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후서 12장 7절 9절 내 은혜를 찾아서
여러 계시를 받은 것이 지극히 크므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시려고 내 육체에 가시 곧 사탄의 사자를 주셨으니 이는 나를 쳐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라
이것이 내게서 떠나가게 하기 위하여 내가 세 번 주께 간구하였더니
나에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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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에게, 빠짐없이 은혜와 능력을 주셨습니다. 하지만 나에게 주신, 내 은혜를 찾지 못하고 오히려 다른 사람이 받은 은혜와 능력만 바라볼때가 있습니다.
나는 나에게 주신 은혜를 찾았습니까?
만족하고 감사하는 사람은, 세상의 모든 것을 가졌기 때문에 만족하고 감사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날 세계에서 최고 부자는 미국의 마이크로소프트 빌게이츠라고 하지요?
하지만 빌게이츠 조차도, 이 세상의 모든 돈을 다 가지고, 이 세상의 모든 회사를 다 소유하고 있지 못합니다.
오히려 지금 마이크로소프트, 회사는 애플, 구글, 삼성 이런 회사들 한테 밀려서, 기를 펴지 못하고 있습니다. 손을 댄 사업이 족족 망해서, 지금 그 회사는 내리막 길을 걷고 있습니다.
하지만 뉴스를 보면, 빌게이츠는 반대로 만족한 생활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회사가 잘되고 망하고...그런 일 때문에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제3세계에 컴퓨터 없는 학생들에게 컴퓨터 보급을 하고,
수지 타산이 않맞는 불치병에, 약을 만들도록 후원하면서... 만족하고 있다고 합니다.
부인 메린다와 함께, ‘게이츠 메린다’ 재단을 만들고, 자신의 재산을 헌납 하였다고 하지요.
물론 세계 최고의 부자니까, 그런일도 하면서 만족할수 있는게 아니냐? 고 할수 있지만,
내가 그 자리에 있을 때, 나도 그렇게 할수 있을까? 란 질문을 던진다면,
그렇게 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 알수 있습니다.
우리나라에도 이젠 세계적인 부자에 들어가는 사람들이 있지만, 그렇게 하는 사람들은 아직 나타나고 있지 않습니다.
오늘 말씀은, 주제가 어렵고 딱딱한 내용일수 있습니다. 그러나 항상 우리가 마주하게 되는 중요한 내용이 아닐수 없습니다.
나는 만족하고 있습니까? 나는 무엇으로 만족하려고 하고 있습니까?
1. 그리스도인은 나에게 주신 은혜를 찾아서 감사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 7절 8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여러 계시를 받은 것이 지극히 크므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시려고 내 육체에 가시 곧 사탄의 사자를 주셨으니 이는 나를 쳐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라
이것이 내게서 떠나가게 하기 위하여 내가 세 번 주께 간구하였더니”
한가지 질문을 드려 보겠습니다.
“나에게 주신 은혜를, 믿음으로 알면서도, 감사하지 못한 적이 있습니까?”
그리스도인은 성경을 배웁니다. 성경을 읽으면서 깨닫습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은혜가 너무도 많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내가 이렇게 된 것은, 다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나에게 주신 건강,
나를 지금까지 인도해 주신 것,
다 하나님의 은혜임을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알고 있으면서, 감사하지 못하고,...알고 있으면서 만족하지 못할때가, 많습니다.
지식적으로는 분명히 알고 있습니다. 건강을 잃어버린 사람을 주변에서 봅니다.
어제까지 멀쩡햇는데 병원에 갔더니 심각합니다. 그래서 병원신세를 져야 합니다.
그런 소식을 접할 때 마다, 나의 건강함...이거 하나님께서 주신것 임을 다시한번 알게 됩니다.
어떤 장로님의 간증을 보았습니다만,
딸이 너무너무 착하게 반듯하게 잘 자랍니다.
서울대 의대에 들어갔습니다. 졸업하였습니다. 인턴도 잘 마쳤습니다.
보통 가정이라면, 서울대에 들어가는 것만 해도 어디입니까?
그런데 이 딸이 레지던트 들어가면서 헛것이 들리고, 헛것이 보입니다.
