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6장 5절 8절 하나님 앞에서
또 너희는 기도할 때에 외식하는 자와 같이 하지 말라 그들은 사람에게 보이려고 회당과 큰 거리 어귀에 서서 기도하기를 좋아하느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들은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너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또 기도할 때에 이방인과 같이 중언부언하지 말라 그들은 말을 많이 하여야 들으실 줄 생각하느니라
그러므로 그들을 본받지 말라 구하기 전에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하나님 너희 아버지께서 아시느니라
---------------------
2021년을, 어떻게 새롭게 살아갈까?에 대하여 1월달, 말씀을 전하고 있습니다.
첫째 주에는 새롭게 함으로, 출발하자고 말씀을 전하였습니다.
생각과 생활속에 새롭게 깨끗하에 하여야 합니다.
믿음도 새롭게 깨끗하게 하여야 합니다.
깨끗하면서 끝나면 새롭게 되지 않습니다. 깨끗해진 곳을 새로운 채워야 합니다.
믿음의 품격과 믿음의 수준에 맞는, 좋은 것으로 아름답게 꾸며 나가야 합니다.
거실도, 안방도, 내마음도, 믿음생활도, 예수님으로 충만하게 올 한해를 아름답게 채워 나가야 합니다.
둘째주에는 먼저된자가 나중되고 나중된자가 먼저될수 있습니다.
야베스는 출발은 나중되었지만 이스라엘 하나님께 간구하였습니다.
성경을 보면 야곱은 하나님을 축복을 받고 싶어서 살아갈 때, 정말 하나님께서 받은 축복되로, 복을 내려 주시고, 이름도 이스라엘이라고 바꾸어 주셨습니다.
우리도 믿음의 뒷심을 발휘하여, 성경의 좋은 믿음을 닮아서,
그 축복을 나도 받고,
먼저되는 올한해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오늘은,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는 한해’ 에 대하여 말씀을 준비하였습니다.
나는 누구 앞에서 살아가고 있습니까?
정치인은 국민이 선출하여 주었습니다. 그래서 말과 행동이, 모두 국민 앞에서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부모님은 자녀 앞에서 살아갑니다. 그러니까 냉수도 한그릇 못마십니다. 아이들이 다 따라하고 그대로 배웁니다. 부모님의 사고방식을 이어받고, 부모님의 행동을 이어받고, 부모님의 말씨를 이어 받습니다.
선생님은 학생 앞에서 살아갑니다. 어떤 선생님은 잘 가르치는 선생님, 어떤 선생님은 농땡이만 치는 선생님, 어떤 선생님은 닮고 싶은 선생님.. 학생들은 저절로 알게 됩니다.
그리스도인은 누구 앞에서 살아갑니까? 하나님 앞에서 살아갑니다. 하나님께서는 높이 계시지만 낮은 자를 다 살펴보시고, 멀리서도 우리의 마음중심을 아십니다.
그래서 성경은 “여호와께서는 높이 계셔도 낮은 자를 굽어살피시며, 멀리서도 교만한 자를 아심이니이다” 라고 말씀 합니다.
올 한해를 시작하는 지금은, 아직 그려지지 않는 작품과 같습니다.
어떻게 걸어가느냐?에 따라 한부분씩 한부분씩, 완성되어 갑니다.
그렇다며 나는 하나님 앞에서 올 한해를, 아름답게 열매맺기 위하여, 바른방향으로 잘 시작하고 있습니까?
오늘 말씀을 보니까, 사람에게 기도하는 사람에 대하여,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기도는 하나님과의 대화입니다.
대화를 보면, 두 사람과의 관계가 어떤 관계인지 알수 있습니다.
사무적 관계이면 사무적인 대화를 합니다.
서로 모르는 관계이면, 대화가 동문서답이 됩니다.
수준이 높고, 학식이 깊으면, 대화의 수준도 높고 깊게 됩니다.
자 나는, 하나님과 어떤 대화를 하고 있습니까?
사무적은 기도를 하고 있습니까?
동문서답의 기도를 하고 있습니까?
수준이 높고, 영적으로 깊은 기도를 하고 있습니까?
