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9장 51절 62절 성령님과 동행
예수께서 승천하실 기약이 차가매 예루살렘을 향하여 올라가기로 굳게 결심하시고
사자들을 앞서 보내시매 그들이 가서 예수를 위하여 준비하려고 사마리아인의 한 마을에 들어갔더니, 예수께서 예루살렘을 향하여 가시기 때문에 그들이 받아들이지 아니 하는지라
제자 야고보와 요한이 이를 보고 이르되 주여 우리가 불을 명하여 하늘로부터 내려 저들을 멸하라 하기를 원하시나이까
예수께서 돌아보시며 꾸짖으시고 함께 다른 마을로 가시니라
길 가실 때에 어떤 사람이 여짜오되 어디로 가시든지 나는 따르리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집이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도다 하시고
또 다른 사람에게 나를 따르라 하시니 그가 이르되 나로 먼저 가서 내 아버지를 장사하게 허락하옵소서, 이르시되 죽은 자들로 자기의 죽은 자들을 장사하게 하고 너는 가서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라 하시고
또 다른 사람이 이르되 주여 내가 주를 따르겠나이다마는 나로 먼저 내 가족을 작별하게 허락하소서, 예수께서 이르시되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하지 아니하니라 하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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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달을 시작합니다. 6월달은 ‘성령으로 평안하게 되는 달’이 주제입니다.
‘성령강림절’을 보내었습니다. 이제는 우리가 성령님을 만나고, 성령님께 순종하여, 성령님의 인도하심 속에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성령님의 인도하심 속에 살아가면, 평안합니다. 형통합니다.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 지는 사람이 됩니다.
그래서, 오늘은, “어떻게 성령님을 따름으로 평안함과 은혜의 삶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느냐?에 대하여 말씀을 전하려고 합니다.
1. 성령님을 따르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62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하지 아니하니라 하시니라”
요즈음 우리 시대를 대표하는 가장 중요한 주제어는 당연히 ‘코로나’입니다.
이제는 코로나 백신을 맞으신분도 계시고, 곧 맞으실 분도 계십니다만, 코로나는 얼마나 영향이 대단하였는지 모릅니다. 2년동안 전세계가 처음으로, ‘셧다운’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전세게 나라들의 모두~ 똑같습니다. 코로나 확진자가 늘어난다 싶으면, 상가가~ 문을 닫고, 식당도~ 문을 닫고, 학교도~ 문을 닫고, 모든 것이 문을 닫습니다.
그러다 보니, 사람들은 자의 반, 타의 반, 집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게 됩니다.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처음에는 계획을 세우기도 합니다. 그동안 못본 책을 보아야지~ 그 동안 못한 집안 대청소를 해야지.....
하지만 코로나 뉴스를 보아서 그런지, 마음이 싱숭생숭 합니다. 계획한 대로 알차게, 책을 보고, 집안 청소를 하는 경우는... 잘~ 없습니다.
코로나 전에는 시간을 쪼개어, 운동을 하고, 공부를 하고, 청소를 하였는데,
지금는 여유시간은 더 있지만, 그 시간을, 코로나 전보다, 오히려 더 못쓰는 경우가 많습니다.
코로나 탓을 하다가 나중이 되어-- 후회하는 사람이 직면하는, ‘코로나 후회의 삼각지’가 있다고 합니다.
그때 운동할껄, 그때 열심히 할껄, 그때 공부할껄…
오늘 본문으로 돌아와서, 이러한 타성과 후회의 현상은 그리스도인에게도 나타나는 경우가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하지 아니하니라”
오늘 본문 51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승천하실 기약이 다가오는 것을 아시고, 예루살렘을 향하여 올라가기로 하십니다.
“이제는 공생애를 마무리 하고, 예루살렘에 가서, 십자가를 져야 되겠구나.~”
그런데 예루살렘에 가서 십자가를 지는 것이 얼마나, 마음에 부담이 되고, 근심이 될 수 밖에 없는지..... 51절 하반절에는 ‘굳게 결심하시고’~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보통, 중요한 일, 큰~ 일을 앞두게 되면, 그 일만 중요시 여기고, 다른일에는 집중도가 떨어지는 경우가 발생할 때가 있습니다.
우리도 코로나 때문에 다른일은 손에 잡히지 않아서, 힘들어 하는 분들을, 종종 보게 됩니다.
“지금, 코로나로 온 세상이 망하느냐? 마느냐? 하고 있는데, 이까짓 독서, 집안청소, 이까짓 운동... 코로나 다~ 해결되면, 그때 하겠습니다.”
