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하 6장 11절 12절 온 집에 주신 복
여호와의 궤가 가드 사람 오벧에돔의 집에 석 달을 있었는데 여호와께서 오벧에돔과 그의 온 집에 복을 주시니라
어떤 사람이 다윗 왕에게 아뢰어 이르되 여호와께서 하나님의 궤로 말미암아 오벧에돔의 집과 그의 모든 소유에 복을 주셨다 한지라 다윗이 가서 하나님의 궤를 기쁨으로 메고 오벧에돔의 집에서 다윗 성으로 올라갈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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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주의 철학자 루소는 ‘자연으로 돌아가라’고 하였습니다.
사람은 스스로, 하나님이 만드신 피조물임을 잊어버리고... 자연밖에 있는 존재, 자연과 관계없는 존재인것 처럼 행동할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교만한 생각으로 살아갈 때, 많은 문제가 발생하게 됩니다.
옆에 있는 것을 끌어다가, 문제라는 구멍을 막습니다. 그러면 그 옆에서 문제가 발생합니다.
나중에는 발생하는 문제를 막을 길이 없습니다.
해결책은 자연속에 있습니다.
사람은 하나님께서 만드신 피조물입니다. 교만을 버리고, 피조물된 자리로 돌아가야 합니다.
자연속에는 인간이 깨닫지 못한, 무궁무진한 해결책이, 이미 숨겨져 있습니다.
아이들이 흙장난 하는 흙속에는 스트렙토마이신을 비롯하여 병균을 이기는 천연항생물질이 있습니다.
우리의 몸을 건강하게 해주는, 붉은색 채소, 각종 항암물질이, 자연속에 있습니다.
가정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제는 다시 가정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오늘날 사회는 많은 병을 앓고 있다. 외로움, 이기심, 분노, 1인가구,
사람은 스스로, 가정에 속한 존재임을 잊어버리고, 가정밖에 있는 존재, 가정과 관계없는 존재인것 처럼 행동할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교만한 생각으로 살아갈 때, 많은 문제가 발생하게 됩니다.
사회학적으로 가정은 ‘1차 공동체’ 하지요. 사회는 여러 공동체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학교, 마을, 회사, 국가...하지만 이 모든 공동체를 떠받치는 기초가, 가정이라고 하는 공동체입니다.
가정은 무엇으로도 대채할수 없습니다.
가정이 무너지면, 사람이 무너지는 것입니다.
가정이 흔들리면, 사람이 흔들리는 것입니다.
왜 오늘날 많은 사회적 문제가 발생하고 있습니까?
답은 오히려 간단합니다.
가정이 흔들리고, 가정이 병들고, 가정이 무너지고 있기 때문에
사회가 흔들리고, 사회가 병들고, 사회가 무너지고 있는 것입니다.
다시 가정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가정이 건강하게 되면, 내가 건강하게 됩니다.
가정이 튼튼하게 되면, 내가 튼튼하게 됩니다.
가정이 희망이 넘치면, 내가 희망이 넘치게 됩니다.
그렇다면
1. 가정 중심에 무엇이 있어야 합니까?
오늘 말씀에 보면, 가드사람 오벧에돔의 집에, 법궤가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가드 사람이라 함은, 오벧에돔이 블레셋 사람이라는 것을 알수 있습니다.
가드는 블레셋의 주요도시로, 골리앗이 바로 이 가드 출신이 되겠습니다.
그러니까, 오벧에돔은 이스라엘 사람이 아니라, 블레셋 사람입니다.
아브라함의 자손이 아니라 이방인입니다.
그런데 갑자기 법궤가 집으로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오벧에돔의 집으로 법궤가 들어오게 된 것은 전적으로, 우연한 사건이었습니다.
다윗이 법궤를 옮기면서, 성경말씀대로 법궤를 옮기지 않았습니다.
성경에 따르면, 법궤는 제사장들이 메고 옮겨야 합니다.
그런데 다윗은 편리하게, 소가 끄는 수레에다가 법궤를 싣고 옮겼습니다.
제사장들이 성결하게 준비하고, 세마포 옷을 입고, 정성스럽게 메고 옮겨야 할 법궤를...
편리하게 한다고 소가 끄는 수레에다가 실어서 옮길때에,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겠습니까?
소가 뛰돌고, 법궤가 떨어질뻔하고, 그 법궤를 잡다가 하나님의 진노를 사서, 사람이 그 자리에서 ‘즉사’하는 사건이 벌어지게 되었습니다.
사람이 죽고 난 다음에야, 다윗이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하나님이 진노하셨구나.
잘못하면 나에게도 그 진노가 미칠수 있겠구나..
그래서, 급하게 옆을 보니까...집이 하나 있는 것입니다.
