여, 무던히 애섰던 기억이 납니다.
한번은 막차에 올라 탓는데, 손님이 하나도 없습니다. 손님은 저 하고, 버스기사 밖에 없습니다.
순간 너무 불안해서 버스기사에게 묻습니다. “저기~ 저는 학생인데요, 이 막차가 않가면, 내일 수업을 못듣는데, 이 막차~ 출발하는 거 맞지요?”
고속버스 기사가 웃으면서 대답합니다. “손님이 있으면, 가아지요.”
그래서 저 혼자, 고속버스 전세내서, 서울에 온적이 있습니다.
가끔씩, 교회 밖에 사람이 더 많고, 교회 안에 사람이 적은 것을 보고, 놀랠때가 있습니다.
“이 구원열차 출발하는 거 맞습니까?”
“밖에 사람들이 더 많은데, 제가 잘못 탄거 아닙니까? ”
사도행전 4:12 에 말씀합니다.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하였더라”
그렇습니다. 예수님 외에 다른 어떤 이름도, 우리를 구원으로 인도할수 없습니다. 오직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고, 우리를 위하여 부활하신 예수님만, 우리를 구원하시며, 천국에 인도하여 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탄 구원열차, 잘못탄거 아닌가? 출발하는 것 맞는가?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구원열차 않 올라 타거나, 이단과 사이비에 올라타고 좋다고 하는 사람들이 문제 이지,~
우리가 탄 구원열차는 예수님이 직접 차장 되신 구원열차요, 예수님께서 우리가 분명히 천국에 도착 되도록 운행하시는 천국열차인 것입니다.
2.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구원하여 주시는 분 이십니다.
오늘 본문 23절부터 27절 말씀까지 교독으로 읽겠습니다.
“배에 오르시매 제자들이 따랐더니
바다에 큰 놀이 일어나 배가 물결에 덮이게 되었으되 예수께서는 주무시는지라
그 제자들이 나아와 깨우며 이르되 주여 구원하소서 우리가 죽겠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어찌하여 무서워하느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 하시고 곧 일어나사 바람과 바다를 꾸짖으시니 아주 잔잔하게 되거늘
그 사람들이 놀랍게 여겨 이르되 이이가 어떠한 사람이기에 바람과 바다도 순종하는가 하더라“
구원 열차 복음송에는 2절도 있습니다. 혹시 기억이 나실지 모르겠습니다.
“나는 구원방주 올라 타고서, 하늘나라 가지요
험한 시험 물결 달려 들어도, 전혀 겁내지 않죠
배삵 필요 없어요. 주님 선장 되시니, 나는 염려 없어요
나는 구원 방주 올라 타고서, 하늘나라 가지요“
오늘 두 번째 본문은, 예수님께서 선장되신 구원의 방주에 대한 말씀이 되겠습니다.
예수님께서 배에 오르십니다. 제자들이 예수님을 따라서 예수님이 오르신 배에, 올라 탑니다.
그런데 배가 조금 가다 보니까, 물결이 일기 시작합니다. 물결이 점점 커집니다. 나중에는 파도가 되어, 배에 일렁일렁 하게 됩니다.
제자들은 그 파도를 보고, 너무너무 걱정이 됩니다.
이 배가 물에 잠기는 것은 아닌가? 이 배가 목적지에 잘 도착할수는 있을까?
제자들은 급히~, 선장되신 예수님을 깨웁니다.
본문 25절에 말씀합니다. “그 제자들이 나아와 깨우며 이르되 주여 구원하소서 우리가 죽겠나이다”
자~정리를 하자면, 제자들은 예수님을 따라, 구원의 방주에 잘~ 탑승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구원의 방주가 갈때에, 바람이 불고 파도가 치는 곳을 통과 합니다. 그럴대 제자들은 예수님이 친히 선장되신 구원의 방주에 타고 있었지만, 근심하고 걱정을 하게 됩었습니다.
다행히, 제자들은 예수님을 흔들어 깨우고, 예수님께 “주여 구원하소서, 우리가 주겠나이다” 부르짖었습니다.
하지만, 가끔씩은 예수님을 온전히 믿고, 예수님을 온전히 의지 하지 않음으로, 예수님을 깨우지 않으려 하고, 예수님께 부르짖지 않는 경우가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파도가 너무 급합니다. 예수님께 기도하기 보다는, 내가 직접 이 방주를 운전해야 되겠습니다.~” 그러면서, 자기가 생각하는데로 운전대를 잡습니다.
심지어는 “구원의 방주는 믿지 못하겠습니다. 차라리 내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구원의 방주에서, 중간에 내리는 사람도 있습니다.
히브리서 6장 5절 6절에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도, 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하게 할 수 없나니 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아 드러내 놓고 욕되게 함이라”
구원의 방주가, 탓다가 내렸다가, 기분좋으면 또 타고, 그러다가 바쁘면 다시 내리고, 그럴수 있는 방주입니까?
창세기 7장에 보면 노아가 방주를 짓고, 방주에 들어가는 장면이 나옵니다.
하나님께서는 노아에게 방주를 짓도록 명령하실 때, 이대로 만들라고 세세하게 가르쳐 줍니다.
그럴 때 노아는 하나님께서 말씀하신대로 방주를 크기, 높이, 길이, 구조, 모양을 그대로 만들어 방주를 완성합니다.
만약 노아가 하나님께서 말씀하신대로 방주를 않만들고 임의대로, 자기 편한대로 만들었다면, 어떻게 40주야 홍수와 파도에, 부서지지 않고 안전하게 결딜수 있었겠습니까?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교회를 세워 나갈 때, 예수님께서 말씀대로 그대로 구원의 방주를 만들어 가야 합니다.
