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전서 12장 1절 7절 말씀에 이끌리어
형제들아 신령한 것에 대하여 나는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너희도 알거니와 너희가 이방인으로 있을 때에 말 못하는 우상에게로 끄는 그대로 끌려 갔느니라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알리노니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아니하고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
은사는 여러 가지나 성령은 같고
직분은 여러 가지나 주는 같으며
또 사역은 여러 가지나 모든 것을 모든 사람 가운데서 이루시는 하나님은 같으니
각 사람에게 성령을 나타내심은 유익하게 하려 하심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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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가 이제는 선선한 하기 보다는, 아침저녁으로 제법 쌀쌀한 것 같습니다.
어떤 분에게 인사를 드리면서 “집사님 날씨가 이젠 제법 쌀쌀하지요?”
그랬더니 대답합니다. “목사님 왜? 쌀쌀한지 아세요?. 쌀이 나오는 때이다 보니, 쌀쌀 합니다.”
들어보니, 진짜 그래서 그런가? 한참 동안 생각 했습니다.
그런데 한가지 분명한 사실이 있습니다. 날씨가 쌀쌀하다고, 그대로 끌려가면 않된다는 것입니다.
날씨는 쌀쌀하여도, 운동을 하고, 건강 관리를 하면,
쌀쌀한 날씨에 저항하게 됩니다. 끌려가지 않게 됩니다.
반대로 날씨가 쌀쌀하다고, 운동을 하지 않고, 건강관리를 하지 않으면
환절기에 감기가 들립니다. 겨울에는 몸살에, 독감에, 심하게 되면 폐렴도 걸리게 됩니다.
생명력이 왕성하고 건강한 사람은, 날씨에 끌려가지 않습니다.
감기를 물리치고, 오히려 날씨를 즐기고, 가을을 즐기게 됩니다.
믿음도 마찬가지입니다.
믿음이 건강한 사람은, 죄악에 끌려가지 않습니다. 우상이 끄는데로 끌려가는 사람이 아닙니다.
예수 이름으로 물리치고,
죄악을 이기고, 세상에서 활기차고 활력있게, 찬송하며 살아 갑니다.
반대로, 믿음이 연약하고, 믿음이 건강하지 못한 사람은, 죄악이 끄는데로 끌려 갑니다. 우상이 끄는데로 끌려가게 되는 것입니다.
1. 말씀에 이끌리는, 건강한 믿음의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까?
사도바울은 믿음이 일률적이고 똑같지 않음을 분명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늘 성경본문 1절을 보면, “형제들아, 신령한 것에 대하여, 나는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신령하고 은혜로운 믿음생활이 있습니다.
반대로, 신령하지 않고, 은혜롭지 않는, 생활도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믿음이 점점 자라는 존재입니다.
어디까지 자라게 되는 것입니까? 예수그리스도의 장성한 믿음의 분량에 까지 자라게 되는 것이 목표입니다.
어떤 그리스도인은 어린아이와 같아서, 이유식을 먹고, 약한 것을 먹어야 소화가 됩니다.
어떤 그리스도인은 믿음의 장성한 자와 같아서, 사명을 붙잡고, 찬송하고 감사하며 살아갑니다.
이시간 마음속으로 한번 질문을 해 보시기 바랍니다.
1에서 10까지 숫자가 있다면,
나의 믿음은 어디까지 성장 하였습니까? 1, 2 아니면 8, 9...
사도바울은, 모든 사람은 ‘믿음의 출발점’이 있음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2절입니다.
“너희도 알거니와 너희가 이방인으로 있을때에는...”
누구도 태어나자 말자? 믿음이 튼튼하고 예수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서 출발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누구나 시작할때는 어린아이의 믿음에서 출발합니다.
그리스도인이 처음 출발하는 상태는 어떤 믿음입니까?
바로 이방인으로 있을때와 같은 믿음의 상태입니다.
구체적으로 보면, 힘이 약하여...우상에게로 끄는 그대로 끌려가는 상태입니다.
어린아이는, 힘이 약해서, 강한힘에, 저항할 수 없습니다.
