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드로전서 5장 1절 9절 겸손의 믿음
너희 중 장로들에게 권하노니 나는 함께 장로 된 자요 그리스도의 고난의 증인이요 나타날 영광에 참여할 자니라
너희 중에 있는 하나님의 양 무리를 치되 억지로 하지 말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자원함으로 하며 더러운 이득을 위하여 하지 말고 기꺼이 하며
맡은 자들에게 주장하는 자세를 하지 말고 양 무리의 본이 되라
그리하면 목자장이 나타나실 때에 시들지 아니하는 영광의 관을 얻으리라
젊은 자들아 이와 같이 장로들에게 순종하고 다 서로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시느니라
그러므로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아래에서 겸손하라 때가 되면 너희를 높이시리라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 이는 그가 너희를 돌보심이라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너희는 믿음을 굳건하게 하여 그를 대적하라 이는 세상에 있는 너희 형제들도 동일한 고난을 당하는 줄을 앎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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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정과 성숙함으로 살아가자’ 라는 주제로, 8월달을 시작하였는데, 벌써 마무리하는 주일이 되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긍정’은 ‘낙관주의’가 아닙니다. 스스로의 ‘자신감’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하나님의 말씀대로 다스려 나가신다는, 믿음에서 출발하는 ‘긍정’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리스도인은 내가 하는 일이, 매일매일, 잘 될때만 ‘긍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가끔씩 세상에서 근심스럽고 답답한 일을 만날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럴때에도 낙망,낙심하지 않습니다.
오늘도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세상을 다스려 나가시기에....
내가 성경말씀 대로 살아가면, 내 생활도 하나님의 다스 리심 아래에 있습니다.
그렇다면, 근심스럽고, 답답한 그 일도...하나님의 다스 리심 밖에 있지 않고, 안에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내 생활을 이끄시면, 나는 실족하지 않습니다. 넘어지지 않습니다.
나를 향하신, 하나님의 지극한 아가페 사랑과, 신실하심이...
나를 붙잡아 주시고, 은혜로 이끌어 갑니다.
이 하나님의 다스리심과 아가페 사랑에 의지하기에... 그리스도인은 ‘긍정’ ‘성숙’함으로 살아갈수 있는 것입니다.
자, 한달동안 말씀을 떠 올려 보겠습니다.
‘아베스’는 부정적인 것이 많은 사람이었지만, 긍정적인 마음으로 하나님께 기도하였습니다.
그럴 때, 부정적인 것은 떠나고, 긍정적인 일이 충만한, 존귀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세상은 근본이 아니요, 근원이 아닙니다.
포도나무 가지가 줄기에 붙어 있을 때, 열매를 맺는 것처럼
내가 근본이요, 근원되신..예수님에 붙어 있을 때, 긍정의 열매를 맺을수 있습니다.
그리고 지난 시간에는, 꾸준함이, 긍정의 변화를 가져 온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억울한 과부가 불의한 재판장에게 꾸준히 탄원할 때, 불의한 재판장 마저도, 그 억울함을 풀어주는데,
하물며, 하나님께서는 성도들의 꾸준한 기도와 예배와 헌신과 봉사를 외면하시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한번 기도해보고 그만두고...,한번 예배드려보고....그만두고...
충동적이고, 변덕스럽고, 오래 참지 못하는 신앙은, 어떠한 열매도 기대할 수가 없습니다.
반대로, 꾸준하고, 변함없고, 오래참는 믿음은, 좋은열매, 긍정의 열매를, 충만하게 맺을수 있게 됩니다.
오늘은, 8월 달을 마무리 하면서, ‘성숙을 완성케 하는 겸손’에 대하여 말씀을 전하려고 합니다.
1. 하나님께서는 교만한 자는 대적하시고, 겸손한 자에게는 은혜를 주십니다.
오늘 본문 5절 하반절에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긍정이..... 자신감을 지나처서, 교만에 빠지지 않으려면, ‘성숙’이 있어야 합니다.
‘성숙’의 출발점은 ‘겸손’이라고 할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겸손’은 세상의 ‘겸손’과 구별됩니다.
그리스도인의 ‘겸손’은 인위적 ‘겸손’이 아니라, 예수님 앞에 내가 설때에,
예수님의 그 사랑, 그 은혜를 깨닫고, ‘겸손’하게 되는 것입니다.
또한, 그리스도인의 겸손은 내가 십자가 아래에서 죄인임을 고백하는 것을 나타나게 됩니다.
요한3서에 보면, ‘그들 중에 으뜸 되기를 좋아하는 디오드레베’가 나옵니다.
사도요한이 어떤 교회를 방문하는데, 그 교회에는 ‘디오드레베’ 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디오드레베는 얼마나, 교만 하였는지,...
