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2장 19절 22절 교회를 세우심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
유대인들이 이르되 이 성전은 사십육 년 동안에 지었거늘 네가 삼 일 동안에 일으키겠느냐 하더라 그러나 예수는 성전된 자기 육체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후에야 제자들이 이 말씀하신 것을 기억하고 성경과 예수께서 하신 말씀을 믿었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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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대강절 셋째 주일입니다. 다음 주일이 되면, 그 주간이 “성탄절”이 되겠습니다.
벌써 성탄절인가? 싶고, 빠른 감이 없지 않아 있습니다. 하지만 빠르게 찾아오는 성탄절 처럼, 예수님께서는 불현듯, 빠르게 찾아 오십니다. 응답을 주시고, 축복을 주시고, 좋은 선물을 주시려고, 나에게 빠르게 찾아오십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은 시므온과 안나 처럼, 아기 예수님의 오심을 기다려, 내가 예수님을 만나고, 내가 예수님께 경배하고, 성탄절의 축복이 나에게 임하는 성도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아기예수님은 왜 이 세상에 찾아 오셨나? 오늘은 하나님 나라를 세우심, 구체적으로 교회를 세우심에 대하여 말씀을 전하려고 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큰 부분이 되겠습니다. 하나님 나라에서 “예배”에 대한 부분은, “성전”으로 설명 드릴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에 오셔서, “성전”을 자기의 몸위에 세우셨다. 그것이 바로 ‘교회’입니다.
아벨은 양의 첫새끼와 기름으로 제물을 삼아, 하나님 앞에 예배를 드립니다.
아브라함은 가는 곳 마다, 도착하면 제일 처음 제단을 쌓고, 예배를 드립니다.
모세는 하나님께서 지시하시는데로 성막을 만들고, 예배를 드립니다.
솔로몬은 성전을 짓고, 태평성대, 최고로 지혜있는 왕이 됩니다.
그리고 세월이 많이 흐릅니다.
마태복음 24:1,2 을 보겠습니다.
“예수께서 성전에서 나와서 가실 때에 제자들이 성전 건물들을 가리켜 보이려고 나아오니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이 모든 것을 보지 못하느냐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려지리라”
성전은 하나님 앞에 나와, 예배드리는 곳입니다.
유대인들은 성전에 나와서, 나의 죄를 대신하여, 생명으로 생명을 속하는 속죄제를 드립니다.
그럴때 그사람은, 언약의 백성으로, 다시 새롭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하나님께서 다시 만나 주십니다. 성경말씀 데로, 동행하여 주시고, 인도하여 주십니다.
그러면 그 사람은 다시 하나님의 은총과 축복의 사람이 되어, 세상에 나아 갑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에 문제가 발생합니다. 북이스라엘 사람들은, 금송아지를 앞에 세워놓고, 우리는 하나님 앞에 예배를 드린다고 합니다.
남유다 사람들은, 성전마당에 우상제단을 만들고, 예배는 않드리고 우상제단 앞에서 우상을 섬깁니다.
자 이러한 이스라엘의 예배-- 과연,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거룩한 예배의 모습이라고 할수 있겠습니까?
시간이 흘러서 유다백성들은 바벨론에 잡혀 갔다가 돌아와, 다시 성전을 재건합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거룩한 예배, 온전한 예배는 재건되지 못하였습니다.
오히려 퇴색되고, 손상되고, 거룩함을, 자꾸 잃어가게 됩니다.
이 구체적인 내용은, 오늘 오후찬양예배 시간에, 열왕실록 “침묵기”에서 말씀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드디어 아기예수님이 오실때가 가까워지게 되었습니다. 성전은 오히려 더 넓어졌습니다. 헤롯왕은 더 크게 성전을 넓게 확장을 합니다. 하지만 그 성전 속에서 드리는 예배는, 더욱 퇴색되고, 손상되고 거룩함을 잃어버리게 되었습니다. 자 이렇게 되면,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그럴 때 예수님께서는 “이 성전이 돌 위에 돌 하나도 남지 않도 다 무너뜨려 지리라.”고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 말씀대로 성전이, 돌위에 돌 하나도 남지 않도 다 무너 젔습니까? 그렇습니다.
성전은 이 말씀을 하신 후, 곧 무너져서, 돌위에 돌하나 남지 않고 다 무너지고,
다시는 세워지지 못하도록, 더욱이 흙속에 파뭍치고, 봉인이 돼고 말았습니다.