어린아이는, 생각하는 능력이 완성되지 못하였습니다.
어머니가 안아서 옮겨 주여야 합니다. 어머니가 젓을 주고, 이유식을 주면서 기릅니다.
그런데, 믿음도 마찬가지입니다.
처음 출발할때는, 힘이 약하여, 심지어는 죄악이 끌어도, 저항하지 못하고 끌려 갔습니다.
우상에게로 끄는 그대로 끌려 갔습니다.
이것이, 솔직한, 그리스도인의 믿음의 출발점 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잘못된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연약한 것은 사실입니다.
자, 연역하다고 그 자리에서 계속 그대로 가만히 있으면 않됩니다. 점차 점차, 신령한 것에 대하여 알아가면서, 믿음이 자라나고 믿음이 성장해야 하는 것입니다.
한번 따라해 보겠습니다. “신령한 것을 알고, 성장합시다.”
예수님은 우리의 믿음을, 밭에 비유하셨습니다.
옥토같은 밭이 있습니다. 가시덤불로 가득한 밭이 있습니다.
그런데, 한번 생각을 해 보겠습니다.
아무리 좋은 밭이라도, 그냥 가만히 놓아두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한달도 않지나서, 잡초가 파랗게 올라 옵니다. 몇 년 묶히면 가시덤불이 가득한 밭이 되고 맙니다.
잡초는 가꾸지도 않고, 비료도 않주고, 물도 않주어도, 너무나 잘 자랍니다.
그러나 쉽게 잘 잘자는 잡초는, 쉽게 자라는 이유가 있습니다.
잡초는 사람이 먹을수가 없습니다. 잡초는 추수할 것이 없습니다.
잡초가 잘 자란다고 가만히 놓아두면, 그 밭에서는 추수할 것이 아무것도 없게 됩니다.
곡식은 반대입니다.
곡식은 사람의 손을 필요로 합니다. 비료도 주고, 물도 주고, 잡초도 뽑아 주면서, 가꾸어야 합니다.
잘 가꾸면, 곡식이 자라나서, 추수를 하면, 많은 알곡을 모으게 됩니다.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내 마음을 가꾸지 않으면, 어디서 날와왔는지, 잡초같은 생각이, 수북히 자라나기 시작합니다.
가꾸지 않아도, 죄악의 생각, 게으름과 불신앙들은 너무나 잘 자랍니다.
잘 자란다고, 뽑아내지 않고, 그대로 두면, 거둘것이 없습니다.
그 사람은 가라지와 쭉정이가 됩니다.
반대로 알곡신앙은, 얼마나 손이 많이 가는지 모릅니다.
성경말씀 봅니다. 기도 합니다. 봉사하고, 예배드리고, 손이 너무너무 많이 갑니다.
많이 가는 이유가 있습니다.
이렇게 나의 마음밭을 잘 가꿀 때, 알곡이 가득하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귀하게 여기시고, 면류관을 씌워주시고 천국곡간에 들이는 믿음이 되는 것입니다.
베드로후서 3:17 에는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이것을 미리 알았은즉, 무법한 자들의 미혹에 이끌려, 너희가 굳센 데서 떨어질까 삼가라”
죄악이 이끄는데로 끌려가는 마음은, 자기의 구원을 방치하는 믿음입니다.
가만히 놓아두면 잡초만 가득한 밭이 되고 맙니다.
야고보서 1:14 에는 말씀합니다.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욕심이 이끌고, 각종 시기 질투 분냄이 이끄는데로, 살아가는 것은 너무나 쉽습니다.
가만히 있어도 자동적으로 그렇게 됩니다.
하지만, 욕심에 끌려 미혹받는 데로 살아가면, 복음의 열매, 성령의 열매는, 열리는 것이 하나도 없게 됩니다.
건강한 믿음의 사람은, 저항해야 됩니다. 죄와 욕심과, 세상이 끄는데로, 마냥 가만히 끌려갈 것이 아니라,
찬송으로 저항하고, 기도로 저항하고, 말씀으로 저항하고...
신령한 믿음의 삶, 은혜로운 믿음의 삶을 향하여 오히려 힘써 나아가야 하겠습니다.
