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26장 22절 29절 나와 같이 되기를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아 내가 오늘까지 서서 높고 낮은 사람 앞에서 증언하는 것은 선지자들과 모세가 반드시 되리라고 말한 것밖에 없으니
곧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으실 것과 죽은 자 가운데서 먼저 다시 살아나사 이스라엘과 이방인들에게 빛을 전하시리라 함이니이다 하니라
바울이 이같이 변명하매 베스도가 크게 소리 내어 이르되 바울아 네가 미쳤도다 네 많은 학문이 너를 미치게 한다 하니
바울이 이르되 베스도 각하여 내가 미친 것이 아니요 참되고 온전한 말을 하나이다
왕께서는 이 일을 아시기로 내가 왕께 담대히 말하노니 이 일에 하나라도 아시지 못함이 없는 줄 믿나이다 이 일은 한쪽 구석에서 행한 것이 아니니이다
아그립바 왕이여 선지자를 믿으시나이까 믿으시는 줄 아나이다
아그립바가 바울에게 이르되 네가 적은 말로 나를 권하여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려 하는도다
바울이 이르되 말이 적으나 많으나 당신뿐만 아니라 오늘 내 말을 듣는 모든 사람도 다 이렇게 결박된 것 외에는 나와 같이 되기를 하나님께 원하나이다 하니라
------
오늘은 ‘맥추감사주일’로 지킵니다.
봄이 지나고 여름에 들어가면서, 들에 보리가 익어, 그 보리로 양식을 삼고, 하반기를 살아가듯...
그리스도인들은 한해의 반을 돌아보며 감사하고, 다시 새마음으로 하반기를 위하여 출발하면서, 맥추절을 지킵니다.
출애굽기 34:22 라고 말씀합니다.
“칠칠절 곧 맥추의 초실절을 지키고 세말에는 수장절을 지키라”
또, 출애굽기 23:16 에는
“맥추절을 지키라 이는 네가 수고하여 밭에 뿌린 것의 첫 열매를 거둠이니라 수장절을 지키라 이는 네가 수고하여 이룬 것을 연말에 밭에서부터 거두어 저장함이니라”
맥추절을 맞이하여, 오늘 말씀의 제목은 ‘나와 같이 되기를’ 이 되겠습니다.
사도바울은 ‘나와 같이 되기를 하나님께 원하나이다.’라고 베스도 총독과 아그립바 왕을 향하여 우렁찬 목소리로 대답하였습니다.
자, 나는 주위의 사람들에게--사장님, 직원분, 아저씨, 아주머니, “지금, ‘나와 같이 되기를 원합니다.’ 라고 우렁찬 목소리로, 이야기 할때가 있습니까?
1. 사도바울은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아 내가 오늘까지 서게 되었다고 감사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 22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아 내가 오늘까지 서서 높고 낮은 사람 앞에서 증언하는 것은 선지자들과 모세가 반드시 되리라고 말한 것밖에 없으니”
사도바울은 방금읽은 22절에서, 짧게 지금까지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소회’를 밝히고 있습니다.
소회 라는 말은 한문으로, 바소, 품을 회, 한글사전으로는 ‘음에 품고 있는 회포’가 되겠습니다.
그렇다면, 사도바울은 왜 소회를 밝히고 있는 것입니까?
배경을 말씀드리자면, 사도바울은 이방인들에게 열심히 예수님을 전하였습니다. 이방인들에게 예수님을 전하는 일이 어찌, 순탄하고 편안 하였겠습니까? 가는 곳 마다, 박해와 배척과 핍박이 심~ 하였습니다.
하지만, 에베소 교회, 데살리로니가 교회, 고린도 교회가 개쳑되어 세워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모 교회인 예루살렘 교회게 가뭄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 옵니다.
그래서 급히 예루살렘 교회를 돕고 싶어서 예루살렘으로 돌아 옵니다.
그랬더니, 유대인들이 이미, 사도바울을 향하여 대단한 적의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사도바울은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한다고 합니다. 어떻게 이방인에게 함부로 성경을 가르칠수 있습니까? "
또~ "사도바울은 이방인에게 성경을 전하면서 예수님을 메시야라고 가르치고 있다고 합니다. 예수님을 전하는 것을 어떻게든 막아야 합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이 소동을 일으켜, 사도바울은 옥게 갖히게 되었습니다.
오늘 말씀은, 옥에 갖힌 사도바울은 재판을 받는 장면이 되겠습니다.
자~ 재판장은 두명이 나왔습니다. 베스도 총독과, 아그립바 분봉왕이 되겠습니다.
베스도 총독을 로마인입니다. 로마황제의 신임을 받아서 총독으로 왔습니다.
최고의 권력자요, 최고의 엘리트요, 로마에서 성공한 사람이 되겠습니다.