그러면서, 평소에 하던 운동도 미루고~, 평소에 하던 자기관리도 미루다가...코로나 보다도,
몸무게와 살이 ‘홖~찐자’가 많이 생긴다고 하지요.
그런데 오늘 본문을 보니까... 예수님은 반대 이 십니다. 오히려, 변함없이, 공생애의 모든 일에, 소홀함이 없으십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향하여 예루살렘으로 가시면서도~ 끊임없이 말씀 전하십니다.
59절 상반절에는 말씀합니다. “또 다른 사람에게, 나를 따르라 하시니”~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어떻게든지 한 영혼이라도 더 구원하시려고, 끊임없이 만나는 사람마다, “나를 따르라~, 나를 따르라~” 부르시며, 예루살렘을 향하여 걸어 가셨던 것입니다.
십자가를 향하여 가시면서, 끊임없이 ‘나를 따르라’ 말씀 하신 예수님,
오늘 내가 그 예수님을 만난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오늘 본문에는, 십자가를 향하여 가시면서, 끊임없이 ‘나를 따르라’ 말씀 하시는, 예수님을 만난 사람들에 대하여 기록하고 있습니다.
먼저 52절에는 ‘사마리아인의 한 마을’이 나옵니다.
제자들이 먼저 가서 그 마을에 알립니다. “예수님께서 이 마을을 통과하여, 예루살렘을 향하여 가시려고 하십니다.”
그랬더니 반응 대단합니다. “우리 마을에는, 절대로 예수님께서 들어오시면 않되겠습니다.”~
모든 마을사람들이 통째로, 예수님을 배척하는 마을이 있었습니다.
일치 단결이 되어도, 너무 잘 됩니다. 어떻게 예수님을 배척하는데, 마을 사람들 전체가 일치단결이 될 수, 있는 것입니까?
그럴 때 제자들이 분통이 납니다. 야고보와 요한이 목소리를 높힙니다.
“예수님, 허락만 하시면, 우리 두 형제가 지금 열심히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하늘로부터, 불을 저 마을에 떨어뜨려, 저 마을이 멸망하도록 기도 하겠습니다.
성자 예수님, 부디 성부 하나님께 그렇게 기도 드리라고, 명령하여 주십시요.”
그럴 때 예수님께서 조용히 꾸짖으시며, 다른 마을을 통과하여, 예루살렘을 향하여 가기로 하십니다.
자~ 이번에는, 세 사람이 예수님을 만나서 ‘나를 따르라’는 말씀을 듣게 됩니다.
다행히, 세 사람은 적극적으로 예수님을 배척하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핑계를 대면서 예수님을 따르지 않는 것은 똑~같았습니다.
‘나를 따르라’는 말씀을 들을 때, 한 사람이 대답 합니다. 59절 하반절에 말씀합니다. “그가 이르되, 나로 먼저 가서 내 아버지를 장사하게 허락 하옵소서”
예수님께서는 대답 하십니다. 60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이르시되 죽은 자들로 자기의 죽은 자들을 장사하게 하고, 너는 가서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라 하시고”
장례가 났다고, 지금 당장은 따르지 못하겠다는 말을 들을 때, 예수님께서 그사람의 마음 속을, 왜 모르시겠습니까?
예수님을 따르는 것은, 생명을 얻고 영생을 얻고자 따르려 하는 것인데, 이사람은 죽은자의 장례 때문에 예수님을 지금 당장 따르지 못하겠다고 대답을 하는 것입니다.
그럴 때, 예수님게서는 “죽은 자들로, 자기의 죽은 자들을, 장사하게 하라”고 말씀 하십니다.
즉 ‘생명’을 얻고, ‘영생’을 얻으려면, 생명이 있고, 영생이 있는 자와 만나고 함께하며~,
죽은자를 장사하는 일은 생명과 영생이 없는자들로 하게 하라~..고 알아듣기 쉽게 설명하여 주십니다.
그러면서, 더하여 말씀 하십니다. “너는 가서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라 하시고”
즉, 너는 나를 따르지 않으려고 하니, 그러면 가서 나중에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기라도 하라! ~
자~ 그런데 과연, 예수님을 따르지 않는 이 사람이, 돌아가서 예수님을 따르지는 않으면서, 하나님 나라를 전파 하는데 열심을 내었겠습니까?
곰곰이 생각해 보건데, 예수님을 따르지 못하겠다고 하는 사람이, 하나님 나라는 열심히 전파 하였을까? 쾌션 마크를 부칠수 밖게 없다고 하는 것입니다.
