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21장 1절 17절 아가페 사랑으로
그 후에 예수께서 디베랴 호수에서 또 제자들에게 자기를 나타내셨으니 나타내신 일은 이러하니라. 시몬 베드로와 디두모라 하는 도마와 갈릴리 가나 사람 나다나엘과 세베대의 아들들과 또 다른 제자 둘이 함께 있더니 시몬 베드로가 나는 물고기 잡으러 가노라 하니 그들이 우리도 함께 가겠다 하고 나가서 배에 올랐으나 그 날 밤에 아무 것도 잡지 못하였더니
날이 새어갈 때에 예수께서 바닷가에 서셨으나 제자들이 예수이신 줄 알지 못하는지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얘들아 너희에게 고기가 있느냐 대답하되 없나이다 이르시되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지라 그리하면 잡으리라 하시니 이에 던졌더니 물고기가 많아 그물을 들 수 없더라 예수께서 사랑하시는 그 제자가 베드로에게 이르되 주님이시라 하니 시몬 베드로가 벗고 있다가 주님이라 하는 말을 듣고 겉옷을 두른 후에 바다로 뛰어 내리더라 다른 제자들은 육지에서 거리가 불과 한 오십 칸쯤 되므로 작은 배를 타고 물고기 든 그물을 끌고 와서
육지에 올라보니 숯불이 있는데 그 위에 생선이 놓였고 떡도 있더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지금 잡은 생선을 좀 가져오라 하시니 시몬 베드로가 올라가서 그물을 육지에 끌어 올리니 가득히 찬 큰 물고기가 백쉰세 마리라 이같이 많으나 그물이 찢어지지 아니하였더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와서 조반을 먹으라 하시니 제자들이 주님이신 줄 아는 고로 당신이 누구냐 감히 묻는 자가 없더라 예수께서 가셔서 떡을 가져다가 그들에게 주시고 생선도 그와 같이 하시니라 이것은 예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후에 세 번째로 제자들에게 나타나신 것이라
그들이 조반 먹은 후에 예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하시니 이르되 주님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이르시되 내 어린 양을 먹이라 하시고 또 두 번째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이르되 주님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이르시되 내 양을 치라 하시고 세 번째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주께서 세 번째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므로 베드로가 근심하여 이르되 주님 모든 것을 아시오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 양을 먹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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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주일은, ‘성령강림주일’입니다.
오늘은, 성령강림주일을 앞두고, 가정의 달 넷째 주일을 맞이하여, ‘사랑이 충만한 그리스도인의 믿음’에 대하여 말씀을 전하려고 합니다.
화목한 가정, 형통한 가정이 되자면, 무엇보다도, 가족들끼리 사랑이 충만하여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화목한 교회, 형통한 그리스도인이 되자면, 하나님 앞에서 성도들 앞에서, 그리스도인은 사랑이 충만하여야 합니다.
1. 모든사랑의 출발은 예수님 사랑입니다.
오늘 본문 3절 상반절에는 ‘베드로가 나는 물고기 잡으러 가노라’고 갈릴리로 돌아가게 됩니다.
이 부분은 베드로에게 참으로 미스테리한 부분이 아닐수 없습니다.
‘나는 물고기 잡으러 가노라’고 할 때, 단순히, 잠깐 낚시하러 간다고 하는 뜻이 아닙니다.
베드로의 직업이 무엇입니까? 갈릴리에서 물고기를 잡던 어부입니다. 즉, 베드로는 다시 어부의 일을 한다고 하면서, 고향 갈릴리로 내려 갔습니다.
방금전까지 베로드에게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예수님께서 붙잡혀서 가십니다. 베드로는 닭울기전에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서 돌아 가십니다. 그리고 3일만에 부활하십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이 베드로와 제자들을 찾아 오십니다.
그때 함께 있지 아니한 도마는 예수님의 부활을 못믿겠다고 합니다.
여드레 후에,-- 그때는 도마도 같이 있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다시 타나셔서, 손에 못자국을 보여주시고, 허리에 창자국을 보여주십니다. 그러면서, 부활을 않믿던 도마가 책망을 받습니다.
이 일이, 요한복음 20장입니다. 그런데 바로 다음장, 요한복음 21장에, 베드로는 옛날에 물고기 잡는 일을, 다시~ 하겠다고, 갈릴리로 내려가는 것입니다.
방금전까지 베드로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직접 만났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직접 들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뒤로하고, 옛사람의 길로, 돌아간다고 하는 것입니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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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즈음 젊은이들의 신조어 중에...“최애~”라는 말이, 있다고 합니다.
최--최고로... 애--는‘사랑애’ 입니다. ‘최고로 사랑한다는’ 뜻의 줄임말이 되겠습니다.
