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증 최대형안수집사님
2013.08.26 13:01:39 조회2134
성경말씀 마가복음 8:34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 이니라.\"
태어나서 지금까지 무었을 어떻게 하면서 살아 왔는지 참 한심하고 죄 많은 인생길을 걸어온 것 같습니다.
때로는 아버지를 부인하고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서도 도무지 믿어지지가 않은 어리석은 삶을
이 시간 여러 성도님들 앞에서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우선 저에 대해 간략하게 소개하면 강화도 촌놈이라고 항상 말씀하시던 유인환 안수집사님 큰아버지 말씀대로 강화도 서도면에서 부유한 가정 장손으로 태어나 호의호식 하며 유년기를
잘 살았답니다.
서도면 잘 모르실거에요 강화도 에서도 제일 북쪽에 있는 주문도라고 하는 작은 섬 인데 원춘기 장노님 내외분 빼고는 우리 교인들은 아마도 가보시지 못한 작은 섬이니까요.
할아버지가 어업에 종사하니 당연히 우리 집은 종교가 양분 되 배가 출항하면 풍어제를 지내고 할아버지 외에는 전 식구가 서도면 감리교회에 다니는 괘나 오래된 기독교 집안이 이지요.
우리 가정이 기독교를 믿게 된 것은 다 외가 덕분으로 알고 있는데 큰 외삼촌이 감리교 신학대학을 나오시고 고양인 강화도에서 목회를 하신 덕에 죄악으로 똘똘 뭉친 우리집안이 다행히하나님 앞에 나아 온 것이지요.
저 또한 서도 감리교회에서 유아세례를 받았고 초등학교, 중학교 까지는 그런대로 공부도 잘하고 큰 사건사고 없는 평범한 학생이었는데 고등학교부터는 성적이 점점 떨어져 급기야는 대학 예비고사에 떨어지는 믿지 못할 사건이 벌어지고 덕분에 집안은 저로 인해 개망신 당한거지요. 그때를 돌이켜 보면 외 남 다하는 공부를 안 하고 뭐를 했는지 도무지 생각이 나지를 않고 그저 친구가 좋고 공부보다는 어울림을 더 좋아했던 것 같아요.
재수한다고 종로학원에 등록하니 70% 정도가 공부보다는 다방에 가서 카펜터즈의 에스터데이 원스 모아니 로키마운틴하이 같은 팝송에 빠져 그냥 세월만 죽이다 또 낙방 뭔 행시나 사시도 안이고 두 번씩이나 집안 망신을 시키니 아버님께서 그냥 새문안교회에 있는 장노회 신학대학교 2부신학교에 갈수 있는 길이 있으니 잘 판단해서 결정하라고 하시대요. 아무리 생각해도 타 대학에는 기초실력이 딸려 공부해보았자 3류 대학에나 갈 것 같고 고심 끝에 신학교에 다니게 되었습니다.
2년이나 신학교에서 공부 했으면 철도 좀 나고 마음을 잡을 수 있으련만 그냥 친구 좋고 놀기를 좋아하는 베짱이 근성이 살아있어 아무것도 이룬 것 없이 입영하게 되었어요.
군대 말년휴가 제 인생에 전환점이 된 시기가 바로 그때인 것으로 기억합니다. 박남규 집사님도 잘 아시는 지금에 박제근 목사님 그분이 그 당시에 대한컴퓨터학원 강사로 있을 때 휴가 기간이라 초등학교 동창인 그분을 만나 이야기 중에 우연히 장래에 대해 논 하던 중 너 신학이 적성에 맞느냐 라는 질문에 글쎄 나하고는 신학이 그런 거 같아 그러면 앞으로는 컴퓨터시대니 제대하고 컴퓨터나 배워라 이말 한마디가 신학을 포기하고 컴퓨터로 인생을 바꾸는 사연이 된 거지요.
컴퓨터 교육을 마치고 서울우유에 입사하여 지금에 조복순 집사하고 결혼하여 두 아들을 낳고 별 어려움 없이 생활을 하던 차에 생각지도 않은 한통의 전화가 제 인생행로에 오점을 남기는 시발점이 될지는 상상도 못하면서 만남에 장소로 가보니 친구 예기 왈 PC사업을 하면 이제 막 시작이고 하니 직장생활보다 더 돈이 될 거 같으니 우리 사업하자 본인은 영업을 하고 저는 프로그램을 짜고 하면 환상에 궁합이 될 거다.