만약 예수님의 말씀대로 구원의 방주를 만들지 않고, 임의대로 편한대로 만들면,
세상의 죄악의 홍수와 파도에, 어떻게 부서지지 않고 안전하게 결딜수 있겠습니까?
또한 노아의 만든 방주에는 노아 한사람만 탐승 한것이 아닙니다. 노아의 아내와, 셈 함 야벳과 며느리들이, 함께 탑승을 하였습니다.
자~ 방주 밖에는 온세상은 물로 심판을 받고 있습니다. 방주 안에 있으면, 물심판이 끝날 때 까지, 안전하게 거할 수가 있습니다.
하지만, 온 세상이 물에 잠기는 마당에, 방주 안이 조용하고, 움직임이 없겠습니까? 파도소리가 엄청나게 방주안에 들렸을 것입니다. 또한 파도와 홍수로 방주가 엄청나게 흔들렸을 것입니다.
만약에 그때에, 셈과 함과 야벳이, 방주 밖에 파도소리가 시끄럽게 들리니, 나는 방주에서 내리겠습니다. 그러면서 방주에서 내리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또, 노아의 아내와 며느리 들이, 파도 때문에 방주가 요동처서 멀미가 납니다. 나는 방주에서 내리겠습니다. 그러면서 방주에서 내리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누가복음 21장 17절에서 19절에 말씀합니다.
“또 너희가 내 이름으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나, 너희 머리털 하나도 상하지 아니하리라. 너희의 인내로 너희 영혼을 얻으리라”
예수님께서는 마지막 때에, 예수님께서 오시기 직전에, 홍수가 아니라 죄악의 홍수, 대환란이 있을 것이라고 말씀 하십니다.
그때에는 예수님을 부인하고 배척하는 것이 아니라, 거짓선지자와 적그리스들이 나타나서,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을 미워하고, 박해 할 것이라고 말씀 하십니다.
하지만, 구원의 방주에 있는 성도들은, 머리털 하나도 상하지 않도록 지켜 주시겠다~ 말씀 하셨습니다.
그러면서 “너희의 인내로 너의 영혼을 얻으리라”고 말씀 하십니다.
인내하지 아니하고 중간에 내리고, 인내하지 아니하고 중간에 세상으로 가버리고, 인내하지 아니하고 거짓선지자와 적그리스도에게 가면,
목적지에 도착하지 못하고, 자기 영혼을 잃게 되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로므로 내가 인내하느냐? 인내 못하느냐? 하는것은 나의 영혼을 얻느냐? 잃느냐? 하는 구원의 싸움이요, 믿음의 싸움이 아닐수 없습니다.
오늘 본문에 제자들은 다행히, 구원의 방주에서 중간에 내리지 않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 부르짖습니다. 즉 예수님께 간구하고 기도합니다.
그럴 때 예수님께서 일어나셔서, 바람과 바다를 꾸짖으 십니다.
26절에 말씀하십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어찌하여 무서워하느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 하시고 곧 일어나사 바람과 바다를 꾸짖으시니 아주~ 잔잔하게 되거늘”
방주에 오른 제자들이 바람과 파도를 보고 근심하고 무서워 할때에, 예수님께서는 바람과 파도를 아주~ 잔잔하게 하여 주시고, 제자들은 머리털 하나 상하지 않도록 보호하여 주셨습니다.
오늘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탄 구원의 방주는, 예수님께서 친히 선장 되셔서, 운행하고 계십니다.
죄악의 바람과 세상의 파도를 보면서 근심과 걱정이 생길때, 제자들 처럼 예수님께 기도하면,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머리털 하나 상하지 않도록, 우리앞에 있는, 죄악의 바람과 세상의 파도를 아주~ 잔잔하게 하여 주십니다.
끝으로 본문, 27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그 사람들이 놀랍게 여겨 이르되 이이가 어떠한 사람이기에 바람과 바다도 순종하는가 하더라”
예수님은 누구시기에 바람과 바다도 순종하는가? 예수님은 우리를 구원하시는 참 구주가 맞으시구나...
제자들은 이러한 과정을 통하여, 예수님이 누구신가? 분명히 알수 있게 되었습니다.
방주에 타고, 인내하며, 기도하는 하나님의 자녀는, 예순님의 본모습을 알게 됩니다.
예수님의 권능과 십자가 사랑을 알게 되고, 예수님은 나를 구원하시고, 나를 천국에 들어가게 하시는, 참 구주 이십니다. 고백하게 되는 것입니다.
반대로, 방주에 타지 않고, 인내하지 않고, 기도하지 않는 사람은, 예수님을 참모습을 알수도, 볼수도, 깨달을수도, 없습니다.
“예수님 믿으면 구원받는다는데, 나는 도무지 이해가 않됩니다.
예수님이 날 위하여 십자가 지시고, 부활하셨다는데 나는 절대로 이해가 되지 없습니다.
내가 직접 손가락으로 부활하신 예수님의 못자국 창자국을 확인하고,
내가 직접 두 눈으로 천국문앞에서 심판하시는 예수님을 보고 난 다음에야, 인정하 겠습니다.“~
그러나 그런 마음으로 예수님 직접 보면, 그때는 이미 늦은때가 아니겠습니까?
말씀을 정리 합니다.
구원의 열차에 오르는, 믿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예수님께서 선장되신--구원의 방주에, 예수님을 따라서, 오르는 믿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천국에 들어가는, 이 자리에 있는, 모든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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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구원의 열차, 구원의 방주에 오르게 하여 주시니, 감사를 드립니다.
구원의 열차에 오르고, 구원의 방주에 오르고,~
인내하며 기도하여... 하나님의 자녀로써, 천국에 도착하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자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 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