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상 24장 9절 22절 행복을 관리한 다윗
다윗이 사울에게 이르되 보소서 다윗이 왕을 해하려 한다고 하는 사람들의 말을 왕은 어찌하여 들으시나이까
오늘 여호와께서 굴에서 왕을 내 손에 넘기신 것을 왕이 아셨을 것이니이다 어떤 사람이 나를 권하여 왕을 죽이라 하였으나 내가 왕을 아껴 말하기를 나는 내 손을 들어 내 주를 해하지 아니하리니 그는 여호와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이기 때문이라 하였나이다
내 아버지여 보소서 내 손에 있는 왕의 옷자락을 보소서 내가 왕을 죽이지 아니하고 겉옷 자락만 베었은즉 내 손에 악이나 죄과가 없는 줄을 오늘 아실지니이다 왕은 내 생명을 찾아 해하려 하시나 나는 왕에게 범죄한 일이 없나이다
여호와께서는 나와 왕 사이를 판단하사 여호와께서 나를 위하여 왕에게 보복하시려니와 내 손으로는 왕을 해하지 않겠나이다
옛 속담에 말하기를 악은 악인에게서 난다 하였으니 내 손이 왕을 해하지 아니하리이다
이스라엘 왕이 누구를 따라 나왔으며 누구의 뒤를 쫓나이까 죽은 개나 벼룩을 쫓음이니이다
그런즉 여호와께서 재판장이 되어 나와 왕 사이에 심판하사 나의 사정을 살펴 억울함을 풀어 주시고 나를 왕의 손에서 건지시기를 원하나이다 하니라
다윗이 사울에게 이같이 말하기를 마치매 사울이 이르되 내 아들 다윗아 이것이 네 목소리냐 하고 소리를 높여 울며
다윗에게 이르되 나는 너를 학대하되 너는 나를 선대하니 너는 나보다 의롭도다
네가 나 선대한 것을 오늘 나타냈나니 여호와께서 나를 네 손에 넘기셨으나 네가 나를 죽이지 아니하였도다
사람이 그의 원수를 만나면 그를 평안히 가게 하겠느냐 네가 오늘 내게 행한 일로 말미암아 여호와께서 네게 선으로 갚으시기를 원하노라
보라 나는 네가 반드시 왕이 될 것을 알고 이스라엘 나라가 네 손에 견고히 설 것을 아노니
그런즉 너는 내 후손을 끊지 아니하며 내 아버지의 집에서 내 이름을 멸하지 아니할 것을 이제 여호와의 이름으로 내게 맹세하라 하니라
다윗이 사울에게 맹세하매 사울은 집으로 돌아가고 다윗과 그의 사람들은 요새로 올라가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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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행복3탄’ ‘행복을 관리한 다윗’에 대하여 말씀을 전하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행복하게 하시려고 불러 주셨습니다.
신명기 33장 29절에 말씀합니다. ‘이스라엘이여 너는 행복한 사람이로다’
그리스도인은 행복한 존재입니다.
하나님께 우리가 행복하게 되기를 기뻐하십니다.
그래서, 에베소서 1장 3절에는 말씀합니다.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우리에게 주시되’
하나님께서는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우리에게 주시기를 기뻐하셨습니다.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이라면, 얼마나 대단하겠습니까?
우리의 상상을 넘어서고 초월합니다.
우리가 대단하다고 생각하는 좋은 것을, 넘어서고 또 넘어서서, 하늘에 있는 모~든 신령한 복을,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주시기를 원하시고 계획하시고, 지금도 받으라고 부어주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난시간 요나 선지자를 보니까, 하나님의 이런 좋은 계획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멀리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 내 맘대로 판단하고, 내 생각대로 반대로 갑니다.
그랬더니 요나 선지자는 행복이 아니라, 불행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모든 생활이 혼란스럽고, 감정적으로도 괴팍스러운 사람으로 변하게 되었습니다.
오늘은 구체적으로, 행복을 잘 관리하였던 ‘다윗’과, 행복을 잘 관리하지 못하였던 ‘사울왕’에 대하여 살펴 보려고 합니다.
1. 사울왕은 행복을 관리하지 못 하였습니다.
사람들은 행복을 사건으로 생각 합니다.
사람들은 행복을 불변한 소유로 생각합니다.
즉, 한번 행복한 사건이 생기면, 그 행복이 계속 될 것이라고 여깁니다.