말은 정말로 맞는 말인데 뭐가지고 사업을 한단 말인가 고민 끝에 제 사촌 누이한테 들어준 천만원 보험적금을 만기 6개월 남기고 해약해 그 돈이 밑천이 되서 가나씨스템(가나안씨스템)을 설립하게 됩니다.
회사 운영비는 박제근이 본인 퇴직금하고 저금통장하고 총일천이백정도 네 시작은 미약 하였으나 나중에 창대하리라 그 말 거짓말 이야 라고 말하고 싶지만 문구를 좀 수정하면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열심히 노력하고 근검 절략하면 분명히 성공하리라 이 내용 으로 주님이 주신말씀이라 이제야 생각하는 아둔한 놈 이지요.
노력 없이 하늘에서 우리에게 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삼척동자도 다 아는 사실을 모르고 자신감과 우월감으로 무장된 비천한 우리에게 주님이 주실 것은 서로가 더 이상 상처주지 말고 헤어져 각자의 길을 가라고 명령 하신거지요.
지금은 목사님으로 열심히 주님에 길을 가르치는 목화자의 신분상 이시간은 저의 간증시간이니 헤어지게 된 내용은 말씀 들이기가 좀 거북하니 이해해 주십시오.
이후부터 사랑하는 나의 아내 조복순 집사에 길고도 어려운 생활이 시작됩니다. 저는 박제근 목사하고 헤어져 친구가 운영하는 ㈜한국알토스 대표이사로 부임하며 그 회사를 인수하고 중앙일보 보급소 400개 호텔 10여개를 오픈하면 회사는 서서히 자리를 잡아 가고 나름대로 사업영역도 화장해 나갈 때 쯤 김영삼 대통령의 국내 빠징코 업체 허가를 내 주지안고 기존에 사업장도 허가 만료 시 면허를 반납하는 사건이 터지며 개발 중이던 올림픽공원 옆 모 호텔이 부도가 나 어음으로 받은 계약금은 물론 잔금까지 못 받은 상태에서 활인해 쓴 어음일자가 닥쳐오니 직원들에게 줄 월급으로 처리해도 반에 반도 못되고 집을 담보로 서울우유에서 삼천만원을 대출하여 간신히 어음은 막았으나 설상가상으로 부산에 있는 남태평양호텔도 부도가나 회사는 더욱더 어렵게 됩니다.
이 상황 에서도 아버지께 매달려 기도하자 라는 생각보다도 난 할 수 있다. 미친 생각 이지요 아직도 막아야 할 돈은 산더미 같고 도와줄 사람은 없는데 뭘 가지고 해보나 하지만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고 하지요 동해 관광호텔에서 전화가 온 거에요 저는 한걸음에 달려 내려가 동해썬비치 관광호텔 계약을 하고 급한 돈은 처리했지만 빙산에 일각이 이런 건가 실감하게 되었지요.
사람이 급하면 썩은 새끼줄이라도 잡는다고 원장노님도 잘 아시는 동해 국빈장호텔을 부도가 날줄 뻔히 알면서도 계약서에 도장을 찍는 제 인생에 최고의 악 수를 두고 말았습니다.
참 으로 한심하고 못난 놈 이지요 이미 날 부도가 안 나면 더 이상 한 거지 요행수나 바라고 있었으니 당연히 한심한 놈 이지요.
이후부터는 더 이상 생각할 여유도, 자신감도 없고 마지막으로 할 수 있는 건 기구를 축소하자 마음먹고 사무실을 정리하고 책상 둘만 들어가는 깔세 사무실로 이전해 심기일전 다시 시작하자 다시 시작 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직원의 변심 중앙일보에서 200군데 보급소를 증설한다고 희소식이 왔지만 제일 믿고 의지하고 같이 회사를 이끌던 직원의 배신으로 시흥 삼성컴퓨터로 모든 계약일체가 넘어가 버리고 말았어요.
