벧전 4장 7절 11절 마지막 때에 열정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이 왔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
무엇보다도 뜨겁게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
서로 대접하기를 원망 없이 하고
각각 은사를 받은 대로 하나님의 여러 가지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 같이 서로 봉사하라
만일 누가 말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것 같이 하고 누가 봉사하려면 하나님의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는것 같이 하라 이는 범사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니 그에게 영광과 권능이 세세에 무궁토록 있느니라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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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은 ‘부활의 능력을 힘입는 달’ 입니다.
부활의 능력은 여러가지로 설명 될수 있습니다.
그 중에 하나는 ‘사랑’입니다.
우리를 향한 예수님의 사랑의 결정체가 ‘십자가’ 입니다.
사랑은 말로만 할수 없습니다.
사랑의 대상이 있습니다.
사랑은 그 대상을 향한 목표가 있습니다.
예수님의 사랑의 대상은, 바로 우리입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죄에서 자유하게 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죽음의 권세를 이기도록 하기 위하여, 십자가에 올라 가셨습니다.
부활도 마찬가지입니다.
부활은 십자가와 떨어져서 생각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십자가에 올라 가셨던것 처럼,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죽음의 권세를 이기시고, 부활승리 하셨습니다.
자 그렇다면 부활의 능력을 힘입는 성도는 어떻게 설명될수 있습니까?
예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것 처럼, 우리도 예수님의 사랑을 전하며 살아갈 때, 바로 부활의 능력을 힘입는 성도가 되어 지는 것입니다.
1. 부활의 소망속에 살아가는 성도는, 예수님의 사랑을 전하는 성도입니다.
오늘 말씀, 7절 8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이 왔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
무엇보다도 뜨겁게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
베드로 사도는 예수님을 가장 가까이에서 보았던 사람입니다.
베드로는 닭울기전에 예수님을 세 번 모른다고 부인을 하였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이 부활하시고 찾아왔을때에도, 요한을 향하여 시기질투 하였습니다.
베드로는 스스로 생각해보아도, 예수님의 기대와 주신 책임을 생각할 때, 너무나 부족한 부분이 많았습니다.
그런...베드로 사도가, 믿음이 성숙하여 지고, 사명을 충실하게 감당하는 복음의 사도가 되면서,
예수님의 십자가를 바라봅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바라봅니다.
그리고 오늘 말씀의 고백하게 되었습니다.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이 왔구나”
예수님의 십자가는 ‘만물의 마지막을 알리는 사건’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하여,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를 다 보여 주셨습니다.
사랑이라 함은, 십자가를 통하여 죄중에 있는 우리를 구원하시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무한사랑입니다. 더 냏어 줄 것도, 더 숨기는 것도 없습니다. 다 보여주시고 다 냏어 주셨습니다.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죄인을 구원해 주신다고까지 하셨으면, 얼마나 큰 사랑이요, 얼마나 큰양보 이십니까?
그 다음에는 공의입니다.
이렇게 까지 십자가를 통하여, 죄인도 구원받을수 있는 길을 활짝 열어 놓았는데도..하나님을 배반하고 부인하면,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때에는, 이제는 양보 다 하시고, 인내 다 하셨기 때문에....
그 다음에는 하나님의 공의를 보여주시기 위한, 심판이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십자가를 통하여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 주셨습니다.
부활 승리하심으로 성도들이 어떻게 구원받는지 보여 주셨습니다.
남은 것은 심판을 통하여, 공의를 보여주시는 것만 남았습니다.
그래서, 사도 베드로, ‘이제는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이 왔구나...’
하나님의 심판이 예비되어 있음을, 말씀 하였던 것입니다.
자, 하나님의 심판만 남은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는, 그렇다면 어떻게 살아가야 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 답이 7절 말씀이 되겠습니다.
7절 상반절에는 말슴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뜨겁게 서로 사랑할지니”
‘무엇보다도’ 라는 말은, 다른 모든 것에 앞서서... 우선하여... 그런 뜻이 아니겠습니까?
즉, 제일 중요한.... 성도의 생활은, 예수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하고 실천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시기가 너무 긴급하고, 마지막 시대이다 보니, 베드로 사도는, 예수님의 사랑을 전하고 실천하는데,
7절 상반절에 보면, ‘뜨겁게 사랑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표현으로 한다면, ‘열정적으로, 열심히, 온 힘을 다하여’ 사랑하라는 말씀입니다.