아그립바 분봉왕은 헤롯왕의 손자입니다. 유대의 왕입니다. 오늘날로 본다면, 금수저요, 태어날때부 터 행운이 가득하여, 부귀와 영화를 맘대로 누리는, 최고의 행운아가 아닐수 없습니다.
그런데 죄수로 끌려나온, 사도바울은 어떠합니까? 신분자체가 처량합니다. 죄수입니다. 죄명은 전도하였다.~ 예수님을 전하였다~는 것입니다.
재판관의 자리에 앉은 베스도 총독과, 아그립바 왕은, 죄수로 끌려나온 사도바울을 향하여, 어떻게 잡혀셔 끌려 나왔는지, 설명 하라고 합니다.
그럴 때 사도바울이 22절 상반절 대답합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아 내가 오늘까지 서서”
그렇습니다. 사도바울은 담담하게 ‘하나님의 도움심을 받아~, 내가 오늘까지 서 있다“고 대답하였습니다.
예수님을 전하다가 잡히고, 죄수가 되어, 재판을 받기 위하여 서 있는 자신을~ 사도바울은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아, 내가 오늘까지 서 있다” 고 소개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람은 스스로 평가를 할때가 있습니다.
나를 소개하고, 내가 걸어온 길을 소개할 때가 있습니다.
자~ 만약, 올해 상반기 동안, 내가 걸어온 길을 소개한다면, 어떻게 소개 하시겠습니까?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아, 상반기를 잘 보내고, 내가 오늘 서 있습니다.”라고 소개를 하실수 있으시겠습니까?
또, 총독과 왕이 아니라, 현재에 사장님과, 높은 고위 공직자를 만날 때, 나를 어떻게 소개 하시겠습니까?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아, 오늘 내가 안수집사님, 권사님, 장로님으로 봉사하고 있습니다.” 라고 사도바울처럼 당당하고 자랑스럽게 소개하실수 있으시겠습니까?
자~ 본문으로 돌아가서, 사도바울은 목소리를 높혀서 당당하게 소개를 하였습니다. “나는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아, 내가 오늘까지 서서, 예수님을 전하였습니다.”~
그랬더니, 아니나 다를까? 베스도 총독이 크게 소리를 칩니다.
24절 하반절에 말씀합니다. “베스도가 크게 소리 내어, 이르되 바울아 네가 미쳤도다. 네 많은 학문이, 너를 미치게 한다 하니”
베스도 총독은 사도바울의 당당한 소개를 듣자 말자, 냉소적이 반응이 아니라, 크게 소리를 내어, 면박을 줍니다.
“바울아 네가 미쳤도다”~
오늘날도 비슷한 반응을 종종 마딱뜨릴때가 있습니다.
예수님에 대하여 증거를 하면, 나쁜 말로 면박을 주고, 목소리를 높이는 사람들을 만날때가 있습니다.
어떤 그리스도인들은 이런 상황을 당하면, 크게 위축이 되고 오히려 고개를 끄덕뜩끄덕 합니다.
“그래 이사람 말 대로 내가 미쳤어~. 이사람이 맞고, 다음부터는 이사람 말대로, 예수님에 대하여 절대로 증거하지 말아야 겠다.~”
자~ 오늘 본문에 사도바울은 베스도의 이 면박에 어떻게, 반응을 하고 있습니까?
25절에 말씀합니다. “바울이 이르되 베스도 각하여 내가 미친 것이 아니요 참되고 온전한 말을 하나이다”
그러면서 이번에는 옆에 앉아있는 아그립바 왕에게 사도바울은 다시 예수님에 대하여 증거를 하기 시작 합니다.
그러니까 아그립바 왕은 어떻게 대답합니까? 28절에 말씀합니다. “아그립바가 바울에게 이르되 네가 적은 말로 나를 권하여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려 하는도다”
아그립바 왕은, 냉소적으로 대답합니다. “작은 말로 나를 권하여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려고, 이런 말을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
사도바울은 담대하고 중요한 대답을 합니다. “오늘 내 말을 듣는 모든 사람도 다 이렇게 결박된 것 외에는, ‘나와 같이 되기를’ 하나님께 원하나이다”
지금, 나는 ‘베스트 인생’의 인생을 살아가고 있습니까?
지금이 최고로 복된 인생이요. 이번 상반기를 이렇게 생활하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 드립니다.~ 라고, 감사하며, 우렁차게 사도바울처럼 증거하고 있습니까?
더욱이 다른 사람을 만날 때에도, “나와 같이 되기를 바랍니다.” 라고, 믿음의 증인으로 살아가고 있으 십니까?
성경을 보면, 사도바울은 평소에도 변함없이 대답~하였습니다.