자 이제,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는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성전은 이제 영영 없어지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성전이 다시는 무너지지 않도록, 예수님의 거룩하신 몸에 세우시기로 하셨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19절에 말씀합니다.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동안에 일으키리라”
아니 어떻게 사흘만에 성전을 일으킨다는 것입니까?
그럴 때, 또 말씀하십니다. “예수는 성전된 자기 육체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그렇다면 예수님께서는 어떻게 성전을 허물고, 교회를 세우셨습니까?
마태복음 16:15-19 말씀을 보겠습니다.
“이르시되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파워포인트넘길것)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하시고“
예수님께서는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를 지시고 우리의 죄를 도말하심으로, 건물로써의 성전이 아니라, 거룩한 예수님 위에 성전을 다시 세우십니다.
그렇다면 성전 안에서 드리는 예배는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예배는 예수님께서 친히 주관하십니다.
대제사장은 누구 십니까? 예수님이 예배를 주관하시는, 대제사장이 되어 주십니다.
대속제물은 누구 입니까? 예수님이 친히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며 죽으심으로, 우리의 모든 죄를 대속하는, 대속제물이 되어 주십니다.
자 그렇다면, 예배드리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선민 유대인이 아니라, 이제는 믿음으로 이 모든 사실을 믿고 고백하는, 그리스도인 되는 것입니다.
무엇을 믿고 고백하는 것입니까? 베드로 처럼, 믿고 고백하는 사람입니다.
“예수님은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 이십니다.” 라고 고백하는 사람 만이,
새성전에서 새 대제사장이 새 속죄제물로 드리는 예배에 참여할수 있는 것입니다.
성전은 이제 건물이 아니라, 거룩하신 예수님 위에 서게 되었습니다.
예배는 대제사장 되신 예수님이 친히 주관하십니다.
우리의 죄를 대속하고, 하나님과 화목하는 대속제물 화목제물은 예수님이 친히 대속제물되어 주시고, 화목제물되어 주십니다.
이 예배를 통하여 우리는 온전히 하나님 앞에 나아가게 됩니다.
이렇게 세워진 교회, 이렇게 드리는 예배는,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합니다.
이렇게 세워진 교회, 이렇게 드리는 예배--에는, 천국의 열쇠가 있습니다.
이렇게 세워진 교회, 이렇게 드리는 예배를 통하여, 이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이고, 무엇이든지 이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는, 하나님 나라가 임하게 됩니다.
그렇습니다. 얼마나 감사하고 은혜로운 일인지 모릅니다.
오늘 우리는, 성전이 아니라, 예수님에 거룩하신 몸 위에 친히 세우신, 교회에 들어와~
사람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친히 대제사장 되어 주시고,
제물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친히 대속제물이 되신, 예배를 드릴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기에, 지금 우리가 드리는 예배는 참으로 능력이 있습니다.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고~ 천국의 열쇠가 있습니다.
우리가 예배를 통하여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이고,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립니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 나라가 임하는, 주님의 몸위에 세우신 성전에서, 주님이 주관하시는 예배를, 사랑하고 귀하게 여겨야 하겠습니다.
2. 자기몸 위에 세우신 성전인 교회는, 솔로몬의 성전과 다른 점이 무엇입니까?
생명이 그 안에 있습니다. 살아 움직입니다.
에베소서 1:22-23 에는 말씀합니다.
또 만물을 그의 발 아래에 복종하게 하시고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삼으셨느니라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하게 하시는 이의 충만함이니라
또한, 고린도전서 1:2 에는 말씀합니다.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 곧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성도라 부르심을 받은 자들과 또 각처에서 우리의 주 곧 그들과 우리의 주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자들에게
자, 솔로몬이 세운 성전은, 건물입니다. 돌로 성전을 만들었습니다.
어린이들이, 장난감 레고 불럭을 쌓아서, 소꿉놀이 하며, 집을 만들듯이~
물론, 장난감 과는 비교할수 없습니다.만.. 성전을 지을때도 설계도 대로 정확하게 돌을 다듬 었습니다. 그리고 예루살렘에서는 성전 터~위에서, 연장을 사용하지 않고, 다듬을 돌을 맞추기만 하여, 성전을 지었습니다.