후회는 먼 미래에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지금부터 시작되는 사건 입니다.
지금 후회 하는 사람은, 나중에도 후회를 하게 도비니다.
코로나 중이라고 미루고, 후회하는 사람은, 코로나 끝나도 미루고, 후회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후회하는 사람은 특징이 있다고 합니다.
후회하는 사람은, 행운과 기회를 만나지 못하였기 때문에, 후회하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 기회가 있고, 할수 있는데도, 절대로 지금은 않한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손만 뻗고, 결심만 하면 할수 있는데, 어떻게든 차일피일 미루면서 않하다가, 나중에는 스스로가 만든 결과로 인하여, 스스로 후회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사람은, 예수님을 못 만난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그 사람을 향하여 분명히 ‘나를 따르라’고 말씀하여 주셨습니다. 하지만 스스로 핑계하며, 예수님 따르기를 미루다가, 예수님을 놓치고 떠나보낸 사람이 되었습니다.
우리가 전도를 해 보면, 예수님을 배척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핑계를 대는 사람을 만날때가 있습니다.
“나중에, 교회에 나가겠습니다.”
“나중에, 예수님 잘 믿고, 천국 가겠습니다.”
지금 예수님을 따르지 않는 사람이, 나중에~ 장례식 하기 직전에, 마음을 잡고, 그때는 예수님을 잘~믿고, 잘~따르게 되는가?, 쾌션마크를 부칠수 밖게 없다고 하는 것입니다.
현실을 대면하지 않고--예수님의 부름을 회피하면, --> 회피하고, 선택을 미룬것은, 다음에 선택할 기회를 남겨두는 것이 아닙니다.
그 사람은 그 때-- 회피한 선택을 한 것입니다.
또한 그때 회피한 선택을 통하여, 그 사람은 예수님과 동행하지 않고, 다른 길로 걸어가기를 선택한 것입니다.
요즈음, 중요하게 여기기 시작한 것이, ‘기회 비용’ 이지요.
그 전에는, 시간은 가치가 없고, 지금 않하면 나중에 하면 된다고, 막연하게 여겼였습니다.
하지만 시간도 가치로 변환될수 있다고,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요즈음 얼마나 배달을, 시키는 지 모릅니다.
내가 갔다 왔다 하는, 그 시간이면, 오히려 배달 시키고, 대행 시키는 것이 더, 유익하다.~ 고~ 코로나 때문에,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리스도인은 “바로 지금” 예수님을 따르고, “지금” 성령님의 인도하심에 순종하기를 힘써야 합니다.
나중에 예수님을 따르고,
나중에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기다리면,
예수님은 벌써 예루살렘에 도착하시고,
그때는 성령님의 인도하심이 마무리 되고, 하늘에 징조가 보일때가 --될 수도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6:2는 말씀 합니다.
“이르시되 내가 은혜 베풀 때에 너에게 듣고 구원의 날에 너를 도왔다 하셨으니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
그리스도인은 지금 나를 부르시는 주님의 음성에 응답하는 신앙이 있어야 하겠습니다.
2. 하나님 나라에, 합당한자가 되어야 합니다.
마태복음 14장에는 놀라운 장면이 나옵니다.
마태복음 14장 29절에 말씀합니다.
“오라 하시니 베드로가 배에서 내려 물 위로 걸어서 예수께로 가되”
예수님은 기도하로 산에 올라가십니다. 제자만 배를 타고 반대편 마을로 출발합니다.
그런데 밤이 되어서 바다 한가운데, 풍랑이 일기 시작합니다.
예수님은 물위를 걸어서, 풍랑 이는 제자들의 배를 향하여 걸어 오십니다.
제자들은 풍랑 때문에 힘들어 하다가, 물위를 걸어 오시는 예수님을 발견 합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보고 소리 칩니다. " 주여, 만일 주님이시거든, 나를 명하사 물 위로 오라~ 하소서“
예수님이 즉시 말씀하십니다. “오라”~
그래서, 베드로는 배에서 내려, 물위로 걸어서 예수님께 갑니다.
예수님만 물위를 걸었던 것이 아니라, ‘오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베드로도 배에서 내려 물위를 걷게 되었습니다. 자~, 그 다음은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베드로가 예수님을 향하여 걷기는, 시작하였습니다. 하지만, 바람을 보고 풍랑을 보고 두려워 할때에, 몸이 물에 빠지기 시작 합니다.