가만히 보면, 사랑은, 건강한 사람이라야, 사랑을 할수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을 해봅니다.
목사님, 사랑에도 건강이 필요합니까?
네 건강이 필요합니다.
아파서 병원에 누워 있는 사람은, 남을 열정적으로 사랑하지 못합니다.
자기 몸이 천근만근이고, 자기 몸이 아파서... 힘들어 죽겠는게, 어떻게 남을 열정적으로 사랑할수 있겠습니까?
아무것도 않하고 가만히 있는 것도 조차도, 힘들어 합니다. 아이고~ 죽겠어요. 힘들어요.
육체적으로 병들고 아픈사람은, 자기도 모르게.. 짜증이 나옵니다, 신경질을 내고, 옆에 있는 사람을 힘들게 합니다.
이런 사람은, 다른 사람을 사랑해 주는 사람이 아니라, 도리어 다른 사람으로부터 사랑을 받아야 하는 사람입니다.
사랑도 젊을 때, 건강할 때 합니다.
젊을때는 피곤해도 조금만 쉬면, 금방 힘이 솟아 납니다.
항상 활기차고 열정적이고 건강합니다.
아기는... 엄마가 젊을 때, 태어납니다.
아기가 밤낮이 뒤바껴서, 밤새 엄마를 괴롭힙니다.... 낮에는 잠을 자고, 밤에 먹을 것을 달라고 밤새 보챕니다.
그때..체력이 뒷받침 되지 못한다고,....아기 포기하는 엄마는 없습니다.
젊기 때문에, 넉넉히 밤을 견딥니다.
사람이 심리적으로, 사랑을 할수 있을려면
상대방이 나를 괴롭게 하는 것을, 넉넉히 받아줄수 있는, 마음이 있어야... 사랑을 할수 있습니다.
상대방이 나를 괴롭게 합니다. 하지만 사랑에 빠진 사람들을 보면, 그 상대방의 괴롭힘을 사랑으로 받아 줍니다.
상대방이 나를 힘들게 하여도, 사랑에 빠진 사람들을 보면, 희생으로 받아 줍니다.
남편이 아내를 힘들게 하여도, 반대로 아내가 남편을 힘들게 하여도, 사랑에 빠진 사람은 넉넉하게 받아줍니다.
남편의 성공을 위하여 아내가 희생하고, 아내의 행복을 위하여 남편이 헌신합니다.
믿음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믿음이 건강한 사람은, 다른 사람을 충실하게 사랑해 줍니다.
사랑을 하려면, 희생이 필요하고, 헌신이 필요하고, 손해가 발생하고, 양보를 해야 합니다.
하지만, 믿음이 건강한 사람은, 믿음에 활력이 있고, 믿음이 성숙하고, 믿음에 열정이 있기 때문에
충분히 예수님의 사랑을 실천합니다.
다른 사람을 위하여 희생합니다. 헌신합니다. 손해가 발생하고, 양보를 해야하는 상황이 발생해도, 넉넉하게 거뜬하게 감내 합니다.
왜냐하면, 사랑할수 있는 믿음의 건강, 믿음의 활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믿음에 건강이 떨어지면, 넉넉히 사랑하지 못하게 됩니다.
희생을 힘들어 합니다. 헌신과 손해와 양보를 힘에 부쳐 합니다.
그러면서 사랑이 아니라, 미움과 시기와, 질투과 분냄이 나옵니다.
무슨 일이 생기면 넉넉히 감내하지 못합니다. 오히려 불평하고 불만이 나옵니다.
않된다고 부정적인 말을 하고, 분을 내고, 언성이 높아집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십자가에서 넉넉하게 받아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화평을 주시고, 우리에게 나음을 주시려고, 십자가에서 가시면류관, 창과 못과 채찍을 넉넉하게 받아 내셨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기도하셨습니다.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뜨겁게 사랑하시기 때문에, 그 사랑을 이루려, 온갖 괴로움을, 비명소리 하나 지르지 않으시고, 다 감내하셨습니다.