오늘 본문 마태복음 6장을 보니까 1절에 이렇게 말씀합니다. “사람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너희 의를 행하지 않도록 주의하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상을 받지 못하느니라”
어떤 사람이, 하나님 앞에 보여드리려 의를 행하는데, 실상~속을 들여다 보았더니 사람에게 보이려고 의를 행하였습니다.
이런것은, 의미와 행동의 불일치 라고 하지요.
하나님을 향하여 의의생활을 하는 것은,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께 가까이 나가고, 하나님께 상을 받고~ 목표가 하나님입니다.
그런데 이사람은 의의생활을 하는데 하나님께 보여 드리는 것이 아니라 사람에게 보이고, 사람에게 알리고, 사람에게 칭찬을 받기위하여 의의생활을 하였습니다.
자 그렇다면 이 의의생활을 보시고, 하나님께서 상을 주시겠습니까?
그 사람은 의의생활을 하였지만 사람에게는 상을 받지만, 하나님께는 상을 받지 못하였습니다..
의미와 행동의 불일치는, 수고와 노력을 헛되게 만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종 우리는 너무나 익숙하게, 어떨때는 습관적으로 의미와 행동의 불일치를, 반복할때가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세상의 문화는 온통 의미와 행동의 불일치로 가득한 것을 보게 됩니다.
“잘~ 했다”~~ 라고 말하면, 이것이 정말 잘해서 잘한것인지, 아니면 잘못했기 때문에 잘했다고 하는지, 분간이 필요할 정도입니다.
또한, 세상을 보면 사람들 앞에서, 척~ 하는데 신경을 씁니다. 그것이 예절이면 에티켓이 되겠지만, 선을 넘으면, 허세가 되어 집니다.
세상이 이러다 보니, 너무나 익숙하여 그런지 하나님 앞에서 이방법 대로 할때가 있습니다.
기도는 하나님과의 대화인데,
하나님을 만나지 않고 큰 어귀에 가고 기도를 하고
하나님이 아니라 사람을 향하여 중언부언 기도를 하면
하나님께서 그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여 주시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이런 방법으로는, 아무리 기도를 하여도, 하나님을 만나지 못합니다. 응답이 오지를 않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5절에 보면, 그 사람을 향하여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들은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그래서 그리스도인은 믿음의 생활의 방향이 하나님을 향하고 있느냐? 아니면 다른쪽을 향하고 있느냐?
정기적으로, 성경의 레이더, 성경의 X-레이로, 들여보고, 종합검진을 할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저도, 올해 의료보험 건강검진 해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날을 정하여 병원에 가서 건강검진을 해 보려고 합니다.
건강검진을 해 보면, 건강을 위하여 한다고 하지만, 몸에 무리가 되어서 고쳐야 할 부분들이 잘 들어나게 됩니다.
열심히 건강을 위하여 테니스를 하였는데, 건강검진을 해보니, 팔꿈치에 테이스엘보우가 왔습니다.
어떤 사람은 무릎에 무리가, 어떤 사람은 눈에 무리가 왔습니다.
요즈음은 의료기술이 발전하여, 무릎에 인공관절을 넣습니다. 눈에는 인공수정체를 넣습니다.
잘못 되면 빨리 알아차리고, 방향을 수정하여 바르게 하여야 합니다. 그대로 놓아두면 몸에 큰 무리가 오게 되는 것 입니다.
성경을 보면, 이스라엘백성들은 잘못을 방치하다가 큰 낭패를 보게 되었습니다.
열왕기상 12장 27절 30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만일 이 백성이 예루살렘에 있는 여호와의 성전에 제사를 드리고자 하여 올라가면 이 백성의 마음이 유다 왕 된 그들의 주 르호보암에게로 돌아가서 나를 죽이고 유다의 왕 르호보암에게로 돌아가리로다 하고
-------@@
이에 계획하고 두 금송아지를 만들고 무리에게 말하기를 너희가 다시는 예루살렘에 올라갈 것이 없도다 이스라엘아 이는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올린 너희의 신들이라 하고
하나는 벧엘에 두고 하나는 단에 둔지라
이 일이 죄가 되었으니 이는 백성들이 단까지 가서 그 하나에게 경배함이더라”
이스라엘이 남유다와 북이스라엘로 나뉘어 지게 되었습니다.