예수님은 즉시 손을 내밀을, 베드로를 붙잡으시며 말씀 하십니다. “믿음이 작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
그렇습니다. 베드로는 풍랑을 발로 밟고 걷기 시작하였는데, 곧 바람을 봅니다., 풍랑을 봅니다. 그리고 무서워 할때, 물에 빠지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께서는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하지 아니하니라” 고 말슴 하십니다.
부름을 받았으되,~... 즉 예수님의 부름을 받을 때, 순종하여 출발은 하였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뒤를 돌아보고, 옆을 돌아 봅니다.
그렇게 딴 곳을 바라보는 사람을 향하여 예수님께서는 “하나님 나라에 합당하지 아니하니라”고 말씀 하십니다.
만약, 베드로가 끝까지 예수님만, 바라 보았으면, 계속~ 물위를 걷지 않았을까? 생각해 봅니다.
하지만 물 위를 걷던, 베드로가 풍랑과 바람을 바라보고, 딴 곳을 바라볼 때, 베드로는 물에 빠져서, “주여 나를 구원하소서”~ 다급하게 외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자~ 이와 같은 베드로의 모습은, 종종~ 그리스도인에게도 나타날때가 있습니다.
한동안은 예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며 나갑니다. 그럴때 형통을 경험합니다. 평안과, 응답을 경험합니다.
하지만, 그 후~ 다른곳에, 관심을 돌리고, 발걸음을 돌리기, 시작할 때가 있습니다.
예수님 말씀에 순종하는것을 멈추고, 세상의 것에 솔깃 해~ 합니다.
찬송를 멈추고, 다른 것으로 기쁨을 삼기를 좋아 합니다.
하나님을 향한 기도를 멈추고, 다른 일에 골몰하기 시작합니다.
그러다, 풍랑을 만나게 됩니다. 근심과 어려움의 풍랑에~ 몸이 빠져들어 갑니다.
그럴때 돌아봅니다. 나에게 있던 형통은 어디 갔는가? 나에게 있던 평안과, 응답은 다~어디로 가고, 나는 근심과 어려움의 풍랑에 빠져들어 가는가? 하고, 믿음에 시험이 들었다고 여깁니다.
자~ 예수님 말씀에 순종을 멈추는데, 어떻게 형통이 계속 될 수 있겠습니까?
찬송을 멈추는데, 어떻게 평안이 계속 될 수 있겠습니까?
기도를 멈추는데, 어떻게 응답이 내려올수 있겠습니까?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쟁기는 잡았습니다.” 하지만 하나님 나라에는 합당하지 아니하니라~ 고 말씀 하시는 것입니다.
자~ 우리가...6월 한달 동안, 성령님 안에서 어떻게 평안과 은혜와 형통으로, 보낼수 있는 것입니까?
나중에~ 성령님께 순종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성령님이 인도하시는대로 출발하여야 합니다.
나중으로 미루고~, 다른것을 쫓아서 살아가면, 6월달은 시작하였으되, 성령님 안에서 평안의 달로 보내는데는, 합당한 사람은 되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뒤돌아 보고, 옆돌아 보는 것이 아니라, 오직 말씀에 의지하여 성령님의 인도하심대로 살아가면, 그 길은, 따분하고 답답한 길이 아닙니다.
오히려 찬송으로 기쁨이 가득하고, 말씀으로 지혜와 지성과 인격과 품성이 깊어 지고, 높아지며~
또한 기도할 때 마다, 영적 체험으로 시야가 열리고, 신령한 은혜를 맛보게 하여 주십니다.
그럴 때, 6월 달은, 참으로, 성령님 안에서 보내는, 달이 되게 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말씀을 정리 합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향하여 가시며, ‘나를 따르라’ 고 말씀 하셨습니다.
사마리아 마을은 예수님을 배척하며, 사람들은 여러가지 핑계로 따르지 아니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하지 아니하니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김포상도교회 성도들은, 지금 예수님을 따르고, 또한 예수님만 바라보며 걸어감으로,
하나님 나라에 합당하고, 6월한달은-- 성령님 안에서 -- 보내는, 6월달이 되어 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 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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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6월달을 시작하게 하시니 참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지금, 다시 마음을 새롭게 하여, 예수님을 따르고, 온전히 예수님만 바라보며 걸어 감으로...
우리 김포상도교회 성도님들은, 모두~ 하나님 나라에 합당하고,
6월 한달은, 성령님 안에서 보내는, 평안하고 형통하며, 응답으로 충만한 6월달이 될 수 있도록,
성령님 친히 동행하여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 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