말을 횡설수설하고, 행동이 왔다갔다고..정신이 왔다갔다 합니다.
결국 하던것 다 내려놓고, 이 딸은 병원에 들어갔습니다.
차라리 그 자리까지 않갔으면, 덜 할텐데...
누구보다 반듯하게 잘 자라서, 그 병이 발병하니까...너무너무 속상하고, 너무너무 괴롭습니다.
자 이런 소식을 접할때면, 우리 자녀들은 무럭무럭 잘 잘 자라는 그것만으로도, 감사입니다.
분명히, 나에게 주신 은혜를 하나하나 생각하고, 떠올리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요, 만족하고 감사하지 않을수 없습니다.
이처럼, 지식적으로, 이성적으로는 감사할 내용이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지만,
마음으로 감사하지 못하고, 만족하지 못합니다.
믿음생활을 할 때, 감사의 믿음이 없습니다.
자 무엇이 문제이겠습니까?
지식적 감사가, 나의 의지적으로 고백적으로 연결되지 못하여....
감사생활이, 감사믿음이......... 자라지 못하고, 생겨나지 못하였던 것입니다.
무슨 말씀인고 하니....
내가 자전거 잘 타는 것을, 마음속으로 생각하고, 지식적으로 안다고,
내가 정말 자전거를 잘 탈수 있습니까? 아닙니다.
내가 마음속으로 자전거를 잘 타는 지식이 있으면,
이젠 직접 몸으로 자전거를 잘 탈수 있도록, 연습하고 배우고 익혀야,
비로소, 나는 실제로 자전거를 잘 타는 사람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즉 감사과 만족이, 지식적 이해로만.... 있어서는 않되고,
생활속에서 연습 되어져야 합니다.
감사와 만족은 배우고 익히고, 연습할 때, 비로소 실제 생활속에서 감사하고 만족하는 생활을 살아갈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생활할 때,
남편에게, 쏘아붙이는 아내가 있습니다.
사실 우리 남편이 좋다는 것, 나도 알지요. 하지만 내 성격이 그런걸 어떡해요?
아내에게, 퉁명스러운 남편이 있습니다.
사실 우리 아내가 좋다는 것, 나도 알지요. 하지만 내 성격이 그런걸 어떡해요?
마음속에 지식이 아무리 있어도, 실제 생활속에서 연습하지 않고, 계속 퉁명스럽게 말하고, 계속 쏘아붙이면,
마음의 생각과는 다르게, 실제는 감정에 골이 깊어집니다.
미움이 누적되고 그러면 되돌릴수가 없는 지경에 이를수 있습니다.
성격 고쳐야 됩니다.
나쁜 성격은 자랑이 아닙니다.
나쁜 말씨, 나쁜 행동은, 결코 개성이 아니라, 나의 가치를 깍아먹는, 버려야할 것들입니다.
목소리를 높이고, 언성을 높이고, 투박스럽게 쏘아 붙이고...하나도 도움이 않되는, 문제 행동일 뿐입니다.
늦기전에 말해야 합니다. “전세계에서, 당신이 최고야...”
“아니 이양반이 뭘 잘못먹고 채했나? 왜이래요..?”
그럼 대답해 주시기 바랍니다. “감사연습, 만족연습 하고 있어요”
“우리아들, 우리딸 최고야..." 꼭 연습해 보시기 바랍니다.
잠언 30장 15절
“거머리에게는 두 딸이 있어, 다오 다오 하느니라, 족한 줄을 알지 못하여, 족하다 하지 아니하는 것 서넛이 있나니”
성경을 보면 참 재미 있습니다.
감사하지 못하고, 만족하지 않고, 끝없이 달라고 달라고, 불평만 하고,
불만 스럽게 살아가는게 있는데, 바로 거머리의 두 딸이라고 말씀 합니다.
거머리는 사람에게 찰싹 달라 붙어서 피를 빨아 먹는, 지렁이 같이 생긴 동물이지요..
저는 어렸을 때, 논에 들어가 모심기를 하다가, 거머리가 제 다리에 달라붙은 적이 있습니다.
피가 뻘겋게 흘러 나오는데, 아프지도 않고 멈추지도 않습니다.
