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지도 시편 119편 105절
2015.06.23 10:57:02 조회3772
시편 119편 105절 인생의 지도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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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은 창인이 한테, 말했습니다.
창인이 추운남자 이름이 무엇인지 아니,? 정답은 춥군,
추운 여자는 추울걸..
초운 러시아 여자는 추울쏘냐....
그랬더니 창인이가 무덤덤 하게 대답 합니다.
“아버지, 절대로 이런 유머는, 사용하지 마세요.썰렁해요....”
바쁜 생활속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는 사람은, 건강한 사람이라고 합니다.
웃음은, 생활에 활력을 심어주고, 생활에 청량제와 같은 역할을 해 줍니다.
자 여기에서, 중요한 질문을 발견하고, 중요한 교훈을 발견하게 됩니다.
생활의 중심이 무엇입니까?
만약 생활 자체라면, 웃음은 필요가 없습니다. 오히려 더 열심히 생활을 해야 합니다.
하지만, 생활의 중심은, 생활자체가 아니기 때문에, 생활로 인하여 짓눌리고, 힘들어지지 않도록, 웃음이 필요합니다.
세상에서 생활, 사회생활, 직업생활은, 학교의 생활은, 그자체가 목표이고 목적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것은 주변적인 것이요, 도구입니다.
이 사실이, 분명하지 않을때, 사회생활로 인하여 내가 병이 듭니다.
직업생활로 인하여 내가 괴로움을 겪습니다.
학교생활로 인하여 내가 주늑들게 됩니다.
그렇다면, 정말 중심, 정말 목표는 무엇입니까?
1. 지도를 보아야 합니다.
그래서 오늘 말씀에 보면, 시편기자는, 이정표를 찾았습니다.
오늘 말씀, 시편 119편 105절 말씀을 다시한번 보겠습니다.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 니이다”
내 발걸음이 어디쯤 가고 있는지, 지금 내 발걸음이 곁길로 들어섰는지 살펴보기 위하여
시편기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보았습니다.
내가 가는 길이, 잘못된 길로 들어선 것은 아닌지 가늠하기 위하여,
시편기자는 하나님의 말씀에, 비추어 보았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등대와 같습니다.
등대라고 하는 것은 이정표의 역할을 합니다.
깜깜한 밤중에 배를 몰고 가는데, 가다가 보면, 어디쯤 가고 있는지 헷갈릴때가 있습니다.
나는 잘 간다고 갔는데, 엉뚱한 곳으로 가고 있을때가 있습니다.
그럴대, 등대의 불빗을 찾아 봅니다.
깜박, 깜박, 등대불이 보입니다. 그러면 등대의 불빛을 기준삼아서, 나의 가는 방향을 확인할수 있게 됩니다.
‘아이구 옆으로 엉뚱한 곳으로 가고 있었구나, 방향을 다시 설정해야 되겠구나.’
오늘 오후 찬양예배때에, 삭개오가 살았던, 여리고 마을에 사진을 직접, 보겠습니다만,
누가복음 19장에 보면, 삭개오가 예수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때까지, 삭깨오는 돈이 최고인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세리장이 되었습니다.
상황을 조금 이해를 해보면, 우리나라 일재시대 때와 마찬가지입니다.
이스라엘은 로마에 의하여, 식민지가 되었습니다.
그당시, 유대인들은, 세리를 아주 싫어 하였습니다. 세금을 거두어 로마에 갖다 바치니까, 누가 좋아하겠습니까?
자꾸 반감이 심하니까. 로마인들은, 유대인들 가운데 세리를 뽑아서 이 일을 맡겼던 것입니다.
우리나라로 이해 한다면, 일본순사 중에, 조선사람을 앞잡이로 사용합니다.
일제시대때, 일본사람보다, 조선 순사들이, 더 악날하게, 행동했다고 하지요. 잘 아니까, 더 앞잡이짓을 잘합니다. 그러니까 더 미워 합니다.
마찬가지요, 유대인들 형편을 잘 아니까, 유대인 세리들이 더 악날하게 세금을 거두어 갑니다. 그래서 더 미움을 받습니다.
그런데 그 세리들의 장이 되었으니, 사람들이 얼마나 삭개오를 싫어 하였겠습니까?
자, 여기에서, 만약 이렇게 계속살아가면, 삭개오는 어떻게 되겠습니까?
사람들이 모두 싫어 합니다.
사람들이 모두 미워 합니다.
나중에 삭개오가 무사하겠습니까? 삭게오의 집은 나중에 무사하겠습니까?
삭게오도 이 사실을, 알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애써 무시하면서, 그냥, 돈이 최고인줄 알고, 로마의 앞잡이가 되어서 살았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등불이요, 기준이요, 지도입니다.
삭게오가 살아가는 인생의 길을, 비추어 보게 되었습니다.
삭게오가 걸어왔던, 생활의 방향을, 살펴보게 되었습니다.
