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12장 7절 13절 나의 방향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 이르시되 내가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라 하신지라 자기에게 나타나신 여호와께 그가 그 곳에서 제단을 쌓고
거기서 벧엘 동쪽 산으로 옮겨 장막을 치니 서쪽은 벧엘이요 동쪽은 아이라 그가 그 곳에서 여호와께 제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더니
점점 남방으로 옮겨갔더라
그 땅에 기근이 들었으므로 아브람이 애굽에 거류하려고 그리로 내려갔으니 이는 그 땅에 기근이 심하였음이라
그가 애굽에 가까이 이르렀을 때에 그의 아내 사래에게 말하되 내가 알기에 그대는 아리따운 여인이라
애굽 사람이 그대를 볼 때에 이르기를 이는 그의 아내라 하여 나는 죽이고 그대는 살리리니
원하건대 그대는 나의 누이라 하라 그러면 내가 그대로 말미암아 안전하고 내 목숨이 그대로 말미암아 보존되리라 하니라
-------------------
11월달은 ‘감사로 하나님께 영광돌리는 달’입니다.
그리스도인은 범사에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영광돌리며 살아가야 합니다.
오늘 말씀에 주인공은 “남방으로 옮겨갔던 아브라함”이 되겠습니다.
사람은 목표를 향하여 살아갑니다. 그 목표를 이루려고 나아 갑니다. 그런데 어떨때는 목표를 향하여 걸어가다가 딴길로 갈때가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 아브라함도 목표를 지나쳐서, 딴길로 가게 되었습니다.
1. 그리스도인은 목표를 향하여 나아가야 합니다.
본문 7절에서 9절 까지, 3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 이르시되 내가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라 하신지라 자기에게 나타나신 여호와께 그가 그 곳에서 제단을 쌓고
거기서 벧엘 동쪽 산으로 옮겨 장막을 치니 서쪽은 벧엘이요 동쪽은 아이라 그가 그 곳에서 여호와께 제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더니
점점 남방으로 옮겨갔더라“
12장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시는 장입니다.
1절 2절에서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부르셨습니다. “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아브라함은 이 말슴을 듣고, 크게 은혜를 받습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부르시는 구나. 하나님께서 가라고 하시는 곳을 향하여 가면, 하나님께서 나에게 큰 복을 주시는구나.~”
그래서 아브라함은 본토 친척 아비집을 떠나, 하나님께서 지시하시는 땅을 향하여 걸어가기 시작 합니다.
자~ 아브라함의 목표는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지시하시는 땅” 이 목표입니다.
그 곳에 이르기 위하여, 그 곳에 도착하기 위하여, 아브라함은 모든 것을 뒤로하고, 출발하여 나아 갔습니다.
오늘날도 하나님께서 나에게도~ 지시하시는 목표, 목적지가 있습니다.
“내가 지시하는 곳으로 가면, 너에게 복을 주고, 너가 잘 되도록 하여 주시겠다.”
그 목표 그 목적지는 무엇입니까?
“좁은 길로 가거라~” “좁은 문으로 들어 가거라”
십자가의 길로 가서, 구원의 문으로 들어가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목표요 믿음의 여정이 아니겠습니까?
10살 먹은 어린이는 10년 동안 그 길로 걸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20살 먹은 청년은 20년 동안 그 길을 걸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정이 길다보니, 그 여정 안에는 많은 일이 일어 납니다. 오르막도 있고, 고개도 넘어야 합니다. 깊은 골짝이도 통과해야 합니다.
그러면서 양갈래 길이 나오면, 가끔씩~ 좁은길이 아니라 넓은길로 들어서는 사람이 생기게 됩니다. 또한 어떤 사람은 한바퀴를 돌아, 다시 제자리 걸음하는 사람도 생깁니다. 즉 길을 잃어버리는 일이 발생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길을 잃어버리게 됩니가? 다른곳에 정신이 팔려 목표를 깜빡 잊어버립니다. 다른 일을 더 중요하게 여기다가, 목표가 아니라 딴길로 들어섭니다.