거머리가 너무너무 징그럽고 미웠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감사하지 않고, 만족하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나쁜 영향을 주며 살아가는 거머리 같다고 여겼던 것입니다.
시편 23:1 에는 말씀합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다윗은 부족함이 하나도 없었습니까? 아닙니다.
사울왕 때문에 하루도 마음편할 날이 없이, 도망 다녀야 했습니다.
잘못하여 잡히면, 그날로 죽게 됩니다. 그러니까 매일매일이 살얼음판입니다.
이렇듯, 다윗은 마음이 평안하고 흡족하여, 감사하고 만족한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의지적으로 하나님게 감사하고 만족하였습니다.
즉, 감사믿음, 만족믿음으로 살았던 것입니다.
감사믿음, 만족믿음으로 살아갈 때,
다윗은, 긴 고난의 세월을 찬송으로 이기고, 감사로 이기고,
마침내, 순리적으로 전국민이 인정하고 높혀주는 가운데, 왕으로 세워질수 있었습니다.
시편을 보면, 다윗이 지은, 감사찬송, 만족함으로 찬송하는 시편이 많이 있습니다.
찬송은 능력입니다.
감사와 만족은 조건의 반응이 아니라, 의지적 고백입니다.
연습할 때, 감사함으로 만족함으로 생활할수 있게 됩니다.
그렇다면
2. 나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머물도록, 나에게 있는 은혜를 잘 사용하고 있습니까?
9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나에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은혜는 영원히 이제 나의 것이 되느냐? 아닙니다.
주신분이 하나님 이시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언제든지 가지고 가시는 때가 있습니다.
구약성경에 보면, 삼손에게 하나님께서는 대단한 능력을 주셨습니다.
힘이 얼마나 장사인지, 천하무적입니다.
손에 잡히는데로 아무거나 잡고 휘두르니까, 블레셋 군인들이 천명이나 나가 떨어집니다.
자꾸 따라오면서 활을 쏘니까, 성문을 통째로 뜯어서 메고 걸어갔습니다.
그런데 아무렇게나 맘대로 힘자랑 하라고, 하나님께서 그 힘을 주셨겠습니까?
당연히 아니지요.
나실인으로써, 바른믿음 생활을 하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모범을 보이라고, 그 힘을 주셨던 것입니다.
처음에는, 삼손이 나실인으로써 바른믿음생활을 하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희망을 모범을 보여 주었습니다.
나실인이기 때문에, 머리카락을 깎지 않습니다.
나실인이기 때문에, 술을 마시지 않습니다.
나실인이기 때문에, 하나님 말씀대로 살아갑니다.
하지만 삼손이 어느 틈엔가? 나태함과 태만이 찾아오게 되었습니다.
머리카락을 깍지 않는것도, 들릴라에게 다 가르쳐 줍니다.
술을 마시지 않는것도 다 패스해 버립니다. 오히려 기생집에 찾아가 환락을 즐깁니다.
이방 여인 들릴라를, 마음속으로 연모하고 좋아합니다.
이제는 하나님의 말씀도 안하무인으로 생각하고,
일반백성들도 주저하는 것을
나실인으로써 하나님께 큰 능력을 받은 삼손이, 오히려 거리낌 없이 범할 때에,
하나님께서 한번 주셨다고, 그 능력을 계속 그대로 주시겠습니까?
들릴라에게 속아서 삼손의 머리카락이 짤릴때, 하나님께서는 삼손에게 주셨던 힘을 거두어 가십니다.
들릴라가, 재미있어 하면서 말합니다. “삼손 일어나세요...블레셋 군대가 왔어요”
삼손은, 하나님이 힘을 거두어 가신줄도 모르고, 일어나서 손에 침을 탁탁 뱃고, 폼을 잡고 힘을 쓰는데...
블레셋 군인 들이 겁을 내면서 툭~~~ 치니까...삼손이 툭~~~ 나가 떨어집니다.
이번에는 용기를 내어 블레셋 군인이 확~~~ 밀치니까...삼손이 힘 한번 못 쓰고... 반대편에 나가 떨어집니다.
그리스도인이 하나님 앞에 매어달리며 믿음생활 합니다.