한번 행복을 소유하면, 그 행복은 변하지 않고, 영원히 나의 것이 되리라고, 생각 합니다.
하지만, 행복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관리하지 않으면, 금방 변질되어 불행이 되어 버립니다.
성경을 보면, 사울왕의 인생여정을 통하여, 그 사실을 발견할수 있습니다.
사울왕은 처음에는 행복한 사람이었습니다.
사울은, 평범하게 집에서 생활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엄청난 행운이 찾아 왔습니다. 갑자기 하나님께서 왕이 되게 하여 주셨습니다.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졸랐습니다. “하나님 우리에게도 왕을 주시옵소서”
그럼 누가 왕이 되느냐? 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겠습니까?
선지자 사무엘은 하나님께서 가르쳐주신 방법으로, 제비를 뽑아서, 이스라엘에 왕을 세우도록 하였습니다.
제비를 뽑았습니다. 베냐민 지파가 뽑혔습니다.
또 제비를 뽑았습니다. 기스의 가정이 뽑혔습니다.
또 제비를 뽑았습니다. 사울이 뽑혔습니다.
사울은, 갑자기 제비를 뽑았는데, 이스라엘 전체에서, 딱 한사람으로 뽑혀서, 왕이 되었던,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나라 대통령을..... 제비를 뽑아서 결정을 한다면, 5천만명 분의 1의, 확률이 아니겠습니까?
그런데다 사울이 왕으로 뽑힌것은 지금의 대통령과는 비교할수 없습니다.
사울왕은 임기제한이 없습니다. 한번 왕으로 뽑히면, 늙어서 죽을 때 까지, 계속 왕이 되는 것입니다.
더욱이 사울왕의 아들도 자동으로 왕이 됩니다. 그 후손들도...모두 왕이 되는 것입니다.
즉 사울은 가만히 있다가, 왕으로 뽑혀서 계속 왕이 되고, 그 후손들도 계속하여 왕이 되는 엄청난 행운의 주인공이 되었습니다.
자, 그럼, 사울왕은 이 행복, 이 축복을 어떻게 하였습니까?
조금 전에 말씀을 드렸습니다. 행복은 일회적 사건이 아니요, 불변의 소유가 아닙니다.
하지만 사울왕은 그 사실을 깨닫지 못하였습니다.
내가 왕이 되었으니, 이제는 어떻게 하여도, 이 행복은 나의 소유라고, 착각을 합니다.
내가 왕이 되었으니, 이제는 어떻게 하여도, 무조건~ 계속하여~ 행복할 것이라고, 착각을 합니다.
그래서 사울왕은 행복을 전혀 관리할 생각을 하지 않고, 불행의 길로, 겁없이 걸어가기 시작 하였습니다.
자 그렇다면 행복한 사울왕이 행한, 불행의 일들을.. 어떤 것이 있었습니까?
오늘 본문 9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다윗이 사울에게 이르되 보소서 다윗이 왕을 해하려 한다고 하는 사람들의 말을 왕은 어찌하여 들으시나이까”
사울왕은 집착하였습니다. “다윗은 않된다, 다윗을 죽여야 한다.”
왜? 다윗이 않되는 것인지,
왜? 다윗을 죽여야 하는 것인지....이유가 분명하지 않습니다. 사울왕은 나쁜 집착에, 골몰하였습니다.
사울왕은 처음에는 다윗을 시샘하는 것으로 시작 하였습니다.
다윗이 골리앗을 넘어 뜨릴 때, 사람들이 노래를 합니다. “사울이 죽인자는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 이로다.” 이 말을 들을 때, 사울왕은 시샘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시샘이 곧 미움이 되고, 미움이 집착이 되고, 집착은 사울왕의 생활을, 온~통 엉망으로, 혼란스럽게 만들어 버립니다.
사울왕은 그때부터 다윗을 죽이기 위하여 온갖 방법을 짜냅니다.
자...신하가 잘 하면, 왕은 어떻게 해야 합니까?
신하가 잘 해야, 왕도 잘 되는 것입니다. 신하가 잘 못하면 왕도 힘이 듭니다.
보통 왕이라면, 신하가 일을 잘하도록 하려고, 격려도 하고, 채근도 하고, 상을 줍니다.
다윗이 싸워서 골리앗을 이기면, 다윗의 승리만 아니라 곧 사울왕의 승리입니다.