고린도전서 11:1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가 된 것 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
고린도전서 4:16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권하노니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
사도바울이 개척한 교회들이 있는 소아시아에, 사도바울 500년 전에는, ‘리디아’라고 하는 나라가 있었습니다.
그때 리디아의 왕은 ‘크로이소스’왕이었습니다.
크로이소스 왕은 다른 사람에게 항상~ 자신을 자랑하였습니다.
크로이소스 왕은, 먼저 자신의 돈을 자랑하였습니다. ‘나처럼 세상에서 돈 많은 왕은 없습니다.’
그 다음은 자식을 자랑하였습니다. ‘나처럼 자식을 잘 둔 왕은 없습니다.’
그래서 크로이소스 왕은, 항상 자신의 부귀 영화와 자식을 자랑을 하였습니다.
어느날 솔론이라는 철학자가 지나가면서 한마디 합니다.
“사람은 끝에 가봐야. 알수 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곧 크로이소스 왕이 자랑하던 자식들은 이런일 저런일로 사고가 나고 문제가 생기게 되었습니다. 크로이소스 왕은 반대가 되어, 자식 때문에 골머리를 앓는 사람으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또, 곧 옆 나라와 전쟁을 벌이다가 져서, 탈~탈~ 털리게 되었습니다. 그 많던 부귀영화-재물은 다~ 빼앗기고, 밧줄에 꽁꽁 묶여서, 화형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크로이소스 왕은 속상하기도 하고, 어리섞은 자신에게 화가 나기도 하여, 우렁차게 외쳤습니다. “솔론, 솔론, 솔론”
화형장에서 지켜보던 옆나라 왕이 묻습니다. “아니~ 죽기 전에 왜 사람이름은 부르시오?”
크로이소스 왕이 대답합니다. “죽으려고 보니까...그 동안 경솔하게, 돈과 재물과 자식을 세상사람들에게 자랑했던 나 자신이 부끄럽고 속상하여, 그 사실을 지적하였던 철학자의 이름을 불러 보았습니다.~”
화형장에서 지켜보던, 옆나라 왕이 대답합니다.
“저 사람을 풀어주고, 그 땅을 다시 돌려 주고, 저 왕을, 평생 나의 친구로..... 삼기로 하겠오”
그래서, 크로이소스 왕은 풀려나서, 키루스 왕의 평생친구가 되어, 겸손하게~ 살게 되었습니다.
이 키루스 왕이, 성경에 나오는 바로 그, 고레스 왕이 되겠습니다.
이사야 40:8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히 서리라 하라”
세상에서 자랑하는 자랑꺼리는 금방 사라지게 됩니다.
변덕이 심하고, 오히려 자랑꺼리가 근심꺼리로 바뀌게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오늘 말씀에 사도바울은 재판장에서, 총독과 아그립바 왕에게 바로 그 사실을 지적하고 있는 것입니다.
총독이 언제까지 총독이며, 왕이 언제 까지 왕이겠습니까?
역사적으로 보면, 베스도 총독은 이 재판 후에, 암살을 당하여, 죽게 됩니다.
또한 아그랍바 왕은 예루살렘 성전이 돌하나 돌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지고, 예루살렘 성이 철저하게 무너지는, 직접 두 눈으로 보게 되는, 유대 최후의, 망국의 군주가 되어, 내어~쫓기게 됩니다.
그러나 사도바울은, 예수님을 증거하고, 초대교회를 많이~ 개척하고, 성령님의 인도하심으로 신약성경에 저자로 이름을 올리고...
복음의 사명자로 이름을 높이게 됩니다.
오늘날 열이면, 백이면 백 사람에게.....베스토 총독처럼 되고 싶으냐? 아그립바 왕 처럼 되고 싶으냐? 라고 물으면,
누가 베스총독 처럼 되고 싶고, 아그립바 왕을 본받고 싶다고 할 사람이 있겠습니까?
시편 127:1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깨어 있음이 헛되도다
그렇습니다. 상반기를 돌아보면서, 하나님께서 나의 인생과, 사업과, 우리 가정을 세워주시지 않으면, 않되는 줄로...
그 동안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아 내가 오늘까지 걸어오고 서게 된것 다~ 은혜입니다. 감사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사도바울을 처럼, 우렁찬 목소리로 세상을 향하여, ‘감사의 증거’를 하여야 되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2. 그리스도인은 감사 중심적 믿음이 되어야 합니다.
찬송가 390장은 ‘예수가 거느리시네’~ 2절 가사는 이렇게 시작합니다. “때때로 괴롬 당하고 때때 기븜누리네”~ “풍파 중에 지키시고 평안히 인도하시네”
가만히 보면, 좋은일 ‘하나’ 있으면, 꼭 않좋은 일, 하나 끼여 있습니다.