사도요한을 배척을 합니다. 사도요한이 보낸 사람들을 배척합니다. 심지어는 사도요한이 보낸 사람을, 맞아들이는 사람을, 교회에서 내어 쫒습니다.
사도요한은, 예수님의 사랑을 받은 12제자 중, 한명입니다.
사도요한은, 마태복음에도 나오고, 누가복음에도, 나오고, 마가복음에도 나오고, 요한복음에도 당연히 나옵니다.
그렇다면, 사도요한은 믿을말한 사람이요, 존경할 사람이요, 신앙에 모범으로 삼아야 할 분이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디오드레베는, 으뜸이 되기를 좋아하다 보니, ‘사도 요한’도 눈에 않들어 옵니다.
“내가 으뜸인데... 사도 요한은 아무것도 아니다.~”
교회에는 존경해야 할 사람이 있습니다.
그것은 세상의 존경이 아니요, 억지로 하는 존경이 아닙니다.
그 분의 믿음을 바라볼 때.....자동적으로 존경을 하게 됩니다.
“어떻게 기도를 그렇게 많이 하세요. 저도 본받고 싶습니다.”
“어떻게 예배를 그렇게 잘 드리세요. 저도 본받고 싶습니다.”
사도요한은 ‘요한복음’을 썼습니다. ‘요한1,2,3서’도 썼습니다. 또한 ‘요한계시록’도 섰습니다.
‘디오드레베’가, 이러한 사도요한과 비교할수 있을 만큼, 믿음의 수준이 높습니까?
그런데도, 디오드레베..마음속에 으뜸이 되기를 좋아하는, ‘교만’이 들어가니까..
사도요한도 눈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사도요한 존경할 필요가 없습니다. 나도 사도요한 못지 않습니다.”
잠언 16:18 에는 말씀합니다.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
스스로 직접 기도해보면, 기도가 얼마나 어려운지 깨닫게 됩니다.
작은 기도제목도, 응답 받으려면, 얼마나 힘이 드는지 모릅니다.
큰 기도제목은, 보통 정성을 드려서는, 응답 근처에도 가기가 힘이 듭니다.
겉과 속이, 하나님 앞에서 깨끗하고, 온전하게 되어, 구하고 또 구해야.. 응답을 받을수 있습니다.
하물며, 기도할 때... 신령한 환상을 보고, 음성을 듣는 것은, 보통 믿음이 아닙니다..
그런데, 사도요한은 기도할 때, 그러한 신령한 환상과 음성을 듣고, 또한... 기록하라고 해서.., ‘요한계시록’까지 쓰신 분이 아니겠습니까?
성숙한 그리스도인은....‘겸손하게’...존경할 자를 존경하고, 본받을 것을... 본받고
그러면서, 나의 모자란 부분이 성장하고, 성숙하게 되는 그리스도인이
참으로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아니겠습니까?
목사님, 겸손하게, 존경하고, 본받지 않으면, 어떻게 됩니까?
예레미야 52:2
“그가 여호야김의 모든 행위를 본받아,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한지라”
시드기야 왕은, 좋은 것을 본받는 것이 아니라, 나쁜 것을 본받기를 힘쓰는 왕이였습니다.
그런데 나쁜 것을 본 받는 것은, 왜 그렇게 쉽고, 재미가 있는지 모릅니다.
시드기야 왕은.... 나쁜 여호야김 왕이 하던대로... 악행을 따라서 하니까...너무너무 재미가 있습니다.
예배를 드리지 않고, 우상을 섬깁니다. 굿을 합니다. 박수무당을 불러다가 점을 칩니다.
자 이렇게 나쁜 것을 본받으면, 형통하겠습니까? 긍정적인 열매가 많이 열리고,
하는 일이 잘 되겠습니까?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진노하시고, 시드기야 왕을 버리십니다.
그럴 때...삽시간에 바벨론이 처들어 와서, 예루살렘을 에워 쌉니다.
예루살렘을 불 타고, 시드기야왕는 도망가다가 잡혀서, 두 눈이 뽑히고, 바벨론에게 끌려가 비참하게 죽게 됩니다.
뿐만 아니라 나라도 망하게 됩니다. 남유다는 바벨론에게 완전히 멸망 당하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남유다 최후의 왕인, 시드기야 왕이 맺은... ‘멸망의 열매’인 것입니다.
좋은 것을 본받는 것이 아니라, 나쁜 것을 본받으니까..‘나쁜열매’가 달립니다.
그 ‘나쁜열매’는, 생활 곳곳에 ‘나쁜영향’을 미칩니다.