누가복음 19장 5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
등불이 우리집에 오십니다. 빛이요, 기준되신 예수님께서 우리집에 찾아오십니다.
삭게오는, 이때 꽝~~~ 하고 머리를 얻어 맞은듯이,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어색하고, 계면쩍고, 미안한 마음이 들기까지 합니다.
하지만 삭개오가 위대한 것은, 예수님의 말씀을 즉시 영적하였던 것입니다. 자신의 생활과 방향에 즉시 맞추어 보았던 것입니다.
그리고 용기있게, 고백하였습니다.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누구의 것을 속여 빼앗은 일이 있으면, 네 갑절이나 갚겠나이다”
자 예수님께서는 ‘삭개오의 집에 유하겠다’고 말씀하시는데,
삭게오의 대답은, ‘우리집에 들어오십시오’ ‘집이 누추하지만 환영합니다’ 그런 대답이 아니었습니다.
용서와 회개의 핵심을 고백드리고, 자시 인생에 잘못된 길을 교정하는, 결단을 말씀드렸던 것입니다.
자 그럴때 예수님께서, ‘이 사람은, 집에 들어가겠다는데, 무슨 뚱딴지 같은 동문서답이야’ 그렇게 말씀하시지 않습니다.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이로다.
인자가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 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오늘 우리도, 길을 가다가 멈추어 서서, 지도를 펼쳐 보아야 합니다.
그 지도는, 바로 성경책입니다.
성경책 속에는, 하나님의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성경책 속에는, 우리가 가는 목적지와 방향이, 완전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시편 19편, 7절 12절 말씀입니다.
“여호와의 율법은 완전하여 영혼을 소성시키며. 여호와의 증거는 확실하여. 우둔한 자를 지혜롭게 하며
여호와의 교훈은 정직하여 마음을 기쁘게 하고. 여호와의 계명은 순결하여 눈을 밝게 하시도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도는 정결하여. 영원까지 이르고. 여호와의 법도 진실하여 다 의로우니
금 곧 많은 순금보다 더 사모할 것이며. 꿀과 송이꿀보다 더 달도다
또 주의 종이 이것으로 경고를 받고. 이것을 지킴으로 상이 크니이다.
자기 허물을 능히 깨달을 자 누구리요. 나를 숨은 허물에서 벗어나게 하소서.”
서부개척시대의 일화라고 합니다.
모두 먼저가서 차지하면, 자기의 땅이 된다고 합니다. 그리고 사금이 발견되어서, 먼저가서 금을 캐면, 자기의 것이 된다고 합니다.
그러자 사람들이 너나 할것 없이 서부로 몰려가게 되었습니다.
남보다 빨기 가서, 자기의 땅을 조금이라도 더 많이 찾지하고 싶습니다.
남보다 빨리 도착하여서, 곰을 캐고 십습니다.
그런데 한 청교도 무리는, 꼭 6일을 가면, 7일째는, 주일날 예배를 드립니다.
예배를 드리고 하루종일 쉬면서, 안식을 합니다.
같이 가던 사람들이 손가락질을 합니다. 그래서 언제 가려느냐?,
남들이 좋은 땅을 차지하고, 제일 나쁜 땅을 차지하려고 그러느냐?
하지만 이 청교도 무리는 끄뜩도 하지 않습니다. “성경책을 읽어보지 못했습니까? 성경책 되로 우리는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나중에 가보니까, 서부는 우리나라, 부산에서 서울가는 것과는 비교할수 없습니다.
거리가 한 열배나 됩니다.
그리고 곳곳에 사막과 황무지입니다. 심지어는 사람들이 너무많이 죽는 곳이라고 하여서, 데스벨리, ‘죽음의 골짜기’ 란 이름이 붙을 지경입니다.
말들이 가다가 가다가 힘이빠져 죽습니다. 사람들도 지쳐서 죽습니다.
하지만 성경책에 말씀대로 길을 갔던, 청교도 무리는, 말도 사람도 건강합니다.
다른 이들보다가, 뒤처지지도 않았습니다. 안전하게 도착하여 좋은땅도 확보하였다고 합니다.
2. 생활속에서, 성경책을 가까이 해야 합니다.
미국이란 나라는 미워 하면서도, 부러워하고,
무시하려고 하지만, 배워야 할 것이 많은 나라인것 같습니다.
지금 대통령은 최초의 흑인 대통령인, ‘오바마’이지요.
미국 전통에 따라서, 오바마 대통령도, 취임식때, 성경책에 손을 얹고, 대통령 선서를 하였습니다.
그리고 전통에 따라서, 마지막에는 ‘So help me God’ 하나님. 나를 도와 주소서. 라고 끝을 맺습니다.
이때 오바마 대통령은, 특별히, 링컨대통령이 썻던, 성경책 위에, 손을 얹고 선서를 하였다고 합니다.
