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후서 3장 4절 9절 그리스도인의 만족
우리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향하여 이같은 확신이 있으니
우리가 무슨 일이든지 우리에게서 난 것 같이 스스로 만족할 것이 아니니 우리의 만족은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나느니라
그가 또한 우리를 새 언약의 일꾼 되기에 만족하게 하셨으니 율법 조문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영으로 함이니 율법 조문은 죽이는 것이요 영은 살리는 것이니라
돌에 써서 새긴 죽게 하는 율법 조문의 직분도 영광이 있어 이스라엘 자손들은 모세의 얼굴의 없어질 영광 때문에도 그 얼굴을 주목하지 못하였거든
하물며 영의 직분은 더욱 영광이 있지 아니하겠느냐
정죄의 직분도 영광이 있은즉 의의 직분은 영광이 더욱 넘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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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9월달 셋째주일입니다. 이번 주간은 ‘추석’이 있기도 합니다.
그래서, 오늘은 “그리스도인은 예수님께서 주신 직분으로 말미암아, 만족함이 풍성해져야 한다.” 는 주제로 말씀을 전하려고 합니다.
1. 고린도교회 성도들은 만족함이 부족하였습니다.
오늘 본문, 4절 5절을 보겠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향하여 이같은 확신이 있으니
우리가 무슨 일이든지 우리에게서 난 것 같이 스스로 만족할 것이 아니니 우리의 만족은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나느니라”
고린도교회는 ‘고린도’라는 도시에 세워진 교회입니다.
‘고린도’ 도시에 대하여 설명을 드리자면, ‘고린도’는 글로벌, 첨단, 교역 도시였습니다.
지리적으로는, ‘레기온’이라는 항구가 옆에 있었습니다. 또한 그리스의 남북을 연결하는 교통의 중심지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동쪽과 서쪽, 그러니까 로마와 아시아를 연결하는 교통의 중심지 입니다.
그러니까 당연히 상업과 교역이 발달하고, 동서양, 남북쪽의 각종 신문물이 교류를 합니다.
그래서 당시에 60만이 넘는 큰~ 인구를 품은, 대단한 도시였다고 합니다.
자고 일어나면, 새로운 ‘지식과 소식’이 들려 옵니다.
고개만 돌리면, 새로운 ‘물건과 제품’이 들어 옵니다.
자~ 그러니까 당연히 ‘욕심’이 생기지 않을수 없는 도시가, 고린도였습니다.
“좀더 새로운 지식과 소식을 들었으면 좋겠습니다.~”
“좀더 새로운 물건과 제품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이런 욕심이--좋은자극이 되면, 발전과 성장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하지만 조금만 방향이다르게 되면, 당연히 역효과가 나타날수 밖에 없게 되는 것입니다.
“앞집은, 새로운 소식을 기록한 책을, 많이~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뒷집은, 새로운 물건과 제품을 많이~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자~ 이렇게 방향이 바뀌게 되면 이야기가, 조금~ 달리지게 되지요?
“우리집 보다, 새 책을 더 많이 가지고 있네요~ 이런책은 어디서 구하셨습니까?”
“우리집 보다가, 새물건을 더 많이 가지고 있네요. 이런 물은건 어디서 구하셨어요?..우리도 좀 더 알아볼껄... 아까워라~ 아까워라~”
욕심이 비교하게 만들고, 비교할때 속상함이 찾아오고, 속상함은 원망과 분노로 발전하게 되고.... 고린도교회 성도들은 고린도시에 가득한~ 세상의 것을 바라보며,
내가 가지지 못하고, 다른 사람이 가지고 있는 것들을 바라볼때에, 믿음생활하면서도~ 불만족속에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그럴 때, 오늘 사도바울은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권면합니다. 5절 입니다. “우리가 무슨 일이든지 우리에게서 난 것 같이 스스로 만족할 것이 아니니, 우리의 만족은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나느니라”
만족은 한문으로는, ‘찰만’,‘뿌리족’입니다. 직역으로 풀어보면 뿌리까지 가득차다.는 뜻이 아니겠습니까?