하는 것 마다, 않됩니다. 온통 근심스러운 일들만 생깁니다.
그결과....나중에는 저주와 진노의 자리에 서서, 멸망하게 되더라고 하는 것입니다.
좋은 열매는 절대로 그냥 달리지 않습니다.
겸손하게, 좋은 믿음을 본받아서,
나의 믿음의 자라나고, 성장하고, 성숙해 나갈 때..
비로서, 하나씩 하나씩...긍정열매, 은혜의 열매, 축복의 열매가....결실하게 되는 것입니다.
2. 하나님께 맡길 때, 하나님께서 돌아 보십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다 잘해도, 한가지 못하는 것이... 있는 것 같습니다.
‘오래 참는 것’에는.... 도무지 아마추어입니다.
식당에 들어가면, 참지를 못합니다. “아줌마, 짜장면하고 짬뽕..... ‘빨리~’ 주세요.”
조금만 늦게 나오면, 참지를 못합니다. “빨리 좀 갖다 주지, 이 집은, 서비스가 왜 이래요? ”
엘리베이터를 타는데, 고속으로....‘빨리’ 올라 가면, 모두가 만족해 합니다. “이 건물에 엘리베이터는 성능이 좋으네요.. .신가다,가 역시 좋긴 좋습니다. ”
만약에...엘리베이트가 늦게 올라가면, 내릴 때 까지...그 건물 전체가 욕을 먹습니다.
오늘 본문..6절 하반절에는...“겸손하라, 때가 되면, 너희를 높이시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다른 것은 다 하겠는데..., “때가 되면 높혀 줄테니까.... 기다리라고 하니까..
인내하며....때를 기다리는 것”을 매우 힘들어 합니다.
자 그렇다면, ‘빨리 빨리’가 무조건 좋은 것입니까?
‘빨리 빨리’, 일평생을 10년만에 다 끝내버리고, 10년만 살고, 바로 예수님 앞에가면, 그렇지 않겠습니까?
인내해야 할 것은, 인내가 필요한 것입니다.
한 사람의 연수가 100살이면, 100년 동안 인내하면서,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은, 은혜라고 하는 것입니다.
감사하게도, 6절에는 그냥, 무작정 인내하며, 때를 기다리라고 말씀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아래에서, 겸손하게 때를 기다리라고 말씀 합니다.
영악하고 머리좋은 6살 짜리...아이가 있었습니다.
엄마가 이 아이를 데리고 시장에 갔다가, 사탕가게를 들렀습니다.
“얘..오늘 착하게 시장 잘 보았으니, 5백원어치 사탕을 사서 가자꾸나... 자~ 너가 좋아하는 사탕을 사거라”
이 아이가 얼~른, ‘박하사탕’ 앞으로 갑니다.
사탕가게 할아버지가 말합니다. “얘야...어서 두손으로 마음껏 집어라.”
이 영약하고 머리좋은 6살 짜리 아이는...보고 만 있습니다.
사탕가게 할아버지가 말합니다. “얘야...뭘 그렇게 보기만해, 어서 두손으로 마음껏 집어라”
그래도... 이 영악한 아이는, 보고만 있습니다.
하는수 없이, 사탕가게 할아버지가... 가판대로 나와서, 할아버지가 직접 두손으로, 사탕을 집어서 아이에게 줍니다. “그게 뭐가 부끄러워서.. 집지를 못해. 자 많이 먹어라..”
집으로 돌아와서 엄마가 아이에게 묻습니다.
“얘 너는 왜, 사탕가게에, 갈 때 마다...가게의 할아버지가 집어 주실 때 까지, 기다리는 거니... 뭐가..부끄러워 그래..”
아이가 대답합니다. “엄마는,, 내 손을 보세요. 5백원 내고, 내손으로 집어봐야 몇개를 집겠어요. 할아버지가 큰손으로 집어 줘야...‘이득’이에요. ‘이득’”
“그렇구나..요즘 아이들이.... 할아버지.. 머리 위에서 노는 구나.”
어떤 사람은, 그 사이를 참지를 못하고, 내가 먼저 하고, 내 능력 만큼 하고, 끝내는 사람이 있습니다.
반대로, 믿음의 사람은,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며...능~하신, 하나님의 능력만큼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은 얼마나 대단한지... 창세기 28:3 말씀 합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이 네게 복을 주시어, 네가 생육하고 번성하게 하여, 네가 여러 족속을 이루게 하시고”
야곱이 먼길을 떠나는데, 도무지 마음이 놓이지 않습니다.
‘밧단아람’의 외삼촌 라반의 집에 가서, 아무래도 고생이 될텐데... 어떡하나..어떡하나..
