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베소서 1장 17절 23절 주님의 몸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영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너희 마음의 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함이 무엇이며
그의 힘의 위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떠한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그의 능력이 그리스도 안에서 역사하사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시고 하늘에서 자기의 오른편에 앉히사
모든 통치와 권세와 능력과 주권과 이 세상뿐 아니라 오는 세상에 일컫는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나게 하시고
또 만물을 그의 발 아래에 복종하게 하시고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삼으셨느니라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하게 하시는 이의 충만함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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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은 겨울이 물러가고, 봄이 다가오는 계절입니다. 3월달에도 가끔씩 눈이 오는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3월에 내리는 눈은 겨울에 내리는 눈과는 다른것 같습니다. 내려도 금방 녹고, 또 더 이상 추위를 몰고 오지는 못합니다.
사순절은 3월달과 같습니다. 죄악은 물러가고, 하나님 나라가 다가오는 믿음의 계절 입니다. 아직도 가끔씩 세상에는 죄악이 요동할때가 있습니다. 해외에는 전쟁이요, 국내에는 재해가 나타 납니다. 뿐만 아니라 영적으로도 죄악이 기승을 부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단이 세력을 만들고 사회에 죄악의 기운이 관영할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3월에 내리는 눈 처럼, 죄악은 힘을 쓰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죄악을 이기시고, 승리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의 눈으로 다가오는 하나님의 나라를 바라보면서, 잠깐동안의 불신앙을 기승으로 인하여 근심하거나 걱정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자녀는 십자가를 바라보며, 예수님께서 최후 승리를 하실것을 기대하며, 믿음으로 나아가게 됩니다.
그렇습니다. 잠깐의 변화, 하루하루의 변화가 아니라 그리스도인은 계절을 바라보아야 하고, 하나님께서 주장하시는 구속의 역사를 바라 보아야 합니다.
기온이 내려간다고 3월달에 다시 겨울옷을 꺼내어 입는 사람은 없듯이,
세상에 불신앙의 풍조가 분다하고 하여서, 그것을 보고 다시 옛사람으로 돌아가는 그리스도인은 없을 것입니다.
온전한 그리스도인 이라면, 십자가를 바라보며, 옛사람을 벗어버리기에 힘쓰고, 새사람을 덧입기를 항상~ 힘써야 하겠습니다.
오늘은, 새사람을 덧입고, 우리에게 임하는 하나님 나라를 바라보며, 성도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라는 주제로 말씀을 전하려고 합니다.
1. 그리스도인은 거룩한 지체로 부름을 받게 되었습니다.
본문 22절 23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또 만물을 그의 발 아래에 복종하게 하시고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삼으셨느니라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하게 하시는 이의 충만함이니라”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우리를 부르시기전, 우리는 어떻게 살고 있었습니까?
예수님 앞에 나오기전, 우리를 죄악이 끄는대로 옛사람으로 살고 있었습니다.
옛사람은 죄악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죄악이 나를 유혹하고 죄악이 나를 끄는데로, 살고 있었습니다.
요즈음 북한도, 코로나로 인하여 매우~ 힘들고 어려운 생활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북한에서 근무하였던 영국대사의 부인이 북한의 생생한 영상을 유튜브에 올려 화제가 된적이 있습니다.
영국대사 부인이 말합니다. “겉으로는 모두가 꽃을 흔들고, 만세를 부르지만, 뒤로는 엄청나게 불평을 하고, 실망스러워 합니다.”~
아무리 북한을 향하여, 우리나라가 물품을 보내준다~ 백신에 협조할수 있다고~하여도, 북한은 스스로 거절하고, 스스로 문을 닫아 잡금니다.
자~, 그 안에서 살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아무리 혼자 힘을 쓴다 한들, 어떻게 그 고생에서 벗아날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요즈음 북한에서는 탈북도 빽이 있어야 탈북 할수 있고~ 탈북하는 순서는, 누구 빽이 쎈가?~ 빽순으로 탈북할수 있다는, 자조섞인 말들이 있다고 합니다.
본문으로 돌아와서, 옛사람이 죄악 속에서 살아갈 때, 그 사람은 죄악이 이끄는 대로 살수 밖에 없습니다.
아무리 혼자서 그 삶이 익숙하고~ 뭐가 문제냐고 할지라도, 죄속에 있는 삶은 소망이 없는 삶이요, 죄의 종착역은 멸망일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19절에 말씀합니다.
