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26장 22절 29절 하나님께 복을 받은 자
이삭이 거기서 옮겨 다른 우물을 팠더니 그들이 다투지 아니하였으므로 그 이름을 르호봇이라 하여 이르되 이제는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넓게 하셨으니 이 땅에서 우리가 번성하리로다 하였더라
이삭이 거기서부터 브엘세바로 올라갔더니
그 밤에 여호와께서 그에게 나타나 이르시되 나는 네 아버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니 두려워하지 말라 내 종 아브라함을 위하여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게 복을 주어 네 자손이 번성하게 하리라 하신지라
이삭이 그 곳에 제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거기 장막을 쳤더니 이삭의 종들이 거기서도 우물을 팠더라
아비멜렉이 그 친구 아훗삿과 군대 장관 비골과 더불어 그랄에서부터 이삭에게로 온지라
이삭이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나를 미워하여 나에게 너희를 떠나게 하였거늘 어찌하여 내게 왔느냐
그들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심을 우리가 분명히 보았으므로 우리의 사이 곧 우리와 너 사이에 맹세하여 너와 계약을 맺으리라 말하였노라
너는 우리를 해하지 말라 이는 우리가 너를 범하지 아니하고 선한 일만 네게 행하여 네가 평안히 가게 하였음이니라 이제 너는 여호와께 복을 받은 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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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어린이에게 가계에 가서 과자를 사준 적이 있습니다.
가게 안을 한참 살펴 보았더니, 한 과자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과자 포장이 큼지막 합니다.
겉에는 이쁜 과자 그림이 그려져 있습니다.
얼른 그 과자를 집어들고 물었습니다. “이 과자가 맛있을것 같은데, 이것을 사줄까?”
그랬더니 아이가 고개를 도리도리 합니다. 싫다고 합니다.
깜짝 놀라서, 물었습니다. “ 아니 이렇게 양도 많고, 그림을 보니까, 맛도 있을것 같은데, 왜 이 과자를 않먹을려고 하는 거니? ”
아이의 대답은 의외 였습니다.
“그 과자는 포장만 크고요, 안에는 과자가 몇 개 않들었어요..
그리고 그 그림은 거짓말이에요. 맛이 하나도 없어요.”
그래서 깨닫게 되었습니다. “과자의 전문가는 역시 아이들이구나.”
겉에는 과대 포장을 하고, 그를듯 하게 디자인을 해놓아도
실상은 맛이 없다는 사실을, 아이들은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포장이 아니라 내용물이 핵심 입니다.
판가름은 겉포장이 아니라, 내용물에서 나는 것입니다.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겉사람이 아니라 속사람에서 판가름이 납니다.
조금만 들여야 보면 덕욱 분명해 집니다.
속이 건강해야 진짜 건강한 사람입니다.
속사람이 건전해야, 희망이 있는 사람 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 나오는 주인공... 이삭은, 겉모습이 아니라 속이, 꽉찬 사람이었습니다.
처음에는 다른 사람들과 구별이 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속사람으로 인하여 이삭은 앞서나가게 되었습니다. 인정받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속사람으로 인하여, 승패가 판가름나고, 성공이 판가름 나고,
나중에는 하나님 앞에 복을 받을자로 우뚝~ 세워지게 되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오늘날 무엇으로 세상사람들과 구별될수 있습니까?
그리스도인은 무엇으로 세상사람들 보다 앞서 나갈수 있습니까?
바로 속사람이 건강하고, 속사람이 건전하고, 속사람의 믿음이 튼튼할 때... 세상사람들과 구별되고, 세상사람들 보다 앞서나갈수 있기 않겠습니까?
그래서 오늘은 속사람으로 승리하였던, 이삭의 신앙비결을, 살펴 보려고 합니다.
오늘 말씀에 배경을 잠깐 설명 드리자면, 이삭이 ‘그랄’ 이라는 땅에 가서 살게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당시에는, 땅에 큰 기근이 들어서, 살기가 너무 힘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물이 없습니다. 곡식이 않됩니다. 가축의 숫자가 점점 줄어 듭니다.
그런데 ‘그랄’이라는 땅은 그래도 살만하다는 소문이 들립니다.
사람들이 ‘그랄’로 모여 듭니다.
이 틈바구니 속에서, 이삭도 ‘그랄’ 찾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반대로 ‘그랄’ 원주민들은 이 상황을 어떤 마음으로 바라 보았겠습니까?