북이스라엘의 여로보암왕은 예루살렘에 성전이 마음에 걸립니다.
북이스라엘 백성들이 예배드리기 위하여, 예루살렘 성전에 내려가서, 마음이 바뀌어 아예~ 남유다로 가버리면 어떻게 하나? ~
그래서, 예루살렘 성전에 가서 예배드리는 것을 막기 위하여, 북이스라엘의 단과 벧엘에 금송아지를 만듭니다.
그리고 백성들에게 말합니다. “너희가 다시는 예루살렘에 올라갈 것이 없도다, 이스라엘아 이는,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올린 너희의 신들이라”~
그러면서, 금송아지 앞에서 순서, 절차, 모습은, 절대로 예루살렘 성전에서 하는것에 못지 않게, 멋있게 합니다.
그리고 레위사람이 아니라 보통 백성을 제사장으로 임명하여 앞에서 순서를 보게 합니다.
아마도~ 얼굴이 제사장 같이 생겼고, 행동이 준엄하여..... 보는이로 하여금, 그를듯 한 사람을 제사장으로 임명하지 않았겠습니까?
그런 사람들은 제사장처럼 행동을 많이 연습을 하였을 것입니다. 속죄제를 할때는 이런 자세로, 이렇게 허리를 굽혀서, 피를 단에 뿌리고~
화목제를 할때는 이런 자세로 이렇게 두손을 들어서 하늘을 향하여 흔들고~
그러면서 금송아지 앞에서 큰소리로 외칩니다. “속죄제 시작이요~” 나팔을 불고 제사장옷을 입은 사람들이 들어 옵니다.
예루살렘 성전에서 하는 것과 똑같이, 멋있게 속죄제를 합니다.
자, 과연 이 제사장들이 하는 이 순서와 절차를, 하나님께서 받으시겠습니까?
성경은 “이 일이 죄가 되었으니~ ” 라고 말씀합니다.
순서와 절차는 겉으로 보기가 그럴듯 할지 모르겠지만, 송아지 앞에서 하는 것을, 어떻게 하나님이 받으시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죄악로 여기셨습니다.
옷이 아무리 그럴듯 하고, 순서와 절차가 아무리 그럴듯 하여도, 송아지 앞에서 절하고, 송아지 앞에서 앉았다 일어섰다 하면서, 우리도 하나님을 섬긴다고 말하던 북이스라엘 10지파는
앗수루에게 포로로 잡혀가서, 앗수르 각지방에 흩어져, 나중에서 역사에서 없어지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 23:27에서 말씀하십니다.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회칠한 무덤 같으니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하도다”
겉으로는 서기관입니다. 요즈음으로 보면, 법을 기록하고 관리하고 알려주는 사람입니다.
겉으로는 바리새인입니다. 요즈음으로 보면 지식인이요, 엘리트요, 지도자입니다.
그런데 행동은 외식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을 향하여,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간다고 하는데,
이면을 들여다 보았더니 사람앞에서, 사람을 향하여, 사람의 뜻대로 살아갑니다.
왜냐하면, 사람에게 상을 받기 위해서입니다.
저, 서기관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정직하고, 올곧고, 똑바르고~ 저 서기관에게 부탁하면 확실합니다.
저, 바리새인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신실하고, 능력있고, 확실 합니다. 저 바리새인에게 맡기면, 분명합니다.
사람에게 상을 받기 위해서, 겉으로는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는데, 이면을 보았더니 사람앞에서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럴때 예수님께서는, “회칠한 무덤 같으니” 라고 말씀 합니다.
즉 겉은 회칠을 하여서 희고 깨끗하고 반듯합니다. 하지만 그 속은 무덤입니다. “죽은 사람입니다.”
마치, 북이스라엘이 금송아지 앞에서 앉았다 일어섰다 할때,
겉은 회칠한 것과 것과 같이 반듯하고, 그럴듯 하여도 속은 생명이 없고, 거룩함이 없고, 하나님께서 않계시는 예배순서가 된것과 같습니다.
그렇습니다. 외식은 겉으로는 드러나지 않지만 그 속에는 생명이 없습니다. 거룩함이 없고, 예수님이 계시지 않습니다.