한글사전으로는 ‘마음에 흡족함. 모자람이 없이 충분하고 넉넉함.’이라고 합니다.
전도서 5:10 에는 말씀합니다.
“은을 사랑하는 자는 은으로 만족하지 못하고 풍요를 사랑하는 자는 소득으로 만족하지 아니하나니 이것도 헛되도다”
사람에게서 난 것으로 인하여, 만족함이 되는것은 없습니다.
은을 사랑하면, 은으로 만족하지 못합니다.
풍요를 사랑하면 소득으로 만족하지 못합니다.
세계 최고의 ‘주식투자가’ 라고 하면, 오늘날 현재는, 미국에 ‘워렌 퍼핏’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의 제산은 ‘원화’로 계산하면, 121조 9천 7백 억원이라고 합니다.
그러면 ‘워렌버빗’은 만족하는가? 아닙니다. 올해 나이가 9십 한살 인데...아직도 더 모우기 위하여, 주식투자 한다고 여념이 없다고 합니다.
자기손으로 자기의 돈을 다~ 세어보기는 했겠겠습니까? 올해가 91살인데, 앞으로 얼마나 더 세상에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만, 나중에 예수님 앞에 가면, ‘저는 방금전까지, 주식투자 하다가 왔습니다. 제 재산이 121조 9천 7백 억원인데...예수님 그걸 세상에 두고 왔습니다. 너무너무 아까운데...어떻게 방법이 없을까요?” 혹시 그러지 않을까?싶습니다.
사람에게서 난 것은 그 무엇이라도 그것 인하여, 만족함이 있는 것은 없습니다.
‘고호’라는 화가 너무나 유명하지요. ‘해바라기’, ‘별이 빝나는밤’, ‘귀에 붕대를 감은 자화상’... 유명한 작품이 너무나 많이 있습니다.
그 작품들은 너무너무 유명하여, 값으로는 계산할 수가 없다고들~ 이야기 합니다.
그러면, 이런 그의 작품으로, ‘고호’는 스스로 만족하였는가? 아닙니다.
방금~ 이야기 했습니다.만 그 작품중에 하나인, ‘귀에 붕대를 감은 자화상’... 왜 귀에 붕대를 감았겠습니까?
고호가 그림을 잘 그리 려고, 하다가~, 어느날 너무 감정이 상하여, 자신의 귀를 자신이 잘라 버리고 말았습니다.~
만족하고 싶은 그림을, 나는 왜 그릴수가 없는가? 속상함과 분노가 극에 달할 때, 정신이 이상하게 되어, 자신의 귀를 자신이 자르고, 그 자신의 모습을 그림으로 그렸는데,
오늘날은 그 그림을, 명작으로 쳐주고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잠언 27장 20절 21절에는 말씀합니다.
“스올과 아바돈은 만족함이 없고, 사람의 눈도 만족함이 없느니라
도가니로 은을, 풀무로 금을, 칭찬으로 사람을 단련하느니라“
‘스올’은 무저갱, 하데스 음부, 입니다. ‘아바돈’은 그곳에서 올라온 황충의 우두머리입니다.
요한계시록에 보면 마지막 때에 천사가 일곱나팔을 붑니다. 그때~ 다섯번째 나팔을 천사가 부니까...스올이 열립니다. 무저갱에서 땅을 향하여, 큰~구멍이 나고, 거기서 검은 연기가 올라 옵니다.
마지막 때에 사람들이, 깜짝 놀라서 내려다 보니..그 큰~구멍으로 황충들이 버글버글 하면서, 무저갱에서 지상으로, 올라오기 시작합니다.
황충들은 무시무시하게 생겼습니다. 관을 쓰고, 머리털에 있는데, 이빨은 사자의 이빨입니다. 그런데 꼬리가 있습니다. 그 꼬리 끝에는 독침같이 쏘는 살이 있어, 그 꼬리로 사람을 쏘면, 그 사람은 너무너무 괴로워서, 고통으로 비명을 지릅니다.