링컨대통령도 대단한 사람이지요. 나는 평소에 하루에 1시간씩 기도하지만, 지금은 남북전쟁으로, 너무나 바쁘기 때문에, 매일 2시간씩 기도하고 있습니다.
여호수아 1:8 에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안에 기록된 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며 네가 형통하리라”
우리 그리스도의 사람들은, 성경책을 가까이 해야 하겠습니다.
손 닫는데 성경책이 있어야 하겠습니다.
매일 성경책을 읽어야 하겠습니다.
어떤 대기업 이사로 있는, 집사님이 저에게 간증을 해주었습니다.
목사님 저는 매일 아침에 출근할 때, 성경 한 장을 읽고 출근을 합니다.
또, 옛날에 수능재수를 하는 학생이, 저에게 간증을 하였습니다.
너무너무 긴장이 되고, 너무너무 힘들어, 성경한장을 읽고 하루공부를 시작합니다.
그후 학생은 무사히 대학에 잘 입학하여, 지금은 의사가 되었다고 합니다.
성경책을 가까이 하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인도해주십니다.
성경책을 읽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지혜를 주십니다.
잠언 1장 2절에 말씀합니다.
“이는 지혜와 훈계를 알게 하며, 명철의 말씀을 깨닫게 하며....”
성경은 제일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게 합니다.
성경은 제일 중요한 목표가 무엇인지 알게 합니다.
매일매일 생활하다가 보면, 생활 그 자체에 매여서, 제일 중요한 것을 잊어버리고, 방황 할때가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 이대로, 영원히 살아갈 것 같이, 매일매일 생활하지만,
아닙니다. 10년 전에만, 생각해 보아도, 지금 많은 것이 변하여 있습니다.
앞으로 10년 후에 모습이, 지금과 같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너무나 순진한 생각입니다.
저도, 이마에 주름이 안생길줄 알았는데, 자세히 보시면, 이마에 주름이 생기고 있습니다.
모든 사람은 영원히 젊게 살수 없습니다.
50이 넘으면, 금방, 60, 70, 80...
인생에는 올라갈 때가 있으면, 내려갈 때도 있습니다.
그래서 지혜있는 사람은, 지금, 현재만 보고 살아가는 사람이 아닙니다.
10년 후를 볼수 있는 사람, 20년 후를 볼수 있는 사람,
아니, 영원한 후를, 볼수 있는 사람이 아니겠습니까?
전도서 12장에는 말씀합니다.
“너는 청년의 때에 너의 창조주를 기억하라. 곧 곤고한 날이 이르기 전에, 나는 아무 낙이 없다고 할 해들이 가깝기 전에,
해와 빛과 달과 별들이 어둡기 전에, 비 뒤에 구름이 다시 일어나기 전에, 그리하라”
그래서 문득 무득, 가던 길을 멈추고, 성경책을 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나의 방향성을 다시 살펴보고,
나의 길을 다시 알아 보기 위하여, 성경책을 펼쳐야 하는 것입니다.
‘적극적 사고방식’ 이란, 책을 쓴, 노먼 빈센트 피일 목사님이, 미국에서 굉장히 급성장하는 한 회사에 초대를 받고, 공장을 견학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가보니, 모든 것인 최신식, 최신형, 최 첨단 장비들로 가득 합니다.
견학이 끝나고, 사장실에 들어가서 사장님과 이야기를 하는데, 책상위에 놓여있는 성경책이 눈에 보입니다. 겉장이 너덜너덜한, 손때묻은 낡은 가죽성경책 이었습니다.
“왜 이렇게 낡은 성경책을, 책상위에 두고 계십니까?”
“네, 이 성경은 보기에는 낡았지만, 우리회사가, 가장 새롭고, 최신식, 최첨단을 걸어가는 비결입니다.
내가 이 성경을 펼 때마다,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새로운 음성으로, 나에게 새로운 아이디어와 신념을 주십니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요8:32 말씀을, 붙잡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내가 매여서 꼼짝 못하던, 잘못된 사고에서 자유하게 되어
하나님이 주시는, 새로운 사고, 적극적인 사고, 건전한 사고를 할 수 있게 됩니다.
그래서 저는 책상 위에 성경책을 놓고, 상상 가까이 하고 있습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성공적으로 생활하는 사람에게는 비결이 있습니다.
문제가 없는 것이 아니라, 제일 중요한 것을 잊어버리지 않습니다. 마침내 목표에 도착합니다.
성경책은 빛이요, 등불이요,
제일 좋은 지도요. 우리를 안내하는 안내서 입니다.
성경책을 가까이 해야 합니다.
성경말씀을 읽어야 하겠습니다.
그러면, 성경이 인도하는, 길로 가게 됩니다.
성경이 가르치는 지혜를 발견하게 됩니다.
성경말씀을 통하여 매일매일, 은혜와 능력으로 살아가는, 성도님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해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