본문을 보니까, 아브라함도 마찬가지입니다.
처음에는 아브라함이 목표를 향하여 잘 걸어갔습니다. 하나님께서 지시하시는 땅이 어디인지는 알수 없지만, 그러나 기도하며, 믿음의 눈을 활짝열고, 순종하면서 걸어갈 때... 하나님께서 섭리하여 주십니다.
판단력을 지켜주시고, 결정할때 역사하여 주십니다. 그러니까 아브라함은 실수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곳으로, 잘~ 갈수 있게 됩니다.
본문 5절 하반절에는 말씀합니다. “가나안 땅으로 가려고 떠나서 마침내 가나안 땅에 들어갔더라”
아브라함은 곰곰이 하나님의 말씀을 떠 올립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기초하여 판단을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고향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라고 하셨는데, 그렇다면 옛날에 살던 고향 “우르”로 다시 돌아가는 것은 하나님께서 지시하시는 땅이, 분명히 아닙니다.~
그러면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데, 우르에서 하란 까지 왔습니다. 그런데 하란에서 또 출발하라고 하시니까... 그렇다면 앞으로 더 내려가면 가나안 땅이 되는데, 가나안 땅이 하나님께서 주시는 땅이 분명하구나..
그리고 가나안 땅으로 내려 갑니다. 즉 말씀이 이끄는데로, 말씀을 나침판 삼아 나아갈 때, 마침내, 가나안 땅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자 그리스도인은, 아브라함 처럼 나아 가야 합니다. 성경말씀이 이끄는대로, 나아가야 합니다.
성경말씀을 보니까 데살로니가전서 5장 16절로 18절에 말씀합니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그러면 이 말씀을 떠 올릴 때, 내가 오늘도 기뻐하며 살아야지~ 그러면서 찬송을 합니다. 찬송을 하면 기쁨이 샘솟습니다. 버스를 탈때도 걸어갈때도, 찬송을 흥얼흥얼 합니다.
또한 식사할때나, 혼자 있을 때 기도를 합니다. “우리가정에 이런 기도제목이 있는데 하나님 응답하여 주시옵소서...” 틈틈이 기도를 합니다.
그리고 감사하라고 하였는데, 하나님 앞에 감사해야지...“하나님 오늘 아침에 일찍~ 일어날수 있게하여 주시니 감사합니다.” “하나님 오늘도 건강하게 하루를 보낼수 있도록 하여 주시니 감사합니다.”
자 이렇게 성경말씀대로 순종하며 살아가는 사람은 바로~ 말씀이 이끄는데로 살아가는 사람이 되겠습니다.
어떤 결정을 하고 판단을 할때에도, 성경말씀을 떠올리며, 성경말씀에 의지하여 결정을하면, 그 사람은 성경말씀을 나침판 삼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입니다.
성경이 이끄는데로 살아가고, 성경말씀을 나침판 삼아 걸어갈 때, 아브라함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가나안 땅에 도착하여 보니까, 하나님께서 확신을 주시고, 증거를 주십니다.
7절 상반절에 말씀합니다.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 이르시되 내가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라 하신지라”
즉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셔서, 이 땅이 바로 내가 너에게 지시한 땅이다. 라고 확인하여 주시고,~ “내가 이 땅을 너의 자손에게 주리라” 고 복을 내려 주십니다.
그렇습니다. 그리스도인 성경말씀이 이끄는대로 살아가고, 성경말씀을 나침판 삼아서 판단하고 결정하면,
그,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고, 하나님께서 뜻하신 곳에, 잘 도착할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도 똑같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날 우리를 누구로 불러 주셨습니까? 하나님의 자녀로 불러 주셨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로 불러 주셨습니다. 하나님 나라를 세우는 청지기로 불러 주셨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자녀에게 주시는 말씀대로 살아가면, 그 사람은 하나님의 자녀가 받는 복을 누리며 살아게 됩니다.