“나의 최애~아이템은, 선그라스입니다.”~ 그러면 내가 최고로~ 사랑하는 물건은 선그라스입니다.
“나의 최애~메뉴는, 냉면입니다. ”~, 내가 최고로~ 사랑하는 음식메뉴는, 냉면이라는 뜻이 되겠습니다.
자, 나의 최애, 아이템은 무엇 입니까?
나는 예수님을 사랑합니까? 혹시 몇 번째로 사랑하십니까?
예수님은 천지만물을 창조하셨습니다. 그--창조물 중~ 예수님의 최애 아이템은, 사람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입니다.
예수님은 창조물 중에서, 우리를 최고로~ 사랑하시기 때문에,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를 지실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천국도 아낌없이 우리에게 주실수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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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5장 42절에서 예수님게서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다만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너희 속에 없음을 알았노라”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올라가셔서, 베데스다 못가에 38년된 병자를 고쳐 주십니다.
그러니까.. 유대인들이 얼마나, 이렇쿵~ 저렇쿵~ 말들이 많은지 모릅니다.
자, 왜? 유대인들은 이렇쿵~ 저렇쿵~ 말들이 많은 것입니까?
그 내용을 들어보니, 안식일에 38년된 병자가, 깨끗이 나아서, 필요없어진 자기 병상을 들로 가는것은 일을 하는 것이니, 율법을 어겼다. 잘못한 것이다.~
38년된 병자가 깨끗이 나아서 안식일에 병상을 들고 가도록, 깨끗이 고쳐주신 예수님은, 38년된 병자로 하여금 율법을 범하도록, 만드신 것이다.
예수님이 하나님을 친아버지라 하였으니, 예수님을 죽이자~
아니~ 시작은, 하나님을 바르게 섬기기 위하여--안식일에 율법을 범하면 않된다고 시작하였는데, 끝에가서 결론은 예수님을 죽이자는, 결론으로 끝이 납니다.
하나님을 바르게 섬기자고~ 시작하였으면, 끝에 가서도, 하나님을 바르게 섬기자고, 끝이 나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유대인들은, 시작을 하나님을 바르게 섬기려면 율법을 지켜야 된다고 시작하는데, 끝에 가서는 예수님을 죽이자고 끝이 납니다.
그렇다면,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죽이자는 말을 하려고, ...율법을 범하면 않된다고 말을 시작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예수님께서는 그 의도와 속마음을 들여다 보시고, 말씀하십니다.
“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너희 속에 없음을, 알았노라”
그렇습니다. 율법을 어기면 않된다는 말을 하는--유대인들의 마음속에는, 정작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없습니다.
단지 예수님을 죽이고자 하는 마음에, 꼬투리와 근거를 갖다 붙이려고, 율법을 말하고, 하나님을 섬기는 것을, 말하였을 뿐입니다.
그렇습니다. 사랑은 들어나게 됩니다.
겉으로는 아무리 그럴듯 하게 말을 하여도, 그 사람속에 사랑이 있는지 없는지,~~ 들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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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두사람이 사랑을 하면, 둘이 붙어 앉아서, 맹물만 마시고 있어도, 즐거워서 시간가는줄 모릅니다.
나는 예수님과 동행할 때, 시간가는줄 모르면서, 즐거워 하고 기뻐하고 있습니까?
예수님과 동행하는 것을 거북해 하고, 예수님과 동행하는 것을 힘들어 하면,
나와 예수님과의 관계는, 사랑의 관계가 아니라, 거북하고 힘든관계인 것입니다.
예수님과 동행하는 것을 괴로워하고, 예수님과 동행하는 것을, 기뻐하지 않으면...
나와 예수님과의 관계는 사랑의 관계가 아니라, 괴로운관계, 기뻐하지 않는 관계인 것입니다.
어떤 그리스도인은 예배드리는 것을, 부담스러워 합니다. 손해보고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어떤 그리스도인은 기도하는 것을, 등한히 합니다. 심지어는 기도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을 합니다.
잠언 8:17 에는 말씀합니다.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중심을 보십니다. 그속에 하나님을 향한 사랑이 아니라, 부담과 손익관계와 기뻐하지 않고, 필요성을 못느끼는 사람이 있으면...
하나님께서는 다 알아 차리는 것입니다. “너희 속에, 나를 사랑하는 것이 없음을, 알았노라”
반대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충만하면, 나를 사랑하는 자가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는 나를 만날것이다~ 그러면서 그 사람을 사랑하여 주시고, 만나 주시는 것입니다.
2.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아가페사랑을 받을 준비가 되어 있습니까?