그래서 색깔로 본다면, 알록달록 합니다. 좋은일, 않좋은일, 기쁜일, 속상한일~ 우리의 삶을 펼쳐놓고 본다면, 각각의 일들이 알록달록 합니다.
그런데 좋은일에 감사하며 살아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나쁜일에 얽매여 살아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그 알록달록한 삶의 무늬들 가운데, 좋은일, 기쁜일을 보면서 감사합니다. 하나님이 동행하여 주셨고, 하나님이 인도하여 주셨습니다.
그런데 똑같은 알록달록한 삶의 무늬들 가운데, 않좋은 일, 속상한 일만, 집중하여서 보면서, 원망하고~ 후회하고~ 절망하고~ 분노 합니다.
자~나는 어떤 편에 있는것 같습니까? 좋은일 중심적 입니까? 나쁜일 중심적 입니까?
평소에는 잡동사니가 뒤섞여 있어도, 자석이 지나가면 쇠 성분이 있는 것은, 달라 붙듯이
평소에는 가만히 있어도, 좋은일 생기면 감사하며 찬송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또 좋은 일 주셨네, 즐거워하고~ 찬송하고~ 은혜속에 살아갑니다.
얼굴이 환~하고, 미소가 가득하고~ 주위 사람들에게 좋은 영향을 끼치고~ 은혜가 충만하게 살아갑니다.
반대로, 평소에 가만히 있다가 나쁜일이 하나라도 생기면, 기다렸다는듯이 나쁜일 중심으로 살기 시작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왜 나쁜일이 그동안 않생겼는가? 했는데, 거보세요. 그럴줄 알았습니다.
그러면서, 그 나쁜일 정리될 때 까지, 세상에 모든 것을 그 나쁜일 중심으로, 살아갑니다.
얼굴은 침울하고~, 주름살은 더 늘어나고~, 주위 사람들이 그 사람을 멀리하고~, 항상 탓~ 하고, 항상 껄~ 하며, 증오와 후회와 어두움으로 살아갑니다.
오늘 본문에, 사도바울은 어떤 중심~ 입니까? 복음을 전하다가, 핍박을 받고, 옥에 갖혀 재판을 받지만, 오히려 총독에게 당당하게 “나와 같이 되기를 원합니다.” 대답을 합니다.
또한 왕에게도 당당하게 “나와 같이 되기를 원합니다.”
즉, 사도바울은 감사 중심적 사람, 복음 중심적 사람이었습니다.
그럴 때, 총독과 아그립바 왕은 사도바울을 향하여, 겉으로는 나쁜말로 댓구를 합니다. 하지만 일어서서 물러가며 이렇게 대화 합니다.
31절 하반절입니다. “서로 말하되 이 사람은 사형이나 결박을 당할 만한 행위가 없다 하더라”
32절에 말합니다. “이르되 이 사람이 만일 가이사에게 상소하지 아니하였더라면 석방될 수 있을 뻔하였다 하니라”
즉 오히려, 사도바울의 무죄함을 이야기하고, 사도바울의 무죄함을 동정하는 사람으로 바뀌게 되더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감사 중심적 사람, 복음중심적 사람은, 주위 사람을 나의 사람으로 바꾸게 됩니다.
감사중심적 사람, 복음중심적 사람은, 주위 사람이 나를 이해하고, 나를 동정하며, 나의 편이 되도록, 바꾸게 됩니다.
더 나가서, 하나님께서도 감사중심적 사람, 복음 중심적 사람의 편이 되어 주시고, 감사중심적 사람, 복음중심적 사람에게 좋은 것을 더하여 주십니다.
시편 50:23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의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
말씀을 정리합니다.
사도바울은 옥에 갖혀서 총독과 아그립바 왕에게, 두 사람이 지금 나와 같이 되기를 원한다고. 우렁차게 감사의 증거를 하였습니다.
그증거를 받은 두 사람은, 바울사도가 무죄하며, 석방되어야 되 사람이라고, 동정하고 바뀌게 되었습니다.
헤이함과 나태함이 아니라--조급함과 원망함이 아니라,
감사 중심적, 복음 중심적--새마음으로 출발하여, 하반기에 큰 결실을 이루는
김포상도교회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 원 합니다.
==============
하나님, 맥추감사주일을 맞이하여 감사와 찬양과 영광을 올려 드립니다.
상반기 매일매일 동행하여 주시고, 은혜와 능력으로 인도하여 주시니 감사~ 합니다.
들에 보리가 익어, 그 보리를 양식으로 삼고, 새롭게 힘을 내어, 올해에 큰 결실을 향하여 달려 가듯이,
우리 김포상도교회 성도들은, 맥추감사주일을 변환점으로 하여, 다시 믿음에 큰 힘을 내어,
올 한해 목표한것을 다~ 이루는, 큰 결실의 한해가 되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 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