세상에서 구별된 성도로써, 성경말씀 대로 살아갑니다.
그럴때는 천하무적입니다.
어려운 일이 생겨도, 눈물로 기도하면, 척~~ 척~~· 해결됩니다.
괴로운 일이 생겨도, 찬송하며 나가면, 물리치고 승리하게 됩니다.
그런데, 항상 하나님께서 능력을 주시고, 인도해 주시니까...
어느 틈엔가? 태만이 찾아옵니다. 나태함이 찾아옵니다.
내가 힘있 있고, 내가 신령해서 그런줄 알고...
모든 일이 형통하고, 평안하니까....
그 다음엔 기도가 점점 없어집니다.
찬송이 없어지고, 믿음이 떨어집니다.
그럴 때, 큰 일이 생깁니다. 어려운 일이 생깁니다.
이것 쯤이야...그전에는 더 큰 일도, 간단히 이겼는데,
그러면서 힘을 쓰는데, 힘이 나지 않습니다. 해결이 않됩니다.
급한 마음에, 하나님 앞에 나와 기도를 하는데, 마음에 느낌이 않옵니다.
성경을 보아도, 그 느낌이 않납니다.
그전에는 기도만 하면, 눈물이 흐릅니다. 가슴에서 뜨거움이 올라옵니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의 말씀이 팍~팍~· 마음에 꽂힙니다.
금방 금방, 아멘~ 이 나옵니다.
태만함으로, 교만함으로,
말씀에서 멀어지고, 믿음이 떨어질 때...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 하나님께서 주신 능력이 그대로 있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주신분이 하나님 이시기에, 거두어 가시는 분도 하나님 이십니다.
하나님께서 거두어 가시니까...
예전처럼 그게 당연히 내것인줄 알고 힘을 쓰는데, 보니까, 쓸 힘이 없습니다.
그 은혜가 다 어디가고 없더라고 하는 것입니다.
오늘 성경 본문에 사도바울의 고백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9절 하반절에 보면,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내가 받은 은혜와 능력과 신령한 계시들이 지극히 크고 많아서,
하나님께 대하여 교만하게 행하다가, 받은 것을 잃어버리면 않되니까.
사도바울은, 예수님의 능력이, 계속하여~ 내게 머물게 하기 위하여,
사도바울은 자만하지 않도록 힘썼던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자만하지 않을수 있을까?
마음으로 생각만 한 것이 아닙니다.
생활속에서 나의 육체의 가시를 기쁘게 생각하고, 나의 연약한 것을 자랑하여,
생활속에서 겸손연습을 하고, 자만하지 않도록 하는 훈련을 하였던 것입니다.
이 연습과 훈련이, 계속 되어질 때.
사도바울은 계속하여, 하나님께 받은 은혜와 능력과 계시를 잃어버리지 않고, 품고 갈수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 안에서 충만하게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은, 생활속에서 이 연습이 계속되어 져야 합니다.
그렇게 하는 것은, 믿음이 건강하다는 증거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좋은 것들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반대로 지금은 아무리 좋은 것을 가지고 있고, 그것이 다 내 것인것 같아도,
이 감사연습, 만족연습을 게을리 하면~
붙잡을 틈도 없이, 언제 그것이 있었나? 할 정도로 거두어 가실수 있습니다.
벌써 나의 품을 벗어난 것도 있습니다.
올해, 봄이 지나갔고, 여름도 지나갔습니다.
하나님께서 역사속으로 거두어 가시면, 봄, 여름이 아무리 좋아도 붙잡을수 없습니다.
다음주가 지나면, 추수감사 주일 예배를 드립니다.
어떻게 보면, 연습입니다. 훈련입니다.
감사연습이요, 만족훈련이요, 믿음훈련입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그리스도인은, 나에게 주신 은혜를 찾아서 감사해야 하겠습니다.
계속하여,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가, 내게 머물도록 해야 합니다.
의지적으로 감사연습을 하고 만족훈련을 할때, 생활속에서 감사생활 만족생활을 살아갈 수 있게 됩니다.
겸손하게 이 훈련과 연습을 잘하여,
감사믿음, 만족믿음으로 살아가는 김포상도교회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