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와 천국 마태복음 18장 1절 5절
2005.05.07 18:41:05 조회5131
마태복음 18장 1절 5절 아이와 천국
마 18:1 그 때에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 가로되 천국에서는 누가 크니이까
마 18:2 예수께서 한 어린 아이를 불러 저희 가운데 세우시고
마 18:3 가라사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돌이켜 어린 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마 18:4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 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그이가 천국에서 큰 자니라
마 18:5 또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 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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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5월, 가정의 달이 시작이 되었습니다.
가정은 하나님께서 먼저 경험하고 맛보게 하시는 천국의 상징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서 가정은, 천국을 맛보는 은혜의 자리가 아니라, 오히려 고민의 자리, 그리고 온갖 사고들이 발생하는 자리가, 되고 말았습니다.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사회에 다른것은 잘못되도라도, 가정만은 잘못되어 져서는 않되는 대상으로, 가정을 바라 보았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가정은 파괴된 것을 전제로 하고, 다시 회복되어야 할 대상으로, 바라 보게 되었습니다.
사회에 있는 많은 집단은 동질집단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학교는 나이가 같은 사람들 끼리 모여서 생활합니다.
직장에서는 관심이 같은 사람들 끼리 모여서 생활합니다.
또 마음에 들지 않으면, 언제든지 탈퇴할수 있는 것이 사회의 대부분의 집단의 특징 입니다.
그러나 가정은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나이가 같은 사람들 끼리 모여있는 곳이 아닙니다. 어린 아이에서, 나이 많은 할아버지 할머니가 같이, 함께 갈아가는 공동체가, 가정입니다.
관심분야가 같은 사람들 끼리 모여있는 곳이 아닙니다. 부모와 자녀는 서로 관심분야가 다르지만, 그러나 같이 살아가는 공동체가 가정입니다.
또 마음에 않든다고 탈퇴할 수 있는 공동체가 아닙니다. 죽을때 까지, 아니 죽고 난 다음에도 엮여져 있는 것이 가정인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가정은 더욱 세밀한 관심과 배려가 있어야 하는 자리라 할 수 있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가정의 한 구성원인 아이를 불러 세우고, 천국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1. 천국은 아이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아이는 가정에서 제일 약자라 하겠습니다.
하지만 천국은 바로, 이 제일 연약한, 아이에게 관심이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세상에서는 연약한 것을, 미완성의 상태로 이해를 합니다. 그래서 강한 것은, 완성된 상태로 이해 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 주님께서는 연약한 것을 미완성의 상태로 보시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사랑받아야할 상태로 보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이는 사랑받아야 할 대상으로 보는 것입니다.
현대 심리학은, 대상심리학을 발전시켰습니다.
대상심리학에서는 아이가, 어릴때 만나는 대상과의 관계를 통하여, 점점 성숙하게 성장하게 된다고 봅니다.
따라서 세상을 얼마나 신뢰하고, 또 얼마나 성숙한 사람이 되느냐, 하는 것은, 전적으로..... 아이가 처음 태어나서 만나게 되는,--- 어머니와 아버지와, 얼마나 인격적 관계를, 잘 맺느냐에 달려 있다고 보는 것입니다.
그런데 현대 사회에는, 우리의 영적 아버지가 되시는 하나님과의, 인격적 관계를, 무의미 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부인하고, 예수님과 인격적 관계 없이, 살아가도 괜찬다고 생각을 합니다. 오히려, 성숙하고, 성공하기 위하여서는 다른것이 필요하다고 까지 생각합니다.
자 그렇게 하나님 없이, 예수님과의 인격적 관계 없이, 살아가는 사회가 어떻게 되었습니까?
선생님 한태, 컨닝하였다고, 야단 맞았다고...뛰어내려 자살하는 시대가 되고 말았습니다.
성공하여, 돈을 많이 가진 그룹 회장님이, 화난다고, 자기 사무실에서 뛰어내리는 시대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과 인격적 관계를 맺지 못하는 사회는, 오히려, 성숙하지 못한 인격, 성숙하지 못한 사회가 되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우리 사회에 사랑과 존중이 어디 있습니까?
상대방이 실수하였다면, 예절 바르게 지적해 주고, 잘못했으면, 양심적으로 고백하는, 성숙한 모습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게 되었습니다.
자 이것이 바로 예수님과의 인격적 만남이 없이 자라난, 우리 사회의, 미성숙한 모습이라 하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4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 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그이가, 천국에서 큰 자니라”
천국과 같은 성숙함의 비밀은, 바로 자기를 낮추는데, 있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먼저 자기를 낮추셨습니다.
그래서 하늘의 영광의 자리를 버리시고, 인간이 되셔서, 인간으로서의 질고를 친히 담당하셨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십자가의 자리에 까지 낮아지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낮아 지셨기 때문에, 죄속에 있는 내가, 예수님을 만날 수 있게 되었고, 그래서 높고 거룩한 천국에 올라 갈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숙함, 인격적 온전함, 거룩함, 은 어떻게 이루어 질수 있겠습니까?
어린아이와 같이 나를 낮추고, 나를 부인하고, 예수님과의 인격적 만남이 있을때, 있게 되어 지는 것입니다.