본래 하나님 앞에 예배를 드리는 단은, 연장을 가지고 돌을 깨고 다듬지 않습니다. 돌을 그대로 쌓아 올립니다.
그래서, 솔로문의 성전도 성전터에서 다듬지 않았습니다. 먼저 다듬어 와서, 성전 터위에서 그대로 맞추어서 쌓아서 올렸습니다.
솔로몬의 성전은, 이렇게 정교하고, 정성이 들어가 있지만, 예수님께서 친히 주님의 몸위에 세우신 성전된 교회와는, 큰 차이점이 한가지 있습니다.
솔로몬의 성전에는 생명이 없습니다. 돌은 무생물입니다. 움직이지 않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세우신 교회에는, 그안에 생명이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세우신 교회는 살아서 움직입니다.
예수님께서 세우신 성전을 자세히 살펴보면, 머리와 몸와 지체가 다 있습니다.
자~ 교회의 머리는 누구 입니까? 예수님이 교회의 머리가 되십니다.
그렇다면, 몸은 누구 입니까? “교회 곧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 지고 성도라 부르심을 받은 자”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교회의 몸은 바로 우리들입니다.
자 머리가 얼마나 똑똑한지, 아이큐가 200이 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럼 손의 아이큐는 얼마입니까? 발의 아이큐는 얼마입니까?
손은 아이큐가 따로 없습니다. 발은 아이큐가 따로 없습니다. 그 사람의 손과 그 사람의 발이니, 그 손과 발은, 아이큐가 없지만, 머리의 아이큐가 200이 넘기 때문에, 사람의 손과 발은 아이큐 200의 손과 발이 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교회의 머리되신, 예수님은 거룩하십니다. 거룩하신 예수님이 친히 머리 되어 주셔서, 손과 발을 주장 하십니다. 그럴 때, 손과 발이 예수님께 순종하여 살아가면, 그 손과 발은, 거룩한 몸, 거룩한 손, 거룩한 발이 되는 것입니다.
자, 우리 김포상도교회 모든 성도들은, 따라 하도록 하겠습니다.
“주님의 지체된 나는, 거룩한 ‘이지원 목사’ 이다.” 여기에 자기 이름과 직분을 넣어 다시 한번 해보겠습니다.
“주님의 지체된 나는, 거룩한 000 00 이다.”
기뻐 하시기 바랍니다. 내가 주님의 지체로 살아가면, 나는 거룩한 자가 되는 것입니다.
또한, 주님이 세우신 교회는, 솔로몬의 성전과 다르게, 영원히 거룩합니다.
에베소서 5:27
자기 앞에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우사 티나 주름 잡힌 것이나 이런 것들이 없이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려 하심이라
거룩하심은, 하나님의 전적인 성품입니다.
세상에는 그 어떤 것도, 영원히 거룩하지 못합니다.
하나님 앞에 가까이 나아 가려면, 거룩하지 않고서는 나아갈수 없습니다.
자 그렇다면, 나는, 예수님이 거룩하심으로, 교회안에서, 거룩한 자가 되어지는데,
순간적으로 거룩하고, 예배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면, 않거룩해지면, 좀 그렇지 않겠습니까?
요즈음 외국에는, 코로나 백신의 지속성에 대하여, 논쟁이 한창인것 같습니다.
코로나 백신이 영국, 미국으로 부터 접종이 시작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만약 한달 쯤 가다가, 약효가 떨어지면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물론 한달은 당연히 아닙니다.만~
약효가 1년 쯤 지속되고, 2년쯤 지속되는 ‘지속 기간’~에 따라서, 코로나 백신도, 앞으로 몇 년에 한번씩, 반복해서 맞아야 되는 것이 아닌가? 논쟁이 있는것 같습니다.
오늘 본문으로 돌아가서, 교회와 성도의 거룩함도 마찬가지입니다.
예배를 드리고 하나님을 만나면, 거룩하여 지지만,
세상에서 살아갈때, 우리의 믿음이 약하여 지고, 거룩함이 사라지지는 않을까? 근심이 될 수가 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세우신 교회, 예수님께서 부르신 성도들은,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티나 주름 잡힌 것이 없도록, 인도하여 주시기고 이끌어 주십니다.
처음에는 주기도문도, 모르고 사도신경도 모르지만, 조금씩 조금씩 예수님께 인도하여 주십니다. 조금 지나면, 성경책도 잘 찾고, 찬송가도 잘 찾게 됩니다.