다윗이 잘하여 나라가 잘 되면, 곧 사울왕이 다스리는 나라가 잘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다윗이 잘 하면, 잘했다고 크게 칭찬하고, 상을 내리고, 좋은 벼슬을 주고, 다른 신하들도 잘 하도록 모범을 삼아야 하지 않겠 습니다.
그런데 사울왕은 잘못된 집착으로, 신하를 시샘하고,
외적을 무찌르는 것이 아니라, 신하를 죽이기 위하여 힘쓰는, 이상한 왕이 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사울왕은 옹졸하고, 속이 좁으며, 너그럽지 못하고, 그릇이 크지 못한 왕이었습니다.
자기를 대신하여 힘쓰는 신하를 시샘하고
무찔러야 할 외적은 무찌르지 않고, 신하를 죽이려고 쫓아다니는
잘못된 길을 가는 왕, 불행의 길을 가는 왕이 되었습니다.
오늘날에도, 너무나 상식 입니다.
집착, 욕심, 왜곡된 관점은....... 버려야 합니다.
대결적 자세, 극단적 자세를 버려야.....그 사람은 성공할수 있습니다.
같이 승리하지 않고, 혼자만 승리하는 길은, 없습니다.
‘모’아니면 ‘도’이고, 한번에 최고로 좋은 선택을 하여, 한방에 때부자가 된다. 이런 방법은 없습니다.
개인도 마찬가지 이고, 나라도 마찬가지 입니다.
2차 세계대전때, 나라들이 승전국과 패전국으로 나누어 집니다.
승전국은 미국, 영국, 프랑스, 패전국 독일, 일본입니다.
그런대 독일무기, 일본무기 들을 보면, 성능이 좋은 무기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독일 일본을 보면, 성능은 좋은데 수량이 적습니다. 비밀무기 몇개로, 한방에 전세를 뒤집으려고 합니다.
미국을 보면, 성능은 떨어지지만 수량이 넉넉 합니다.
그리고 한방에 전세를 뒤집으려고 하지 않고, 모든 분야에 철저하게 대처를 합니다.
결국, 국가의 기본기, 그러니가 산업생산력, 도덕적 윤리적 정통성, 전체적인 보급역량, 등등 기본적이고 전체적인 역량에서 판가름 나면서,
승전국은 승전국이 되고, 패전국은 패전이 되어 집니다.
본문으로 돌아와서, 사울왕은 극단적 자세와, 대결적 자세와, 잘못된 비교의식과 집착과 욕심으로 말미암아...
내 것이었던 행복을, 점점 잃어버리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2. 행복을 관리하였던 다윗입니다.
유머입니다.
어떤 부부가 제주도에 여행을 갔습니다.
저녁을 먹고 제주도의 해변을 걷고 있는데, 남편이 오래된 램프를 발견 하였습니다.
“혹시 오래된 골동품이 아닐까” 남편이 램프를 딱았습니다.
순간 펑~ 하고 요정이 나타났습니다.
“저를 꺼내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소원 한가지를 들어 주겠습니다. 말하세요”
남편이 말합니다. “제주도가 너무 좋습니다. 이 다음에 제가, 맘대로 차를 타고, 올수 있도록 ,목포에서 제주도 까지 다리를 놓아 주세요”
요정이 말합니다.‘ 헐~, 소원이 너무 어렵습니다. 다른걸로 말씀해 주세요“
남편이 말합니다.“그럼, 저는 결혼한 이후로, 집사람의 변덕과 고집 때문에, 하루도 마음 편할 날이 없었습니다. 집사람을 순한 양같은 사람으로 만들어 주세요”
요정이 대답했습니다. “저기 목포까지 다리를 놓는 것이 쉽겠습니다. 4차선 다리로 놓아드릴까요, 8차선 다리를 놓아드릴까요?”
한편, 아내도 오래된 램프를 발견 하였습니다.
“혹시 오래된 골동품이 아닐까?” 아내가 램프를 딱았습니다.
순간 펑~ 하고 요정이 나타났습니다.
“저를 꺼내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소원 한가지를 들어 주겠습니다. 말하세요”
아내가 말합니다. “중동에 평화가 오게 해 주세요.”
요정이 말합니다.“헐~ 중동은, 천년 전 부터 싸우고 있습니다. 너무 어렵습니다. 다른걸로 말씀해 주세요”
아내가 말합니다.“그럼 우리 남편이 다정다감하고 집안일도 잘 도와주고, 요리도 잘하고,
친절하고 섬세하고, 아내의 기념일을 잘 챙기는, 남편으로 만들어 주세요”
요정이 대답했습니다."저기, 중동 평화가 더 쉽겠습니다. 지도를 펴고, 나라를 말씀해 주세요”
사람의 성격이 바뀌는 것은, 쉽지가 않습니다.