그 결과 우리에게는 죄사함의 길이 열리고, 구원의 길이 열리고, 하나님의 양자녀의 길이, 활짝 열리게 된 것입니다.
로마서 15:1
“우리 강한 자가 마땅히 연약한 자의 약점을 담당하고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할 것이라”
믿음이 강하고 건강한 사람이, 사랑할수 있습니다.
믿음이 연약한 자는, 사랑을 받는 존재가 될 수 밖게 없습니다.
이 자리에 계신 김포상도교회 성도님들은
믿음이 건강하고, 믿음이 성숙하고, 믿음의 활력이 충만하여,
예수님의 사랑을 뜨겁게 전하고 실천하며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2. 부활의 능력을 힘입을 때, 예수님의 사랑을 전할수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사랑은..... 그렇다면, 일방적으로 나의 힘, 나의 능력, 내가 원하는 대로 행하는 것이 예수님의 사랑인가? 아닙니다.
예수의 사랑이 바르게 열매를 맺기 위하여서는,
세상의 방법과는 다른, 아가폐 사랑의 과정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11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만일 누가 말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것 같이 하고 누가 봉사하려면 하나님의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는것 같이 하라 이는 범사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니 그에게 영광과 권능이 세세에 무궁토록 있느니라 아멘”
세상의 사랑을 보면, 사랑하다가 미워합니다.
사랑하다가 혜어집니다.
드라마를 보면, 사랑으로 시작하는데, 나중에는 막장으로 흐릅니다.
사랑으로 시작이 되는데, 왜? 끝은 미움과 시기와 배반의 열매가, 열리는 것입니까?
사랑에 변질이 일어 났기 때문입니다.
사랑이 상하고 잘못되어 버렸습니다.
믿음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의 사랑을 전하고 실천하는데, 다른 열매가 맺힌다면,
예수님의 사랑을 실천하는 과정에 문제가 발생되었기 때문입니다.
많은 그리스도인이 희생과 헌신과 양보를 하면서, 예수님의 사랑을 전하고 실천하지만
실패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과정과 목표가 잘못되기 때문입니다.
과정이, 내가 주인이 되어, 예수님의 사랑을 전합니다. 실천합니다.
목표가, 내가 정한 목표를 이루기 위하여, 예수님의 사랑을 전합니다. 실천합니다.
이렇게 과정과 목표가 잘못되면,
믿음생활 가운데, 예수님의 사랑이... 온전히 열매 맺지 못하는, 문제가 발생하는 것입니다.
11절 말씀을 보면,
말을 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것 같이하고,
봉사를 하려면, 하나님의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는 것 같이 하라..고 말씀합니다.
오늘 말씀을 보니까, 예수님의 사랑을 이루려면, 과정도 목표도, 완전히 성경대로 해야 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사랑을 온전히 이루는 과정과 목표는 무엇 입니까?
과정은, 나는 뒤로 숨고, 예수님이 주인이 되어야 합니다.
즉 나의 방식, 나의 방법으로 예수님의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공급해 주시는 힘과 능력과 말과 행동으로, 사랑을 실천 해야 하는 것입니다.
말을 할때도,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것 같이 하고,
봉사하는것도, 하나님의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는 것 같이 하고,
내가 하지만, 내가 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들어 나시도록 하는 것입니다.
목표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목표를 정하고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하여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을 통하여, 예수님께서 원하시는 목표가 달성되도록, 사랑을 실천해야 되는 것입니다.
11절 하반절 말씀보니까 목표가 있습니다. “이는 범사에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영광 받으시게 하려 함이니...”
즉 나의 사랑의 실천을 통하여,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영광받으시게 하는 것이, 목표가 되는 것입니다.
목사님 방법과 목표가 어렵습니다.
물론 어렵게 느껴질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하는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어떤 그리스도인이
나의 힘으로 희생하고 나의 능력으로 헌신 합니다.
그래서 내가 영광 받습니다. 내가 높힘을 받습니다.
하나님께서 받을 영광 내가 다 가로채고, 하나님이 받을 존귀를 내가 다 가로채어 버립니다.
이렇게 하는것을 교만이라고 하지요.
솔로몬 왕은 아가서를 쓰면서, 사랑의 온전함을 노래하였습니다.