그 다음에는, 봉사도 합니다. 집사님이 됩니다. 안수집사님, 권사님이 되고, 장로님이 됩니다.
즉, 우리의 믿음이 점점 자라고, 온전하여지고, 거룩하게 되도록 역사하여, 주시는 분이 누구십니까? 예수님께서 교회와 성도들을 붙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도는, 예수님 앞에서 살아갈 때, 점점 온전하여지고, 거룩하여 지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천국을 상속받는 자가 될 수 있게 되는 것니다.
마지막으로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세우신 성전, 예수님께서 주관하시는 예배의 자리에서, 성도들은 어떻게 살아가야 합니까?
고린도전서 14:12 을 보겠습니다.
그러므로 너희도 영적인 것을 사모하는 자인즉 교회의 덕을 세우기 위하여 그것이 풍성하기를 구하라
또, 골로새서 1:25 을 보겠습니다.
내가 교회의 일꾼 된 것은 하나님이 너희를 위하여 내게 주신 직분을 따라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려 함이니라
그렇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영적인 것을 사모하며, 교회의 덕을 세우며, 살아가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예수님의 몸 위에 세워진 성전에 들어갈수 있게 되었고,
예수님이 주관하시는 예배를 드릴수 있도록, 부름을 받았는데,
그러나, 세상의 영광과 이해를 쫓으며 살아간다면, 참으로 어리섞은 일이 아닐수 없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영적인 것을 사모하는, 위에것을 찾는, 생각과 생활이 있어야 합니다.
또한, 주님의 몸된, 교회의 덕을 세우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합니다.
사도바울은 교회의 일꾼된 것은, 하나님이 내게 주신 직분을 따라,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려 함이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주님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직분을 주십니다.
그리스도인은 그 직분을 잘 감당할 때, 그 직분을 통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이땅에서 이루어 갑니다.
직분없이 봉사하고, 직분없이 헌신하며, 직분없이 충성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직분없이 칭찬받고, 직분없이 상급받으며, 직분없이 면류관 쓰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직분은 고난의 길이 아니요,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는 통로요, 교회의 덕을 세우는 통로요, 축복을 받고 면류관을 쓰는 통로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그리스도인은, 직분--맡기를 오히려 즐거워하고, 영광스러워 하며, 하나님 앞에서 은혜로 여겨야 하겠습니다.
말씀을 정리 합니다.
아기예수님께서 왜 이세상에 찾아 오셨습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성전을 거룩하게 하고, 예배를 온전하게 지키지 못할 때, 성전을 거룩하게 다시 세우고, 예배를 온전하게 하시기 위하여, 이 세상에 찾아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성전건물을 무너 뜨리시고, 거룩하신 예수님의 몸위에 거룩한 교회를 세우십니다.
예수님은 친히 대제사장 되시고, 대속제물 되심으로, 거룩한 예배를, 친히 주관 하십니다.
그 예배에 참석하는 사람은, 유대인이 아니라, 예수님의 구주로 고백하는 그리스도인 입니다.
예수님의 세우신 교회, 예수님이 주관하시는 예배는,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합니다.
그 속에는, 천국의 열쇠가 있습니다.
이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이고, 이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는, 하나님 나라가 임합니다.
아울러, 예수님께서 세우신 교회는, 돌과 같은 무생물이 아닙니다. 생명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머리가 되시고 성도들은 지체가 됩니다.
예수님은 그의 교회를, 거룩하게 인도~ 하십니다.
성도들이 교회에 덕을 세우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이루도록 직분을 주시며,~
거룩한 하나님의 영광 앞에 이르도록, 이끌어 주십니다.
우리 김포상도교회 성도들은
이러한 큰 은총과 경륜속에 참여하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가는--거룩한 길을, 믿음으로 날마다 걸어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하여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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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아기예수님을 이땅에 보내어 주시니, 감사 드립니다.
주님의 몸위에 세워진, 거룩한 교회에 들어가게 하시고,
주님이 주관하시는 온전한 예배에 참여하게 하여 주시니,
이예배에 참여한, 한사람 한사람, 모두 덕스럽게, 친히 주신 직분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자가 되어,
생명의 면류관, 의의 면류관에 이르도록, 이끌어 주시고, 섭리하여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