예수님의 제자가 되어 살아가면, 참포도나무 되신 예수님에게 잘 붙어 있게 하여 주십니다.
선한 청지기로 살아가면, 영원한 열매, 상급의 열매를 맺게 하여 주십니다.
한번은 새벽기도를 하고 있는데, 눈앞에, 아름다운 동산이 펼쳐집니다. 그 동산에는 아름다운 꽃들이 만발 합니다. 그리고 빛이 내리 비치는데, 얼마나 화사하고 쨍~한 빛이 비치는지, 여름에 내려비치는 태양빛 보다가, 더쎈 빛이 비치는데, 신기한 것은 눈이 아프지 않습니다.
그 빛을 받아서 꽃들이 모두 다~ 반짝반짝~ 빛이 납니다. 신기하다~ 대단하다~ 그러면서 동산을 보고 있는데, 그 동산에, 꽃들 사이로 한 사람이 걷고 있습니다.
누군가 해서 보았더니, 우리교회에 한 성도님이...이름과 직분은, 밝히지 않겠습니다. 우리교회에 한성도님이 그 동산에서 꽃을 보다가, 제가 부르니까, 돌아보는데, 얼마나 얼굴이 환~ 한지 모릅니다.
세상에 근심걱적은 하나도 없는, 환~한 얼굴로, 환하게 웃으면서, 저를 봅니다.
“목사님” 그리고 인사를 하는데, 그 얼굴, 어께, 온 몸이, 빛을 받아서 반짝반짝~ 비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도 인사를 하고, 새벽기도를 마치게 되었습니다.
그 환상을 보고 저는 엄청나게 기뻐하고, 감사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성도가 미래에, 천국에서 누릴 영원한--기쁨의 모습을, 먼저 나에게 보여 주셨구나...
그 성도가 천국에 들어갈 것을 알게 하여 주셔서 기뻤고, 또한 나도 천국에서 그 성도와 다시 만날것을, 알게하여 주셔서, 또한 크게 기뻐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예수님의 제자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선한 청지기입니다.
이렇게 불러주신 부름의 상을 목표로 하여, 성경말씀대로 살아가면,
여기에 있는 모든 분들은, 다~ 좁은문으로 다 들어가고,
다~ 천국을 상속받고,
다~ 하나님의 자녀로써, 영원한 기쁨과 상급을 누리게 하여 주실줄로,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2. 그리스도인의 여정을 방해하는 것이 있습니다.
8절 9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 거기서 벧엘 동쪽 산으로 옮겨 장막을 치니 서쪽은 벧엘이요 동쪽은 아이라 그가 그 곳에서 여호와께 제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더니
점점 남방으로 옮겨갔더라 “
계속하여, 말씀을 보겠습니다.
아브라함은 말씀이 이끄는데로, 말씀을 나침판 삼아서, 하나님께서 뜻하시는 가나안땅에 잘 도착 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환상중에 나타나셔서, 아브라함에게 확신을 주셨습니다.
아브라함은 감사하여, 그곳에 제단을 쌓고 예배를 드립니다.
그런데 9절에 보니까 이상한 사건이 일어납니다. “점점 남방으로 옮겨 갔더라”
목표에 잘 도착하였는데, 아브라함이 이상하게도 멈추지 않고, 목표를 지나쳐서, 계속하여 내려가기 시작합니다.
즉 목표를 치나쳐서 딴곳으로 가기 시작하였습니다. 목표를 놓쳐버리고, 목표를 잊어버리게 된 것입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상황이 아닐수 없습니다.
어떻게 도착한 목표입니까? 고향을 떠나고, 아버지의 집을 떠나서, 어렵게~ 어렵게 도착한--목표입니다.