예수님의 제자 베드로는, 예수님의 십자가~사랑과 부활의~능력을 직접보고, 알고 있으면서도... 갈릴리에 내려가 버립니다.
사랑의 예수님께서는, 갈릴리에 내려간 베드로를 찾아가셔서, 만나 주십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에 보면--베드로에게 질문을 합니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베드로도 나름대로 설명꺼리가 있엇을 것입니다. “현실적으로요, 어부만한 것이 없습니다. 어부가 최고입니다.”
“예수님 말씀대로 다~ 살려고 하고 있습니다.
믿음이 떨어지지 않도록, 가끔씩 기도하고, 가끔씩 성경보고, 생각나면~ 복음전파도 하고....저도 ,다~ 계획이 있습니다.”
하지만, 결국 베드로의 마음중심을 보시는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에게 질문을 하시는 것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뒤로하고, 갈리로가는 그 마음 중심에... “시몬아,~ 예수님을 사랑하는 것이, 있는 것이냐?”~
예수님은 베드로를 모든 창조물 가운데서, 최고로 사랑하여 주셔서, 제자로 불러 주시고, 베드로를 구원하시려 십자가를 지시고, 베드로에게 천국소망이 있게 하시려 부활하셨지만...~베드로는 고려해야 할 것, 가운데에서, 예수님을 최고로, 최우선적으로 사랑하지 않았습니다.
베드로는 어부를 최고로 중요하게 여기고, 갈릴리에 가서 고기잡는 것을 최우선적으로 여겼습니다.
베드로게 있어서, 예수님은 어부 다음, 고기잡는것 다음으로, 여긴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고,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약속하신 성령님이 오실것을 기다리라는 말씀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을 뒤로하고 예루살렘을 뒤로하고, 고기잡으로 갈리리로 내려가고 말았던 것입니다.
그러고 보면, 사랑은 다 똑같은 것이 아니요, 선후가 있고, 종류가 있습니다.
더 사랑하고 덜 사랑하는 것이 있습니다.
설익은사랑, 어설픈사랑, 거짓사랑이 있는 것입니다.
헬라어에서 사랑은 네가지로 설명이 되고 있습니다.
‘에로스’는, 남녀간에 사랑을 뜻합니다. 성경에는 한번도 이 단어가 나오지 않습니다.
에로스는 어떻게 보면, 사랑의 기초, 기본이라고 할수 있습니다.
‘에로스’의 어근은 ‘에라오’입니다. 에라오는 ‘요구한다’,‘만족한다’는 뜻이 들어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남녀간에 사랑을 하면, 요구하게 됩니다. 사랑을 하는데, 뭘 달라고 합니다.
요즈음 젊은이들 사랑할 때, 선물을 엄청 줍니다. 수십만원짜리 핸드백을 줍니다. 이유는 사랑하니까..
또한 사랑을 하는데 무엇을 주면, 만족해 합니다. 반대로, 요구하는 것이 거절당하고, 만족이 않되면, 사랑이 부족하고 결핍된 것으로 생각을 합니다.
“나를 사랑하는데, 수십만원짜리 양복도 않해주고,... 사랑이 식은거야?”
어떤 그리스도인은, 에로스사랑의 수준으로 예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예수님, 나를 사랑하시면, 이번에 성~공 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요구를 합니다.
예수님, 수십억원도 않주시고,...나를 향한 사랑이 식은 겁니까?
오늘 본문, 15절, 16절에도, ‘사랑’이라는 단어가 나옵니다. 헬라어로는, ‘아가페’입니다.
‘아가페’는, 번역이 쉽지 않습니다.
‘경이롭고 진실하고, 귀중하게 여기는 사랑’입니다.
거룩한 사랑, 무조건적인 사랑, 자기 희생과 깊은 배려와 베푸심이 가득한, 절대적인 사랑, 한량없는 사랑... 입니다.
바로, ‘하나님의 사랑’이 되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오늘 본문에서...베드로를 향하여 세 번 질문을 하십니다.
“시몬 요아노우, 아가페스 메 ”... 요한의 아들 시몬아, 나를 사랑하느냐?
“필레오 세....” 주님 사랑합니다.
“시몬 요아노우, 아가페스 메 ”... 요한의 아들 시몬아, 나를 사랑하느냐?
“필레오 세....” 주님 사랑합니다.
세 번쩨 질문 하십니다.
“시몬 요아노우, 필레이스 메..”....요한의 아들 시몬아, 나를 사랑하느냐?
“필레오 세....” 주님을 사랑합니다.
예수님은, 베드로를 향하여, 예수님이 베드로를 사랑한것 같이, 예수님의 거룩한 사랑, 절대적 사랑, 한량없는 사랑으로, 베도로도 예수님을 사랑하느냐? 고 질문을 하십니다.