하지만 솔로몬이 자신의 힘과 능력과 지혜를 의지하고 살아갈 때, 솔로몬에게 타락이 틈타고, 불신앙이 틈타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솔로몬왕을 사랑해 주셨지만, 솔로몬왕은 하나님으로 멀어지는, 불신앙의 사람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리스도인이 예수님의 사랑을 실천할때, 방법도, 말씀의 방법으로 해야 합니다.
목표도 하나님께 영광 올려드리는 것이, 목표가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 감사합니다.
예수님께서 힘을 주시고 능력 주셔서, 사랑을 실천하였습니다.
이 모든 일, 하나님께 영광 올려드립니다.”
이렇게 사랑을 실천할때, 하나님 앞에서 교만하지 않고,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지 않고,
항상 변함없이, 하나님과 동행하는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3. 열정적으로, 사랑을 실천해야 합니다.
9절 10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서로 대접하기를 원망 없이하고
각각 은사를 받은대로 하나님의 각양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 같이 서로 봉사하라”
예수님의 사랑을 실천할때는, 10절 말씀처럼, 내가 받은 은사를 총동원하여, 사랑을 실천 해야 합니다.
원망없이, 원없이 대접을 해주어야 합니다.
선한 마음으로, 선한 청지기가 되어서, 사랑을 실천해야 합니다.
우리교회 스타렉스를 제가 사랑을 하지는 않습니다만. 하지만 얼마나 아끼는지 모릅니다.
지금으로부터 10년 전에, 우리 원장로님하고 박옥자 장로님이, 장로임직을 하였습니다.
그때 임직감사헌금을, 천만원을 하였습니다.
그것이 종자돈이 되어, 그동안 교회에서 어렵게 모았던 재정을 보태어, 신차 스타렉스를 구입 하였습니다.
어렵게 구입한 스타렉스이다 보니, 저는 차 열쇠를 좀처럼 다른 사람에게 맡기지를 않습니다.
그저 기스라도 날까, 잘못되면 어떡하나.. 아끼면서 타왔습니다.
그런데 10년을 타고 보니까...이제는 차 곳곳에서, 찌그덕 찌그덕 소리가 납니다.
엔진도 다되어서 소리가 요란 합니다.....시동을 걸면.....까르르르르.....소리가 납니다.
이럴꺼면 무엇 때문에 그동안 그렇게 아꼈는지,
스타렉스를 마음껏 사용하여, 친교도 하고, 전도도 하고,
스타렉스를 더 열심히 사용할껄...하고 후회가 됩니다.
물건은 물건 자체를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물건을 사용하는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다.
만유는 주를 위하여 하고.. 모든 것은 예수님을 위하여 존재 하는 것입니다.
우리 주위에 있는 모든것은 하나님께 영광돌리라고, 우리에게 주신 것입니다.
나의 주위에 잇는 모든 것은 예수님의 사랑을 실천하라고, 나에게 주신 것입니다.
더 낡아지기 전에, 사랑을 실천하는데 사용하게 하겠습니다.
한번, 옆에 있는 사람을 보겠습니다.
척 보았을 때, 지금 보고 있는 사람이, 밉게 보이면, 사랑이 없는 것입니다.
부모님은, 아이가 실수하는 모습조차도, 사랑스럽습니다.
척 보았을때에, 멋있게 보이면, 사랑이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옆 사람을 보더라고,
예배드리고, 식당에서 식사를 하더라고,
예수님의 사랑으로 봐주고, 예수님의 사랑으로 이야기하고, 예수님의 사랑으로 식사를 해야 합니다.
다 먹고, 식당의 의자를 보더라도, 예수님의 사랑으로...“참 그 의자 잘생겼다.”.그러면 의자를 제자리에 잘 집어넣게 됩니다.
범사에 예수님의 사랑으로 눈으로, 생활해야 되겠습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믿음이 건강한 사람은, 예수님의 사랑을 실천할수 있습니다.
부활의 능력을 힘입을 때, 온전하게 예수님의 사랑을 실천할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사랑의 눈을 가질째, 나의 모든 것을 동원하여 예수님의 사랑을 실천할수 있습니다.
마지막때에 열정적이고 건강하고 온전한 예수님의 사랑을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해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