“그의 힘의 위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떠한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옛사람을 벗고 새사람을 입게 되면, 새사람이 얼마나 좋은지 알수 있게 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아래에 나와 나의 죄를 씻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면, 예수님이 우리에게 얼마나 크신 능력과 사랑을 베풀어 주셨는지, 또한 장차 들어가게 될 하나님의 나라의 소망이 얼마가 복된지 알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마치 아직 날씨가 쌀쌀하다 하여도 3월달에는 봄을 맞을 준비를 하며 생활하는 것 처럼,
마찬가지로 아직 세상이 죄악으로 관영하다 하여도, 이제는 새 사람을 덧있기 위하여 힘쓰며, 하나님 나라를 맞이할 준비를 위하여, 힘쓰며 살아가야 되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서 사도바울은 새사람을 입은 그리스도인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더 이상 죄악이 나를 주장하는--소망없는 옛사람이 아니라, 구원과 은혜와 능력이 충만한, 예수님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예수님 안에서 살아가는 것은 어떠한 삶 입니까?
오늘 본문 23절에는 말슴 합니다.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하게 하시는 이의 충만함이니라”
그렇습니다. 새사람은, 예수님의 몸이 되어--부름받은 성도가 되어, 하나님의 자녀로써, 이 세상에서 살아가야 된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나님 앞에 구별되고 부름받은 성도들이 모일 때, 이 세상에서는 그 사람이 모인곳을 ‘교회’라고 부르게 됩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이 대곡동에 모여 있을 때, 세상에서는 이곳을 ‘김포상도 교회’라고 부릅니다.
그렇다면 김포상도교회는, 빨간 벽돌 예배당이 있고, 주일날 오전 11시에 모여서 예배드리는 곳인가? 맞습니다. 하지만 겉으로 나타나는 예배드리는 모습 뿐만 아니라, 영적으로는 하나님께서는 우리 김포상도교회를 어떻게 봐주시느냐? ~ 23절 상반절에 말씀합니다. “교회는 그의 몸이니”~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대곡동에서 성도들이 모여서 예배드리는 김포상도교회를, ‘예수님의 몸’으로 봐~ 주신다고 하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2:27 에는 말씀합니다.
“너희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지체의 각 부분이라”
그렇습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대곡동에 있는 김포상도교회로 불릴 뿐만 아니라, 성경적으로 보면, 하나님께서는 김포상도교회를 예수님의 몸으로 봐~주시고, 김포상도교회에 다니는 성도들 한사람 한사람을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의 치제로, 봐~주신다고 하는 것입니다.
얼마나 귀하고 복된 일~ 입니까?
만물안에서 만물을 충만하게 하시는 예수님께서, 김포상도교회가 예수님의 몸이 되도록, 충만하게 역사하여 주십니다.
그렇게 예수님께서 충만하게 역사하여 주시니까, 김포상도교회는 거룩한 예수님의 몸이 되며, 우리 한사람 한사람은 예수의 치체가 되어 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평소에 교회를 볼 때, 겉으로 나타나는 모습으로만, 교회를 보아서는 않되겠습니다.
김포상도교회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아래에서 불러주시고, 거룩하게 구별하여 주신, 주님의 몸이 된, 교회 요~
또한, 김포상도교회에 성도들 한사람 한사람은 예수님께서 십자가 아래에서 불러주시고 거룩하게 구별하여 주신, 주님의 치체 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교회를 대할 때, 분명히 주님의 몸을 대하듯 대하여야하며, 옆에 있는 한분한분을 대할 때, 분명히 주님의 지체를 대하듯, 대하여야 합니다.
그래서
2. 건강하고 복된 주님의 몸된 교회를 세워 나가야 하겠습니다.
오늘 본문 21절 22절 말씀이 되겠습니다.
“모든 통치와 권세와 능력과 주권과 이 세상뿐 아니라 오는 세상에 일컫는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나게 하시고
또 만물을 그의 발 아래에 복종하게 하시고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삼으셨느니라“
봄이 되면, 계절을 타고 오는 병이 있습니다. ‘춘곤증’ 이지요. 춘곤증을 한문으로 봄춘, 곤할 곤, 병증입니다.
한글사전을 찾아 보았더니, 봄철에 나른하고 피로를 쉽게 느끼는 증상. 환경 변화에 몸이 적응하지 못하여 생긴다.~고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햇볕이 따뜻해지고, 공기가 따뜻해지니까, 겨울동안 움츠러 들었든 몸이 풀리면서, 나른해 집니다.