하지만 반대로, 그렇기 때문에 조금만 바뀌어도, 그 효과와 영향력을 엄청나다고 할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으로 돌아가서,
다윗은, 사울왕과는 반대로... 행복하지 않는 상황에서 출발하였습니다.
다윗은 신하가 되어서 공을 세웠습니다. 하지만 임금님의 시샘과 누명으로, 쫓겨 다니게 되었습니다.
다윗은 번번이 죽음의 자리에서, 겨우 벗어나, 도망을 첬습니다.
자 이런 다윗..... 행복하다고 할수 있겠습니까?
그런데...이런 다윗의 불행은, 누구 때문입니까?
누가 없어지면, 다윗의 불행은 끝이 나게 되는 것입니까?
대결적 자세, 극단적 자세로 생각하면, 이 모든 불행을 사울왕 한사람 때문이라고, 여길수 있습니다.
사울왕만 없으면, 이런 불행은 끝나고, 사울왕만 없어지면 행복이 찾아올 것이라고, 여길수 있습니다.
하지만, 무엇 때문에 내가 불행하다는 극단적 자세.
무엇만 해결되면, 내가 행복해 진다는 대결적 자세는, 잘못된 생각이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만
다윗은 이 유혹에 빠지지 않았습니다.
오늘 본문 4절에 보면, 다윗이 하루는 도망을 다니다가, 굴에 숨게 되었습니다.
하필이면 사울왕이 그 굴에 들어와서, 낮잠을 자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다윗을 충동질 합니다. “사울왕 때문에 불행하게 살고 있는데, 사울왕이 제발로 걸어와서 잠을 자고 있습니다. 기회이니가 사울왕을 죽이 십시요”
하지만 다윗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기름부어 왕이 된, 사울왕을 내가 찌를수 없다. 이는 하나님이 금하시는 것이다.”
다윗은 사울왕의 옷자락을 칼로 배는 것 만으로도, 마음 찔려... 합니다.
다윗은 극단적 자세, 대결적 자세의 함정에 빠지지 않았습니다.
더 나가서, 하나님을 바라 보았습니다.
“내가 이렇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것은 아닌가? ”
“하나님께서 기뻐하시지 않는 일을 하는 것은 아닌가?”
믿음의 판단 할줄 알았습니다.
자 이렇게, 극단적 자세, 대결적 자세를 버리고, 하나님을 바라보며 판단하는 다윗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사울왕을 죽일수 있는 아까운 기회를 놓친 것입니까? 아닙니다.
자기의 행복을 관리하고,
하나님이 금하시는 것을 하지 않으며, 하나님을 바라볼줄 알때에
하나님께서 인정하시고,
사람들에게도 덕스러운 사람으로, 존경을 받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오늘 본문, 17절을 보겠습니다.
“다윗에게 이르되, 나는 너를 학대하되, 너는 나를 선대하니, 너는 나보다 의롭도다”
또 20절을 보겠습니다.
“보라, 나는 네가 반드시 왕이 될 것을 알고, 이스라엘 나라가, 네 손에 견고히, 설 것을 아노니”
사울왕이 스스로 다윗을 높이고, 다윗을 인정하여, 다윗이 왕이 될 것이라고,,,,, 덕담과 칭찬을 받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다윗은 행복을 관리해 나갈 때,
불행은 점점 사라지고, 행복은 점점 많아져서
결국에는, 사울왕 대신, 이스라엘에 왕이 되는, 큰 행복을 내것으로 만들게 되었습니다.
결론을 맺습니다.
행복은 관리하지 않으면 별질되어, 불행으로 바뀝니다.
지금 행복하다고, 하나님을 살피지 않았고,
한번 행복하게 되었다고, 극단적 자세, 대결적 자세로 옹졸하게 일관할 때...
사울왕은 행복을 잃어버리게 되었습니다.
반대로, 다윗은 하나님을 살피고, 너그러움, 큰 그릇, 덕스러움으로 살아갈 때,
큰 행복의 주인공으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자 김포상도교회 성도들은, 나에게 있는 행복을, 믿음으로 잘 관리하여,
큰 행복의 주인공으로 살아가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