부지런한 믿음, 가꾸는 믿음입니다.
나의 생각과 생활에, 잡초가 수북히 자라도, 그대로 끌려가는 것이 아니라,
불신앙의 생각들을 뽑아 내어야 합니다. 은혜롭지 않는 것은 뽑아 내어야 합니다.
그리고 알곡이 잘 자르는, 옥토같은 마음밭으로 가꾸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2. 어떻게 하면, 나의 믿음을, 잘 가꿀수 있습니까?
6절 7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또 사역은 여러 가지나 모든 것을 모든 사람 가운데서 이루시는 하나님은 같으니
각 사람에게 성령을 나타내심은 유익하게 하려 하심이라”
커피는 누구나 즐겨 마시는, 기호식품입니다.
그런데 커피에도 급이 있습니다.
500백원 짜리 동전을 넣고 자판기에서 먹는 커피가 있습니다.
5천원을 내고, 커피 전문점에서 마시는 커피가 있습니다.
싼 커피, 고급 커피는, 어떻게 나누어 집니까?
커피를 마시는 컵이 고급일 때, 고급커피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켜피의 원재료, 원두 라고 하지요? 원두가 가진 품질 때문에, 고급 커피가 됩니다.
커피의 원산지, 브라질에서 재배한, 최고급 원두를 가지고, 커피를 만들때, 최고급 커피가 되는 것입니다.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겉사람은 거기서 거기입니다. 모든 사람이 눈이 두개이고, 코가 하나이고, 입이 하나입니다.
겉사람을 보아서는 구분이 않됩니다.
속사람이 중요합니다.
성품이 어떠하고, 실력이 어떠하고, 능력이 어떠한지?
하드웨어가 보다, 소프트웨어가 더 중요 합니다.
믿음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겉사람도 중요하지만, 근본적으로 중요한 것은 속사람입니다.
시편에 보면, 시편기자가 끊임없이 말씀합니다.
“내 영혼아 하나님을 찬양하라”
“내 영혼아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 하는가?”
“나의 영혼아 잠잠히 하나님만 바라라”
왜? 시편기자는 끊임없이,
자기의 영혼을 향하여, 불안해 하지 말라..낙심해 하지 말라..하나님을 찬양하라고...
자기의 영혼을 향하여 말하고 있는 것입니까?
겉은 똑같은 사람입니다.
하지만 속을 들여다 보니, 낙심으로 가득차 있습니다. 불안으로 가득차 있습니다.
이정도면 그래도 괜찬습니다.
겉은 멋잇고, 매력 만점에, 사람입니다.
하지만 속을 들여다 보니, 원망과 시기와 질투가 가득차 있습니다.
심지어, 사회를 향하여, 폭력적 증오로 마음이 삐뚫어져 있습니다.
요즈음 은근히 뉴스에서, 많이 접하게 되는, 단어들이 있습니다.
‘사이코패스’ 라는 단어, ‘공황장애’ 라는 단어,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다 속병입니다.
겉사람은 멀쩡한데, 속사람이 병이들 때, 속으로만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겉으로 나타나서, 병적 생활로 나타나고, 문제 행동으로 나타나고, 겉사람의 문제로 나타나게 됩니다.
겉사람은 멀쩡한데, 갑자기 식은 땀을 흘리고 어쩔줄을 모릅니다.
겉사람은 멀쩡한데, 폭력적 행동을 하면서도, 자기 감정을 제어를 못합니다.
지금 우리사회는 겉사람이, 속사람이 문제인 시대가 되었습니다.
겉사람은 가꿀만큼 가꾸었습니다.
한류가 인기 있는 이유가 있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 만큼 잘생기고, 세련되고, 겉모습 좋은 사람들도 이젠, 없습니다.
일본사람들 보면, 옷은 그런데로 차려 입는데, 멋이 않납니다.
중국 태국 베트남, 사람들 보면, 촌스러운 티가 팍팍 납니다.
이젠 세계 어디에 가도, 우리나라가, 겉모습은 뒤처지지 않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속사람이 문제입니다.