이제 그곳에서 살기만하면, 하나님께서는 복을 주십니다. 그런데 왠일인지 목표에 도착하였지만, 멈추지 않고, 딴곳으로, 곁길로 걸어가기 시작하였던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도 목표를 지나치고, 놓치고, 벗어날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인데, 세상에 것을 위하여 살아갈때가 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인데, 세상 영광을, 더 이루려, 힘쓸 때가 있습니다.
선한 청지기 인데, 하나님의 나라가 아니라, 욕심을 쫓을 때가 있습니다.
누가복음 8:14
가시떨기에 떨어졌다는 것은 말씀을 들은 자이나 지내는 중 이생의 염려와 재물과 향락에 기운이 막혀 온전히 결실하지 못하는 자요
복음이 뿌려 졌습니다. 그런데 ‘이생의 염려’가 발생이 됩니다.
염려는, 없을수가 없습니다. 세상을 보면, 모든 것이 불안하고, 모든 것이 염려가 됩니다.
이생의 모든 것이 어찌, 하루라도, 염려 없이, 그냥 저절로 되는 것이 있겠습니까?
재물은 더욱더 사람의 마음을 힘들게 합니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라고 하면서, 심지어는 세상에 모든 것을 가진 사람이라도 ‘재물의 염려’는 끝낼수가 없습니다.
또한 ‘향락’은 사람의 마음을 흔들어 놓습니다. 즐겁게 살아가는 사람은 끝이 없습니다. 등산을 하면 재미있습니다. 낚시를 하면 재미있습니다. 재미와 즐거움을 쫓다가 보면, 끝이 없습니다.
미국 사람들은 스케일이 커서, 요트를 사고, 비행기를 사고, 돈이 많은 사람들은 ‘우주로캐트’까지 전세를 내어, 개인이 우주여행을 하는, 여행프로그램 까지 등장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런 것을 쫓아가다 보면, 기도 못하고, 찬송 못하고, 믿음생활을 할 수가 없습니다.
‘염려’와 ‘재리’와 ‘향락’을 쫓아가면 곁길로 않갈래야, 않갈수가 없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아브라함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10절 상반절에 말씀합니다.“그 땅에 기근이 들었으므로 아브람이 애굽에 거류하려고 그리로 내려갔으니”
하나님의 뜻이 있는 땅에 도착 하였고, 그 땅에서 생활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염려”가 마음속에 들어 옵니다.
“이 땅에는 기근이 들었는데~, 더 밑에 있는 애굽땅은 훨씬 더 좋은것 같은데~, 이땅을 버리고 애굽땅으로 가보자~”
정리를 하면, 1단계는, ‘염려’가 아브라함의 마음속에 들어 왔습니다.
2단계는 성경말씀이 아니라, 나의 생각과 판단으로 비교를 합니다.
지금까지 아브라함이 성공적으로 하나님께서 지시하시는 길에서 벗어나지 않고, 하나님께서 뜻하신 곳에 도착할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이 이끄는데로 생각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나침판삼아서 판단하였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 나의 생각과 나의 판단으로 비교를 하니까, 아브라함의 눈에, 가나안 땅은 형편없는 땅으로 보이고, 애굽땅은 엄청나게 좋은 땅으로 보여지기 시작 합니다.
그래서 ‘3단계는 축복의 목적지’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아브라함은 가나안 땅에서 오히려 짐을 꾸려서 애굽땅으로 내려가는 결정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결과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그때부터 아브라함은, 문제가 또 문제를 일으키고, 겉잡을수 없는 혼란에 빠지게 됩니다.
13절 상반절에 말씀합니다. “원하건대 그대는, 나의 누이라 하라”
즉 아브라함이 막상 애굽으로 내려가면서 보니까, 기근을 면하기는 커녕, 당장 아브라함의 안전과 생명을 잃어버릴수도 있겠다는, 위험에 직면하게 됩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이 생각해 낸 방법이, ‘부인 사라’를 보고, ‘자기의 여동생’이라고 거짓말 하라고, 시키는 것입니다.