그러면 아바돈과 황충이 아무사람이나 막~ 찌르는가? 아닙니다.
계시록 9장 4절 하반절에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오직 이마에, 하나님의 인침을 받지 아니한, 사람들만, 해하라 하시더라”
그렇습니다. 이마에 하나님의 인침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의 표시가 있는 사람은, 황충들이 찌르지못하도록 하셨습니다.
한편 이마에 하나님이 인침이 없고, 반대로 짐승이 표시를 해둔 불신앙의 사람들은, 무저갱에서 올라온 황충들이, 닥치는대로, 날카로운 독침꼬리로 찌릅니다. 그러니까 어떻게 됩니까? 만족함이 없어 집니다.
아바돈의 독침에 찔린 사람은, 아바돈의 독으로 인하여, ‘욕심’이 온 몸에 퍼져서, 절대로~ 만족하지 못하게 됩니다. 그 독으로인하여, 눈으로 보는것 마다, “저것도 내가 가졌으면 좋겠다.~ 또~ 저것도 내가 가졋으면 좋겠다.~” 눈이 욕심으로 가득차게 됩니다. 독의 중독으로 인하여, 감사는 없어지고, 끝없는 불만족으로 갈하게 됩니다.
눈에 보이는 것~, 다른 사람의 가진것, 그저 세상에 모든 것은, 어떻게 든지 내가 가지려고, 빼앗고.. 붙잡아 당기고,...않놓치겠다고 발버둥치고~..그런 욕심에 대환란이 마지막 때에는 펼쳐지게 되더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황충의 독에 찔리지 않도록, 하나님의 인은 이마에 붙혀야 하겠습니다.
레위기에 보면, 제사장들은 이마에 ‘하나님께 성결’이라고 써서 붙이게 하였습니다.
유대인들은 예배드릴 때, 이마에 ‘성경구절’을 넣은 상자를 오늘날도 이마에 끈으로 매게 합니다.
사도바울은 고린도 교회 성도들을 향하여, 무엇이든지 사람에게서 난것으로 만족함을 구하지 않기를 권면 하였습니다. 그러면서, 5절 하반절에 말씀합니다. “우리의 만족은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나느니라”~
2. 그리스도인은 하나님께 받은 것으로 만족함을 삼아야 합니다.
9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정죄의 직분도 영광이 있은즉 의의 직분은 영광이 더욱 넘치리라”
그렇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써... 무엇으로 만족함을 삼아야 하겠습니까?
그리스도인보다가, 먼저 부름을 받았던 유대인들은, 세상의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신 것으로 말미암마-- 만족하며, 살기를 힘썼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율법을 통하여 받은 ‘직분’을 귀하게 여겼습니다. 바리새인, 사두개인, 대제사장...이런 직분을 유대인들은 스스로 귀하게 여겼습니다.
그런데, 세상의 것 보다가 율법의 직분을 귀하게 여기는것까지는 잘 하였지만, 그 율법의 직분으로 하나님을 섬김으로 만족하기 보다는, 그 율법의 직분으로 자기를 자랑할 때 만족함을 얻는, 영적부패가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나는 사마리아 인이 아니라, 자랑스런 ‘유대인’입니다.”
“나는 바리새인 입니다.”
“나는 사두개 인입니다.”
조금 지나자, 자기를 더 높이기 위하여, 남을 낮추기 시작합니다.
“유대인이 최고입니다. 사마리아 인은 열등합니다.”
“바리새 인이 최고입니다. 사두개인이 문제입니다.”
“사두개 인이 최고입니다. 바리새인이 문제입니다.”
그러다가 이제는 나를 최고로 높이기 위하여, 남을 정죄하기 시작 합니다.
“유대인 처럼 율법을 모르다니, 사무리아 인은 ‘죄인’입니다.”