기근이 들어서 가뜩이나 살기가 힘든데, 사람들이 자꾸 모여드니까...경쟁이 더 심해집니다. 살기가 더 힘들어 집니다.
당연히 ‘그랄’ 사람들은 외부에서 들어오는 사람들을.. 마냥, 좋게만 봐줄수가 없었습니다.
그런 가운데 ‘그랄’사람들 눈에 주목을 받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바로 오늘 말씀에 주인공, ‘이삭’이 되겠습니다.
‘이삭’은 성실합니다. 이삭은 하나님을 믿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하는일 마다 잘 됩니다. 모든 일이 형통 하였습니다.
오늘 말씀 위쪽에, 12절을 보면 이렇게 말씀합니다. “이삭이 그 땅에서 농사하여 그 해에 백 배나 얻었고”
아니, 기근이 들어서 모두 살기가 힘든데, 이사해서 들어온, 이삭은 예외입니다. 하는일이 잘~ 됩니다.
농사를 지었는데, 다른사람들은 반타작을 해도 다행이라고 하는데, 이삭은 반타작이 아니라 온타작을 넘어서...백배가 거두게 되었습니다.
그땅에 있는 사람들이 깜짝 놀랍니다. “야~ 이삭을 봐라.. 어떻게, 이렇게나 농사가 잘 될 수 있을까? ”
이삭이 농사를 잘 지으면서 몇 년이 지나 가니까..이삭은 그 땅에 살던 사람들과 차이가 확~ 나게 되었습니다.
13절에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 사람이 창대하고 왕성하여 마침내 거부가 되어,
양과 소가 떼를, 이루고, 종이 심히 많으므로..”
이쯤 되니까..사람들이, 불만을 터트립니다.
“이삭은 흘러 들어온 사람인데, 우리 땅에서 농사를 지어, 우리보다 더 부자가 되었다.~”
“이삭은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인데, 바알을 섬기는 우리보다 더 부자가 되었다.~”
그랄 사람들은 이삭에 대하여 극단적으로 불만을 터트리며, 시기 질투 하기 시작 하였습니다.
자, 이 장면에서 우리는 그랄 사람들의 불만과 시기, 질투를 눈여겨 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삭이 부정직한 방법을 쓴것이 아닙니다.
똑같은 땅에서, 똑같은 방법으로, 똑같이 농사를 짓는데, 이삭은 100배의 소출을 내었습니다.
그렇다면, 이삭에게 그 방법이 무엇인지 배울수 있지 않겠습니까?
“당신은 소출을 100배나 내었는데, 그 방법이 무엇인지 우리에게 가르쳐 주십시요. 우리도 100배의 소출을 내고 싶습니다.”
그러면서, 이삭에게서 100배의 소출을 내는 방법을 배운다면, 그 땅에 있는 사람들도 모두 100배을 소출을 거두면, 기근이 물러가고, 좋은 때가 시작 되는 것이 않니겠습니까?
그런데 그랄 사람들은 100배의 소출을 내는 방법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100배의 소출을 낸 이삭을 시기 질투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면서 16절에 보면, 이삭을 향하여 “네가 우리보다, 크게 강성 한즉, 우리를 떠나라”
그리고 이삭을 쫓아 내었습니다.
그랄 사람들은, 좋을 것을 본받고, 좋은 것을 내것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좋은 것을 보면서, 시기 질투하고, 내쫓는 부정적인 마음을 가졌습니다.
오픈 마인드, 라고 하지요. 열린 마음의 소유자는, 남의 장점을 배우고, 남의 장점을 내것으로 만들어, 내가 점점 더 발전하고 점점 더 잘 되는 사람입니다.
하지만, 그랄사람들은 반대입니다.
닫힌마음, 시기질투하는 마음을 가질 때, 발전하고 잘될수 있는 기회가 앞에 있는대로
오히려 자기발로 이삭을 쫓아 버리고,
기근을 벗어나지 못하고, 스스로 발전하지 못하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 20절 말씀을 보았더니, 그랄사람들의 부정적인 마음만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부정적인 마음은 남을 훼방하는 행동으로 나타났습니다.
이삭은 그랄에서 쫓겨나서, 다른 곳으로 옮겨 갑니다. 그곳에서 우물을 팝니다.
그러니까 그랄 목자들은, 이삭을 쫓아다니며, 이삭이 판 우물을 흙으로 매우는, 갖은 낮은 횡포를 다 부렸던 것입니다.