특히 점심식사를 하고 난 다음에는 맥을 못춥니다. 아무리 커피를 먹어도 쏟아지는 잠을 막을수가 없습니다.
지난주간, 저는 총회 정치부 세미나에 참석하고 왔습니다.
전국 65개 노회의 각 노회 정치부 부장과 서기가 모여서 회의를 하였습니다.
그런데 회의 시간이 1시입니다. 그래서 12시에 도착하여 인근 식당에서 점심을 하고 회의장으로 들어갔습니다.
들어갔더니, 총회장님이 와서 인사를 합니다. 총회 총무 목사님, 현제 총회의 상황에 대하여 브리핑을 합니다.
그리고 총회 정치부 부장님이, 회의를 시작합니다. 그런데 정신을 차리고 보니까? “기도하고 회의를 마치겠습니다.”~ 하고 회의를 마무리 합니다.
얼마나 민망하고, 후회스러운지 모릅니다. 아니, 이렇게 중요한 전국 회의에 참석하였는데, 춘곤증 하나 이기지 못하고, 자료집만 받고 돌아 가다니~
왜, 이 말씀을 드리는고 하니, 교회도~ 성도도~ 하나님의 계절이 다가오는 가운데,
긴장이 풀리고, 몸이 풀리고, 영적 춘곤증, 믿음의 춘곤증이 올때가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26장 40절 41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한번 다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제자들에게 오사 그 자는 것을 보시고 베드로에게 말씀하시되 너희가 나와 함께 한 시간도 이렇게 깨어 있을 수 없더냐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하시고“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기전, 제자들과 함께 겟세마네 동산에서 올라 가셔서 기도를 하십니다.
그런데 방금 전까지 무슨일이 있었습니까? 너무나 엄청난~ 많은 일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월요일에 예루살렘 성에 입성을 합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어린나귀를 준비하였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그 나귀를 타시고 예루살렘 성에 들어가실 때 예루살렘성 사람들은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며, 예수님을 맞이 합니다.
화요일에는 성전에 가셔서, 환전상과 비둘기 파는 자들을 쫓아 내십니다.
수요일에는 성전에서 과부의 두렙돈을 보시고 말씀하시고, 이 성전에 돌하나 돌위에 남지 않을것이라고 가르쳐 주십니다.
목요일에는 한 여인이 옥합을 깨어서 예수님께 부어 드립니다. 그러면서 제자들은 성만찬 준비를 합니다. 그날 저녁 예수님은 제자들과 성만찬을 하십니다.
즉~ 제자들은 한주간을 눈코 뜰새없이 바쁘게 보냅니다. 그러니까 목여일 저녁 성만찬이 끝날 때 쯤 되니까, 이제는 중요한 일이 끝나는가? 하고~ 마음이 풀리고, 긴장이 풀려서,
기도를 하지 못합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제자들은 쏟아지는 잠을 이기지 못하고 잠이 들게 됩니다.
그럴 때 예수님께서는, 마음은 원이라고 육신이 약하도다.~고 하시며,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 고 말씀 하십니다.
그러면서 목요일 밤은 곧, 금요일 새벽으로 바뀝니다. 그랬더니 곧 가롯유다가 찾아 옵니다. 가롯유다는 예수님께 입 맞추고, 예수님은 로마군병과 사람들에게 끌려 가십니다. 그러면서 십자가에 달리게 됩니다. 즉 성금요일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중요한 일이 지나면, 사람은 긴장이 풀리고 피곤해 하며, 춘곤증과 같이, 곤한 잠이 올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때가 제자들에게는 제일 중요한 십자가의 시간이요, 예수님께서 나를 위하여,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는 날 이었습니다.
즉, 정말 중요한 때가 왔지만, 제자들은 오히려 잠자며 그 시간을 보내게 되었습니다.
2년여 코로나가 지나고, 이제 4월 중순 쯤 되면, 코로나 정점을 지날 것 같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우리나라도 긴장이 풀리고 피곤이 풀려서 그런지, 요즈음 더욱 코로나가 기승을 부리고 있습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2년여 코로나라 지나고, 4월 중순에는 코로나가 정점을 지날 것 같다고 하니까,
마치 베드로가 겟세마네 동산에서 예수님께서 기도하실 때 잠이 몰려온것 처럼,
교회도 이제는 코로나가 끝이 오는가? 하며, 긴장이 풀리고 피곤이 풀려서, 영적 잠이 몰려 오는 것 같습니다.