“바리새 인처럼 율법을 지키지 않다니, 사두개인은 ‘죄인’입니다.”
“사두개 인처럼 성전에 예법을 모르다니, 바리새인은 ‘죄인’입니다.”
그러다가 누구를 만나게 되었습니까? 예수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 어떻게, 사무리아 인을 만나시다니...., 예수님은 죄인에 친구입니다.”~
“예수님은 율법을 지키지 않고, 예수님은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합니다. 차라리 우리 바리새인과 사두개인 서로 힘을 합쳐,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읍시다.”~
그래서, 예수님을 배척하며, 정죄하며, 죽이는데,... 친구가 되더라고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거룩한 직분을 주실 때, 그 직분이 나의 자랑이 되고, 그 직분으로 나를 높이고, 그 직분을 자랑함으로 만족을 삼으라고, 직분으로 주신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직분을 주실때는, 그 직분을 가지고 하나님을 섬기며, 그직분대로 봉사하여 하나님께 영광돌리게하시려고, 그 직분을 주셨습니다.
예수님의 뜻대로 우리가 직분을 잘 감당하면, 그 직분으로 나는 하나님께 영광돌리게 될뿐 아니라, 그 직분은 나에게 통로가 됩니다.
하나님의 축복을 받고, 하나님의 능력을 받고, 세상에서 하나님의 뜻대로 ‘만족’하며 살아갈수 있도록 해주시는, ‘통로’가 되는 것입니다.
추석이 되어, 저의 아버지가 오셔서, 눈이 침침하다고 하여, ‘안과병원’에 다녀 왔습니다.
안과병원에 가보니까, 최신 시설이 가득합니다. 최신장비로 각종 검사를 합니다.
검사를 마치고, 한쪽 방으로 갔더니, 안과병원에 ‘내과’ 파트입니다.
노크를 하고 들어 가니까, 의사선생님이, 저의 아버지와 년배가 비슷~해 보입니다.
“어떤 약을 먹고 계십니까?...”
“네~ 이런 약을 먹고 있는데, 손이 좀 떨리는거 같고, 심장이 좀 천천히 뛰는거 같고~, 그렇습니다.”
그 의사 선생님 담담하게 이야기 합니다.
“세상에, 부작용 없는 약은 없습니다.... 약이 효과가 좋으면~, 좀 그래도 괞습니다.”
그렇지요, 두통에 먹는 아스피린, 얼마나 효과가 좋습니까? 하지만 두통에는 효과가 좋은데, 위와 장에는 가끔씩 출혈을 유발하는 부작용이 있다고 합니다.
왜 이 말씀을 드리는가 하면, 만족은 양의 문제가 아니라, 선택의 문제 라고 하는 것입니다.
많이 가지고, 모두 가지면, 만족할 것 같다고, 막연히 생각할때가 있습니다.
또한 지금 나에게 만족이 없는 것은, 부족하기 때문에, 만족이 없다고 생각을 할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여자가 얼굴도 아름답고, 건강하고, 아이도 많이 낳고, 장수하고~ 이 모든 것을, 다 가질수 있습니까?
장수하여~ 90살 할머니가 되면, 아름다움은 내려 놓아야 합니다.
90살이 되는 장수도 갖고, 피부가 탱탱한 아름다움도 갖고?.... 동시에 다~ 가질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내가 하나를 선택 하려면, 나에게서 다른 하나를 꺼내어, 버려야 합니다.
장수를 선택하려면, 젊음과 아름다움은 내려 놓아야 합니다.
이런 사실을 부인하고, 욕심을 발동하여, 하나도 버리지는 않고, 모두~ 집어 넣기만 하려고 할때, 결국 하나도 집어 넣지 못하고...
불만족과 원망을 터트리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누가복음 5:28
“그가 모든 것을 버리고, 일어나 따르니라”
성경을 보면, 예수님의 제자가 되는것은, 버리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부르실 때, 제자들의 반응은 하나같이, 나에게 있는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선택하는 과정이 있었습니다.