정리를 하자면, 이삭은 계속하여, 샘을 파고, 농사를 지었습니다.
하지만 그랄사람들은, 이삭의 샘만 바라보고, 이삭의 샘만 쫒아다니고, 이삭이 잘되는 것을 훼방하는 것에 힘을 썼습니다.
간단합니다. 남의 것만 바라보면 지경이 넓어지지 않습니다.
나의 샘을 팔 때, 지경이 넓어 지는 것입니다.
나는 샘을 파는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면서 남의 샘 파는 것만 바라보고, 질투하고, 훼방하면, 어떻게 지경이 넓어지겠습니까?
그리스도인은 이삭처럼, 나의 샘을 파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나는 세상에서 나의 샘을 열심히 파고 있습니까?
영적으로 나의 믿음의 샘을 열심히 파고 있습니까?
찬송의 샘을 파면, 기쁨이 넘칩니다.
말씀의 샘을 파면, 믿음이 넘칩니다.
기도의 샘을 파면, 응답이 넘칩니다.
예배의 샘을 파면, 능력이 넘칩니다.
그런데, 나는 찬송하지 않고, 옆에서 찬송하는 사람을 봅니다. 저렇게 찬송해서 박차도 틀리고, 찬송하지 마세요.
성경통독 하고, 통독메달받고...통독메달 못받는 사람도 생각을 좀 해야지,.. 성경 좀 읽지 마세요.
기도 않하고, 예배 않드리는 사람 주눅들어서 살겠어요...기도도 빼먹고 예배도 좀 빼먹으세요.
만약 거꾸로 남의 찬송을 보고, 남의 성경통독을 보고, 남의 기도와 예배만 본다면,
나의 발전, 나의 믿음은... 깊어지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을 보니까 이러한 훼방에도 불구하고, 이삭이 어떻게 반응 하였는가?
반응이 없었습니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시기 질투 훼방에 댓구를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면서 이삭은 실속있게, 나의 우물을 열심히 계속하여 열심히 팝습니다.
쫓아와서 흙으로 매우면, 옆으로 가서, 묵묵히 나의 샘을 팝니다.
또 쫓아와서 흙으로 매우면, 옆으로 가서, 또 묵묵히 나의 샘을 팝니다.
“훼방하지 마세요. 시기 질투하지 마세요.”라는 말조차 하지 않습니다.
조용히 묵묵히 열심히...이삭은 나의 샘을 팠던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겉으로 싸워서는 않됩니다.
언성을 높이고, 막말을 하니까, 나도 언성을 높이고 막말을 하면, 겉으로 싸우는 것이 됩니다.
그리스도인은 겉으로 싸우는 사람이 아니라, 속으로 싸우는 사람이라 하겠습니다.
기도로 싸우고, 찬송으로 싸우고, 영적으로 싸우는 것입니다.
그럴 때, 진정으로 완전한, 진짜 승리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로마서 12:21 에는 말슴합니다.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
이삭은, 그랄사람들이 막말을 하고, 샘을 흙으로 매워도, 온유함으로 대하였습니다.
에섹, 싯나, 르호봇. 아무리 샘을 매워도 이삭은, 물러섬으로, 그랄사람들을 대하였습니다.
이것이 바로 이삭이 속으로 싸우는 방법이었습니다.
자 이삭이 싸우는 방법, 어떻게 보이십니까?
너무너무 약하게 보이십니까?
아니 이삭이 패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십니까?
세상의 눈으로 볼때는 그렇게 보일수 있습니다. 하지만 믿음의 눈으로 보면, 영의 눈으로 보면, 이삭은 가장 실속있게, 악에게 지지 않고, 믿음의 방법으로 악을 이기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삭이.. 그랄사람들이 훼방하는 것과 같은 방법으로, 그랄사람들과 싸우지 않고
온유함으로, 선으로 악을 이기는...믿음의 방법으로...영적으로 싸워 나갈 때..
이 모습을 하나님께서 지켜 보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삭의 믿음의 자세를 보시고, 그날 밤에 이삭에게 나타나셨습니다.
자 24절에 말씀합니다.
“그 밤에 여호와께서 그에게 나타나 이르시되, 나는 네 아버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니 두려워하지 말라 내 종 아브라함을 위하여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게 복을 주어 네 자손이 번성하게 하리라 하신지라”
하나님께서 이삭의 믿음의 수준을 칭찬하시고, 이제 이삭에게 복을 주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럴 때 놀라운, 일이 일어납니까?