그럴 때, 베드로는, 세 번다...‘아가페 사랑’으로 예수님을 사랑합니다.라고 대답하지 못합니다.
그저 ‘필레오 사랑’으로 예수님을 사랑합니다. 라고 대답을 합니다.
그렇지요. 어떻게, 우리가, 예수님의 한량없는 사랑, 거룩한 사랑, 절대적인 사랑으로, 예수님을 사랑할수 있겠습니까?
‘필레오’라는 말은, ‘우정’, ‘동료애’ 사랑이 되겠습니다.
그래서, ‘필레오’는, 다른말과 합성이 잘 됩니다.
동료애, 형제에 그러면, ‘필라 델피아’입니다.
인류애, 박애주의 그러면, ‘필란 트로피’입니다.
철학, 지혜를 사랑하면, ‘필라 소피아’가 됩니다.
그렇다면, 오늘 말씀에, 베드로의 대답, ‘필레오 세’... 는 ‘주님 사랑’이라고 할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베드로를 사랑한것 같이, ‘거룩하고 절대적인 사랑’으로 보답할수는 없지만...
베드로는, 오직~ 주님만을 사랑하는, ‘주님-사랑’ ‘예수님-사랑’을 하겠다고 보답하겠다고, 대답을 하였던 것입니다.
그럴 때, 예수님께서는, 세 번째에는, 그렇다면 앞으로 “오직 주님만 사랑하는, 그 사랑을 할수 있느냐?” 고 질문하여 주십니다.
그럴 때 베드로는 아가페 사랑에는 못미치지만, 그러나 베드로의 모든 힘을 다하여, ‘예수님사랑’을 하겠다고 “필레오 세” 주님-사랑합니다. 라고 답을 하였습니다.
사무엘상 12:24
너희는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행하신 그 큰 일을 생각하여, 오직 그를 경외하며 너희의 마음을 다하여 진실히 섬기라
신명기 7:9
그런즉 너는 알라, 오직 네 하나님 여호와는 하나님이시요 신실하신 하나님이시라 그를 사랑하고 그의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 대까지 그의 언약을 이행하시며 인애를 베푸시되
하나님은 얼마나 넉넉하고 분명한 분이신지,
오직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를 보실때에는, 하나님께서도 그 사랑에 합당하게 사랑으로 갚아 주십니다.
구원과 천국으로 갚아주시고, 이 세상에서는 천대까지, 하나님께서 주시고마 약속하신--성경에 나와있는 좋은 축복들을, 받도록-베풀어 주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나를 향하신 사랑이, 짝사랑이 되지 않도록~ 짝사랑은 이루어지지 않는 사랑입니다
좋은 날씨에, 약속시간을 정하고, 만나면 꽃을 주려고 사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받을 사람이 나타나지를 않습니다. 짝사랑이 되어 버립니다. 꽃받을 사람이 딴데 가버립니다.
그러면 기다리던 사람은, 않나타나니까... 꽃을 못주게 되지 않겠습니까?
마찬가지로, 예수님께서는 약속시간을 정하고, 좋은것을 준비하고, 기다리십니다.
예배시간에 기다리시고, 기도시간에 기다리십니다. 주일예배, 수요예배, 금요기도회에~~
받을 사람이 나타나면, 예수님께서는 세상 모든 창조물 가운데, 최애~존재, 나를 가장 사랑하시기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너무너무 기뻐하시면서, 선물을 주시고, 응답을 주시고, 능력을 주시고, 무슨 문제든지 내가 해결해 줄게...그러시면서...주신다고 하는 것입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베드로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뒤로하고, 갈릴리로 내려갔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갈릴리에 찾아오셔서 베드로에게 말슴하셨습니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모든 창조물 중에, 최고로 예수님의 사랑을 받는, 그리스도인으로써...
나도 예수님을, 다른것 보다, 최고로 사랑하여,
예수님께서 기뻐하시고, 높혀주시고--하나님께서는 천대까지 복을 주시는...
바로, 성삼위하나님께... 사랑받는 자로 살아가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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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참으로, 천지만물 그 어떤것 보다가고, 최고로 사랑하여 주시니,감사를 드립니다.
하나님의 아가페 사랑을 입고 있지만,... 오직 하나님사랑, 오직 주님사랑으로 갚으며 살아가야 하는데....
혹시나 제3, 제4...순위가 밀리고, 다른 것을 더 사랑하는 마음이, 내속에 있는것은 아닌지
돌아보며, 회개 합니다.
이번 한주간 동안은, 오직 제1로...하나님만 사랑하며, 매일매일 살겠습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사랑을 크게 받으며, 생활하는 한주간이 되게하여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