베드로와 안드래,. 그리고 야고보와 요한을 ‘그물’을 버리고, 예수님을 ‘선택’하였습니다.
마태와 레위도 ‘세관일’을 버리고 예수님을 선택하였습니다.
다대오와 가나나인 시몬은 자신의 ‘신념’을 버리고, 예수님을 선택하였습니다.
나에게 있는것은 하나도 버리지 않고, 예수님을 선택하고, 축복도 담고, 구원도 그위에 올려 담고, 천국도 담고...그럴수는 없습니다.
오늘 이시간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다른일을 버릴때, 교회에 나오는 것을 선택할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지금이시간 하나님앞에서 거룩한 예배 자리에, 들어와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예수님 앞에 가는 그날까지, 우리는 내속에 있는 것 하나를 꺼내고, 다른것을 담는 것을 계속할수 밖게 없습니다.
하나를 꺼내고, 다른 하나를 담습니다.
하나를 또 꺼내고, 다른 하나를 또~ 담습니다.
그러면서, 어떤 사람은 자기가 좋아하고, 그것이 귀하다고, 착실하게~ 담다보니...
찬송을 담고, 기도를 담고, 예배를 담고, 예순님을 담습니다.
그래서 내 속에는 찬송과 기도와 예배와 예수님으로 충만하게 되었습니다.
반대로 다른 사람사람은 자기가 좋아하고, 그것이 만족이 된다고, 열심히 담다보니...
돈을 담고, 명예를 담고, 세상의 일을 담고, 세상의 좋은 것이 가득하게 되었습니다.
마태복음 16장 26절 27절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과 바꾸겠느냐... 인자가 아버지의 영광으로 그 천사들과 함께 오리니 그 때에 각 사람이 행한 대로 갚으리라”
예수님께서는, 나중에 내가 담은대로, 갚아 주시고마 약속 하셨습니다.
찬송을 담고, 기도를 담고, 예배를 담고, 예수님을 담아서...
내 속에 믿음의 것들로 충만하게 된 사람은, 그 믿음 그대로, 영생을 상속받게 하여주시고, 천국을 상속받게 하여 주십니다.
반대로, 담은 것을 보니, 온 천하에--세상의 값진것은 가득한데, 예수님께서 주신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주신 직분도 없고, 예수님께서 주신 사명도 없고, 헌신, 봉사, 섬김...등등은, 하나도 없습니다.
“나는 세상의 값진것을 가득~ 담아 왔습니다.”그럴 때,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영광과 그의 천사들과 함께 오실 때, “그대로 갚으리라~”는 것이, 예수님의 말씀 이십니다.
그렇습니다.
나는 버리지 못하여, 선택하지 못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더 나가서, 예수님을 선택하여, 나의 속사람은 예수님이 주신 것으로 충만하고 있습니까?
말씀을 정리합니다.
고린도교회 성도들은 세상의 것을 쫓을 때, 만족함이 없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께 받은 것으로, 만족함을 삼아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무어라도 버리지 않으면, 어떤 선택도 담을수가 없습니다.
그리스도인은 한가지를 버리고, 예수님을 선택한 사람입니다.
나의 속사람은, 예수님이 주신것 충만하게 되어, 하나님의 자녀로써 만족하며, 감사하며, ‘구원의 길’을 걸어가는, 김포상도교회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 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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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우리들을 하나님의 자녀 삼아 주시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좋은것을, 담으며 살아갈수 있도록, 하여 주시니 감사를 드립니다.
우리의 인생은 짧아서, 모든 것을 다 선택할수 없는 줄로 아오니,
영원한것을 선택하고, 하나님께 영광돌리는 길을 잘~ 선택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잘했다 칭찬받으며, 천국을 상속받고, 영원한 만족으로 누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하여 주시옵소서.
주중에는 민족의 명절이 있사오니, 움직이는 로중과 일정 가운데 동행하여 주시사...
찬송과 감사와 은혜로 충만한, 명절주간으로 보내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 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