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을 쫓아가야 하나 누가복음 23장 38절 56절
2008.02.16 15:18:25 조회4464
누가복음 23장 38절 56절 무엇을 쫓아가야 하나
그의 위에 이는 유대인의 왕이라 쓴 패가 있더라 달린 행악자 중 하나는 비방하여 이르되 네가 그리스도가 아니냐 너와 우리를 구원하라 하되 하나는 그 사람을 꾸짖어 이르되 네가 동일한 정죄를 받고서도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아니하느냐 우리는 우리가 행한 일에 상당한 보응을 받는 것이니 이에 당연하거니와 이 사람이 행한 것은 옳지 않은 것이 없느니라 하고
이르되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기억하소서 하니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시니라 때가 제육시쯤 되어 해가 빛을 잃고 온 땅에 어둠이 임하여 제구시까지 계속하며 성소의 휘장이 한가운데가 찢어지더라
예수께서 큰 소리로 불러 이르시되 아버지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 하고 이 말씀을 하신 후 숨지시니라 백부장이 그 된 일을 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이르되 이 사람은 정녕 의인이었도다 하고 이를 구경하러 모인 무리도 그 된 일을 보고 다 가슴을 치며 돌아가고 예수를 아는 자들과 갈릴리로부터 따라온 여자들도 다 멀리 서서 이 일을 보니라
공회 의원으로 선하고 의로운 요셉이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그들의 결의와 행사에 찬성하지 아니한 자라) 그는 유대인의 동네 아리마대 사람이요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는 자라
그가 빌라도에게 가서 예수의 시체를 달라 하여 이를 내려 세마포로 싸고 아직 사람을 장사한 일이 없는 바위에 판 무덤에 넣어 두니 이 날은 준비일이요 안식일이 거의 되었더라
갈릴리에서 예수와 함께 온 여자들이 뒤를 따라 그 무덤과 그의 시체를 어떻게 두었는지를 보고 돌아가 향품과 향유를 준비하더라 계명을 따라 안식일에 쉬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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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아버지를 무척이나 빼 닮았다고 말을 듣는 한 아이가
어느 날 갑자기 아버지가 원망스러워지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어떤 아이들은, 부유한 집에 태어나, 놀기만 하면서도, 잘 산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아버지에게 마구 따졌다고 합니다.
\"아버지는 왜 재벌이 아니세요.
아버지가 재벌이었으면, 저는, 재벌 2세가 되서 고생안하고 편안히,
잘 먹고 잘 살았을 거 아니예요!\"
그말을 듣고, 아버지가 조용히 아들에게 말했다고 합니다.
\"이 놈아~ 그러는 너는, 왜 박지성으로 안 태어났냐?\"
우리사회에는 건강한 희생을 감당하려는 생각보다는, 원망이 너무나 쉽게 나오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러다 보니, “예산과 인원이 부족하다, 관련법이 미비하다...”는 식의 수사적 표현이
유행하는 것을 흔히 보게 됩니다.
오늘 말씀에는 두가지 사람이 나오고 있습니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하는 사람’과 ‘예수님이 좋아하는 것을 하는 사람’이 되겠습니다.
좀더 정리하자면,
‘나의 의를 쫓아가는 사람’과 ‘예수님의 의를 쫓아가는 사람’이 되겠습니다.
사순절이 되어서, 나를 위하여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을 바라보며,
두사람의 두가지 의를 통하여, 그리스도인의 의는 무엇이 되어야 할지 살펴 보려고 합니다.
1. 나의 의를 쫓아가는 사람들이 되겠습니다.
39절 40절 말씀이 됩니다.
“달린 행악자 중 하나는 비방하여 이르되 네가 그리스도가 아니냐 너와 우리를 구원하라 하되 하나는 그 사람을 꾸짖어 이르되 네가 동일한 정죄를 받고서도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아니하느냐 “
그리스도인은 예수님을 따라가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지신 십자가를 나도 지고 따라가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에 보면, 예수님 옆에서, 예수님과 같이 십자가를 지게 된 사람이 있습니다.
얼마나 영광스러운 일입니다.
예수님과 함께, 바로 옆에서 예수님과 같이 십자가를 졌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은 입에서는 감사의 말과, 기도가 나온것이 아니라, 듣기에도 거북한, 원망과, 불평이 쏟아져 나오고 있었습니다.