이삭을 쫓아내고 훼방하던, 아비멜렉과 아훗삿과 비골이, 자기발로 이삭을 찾아 왔습니다.
그리고 이삭에서 먼저 화친을 요청하고, 먼저 앞으로 화목하게 같이 잘 지내자고... 손을 내밀게 됩니다.
이삭이 그 상황이 너무 이해가 않되어 말합니다.
“너희가 나를 미워하여, 나에게... 너희를 떠나게 하였거늘, 어찌하여 내게 왔느냐 ?”
그러니까, 아비멜렉과 아후삿과 비골이, 대답을 합니다.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심을 우리가 분명히 보았노라..”
“이제 너는 여호와께 복을 받은 자니라”
그랄 사람들은 세상적인 방법으로 이삭을 이기려고.. 갖은 방법을 사용 하였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훼방하여도, 이삭을 이길수가 없었습니다.
반대로 이삭은 세상적인 방법이 아니라 영적방법을 사용하였습니다. 믿음의 방법을 사용하였습니다.
덕스러움에서 차이가 납니다. 이삭이 훨씬 더 덕스럽고, 마음이 넓고, 인격이 높습니다.
아비멜렉을 옹졸하고, 마음이 얕고, 인격이 형편없습니다.
믿음에서도 차이가 납니다. 이삭은 훨씬 믿음이 깊고, 속사람이 건강합니다.
아비멜렉은 우상을 섬기고, 속사람이 죄악으로 병이 들었습니다.
그러니까..이삭에게 아비멜렉이 눌립니다.
아비멜렉이 이삭을 높이 바라보게 됩니다.
아비멜렉이 이삭을 절대로 이길수 없다고 머리를 숙이고, 꼬리를 내리게 되었습니다.
즉, 이삭이 믿음으로 승리할 때,
하나님께서 높혀주시니까...대적은 오히려 자기발로 찾아와서, 패배를 인정하고
이삭을 높혀주고, 이삭은 승리하게 되더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 그리스도인의 승리의 비결입니다.
아무리 내가 세상에서 잘되고, 높아지고, 형통하려고 해도, 믿음에 실패하고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면
그 사람이 어떻게 세상에서 잘되고, 승리할수 있겠습니까?
하지만 반대로, 내가 먼저 믿음에 승리합니다. 하나님께서 나의 믿음을 보시고 칭찬하고 복을 내려주시면,
세상에서 그 사람은 자동적으로 잘되고, 승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은 목표는,
세상 사람들이 나를 향하여, “너는 하나님께 복을 받은 자다” 그러면서, 나의 믿음을 인정하고, 하나님을 높이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만약에 세상사람들이 나를 향하여 “예수님 믿는 사람이었습니까? 교회 나가는 사람이었습니까? 전혀 몰랐는데요..” 그렇게 말한다면,
세상 사람으로 하여금, 나의 믿음을 인정하고, 하나님께 영광돌리도록 하는데 실패했다고 할수 있습니다.
베드로전서 2:12 에는 말씀합니다.
너희가 이방인 중에서 행실을 선하게 가져 너희를 악행한다고 비방하는 자들로 하여금 너희 선한 일을 보고 오시는 날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함이라
마태복음 5:16 에는 말씀합니다.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나는 속사람이 건강하여,
실속있게 믿음의 샘을 파면서,
영적으로 세상을 이기고 있습니까?
아니면 속사람이 약하여 지고,
실속없이, 믿음의 샘을 파는 것이 아니라,
육적으로 세상을 이길려고 힘쓰고 있지는 않습니까?
육체적으로 세상을 이길려고 하면, 욕심에 의지하게 됩니다.
세상적인 방법을 사용하고, 세상적인 지혜를 사용하게 됩니다.
그러면 세상을 이기는 것이 아니라, 욕심과 세상적인 수렁에 넘어질수 밖에 없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요한은 중요한 고백을 합니다.
요한1서 5:4
무릇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기는 승리는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말씀을 정리합니다.
이삭은 힘든 시기를 만나서, 살아갈 때,
세상적인 방법으로 세상을 이기려 하지 않았습니다.
믿음의 방법으로, 속사람이 건강하고,
실속있게 나의 믿음의 샘을 팔 때...
오히려 하나님께서 세상을 이기게 하시고, 힘든시기에 오히려 높임을 받도록 하여 주셨습니다.
믿음의 방법으로 살아가서, 하나님께서 높혀주시는 한주간을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해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