들어보시면 삼류 영화 시나리오 같은데 사실 제 인생이 삼류영화 시나리오 한편 이지요. 그래도 주변 지인 들 에게는 좀 인심을 얻었는지 부산에 있는 하수령 사장이 형님 이왕 그리 된 거 돈 걱정하지 말고 부산에 내려와 호텔 프로그램이나 다시 만들어 재기해 보라고 하더군요.
신용보증기금 삼천만원 이 돈으로 다시 일어나라고 하는 하사장 마음은 고마운데 삼천만원 가지고는 호텔 씨스템을 만들기에 턱 없이 부족한 금액 그래도 해보자 숙소를 호텔에서 찜질방으로 옴 기고 고생고생 개발을 끝내고 영업을 시작하니 우리가 개발한 프로그램이 특급호텔을 모델로 개발하여 작은 호텔에서는 활용을 할 수 없어 줄이고 줄여 온양제일호텔 외 5개 호텔에 인스톨하여 재기 할 수 있었으나 남에 말을 너무 잘 듣는 병이 도져 타일 가게를 영종도에 하면 신도시 개발 중이니 노후 걱정은 안 해도 된다는 말에 친구 돈 삼천만원을 빌려 제이름 같이 대형 사고를 치고 말았지요.
여기서 얻은 교훈 송충이는 솔 입을 먹어야 산다. 당연히 망하지요 외 안 망해요 타일 타자도 모르고 거래처 생소 하고 지인들은 다 호텔 맨 이구 아무리 발버둥 처도 망할 넘은 망하더군요.
그러던 중 어느 날 원장노님께서 우리교회 좀 나오지 그 전에 김상선 목사님 계실 때 두세번 원장노님 권유로 와 보았으나 제 마음에 문이 열리지 않아 발길을 멀리 했었는데 반산반의 하며 그러지 뭐 다음 주부터 나기지 아직까지 저를 교회로 인도한 사람은 원춘기 장노님 뿐 그 누구도 저에게 교회에 가자 한 사람은 없었습니다.
탕자가 아버지를 찾아 돌아 온 것처럼 이 죄인도 아버지 전에 돌아 왔습니다. 제가 원춘기 장노님 보다는 부모님들 덕분에 좀 빠를지 모르지만 이 죄인에게 다시 아버지를 찾게 해준 이는
분명 합니다.
이 시간을 빌어 감사에 말씀을 드립니다.
이후 저에 인생은 변화되기 시작 합니다 주일날 9시까지 자던 습관이 어느 날 부터인가 7시면 잠이 깨지기 시작하고 주일날 약속은 어떤 핑계를 대서든지 피하고 주일은 꼭 지켜야 한다는 마음이 들더군요.
아마도 이것이 아버지께서 저에게 주시는 첫 번째 은혜인 것 같아요. 아버지께서 그리 말리고 때리고 채 칙질 했건만 변하지 않던 제 마음이 버릴 것 다 버려 더 이상 버릴 것이 없으니 가여운 생각이 나셨는지 저에게 오라고 하시더군요.
제가 김윤곤 집사님 소개로 주유소에서 알바 할 때 저는 제자신이 이상 했어요 최대형 너 참이상하다 이일을 네가 할 수 있을까 챙피하고 쪽팔리는데 할 수 있어 아직까지 너 사장이야 그러다가 아는 사람이라도 만나면 어떻게 하려고 정말 하겠다고는 했지만 사실 첫 날 뭘 했는지 생각도 안나고 이러게 하루 이틀 지나다보니 제 마음에 변화가 오기 시작했고 챙피하기보다는 고생하는 동료들 생각도 하게 되고 주변 의식도 덜하고 근데 올 것이 오고 말았어요 초등학교 동창이 거래처 납품 같다 주유소로 기름 넣으러 온 거에요 한참을 처다 보던 친구가 너 대형이 안이냐 그때 처음 마음 같으면 아 사람을 잘못 보셧네요 라고 말 했을 텐데 어 너 봉길이 안이냐 너무 오래 간만에 만난 고향친구하고 쓴 커피 한잔마시며 고향소식을 주고받고 하며 내 마음속에 아 주님이 함께 하시는구나 그래서 내마음속 창피함 소문에 두려움 다 날려 주시고 은혜로 감싸 주시는구나 더욱 감사한 것은 주유소를 그만두고 사출공장으로 출근할 때 10년 만에 소식이 끈긴 이종사촌 형님을 식당에서 만난거에요. 이런 일은 그냥 일어날 수가 없는 확률에 문젠데 제 어려움을 살펴주시고 그래 이제 고생 할 만큼 했으면 믿음 좋은 장노형하고 재미있게 살아보라고 제 앞에 형님을 보내 주신 줄 믿고 감사할 따름 임니다.