언성을 높이고, 막말을 하고, 삿대질을 하고...
여유와 양보가 없고, .... 만족과 감사는, 전혀 없습니다.
오늘 본문으로 돌아가서, 그리스도인은 겉으로 형식적이 아니라, 속사람이 그리스도인이어야 하는데...
그 기준이 무엇입니까?
3절 보니까, 속사람이 예수님을 주로 고백해야 합니다.
4절 보니까, 속사람이 은사로 충만해야 합니다.
5절 보니까, 속사람이 직분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속사람이 이렇게 되게 하시는 것은, 그 사람을 유익하게 하시기 위하여,
성령님이 속사람에게 주시는 것입니다.
찬찬히 살펴보면,
그리스도인 되기 위하여서, 속사람이, 예수님을 나의 주로 인정하고 고백하고 변화가, 내 속에서 일어나야 합니다.
3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알리노니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아니하고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
주는, 주인입니다.
주인은 둘이 될 수 없지요. 예수님이 주인이 되면, 나는 예수님의 종이 되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스스로를 ‘예수그리스도의 종, 사도 바울’이라고 당당히 소개를 합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모두, 스스로를 예수님의 종이라고, 불리우기를 기뻐하였습니다.
참 그리스도인은, 나는 종으로 낮추고, 예수님은 나의 주인으로, 마음속에서 고백을 해야 합니다.
또한, 참 그리스도인은, 은사를 받아야 합니다.
은사, 헬라어로는 ‘카리스마’입니다. ‘은사’는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사용하려고 받은 능력이 되겠습니다.
찬양의 은사...하나님의 성호를 찬양하기 위하여 받은 은사입니다.
봉사의 은사...하나님의 나라를 경영하기 위하여 받은 은사입니다.
말씀의 은사...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하기 위하여 받은 은사입니다.
기도의 은사...하나님의 뜻과 섭리를 이루기 위하여, 받은 은사입니다.
은사는 너무나 다양하고 많습니다. 하지만 목적은 한가지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사용하려고 받는 것입니다.
카리스마, 절대로, 나를 높이고 나의 욕심을 위하여, 사용하면 문제가 발생하게 됩니다.
그래서 청교도 들은, 세상에서 살아갈때도, 권력의 카리스마, 재력의 카리스마, 어떤 카리스마도,
자기의 욕심을 채우는데 사용하면 않되고, 하나님을 높이는데 사용해야 된다는
분명한 인식이 있었습니다.
서양에서는, 장관을 영어로 ‘미니tm터’ 라고 부릅니다.
이 장관이라고 하는 말이, 성경의 집사에 나왔습니다.
‘섬기는 자’, ‘청지기’를 뜻하는 말인, ‘미니스터’의 헬라어는 ‘디오코노스.’ 인데.. 바로 청지기, 집사입니다.
서양에서는 ‘장관’, 그러면 ‘섬기는 자’ 라는, 성경적 이해가 있습니다.
또한 참 그리스도인은 직분을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카리스마를 사용하는, 구체적인 직분이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10년, 20년을 교회에 다니는데, 살짝 왔다, 살짝 가는, 산타할아버지와 같은 그리스도인이 있습니다.
살짝 왔다가 살짝 가는 것은, 믿음이 건강하다고 할수는 없습니다.
‘나의 나 된것은, 하나님의 은혜’라고, 사도바울은 자랑스럽게, 자신의 직분인, ‘이방인의 사도’를 분명하게 자랑스러워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하지 않으려면, 구체적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맡은 사명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속사람이, 믿음과 은사와 사명으로 충만하게 될 때,
그 사람은 성숙한 믿음, 거룩한 성품, 복음의 열매를 맺어가는, 옥토같은 그리스도인의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추수의 계절, 가을이 되었습니다.
죄가 끄는 데로, 끌려가는 것은, 힘이 들지 않습니다. 만....
하지만 그렇게 방치하면, 잡초로 쓸모없는 밭이 되어 집니다.
가꾸어야 하겠습니다. ..
믿음과 은사와 직분으로 잘 가꾸어,
복음의 열매를 추수하는 성도들이,
이 가을에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해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