반대로, 그리스도인이 아무리 작고 보잘것 없는 일을 하더라도, 진정으로 하나님을 만나기 위하여, 하나님 앞에서 행하면, 그 속에는 생명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만나 주십니다.
오늘 본문 6절도, 그 사실을 잘 말씀하여 주고 있습니다.
기도할 때,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기도를 합니다.
큰 길 어귀에 나가는 것에 비하면, 너무나 초라 합니다. 오히려 골망에 들어가고 문을 닫아 버리면 누가 기도하는지 알 수 있겠습니까?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아시고, 하나님께 들으십니다.
은밀한 중에 하나님 앞에 기도를 할 때, 중언부언 기도하는 것에 비하면 심플하고 단촐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오히려 그 은밀한 중에 드리는, 그 기도를 받으시고, 응답하여 주시고, 갚아 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과부의 두렙돈을 크게 여기시고, 받아 주시고,
예수님께서는 마리아가 옥합을 깨어 예수님에 발에 부어드릴 때, 그 마음 중심을 받으시고, 칭찬하여 주십니다.
그렇습니다. 외식이 아니라, 진정으로 사명의 가장 작은 부분을 담당하고, 가장 작은봉사를 하여도,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을 향하여 행하면......., 그것은 작은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만나주시는 통로가 되고, 하나님께서 귀하게 받으시는 ‘헌신’이 되어 집니다.
그렇다면 한 걸음 더 나가서, 올 한해, 우리는 어떻게 하나님께서 귀하게 받아주시고,
하나님과 깊은 사귐이 있고
하나님께서 복내려 주시는 한해가 될 수 있습니까?
사도바울은 고린도전서 10장 31절에서 33절에서 말씀 합니다.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유대인에게나 헬라인에게나 하나님의 교회에나 거치는 자가 되지 말고
나와 같이 모든 일에, 모든 사람을 기쁘게 하여, 자신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고, 많은 사람의 유익을 구하여, 그들로 구원을 받게 하라”
우리가 믿음생활할 때,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을 향하여,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 받은, 사명을 감당할 때,
우리가 맡은 직분으로 헌신할 때..
뿐만 아니라,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는 말씀을, 붙잡아야 하겠습니다.
즉 예배와 직분과 사명 뿐만 아니라, 더 나가서 일상생활이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고, 일상생활이 하나님을 향하여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밥을 먹을때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나님 앞에서 밥을 먹고...
물을 마실 때에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나님 앞에서 물을 마시고....
버스를 탈때도, 사업장에서 일을 할때도...
심지어는 집에서 텔레비전을 보며 쉴때도...나는 누구 앞에 있는 것입니까? 하나님 앞에 있고, 하나님을 향하여 영의 눈을 향하고 있습니다.
자 이렇게만 살아가면, 올 한해, 하나님과 떨어질래야 떨어질수가 없습니다. 항상 나는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다른이를 구원받게 하기 위하여 평소에 전도하고,~ 교회에 덕을 끼치며 살아가면,~
올 한해 전체는, 하나님과 깊은 사귐이 풍성한 한해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섭리하여 주시고, 하나님의 은혜의 장중에서 생활하는, 한해가 되는 것입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예수님께서는, 큰거리 어귀에서 기도하고, 중언부언 기도하는 사람은, 자기 상을 이미 받았다고 말씀 하십니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께 상을 받기 위하여,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을 향하여, 살아가야 합니다.
사명의 가장작은 부분을 감당하고 헌신하여도, 하나님께서는 다~ 그 중심을 보시고, 받으십니다.
자~ 올 한해는,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여,,
하나님과 깊이 동행하고,
하나님께서 받으시며
하나님께서 은혜로 섭리하여주시는 한해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해 드립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항상 크신 은혜로 동행하여 주시고, 인도하여 주시니 감사를 드립니다.
올 한해는,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을 향하여 매일매일이 되게하여 주시옵소서.
사명과, 직분을 감당할때도, 하나님께서는 그 중심을 받으시는줄 아오니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봉사와 헌신으로 감당하게 하시오며,
아울러 일상생활에서도,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생활하여,
올한해는 모든 일들이, 하나님께서 받으시고, 살펴주시고, 갚아주시는 한해가 되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