2. 예수님을 영접하기 위하여서는, 아이를 영접해야 합니다.
요즈음 우리사회를 단적으로 표현 한다면, ‘살기 힘든 시대’라고들 이야기를 합니다.
한번은, 고양이가 쥐를 쫓고 있었다.
그런데 아슬아슬하게, 쥐가 쥐구멍으로 들어가 버렸습니다.
아쉬웠는지...고양이는 쥐구멍 앞에 쪼그려 앉습니다.
그리고 고양이가 갑자기 \"멍멍! 멍멍멍!!\"하고 짖어댔다고 합니다.
\"이게 무슨 소린가?\" 하고
쥐가 궁금하여, 머리를 내미는 순간...
고양이는 쥐를 잡아 버렸습니다.
의기 양양
쥐를 물고 가며
고양이가 이렇게 말 하더랍니다.
\"요즘같은 불경기에 먹고 살려면, 적어도 2개 국어는 해야지요!\"
그렇습니다. 그런데 능력과 함께 맨파워도 중요하게 되고 있습니다.
유명한 사람, 높은 사람을, 많이 알고 있는 것도, 능력이요, 파워로 인정 해 줍니다.
그래서 친구들 가운데, 유명한 사람들이 많으면, 나도, 유명하게, 대접해 주더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후광효과’라고 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사람은 중요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 사람의 가진 것, 그 사람의 주위에 있는 것, 그것이 중요한 시대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오히려 사람은 무시하는 사회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우리 주님께서는 어떻하셨습니까?
내가 가진것은 죄 밖에 없습니다.
내 주위에 있는 것은 악한 것들 밖에는 없습니다.
그래서 내 모습은 결함 투성이요, 미완성의 모습임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서는 오히려 그 속에 있는 나를 사랑해 주셨습니다.
남녀간에는 필링이 와서 사랑 합니다.
부모와 자식간에는 핏줄이 같기 때문에 사랑합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아무 이유도 없이, 그냥 사랑해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그 이상하고 기이한 특별한 사랑을 ‘아가페’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사랑은 눈감아 버리는 사랑입니다.
예수님의 사랑은 맘을 빼앗겨 버리는 사랑입니다.
어린 아이를 볼때에 어떻습니까?
하는 행동은 실수의 연발입니다. 미완성입니다. 하지만 그 실수하는, 그것이 더 우습고, 사랑스럽습니다.
아이는 아직도 손을 빨고, 발음이 어눌하지만, 그것을 더, 재미있고, 사랑스럽게 봐 줍니다.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사람을 사랑할 때, 그 사람의 겉모양으로, 그 사람의 주위에 있는 것으로 사랑해서는 않됩니다.
그 사람을 영혼을 사랑하고, 보둠어 안을때. 그 곳에, 예수님의 사랑의 역사가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초대교회는 교회는 흥왕하고, 역동적이 교회였습니다.
초대교회는 영혼을 사랑하는 교회였습니다.
니제르인 시므온, 구레네 사람 루기오, 헤롯의 젖동생 마나엔...모두가 서로사랑하는 교회가 초대교회였습니다.
자 니제르인 시므온은 흑인입니다. 구레네 사람 루기오는 해외교포입니다. 마나엔은 귀족입니다. 하지만 빈부귀천이 없이, 교회에서 만은 하나가 되었더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이와 같은 사람을 오히려 귀하게 영접하는 그곳에, 예수님의 사랑과 역사도 임하신다는 사실입니다.
3. 아이는 큰 자입니다.
아이 만큼 힘이 센사람도 없습니다.
아이가 울면서, 때를 쓰면, 부모가 힘이 없어서, 아이에게 지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 때문에, 아이에게 부모는 지게 됩니다.
그렇게 무서운 할아버지도, 아이 앞에서는 웃게 됩니다.
그렇게 무서운 할머니도, 아이는 친구하게 됩니다.
그래서 아무리 엄한 가정도, 아이가 있으면, 그 아이를 중심으로 움직이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아이의 놀라운, ‘관계성의 능력’ 인 것입니다.
아이와 같은 사람은 큰 사람입니다.
그 사람 앞에서는, 화를 낼수 없습니다.
그 사람 이야기는 무엇이든지 들어주게 됩니다.
그 사람이 오면, 모두가 즐거워 합니다.
아이와 같은 사람은 큰 사람이라 하겠습니다.
실수가 없고, 일을 잘하기 때문이 아닙니다.
힘이 세고 능력이 있기 때문이 아닙니다.
나기를 낮추는 것이 당연한 것인줄로 아는, 순수한 마음...
칭찬 받으면, 뛸뜻이 기뻐하는 착한 마음...
엄마 아빠만 있으면, 더 이상 바라지 않는, 겸손한 마음이 있기에...
아이는 큰 사람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3절에서 말씀하십니다.
“가라사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돌이켜, 어린 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말씀을 맺습니다.
에수님께 사랑 받는, 아이와 같은 신앙을 회복해야 되겠습니다.
또 아이를 영접하는 신앙이 있어야 되겠습니다.
그래서 천국에서 가장 큰, 아이와 같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