그래서, 아버지 이삭은, 야곱을 붙잡고, 기도를 합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전능이란 ‘온전할 전, 능할 능’ 영어로는 ‘올마이티’입니다.
한글사전을 찾아 보니까..‘어떤 일이든, 하지 못하는 것이 없음. 무슨 일이든지, 능히 할 수 있는 절대적인 능력.
절대자 하나님에게만 사용되는 표현’ 이라고 설명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능력이 얼마나 많으신지..
어떤 것에도 얽매이지 않고, 무슨 일이든지, 능히 하실수 있습니다.
바로 그 ‘능력의 하나님’께 의지하여, 살아갈 때,
“하나님께서 능력으로 복을 주시고, 생육의 복, 번성의 복을 충만하게 주시어,
야곱의 후손이...여러 족속을 이루기 까지, 잘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라고 기도를 하였던 것입니다.
자 그럴 때, 성경을 보면, 야곱이, 외삼촌 라반의 집에가서, 엄청나게 답답하고 괴로운 세월을 보내게 됩니다.
창세기 31장에 보면, 야곱이 이렇게 설명합니다.
“내가 외삼촌의 집에 있는 이 이십 년 동안, 외삼촌의 두 딸을 위하여 십사 년, 외삼촌의 양 떼를 위하여 육 년을, 외삼촌에게 봉사하였거니와, 외삼촌께서 내 품삯을 열 번이나 바꾸셨으며,
우리 아버지의 하나님, 아브라함의 하나님 곧 이삭이 경외하는 이가 나와 함께 계시지 아니하셨더라면, 외삼촌께서 이제 나를 빈손으로 돌려보내셨으리이다마는”
그렇습니다. 외삼촌 라반이 얼마나 계산이 철저하였는지,
만약에 양들을 없어지면, 그 양을 돌보던 야곱이, 물어내게 합니다.
그러니까..야곱은 양들이 들짐승들이나, 도둑맞으면, 그 양의 숫자 만큼, 외삼촌에게 물어주면서, 살았습니다.
그런데도, 야곱이 치던 양들은 점점 늘어나고, 잘되니까...
이번에는 야곱의 품싻을 2년 마다, 바꾸었습니다.
자, 이 모든 일들이, 상식적으로 반복된다면, 야곱은 망하고 빈털터리가 되는 것이, 당연한데...
결과는 반대 였습니다. 야곱은 꾸준히 20년동안 기다릴 때, 점점 더 부유하게 되어, 외삼촌 라반, 못지 않는, 큰부자가 되었습니다.
왜 이런 결과가 나타났는가?..능하신 하나님의 손 아래에서, 때를 기다릴 때,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잘되게 해주심으로, 야곱은 완승할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어떻게 긍정적인 일들이 충만하고, 인격이 성숙할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나보다 하나님이, 더 능하신줄로 알고
내가 가지는 염려를, 다 하나님께 맡기고..
능하신 하나님의 손아래 겸손하게 인내하면
하나님께서 나를 돌보아 주십니다. 때가 되면, 하나님께서 나를 높혀 주시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3번째, 겸손한 사람, 성숙한 사람은 다른 사람을 살필줄 아는 사람입니다.
9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너희는 믿음을 굳건하게 하여 그를 대적하라 이는 세상에 있는 너희 형제들도 동일한 고난을 당하는 줄을 앎이라”
믿음이 겸손하고, 믿음의 성숙한 사람은, 다른 사람도 고생하는 것을 아는 사람입니다.
다른 사람의 고난을 이해하고, 살피는 사람입니다.
말씀을 정리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어떻게 긍정과 성숙함으로 살아갈수 있습니까?
오늘은, 마무리 하면서, ‘겸손’을 살펴 보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교만한 자를 대적 하십니다.
하나님께 맡길줄 아는 사람을, 하나님은 돌보아 주십니다.
하나님은 나보다 더 능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나의 염려를 다 풀어 주시고, 하나님의 방법으로 나를 이끌어 가십니다.
한주간 동안, 하나님의 큰 능력속에서, 긍정과 성숙함의 열매를... 맺으며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해 드립니다.
하나님, 말씀대로 이 세상을 다스리 심을 바라 봅니다.
나를 향하여 끝없는 사랑과 신실하심으로, 나를 이끄실 때
나를 얽어매던 근심의 줄은 끊어지고..
나를 괴롭게 하는, 않좋은 것들은 사라지게 될 줄로 믿습니다.
이제부터, 하나님의 능하신 손아래에, 순종하며 살아 가겠습니다.
때가 찰 때, 하나님께서 높혀 주시고,
때가 될 때, 하나님께서 풀어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긍정의 열매, 은혜의 열매, 성숙의 열매들로 가득한...복된 인생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