이제 욕심도 이기심도 다 던져버리고 오직 주님만 의지하고 살 수 있기를 아버지께 기도합니다. 제게 평안함을 주시고 맘에 여유도 주시고 참 삶이 뭔지를 일깨워주시니 뭐라고 감사해야 하는지 너무 마음이 평안해 때론 잠시 스쳐 지나가는 바람이 안일까 불안 할 때도 있지만 항상 내 맘 속에 계신 주님을 찬양하며 순종하며 살길을 원합니다.
학자요, 정치가요, 목사요,
주한 미국대사(1993-1997)였던
제임스 레이니는 임기를 마치고 귀국하여 에모리대학의 교수가 되었다.
건강을 위해서 매일 걸어서 출퇴근하던 어느 날, 쓸쓸하게 혼자 앉아 있는 노인을 만났다.
레이니 교수는 노인에게 다가가 다정하게 인사를 나누고 말벗이 되어 주었다.
그 후 그는 시간이 날 때마다 외로워 보이는 노인을 찾아가 잔디를 깎아주거나 커피를 함께
마시면서 2년여 동안 교제를 나누었다.
그러던 어느 날 출근길에서 노인을 만나지 못하자 그는 노인의 집을 방문하였고
노인이 전날 돌아가셨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곧바로 장례식 장을 찾아 조문하면서 노인이 바로 <코카콜라 회장>을 지낸 분임을
알고는 깜짝 놀랐다.
그때 한 유족이 \"회장님께서 당신에게 남긴 유서가 있습니다.\"
라며 봉투를 건넸다.
유서의 내용을 보고 그는 너무나 놀랐다.
\"2년여 동안 내 집 앞을 지나면서 나의 말벗이 되어 주고, 우리 집 뜰의 잔디도
함께 깎아 주며, 커피도 나누어 마셨던 나의 친구 레이니! 고마웠어요.
나는 당신에게 25억 달러와 코카콜라 주식 5%를 유산으로 남깁니다.\"
너무 뜻밖의 유산을 받은 레이니교수!
그는
1. 전 세계적인 부자가 그렇게 검소하게 살았다는 것과
2. 자신이 코카콜라 회장이었음에도 자신의 신분을
밝히지 않았다는 것
3. 아무런 연고도 없는 사람에게
잠시 친절을 베풀었다는 이유만으로
그렇게 큰돈을 주었다는 사실에 놀랐다.
레이니교수는 받은 유산을
에모리대학 발전기금으로 내놓았다. 제임스 레이니가
노인에게 베푼 따뜻한 마음으로 엄청난 부가
굴러 들어왔지만, 그는 그 부에 도취되어
정신을 잃지 않았다.
오히려 그 부를 학생과 학교를 위한 발전기금으로
내놓았을 때, 그에게는 에모리대학의 총장이라는
명예가 주어졌다.
이처럼 아름답고 훌륭한 두 분에 마음씨가 우리 모두에게 있다면 시기와 지투는 이 세상에서 없어 질 텐데 진정으로 자신을 부인하고 자기 십자기를 지고 아버지를 따르는 그런 분들이 안일까 생각 합니다. 우리 모두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가며 선한 싸움을 하는 그런 성도들이 되었으면 합니다.
고집과 불순종한 죄인을 김포 상도교회로 인도해주시니 감사하고 저를 위해 기도해주시는 목사님 3분 장노님 이하 전교인들 감사합니다.
사랑하는 조복순 집사님 그동안 고생이 우리의 믿음에 반석이 될 수 있게 기도하며 의지하며 베풀며 행복 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