예수님, 왜 그렇게 가만히 계십니까?
십자가가 힘겨우십니까?
예수님은 예수님이시잖아요.
예수님, 한번 나를 구해 보시지요..
왜 십자가에서 가만히 계세요...
이 사람은 행악자 였습니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하면서 살아왔던 사람입니다.
상대편 생각은 조금도 하지 않습니다.
상대편 물건이라도, 내가 좋으면 뺏앗아 버립니다.
뺏앗을때도 상대편 생각은 하지 않습니다. 상대편이 다치던, 죽던 생각하지 않고,
도둑질 하고 강도가 되어서, 상대편을 죽이기 까지 하면서 뺏앗아 버렸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사람들을 발견하게 됩니다.
상대방은 조금도 배려하지 않습니다.
말도 막하고, 행동도 막하고....
이런 사람 한사람이 있으면, 그 주위에 사람들이, 이 사람 한사람 때문에, 다 상처 받습니다.
자 그런데 이런 사람들이 하는 말이 있습니다. “나는 뒷끝은 없어....”
자기 뒤끝이 없으면 뭐합니까? 다른 사람들은 이미 상처 다 받았는데...
자 이렇게 남들 배려하지 않고, 내 맘대로, 내가 중심이 되어 살아가면, 얼마나 즐겁겠습니까?
그런데 오늘보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심지어는 죽기 전까지,...같이 죽는판에...
죽어가면서 까지, 원망과 불평을 하였다고 하는 것입니다.
나의 의를 쫓아가는 사람들에게는 특징이 있습니다.
감사와 기쁨이 없이 불평과 원망이 가득하다고 하는 것입니다.
지난 주간 우리는 모두 깜짝 놀랐습니다.
600년이나 지나면서, 심지어는 임진왜란, 6,26전쟁도 잘 견뎌왔던 남대문이, 완전히 불타서,한줌의 잿더미가 되고 말았습니다.
남대문을 잿더미로 만든 사람은 60대 후반의 할아버지였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보니까, 이 할아버지는 자기 의로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다른 사람들보다가도, 4배나 더 많은 보상을 해달라고 때를 쓰다가, 안되니까, 화가난다고 하면서 창경궁에 불을 놓았습니다.
그러다가 집행유예를 받고, 벌금을 물게 되니까? 그것이 더욱 분하다고 하면서,
결국에는 남대문을 불살라 버리고 말았습니다.
이분의 인터뷰 말씀이 참 재미있습니다.
“인명피해는 하나도 없었습니다. 또 문화재는 복원하면 됩니다.”
자기에 의가 얼마나 분명한지 모릅니다.
자기는 불을 질러도 안전하게 잘 질렀는데, 왜들 그르느냐 고 반문하는 것 같습니다.
멸망길에서도 예수님을 향하여 원망하던, 십자가의 행악자.....
그리스도인들은 ‘자기 의의 길’을 버려야 합니다.
예수님 저에게는, 왜 이것을 않주십니까?
예수님, 왜 빨리 주시지 않으십니까?
혹시 기도할 때, 이런 기도는 드리지 않으십니까?
자기의에 얽매여 드리는 기도입니다.
자기 좋아하는 대로 신앙생활 하는 그리스도인들도 있습니다.
예배드리고 싶으면 드리고,
말씀읽고 싶으면 읽고,
기도하고 싶으면 하고,
헌금하고 싶으면 하고....
자기의에 얽매여 있는 신앙입니다.
그런데 분명한 것은 자기의의 사로잡혀 있으면, 불평과 원망의 열매외에는 달릴 열매가 없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번 사순절 동안, 특별히 버려야 할것이 있다면, 자기의를 버려야 합니다.
2. 예수님의 의를 쫓아가는 사람들입니다.
40절에서 43절 말씀입니다.
“하나는 그 사람을 꾸짖어 이르되 네가 동일한 정죄를 받고서도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아니하느냐? 우리는 우리가 행한 일에 상당한 보응을 받는 것이니 이에 당연하거니와 이 사람이 행한 것은 옳지 않은 것이 없느니라 하고 이르되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기억하소서 하니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시니라 ”
결론적으로 예수님의 의를 쫓아가는 사람은, 멸망길에 빠져도, 구원 받더라고 하는 것입니다.