혹시나 아브라함에게 적의를 품는 사람이 있더라도, 사라를 보고, 이렇게 참한 여동생이 있으면 나랑 사돈을 맺어 봅시다.~ 라고 마음이 누그러지면,
아브라함은 그래도 더 안전하지 않을까? 라고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러다 진짜 사라를 좋아하는 사람이 나타나면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그건 그때가서, 좀 생각을 해던지, 시간을 끌어보던지, 아니면 사라가 마음이 없다고 얼버무리고, 넘어갈수 있지 않을까?~ 아브라함이 기껏 생각해낸 아이디어치고는, 남편으로써 무책임하고, 엉뚱하고 황당한 방법이 아닐수 없습니다.
자 이러한 무책임하고 엉뚱한 방법, 과연 성공을 할수 있겠습니까? 아닙니다. 큰 사고로 이어 지게 됩니다.
일반적인 사람한테는 통할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16절에 보면, 애굽왕 바로가, 이 아이디어에 걸려 들게 되어, ‘사라’에게 마음을 빼앗기게 됩니다.
임금님이 직접, 아브라함이 소개하는 여동생을 좋아한다고 하니까, 아브라함도 여동생이라고 하였기 때문에, 거절할 방법이 없습니다. ‘사라’는 아브라함의 여동생으로 행세하다가, 아무소리도 못하고, 바로의 왕궁에 들어가는, 막다른 상황에, 빠지게 됩니다.
마태복음 6:33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하나님께서는, 말씀대로 살아가는 하나님의 자녀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더하여 주십니다.
누가복음 12:30
“이 모든 것은 세상 백성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아버지께서는 이런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아시느니라”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생각하는것 못지 않게, 내가 필요한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계십니다.
시편 37편 7절,9절에 말씀합니다.
“여호와 앞에 잠잠하고 참고 기다리라, 여호와를 소망하는 자들은 땅을 차지하리로다”
아브라함은 애굽에서 큰 위험과 큰 봉변을 당하고, 그러나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위기에서 벗어나, 창세기 13장에 다시~ 가나안 땅으로, 도로, 돌아가게 됩니다.
어려운일 않당하고, 계속 은혜로 살아가는 것이, 좋겠습니까?
고생이란 고생은 다~ 해보고, 나중에 하나님의 말씀이 맞다고 깨닫고, 다시~ 믿음의 자리로 돌아가는 것이 좋겠습니까?
아브라함은 고생과 큰 위험을 경험하고 나서야, 가나안이 축복에 땅이요, 애굽은 축복이 땅이 아니란것을 깨다고, 다시 가나안 땅으로 돌아게 되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말씀이 이끄는 데로, 말씀을 나침판 삼아서 걸어갈 때,
하나님께서 불러주신 은혜의 자리에서,
형통과 평안과, 복된 삶을, 매일매일, 살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한주간 동안도 세상에서 살아갈 때, 염려와 판단과 결정의 분깃점을 만나게 될 수 있습니다. 그때, 하나님의 자녀로써, 예수님의 제자로써, 선한 청지기로써, 하나님의 말씀을 펴고, 바라 보시기 바랍니다.
말씀이 이끄는데로만 나아가면, 어려움에 빠지지 않고, 하나님의 뜻하심 가운데, 걸어갈수 있게 됩니다.
이 믿음--이지혜로 한주간동안 행하여, 은혜롭고 평탄한 길로 걸어가는, 김포상도교회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해 드립니다. 아멘
----
하나님 선한 목자가 되셔서, 푸른 초장으로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여 주시니 감사를 드립니다.
나의가는 길이, 진리의 길, 좁은 문으로 들어가는, 구원의 여정이 되게 하시고,
또한, 갈래길을 만날 때 당황하지 않고, 성경말씀을 꺼내들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래서, 말씀이 이끄는데로, 말씀을 나침판 삼아서 살아갈때
한주간 동안도, 형통과 평안과 구원의 길로 은혜로 걸어가는, 한주간이 될 수 있도록~
지켜동행하여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