교회에 몰려오는 영적잠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이 있습니까?
에베소서 4:12 말씀을 보겠습니다.
“이는 성도를 온전하게 하여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에베소서 4장 12절에는 봉사의 사명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습니다.
즉 성도가 온전히 사명을 감당하는 것은, 주님의 몸을 세우려고, 사명을 감당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맡겨주신 사명을 잘 감당할 때, 그 교회는 온전하고, 건강하고, 활력이 넘치는, 주님의 몸된 교회로 세워지게 됩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성도들에게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기 위하여, 맡겨주신 사명은 무엇이 있습니까? 방금 소개한 봉사의 사명, 외에도 4가지가 더 있습니다.
간단히 요약을 하자면, 첫 번째로, 예배의 사명입니다. 레이투르기아 라고 합니다.
두 번째로는 전도의 사명입니다. 케리그마 라고 합니다.
세 번째로는 교육의 사명입니다. 디다케 라고 합니다.
네 번째는, 봉사의 사명입니다. 에베소서 4장 12절 말씀을 읽었습니다. ‘디아코니아’..라고 합니다.
마지막으로 다섯 번째는 친교의 사명입니다. ‘코이노니아’라고 합니다.
그런데 본문으로 돌아가서, 영적으로, 춘곤증이 몰려오면, 교회가 영적잠을 자게 됩니다.
즉, 예수님게서 주신 사명에 잠들게 될 때, 교회는 주님의 몸으로 온전하게 서지 못하게 됩니다.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예배를 드리지 못합니다. 마음은 원이로되 깨어있지 못하던 베드로 처럼, 교회가 예배의~ 잠을 잡니다.
또한, 전도의 잠을 잡니다. 교육의 잠을 잡니다.봉사의 잠을 잡니다. 친교의 잠을 잡니다.
이렇게 예수님께서 주신 사명에 잠들게 될 때, 그 교회는 온전하고 건강하며, 활력이 넘치는 주님의 몸된 교회로 세워지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사야 6:13 에는 말슴합니다.
“그 중에 십분의 일이 아직 남아 있을지라도 이것도 황폐하게 될 것이나 밤나무와 상수리나무가 베임을 당하여도 그 그루터기는 남아 있는 것 같이 거룩한 씨가 이 땅의 그루터기니라 하시더라”
기승을 부리던 동해 산불이 봄비를 맞고, 꺼지게 되었습니다. 우리 총회에서 가서 살펴 보았더니, 우리교단에 속한 성도들 가운데, 이번 산불로 전소된 가옥이 13채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지금 이 13채는, 우리교단에서 힘을 모아, 다시 복구 되도록 하자~고 뜻을 모으고 있다고 합니다.
산불이 나서 지나가면, 어떤 곳은 풀이 나지 않아, 지반이 약하여져 산사태가 나고, 무너지는 곳이 있습니다.
하지만, 똑 같이 산불이 지나가는데, 다른 곳은 다시 새싹이 나고, 숲이 회복되는 곳이 있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똑같은 코로나가 지나갈때 어떤 교회는 어려움을 겪고 힘들어 합니다. 하지만 다시 새싹이 돋고, 새순이 돋아 나는 교회도 있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그것이 바로, 생명이 있는 그루터기 이기 때문이며, 거룩한 씨가 이땅의 그루터기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주님께서 주신 사명을 품고, 깨어서-- 거룩한 주님의 몸된 교회를 세워 나가는 교회가, 오늘날 코로나가 지나가는 이 시대에, 새싹을 내는, 교회가 되지 않겠습니까?
말씀을 정리 합니다.
교회는 주님의 몸으로, 성도는 주님의 지체로 구별되고 부름을 받게 되었습니다.
주님께서 주신 사명을 품고, 거룩한 그루터기가 되어 나아갈 때, 오늘도 건강하고 활력있는 새싹을 내는 주님의 몸된 교회가 될 수 있습니다.
김포상도교회 성도들은 사순절 깨어있는 믿음으로 생활하여, 주님의 몸을 세우는 한주간으로 보내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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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주님의 몸, 주님의 지체로 불러 주시니 감사를 드립니다.
믿음에 깨어있고, 주님께서 주신 사명에 깨어 있음으로,~
나의 생활이 주님의 몸을 온전히 세우는,
깨어있는 믿음으로 보내는 한주간이 되게하여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 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