자 마지막 몇시간 되면, 죽게 되는데도, 마지막 까지 자기는 잘났고,
예수님을 향하여 불평과 원망을 쏟아내는 친구 강도를 향하여, 말합니다.
“우리가 당하는 것은 당연한 일인데, 그렇게 함부로 말하다니.....그러고도 네가 하나님이 두렵지 않느냐? ”
예수님의 의를 쫓아가는 사람은, 예수님을 생각할 줄 아는 사람입니다.
사람들이 예수님을 생각할줄 모릅니다.
심지어는 예수님이 없는것 처럼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제가 어떤 아주머니를 전도하였습니다. “예수님을 믿으세요...”
그러자 이 아주머니 말씀이 걸작입니다. “예수님이, 내 소원 들어주면, 교회 나가는 것을, 고려해 보겠습니다.”
얼마나 예수님 앞에 당당한지.... 자 그렇게 당당하니까? 어떻게 예수님 앞에서 소원을 이룰수 있겠습니까?
한 여인이 있었습니다. 예수님 내 딸을 좀 고쳐 주십시오...
언제 봤다고, 얼마나 친하다고, 죽을병이 들린 딸을, 예수님 보고 고쳐 달라고 하는 것입니까?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나는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 외에는, 다른 데로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노라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하지 아니하니라 “
그럴때 여인이 가만히 듣더니 눈물을 훔치며 대답합니다.
“네 맞습니다. 하지만,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얻어 먹지 않습니까? 저에게는 부스러기 은혜라도 족하오니, 부스러기 은혜라도 내려 주시옵소서”
자기의를 쫓아가는 사람들은 당당한 반면,
예수님의 의를 쫓아가는 사람들은, 예수님 앞에 겸손하게 되는 특징이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나아만이라고 하는 장군이 있었습니다.
군권, 행정권, 그저 권력이란 권력은 다 쥐고 있었습니다만, 이 사람에게는 한가지, 문제가 있었습니다. 바로 문둥병이 걸렸다고 하는 것입니다.
문둥병이 걸려서, 죽게 되었는데, 아무리 권력이 있으면 뭐합니까?
좋다는 의원은 다 만나봅니다. 할수있는 일은 다 해 봅니다. 하지만 백약이 무효입니다.
그런데 마침 몸종이 있었습니다.
장군님, 이스라엘의 엘리사 선지자에게 찾아가시면 낫게 되실 겁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에 찾아 갔는데, 오두막에 사는 엘리사는 만나주지도 않습니다.
그러면서 한 어린아이가 나오더니, 말씀을 전합니다.
저기 요단강에 가서 일곱 번 목욕을 하십시오...
나아만 장군이 화가 났습니다.
아니, 내가 누군데...나와 보지도 않고... 어디 목욕할 때가 없어서, 여기까지 찾아온줄 아는가? 길길이 화를 냅니다.
그럴때, 몸종이 말합니다.
“장군님... 고정합시오... 선지가가 당신보고, 더 큰일을 행하라고 말해더라도,
낫기만 하면, 행하지 아니하였겠습니까? 하물며 일곱번 목욕하라는 것을 가지고 화를 내십니까?“
나아만 장군이 깜짝 놀라서, 깨닫고, 화를 누루고, 요단강에 가서, 일곱 번 목욕을 하는데, 마지막 일곱째 물속에 들어갔다 나오는데 보니, 온 몸이 아기살결처럼 깨끗하게 되었습니다.
나아만이 거기서 엎드려 져서, 무릎꿇고 그제서야 살아계신, 하나님을 깨닫고, 하나님만 섬기기로 맹세를 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이번 사순절 기간동안, 초대교회 성도들처럼, 40일 금식기도가 아닙니다.
40일 철야기도도 아닙니다.
40일 동안, 매일 기도하자고 하고 있습니다.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사순절을 그냥 보내지 마시기 바랍니다.
옆에 계신 예수님을 보고, 다른편 강도는 그냥 보내지 않았습니다.
침묵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께 간구하였습니다.
“예수님 예수님...예수님께서 하늘나라 가실 때, 죄많지만 나를 기억해 주십시오..”
그럴때, 예수님께서, 조용히 말씀하십니다.
“네가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예수님의 의를 쫓아가는 사람은, 목소리가 크지 않습니다.
그저 눈물이 나서, 그저 목이 메어서...
예수님 많은 것을 바라지 않습니다. 이번 사순절 끝날 때, 은혜받게 하여 주시옵소서..
자 그렇게 40일 동안 기도할 때, 십자가 지시던 날, 십자가의 사랑을 받게 될줄로 믿습니다.
부활절날 아침에, 부활의 큰 소망을 얻게 될줄 로 믿습니다.
이번 부활절날,
큰 능력과 이적을 보여 주시고, 내가 부자가 되게 해주시면, 예수님 믿는거 한번, 고려해 보겠습니다..
자 이런 자기의의는 멸망길의 원망인줄 아시고 돌아보지도 마시기 바랍니다.
하루 하루, 정성스럽게, 중보기도표에, 동그라미 처가면서, 기도할 때,
예수님께서는 부스러기 은혜가 아니라,
간구하는 것을 들어주시고,
그 근원적인 부분까지 깨끗하게 낫게 하시는 은혜가 있게 될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3. 예수님이 기뻐하시는 것을 하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55절 56절 말씀입니다.
“갈릴리에서 예수와 함께 온 여자들이 뒤를 따라 그 무덤과 그의 시체를 어떻게 두었는지를 보고 돌아가 향품과 향유를 준비하더라 계명을 따라 안식일에 쉬더라 ”
마지막으로 여자분들이 말씀에 등장합니다.
이 여자들은, 자기 입장이 아니라, 예수님 입장에서,
예수님께서는 이미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죽으신 예수님이 필요하 실것을 준비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실 때,
너무 채찍을 맞으시고,
가시 면류관을 쓰시고, 온몸이 상하며 죽으셨습니다.
그래서, 보통사람보다가도, 시체가, 더 상해 있을텐데,
그러니까 죽으신 예수님의 몸에는, 향유가 필요할꺼야....
그러고는 향유를 준비하였다고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 입장에서, 예수님이 필요로 하는 것을 준비할줄 아는 믿음은,
예수님을 쫓는 의의 결정판이라 하겠습니다.
이번 사순절 예수님이 바라고 계시는 것을 해 드려야지...
예수님이 우리교회에 필요하신 것이 있다면 내가 해 드려야지...
예수님의 마음의 마음을 가지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예수님의 손길이 되었던, 이 여자분들,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다음날 새벽에, 예수님의 상하신 몸에 발라 드리려고,
향유를 가지고, 무덤에 찾아갔을때,
세분 여자들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처음 만나는, 부활의 첫 증이 되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사단이 오늘날 성도들을 얽어매는 사슬은, 쇄사슬이 아닙니다.
바쁘다고 맘 조급하게 만드는 생활에 사슬입니다.
마음을 복잡하게 만들고, 예수님을 생각하지 못하게 하는, 근심의 사슬입니다.,
그래서 바쁘고 조급함의 사슬로, 근심과 걱정의 사슬을
성도들을 얽어 맵니다.
바뻐서 기도도 못하게 만들려고 우리를 꽁꽁 얽어매려고 합니다.
근심스러운 것 때문에, 말씀을 못읽게 만들려고 합니다.
그런데 기도는 시간이 남을때 드리는 것이 기도가 아닙니다.
근심걱적이 없고, 여유가 있어, 짜투리 시간으로 드라이브 와서 드리는 것이 예배가 아닙니다.
바쁘기 때문에, 더 시간을 내어서, 주님의 전을 찾는 것입니다.
근심스러운 것이 있기 때문에, 더 기도하는 것입니다.
빠듯하지만, 구별하여 드릴때에, 정성이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사순절을 보낼때,
이번 부활절에 예수님의 은혜를 체험하는,
은혜의 증인이, 응답의 증인, 예수그리스도의 증인이 되어 지는 것입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무엇을 쫓아 살아가시겠습니까?
바쁜 세상 스케줄을 쫓아 살아가시겠습니까?
자기 의를 쫓아서 살아 가시겠습니까?
아닙니다.
예수님의 의를 쫓아 살아가야 합니다.
예수님의 기뻐하시는 일을 이루며 살아가는,
예수님을 따라가는 삶을 살아아 되겠습니다.
이번 사순절 기간동안, 이러한 삶을 살아서,
부활의 증인,
은혜의 증인
복음의 증인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