얼른 그 집...안으로 법궤를 밀어 넣고, 황망히, 뿔뿔히...흩어졌습니다.
편의주의를 그리스도인은 경계해야 합니다.
기도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데, 편리하게 목사님한테 부탁하고 말지...
물론 저는 기도제목을 받으면 기도합니다.
하지만 성경에 보면, 예수님께서 소원을 들어주실 때 꼭~하시는 것이 있습니다.
“믿음을 보시고 이르시되 소야자 일어나라....”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에게 이르시되...작은자야 네 죄사함을 받았느니라”
예수님께서는 먼저....그 사람의 믿음을 살펴 보시고, 예수님께 의지하고, 하나님께 기도하고, 성령님께 순종하는 믿음이 있을때에야, 고쳐주시고 소원을 들어 주셨던 것입니다.
반대로 믿음이 없을 때에는....예수님께서는 아무 권능도 행하시지 아니하시고, 나사렛을 떠나셨습니다.
수요예배, 금요기도회, 주일예배, 오후 찬양예배... 무엇 때문에... 불편하게 하나님을 만나려고 합니까?
편리하게 대충대충 살다가, 힘들 때 한번 기도하면 되지요..
편리하게 일년에, 송구영신예배 한번만 드리고, 한해 그냥 보내면 되지요.
그것이 편리할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그러시지 않겠습니까? “얘 너는 편리하게 나를 만나려 하였으니, 나도 편리하게 너를 대하는 것을, 네가 원망하치 못할 것이다.”
무릎꿇고 기도를 하고, 눈물 흘리며 기도 하고, 밤이 늦도록 기도를 하고...
예배를 드릴때도 땀을 뻘뻘 흐리면서, 온 정성을 다하여 예배를 드리고...
하나님이 받으시는 정성스러운 믿음은... 헌신과 희생과 순종이 없이는 되지 않는다고 하는 것입니다.
다윗이 편의주의적으로 행할 때... 하나님은 진노하시고, 법궤를 붙잡던 사람이 죽고..
다들 깜짝 놀랐습니다. 하나님께서 진노하셨으니, 법궤로부터 나오는 이 진노를, 이스라엘 사람이 받으면 그러니까...블레셋 사람의 집에다 받도록 하자...
그래서 블레셋 사람 오벧에돔의 집으로, 법궤를 들여 놓았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찌되었던...오벧에돔은 하는수 없이, 진노하신 하나님의 법궤를, 집으로 모셔드리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반전은 여기에서부터 출발합니다.
11절 말씀 보면, 석달을 있었는데, 오벧에돔의 집이 그때부터, 하나님의 복을 받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 복이 무엇인지, 12절에 구체적으로 나옵니다. 오벧에돔의 집과, 그의 모든 소유에 복을 주셨습니다.
즉 오벧에돔의 집이 잘되고, 평안하고, 형통하고..
그의 모든 소유... 당시 소유라면 가축이 있고, 논밭이 있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그것이 잘되는 것입니다.
가축들이 새끼를 쑥쑥~놓으면서, 가축의 수가 막 불어납니다.
다른집들은 열매가 그럭저럭인데, 오벧에돔의 밭에는 열매들이 굴직굴직 하고, 탱글탱글합니다. 숫자도 30배 60배 100배입니다.
차이가 무엇입니까? 법궤가 들어가고 난 다음부터 이런일이 생기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도 마찬가지입니다.
보통, 장로님들의 가정을 보면, 소유의 복을 받을 때가 많습니다.
똑같은 일을 하여도, 매출이 틀립니다. 다른사람들 보다, 십일조가 갑절이나 많습니다.
가정도 평안하고, 자녀들도 잘됩니다. 형통하고 건강으로 살아갑니다.
감사헌금이 끊이지를 않습니다.
장로님들의 가정중심에 있는, 믿음이 틀리니까.
하나님을 향한 믿음이 틀리니까..
하나님께서는 장로님들 가정에는....오늘날도...온 집과 소유에 복을 주시는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은, 영적인 복, 지혜의 복, 뿐만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은, 건강의 복, 재물의 복, 형통의 복도, 이 세상의 복도,... 하나님께서는 아낌없이 주십니다.
이삭이 그랬고, 요셉도 그랬고, 다니엘도 그랬습니다.
오늘 오벧에돔의 집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진노의 법궤가 들어왔으니, 얼마나 마음이 떨렸겠습니까? 조심스러웠겠습니까?
가정 전체가 법궤를 중심으로 살아갈수 밖게 없습니다.
법궤는 잘 있나?
법궤 앞에서... 몸가짐은 잘하고, 말과 행동은 조심 하여라?
오벳에돔이 가족들을 단속하고 또 단속하였을 것입니다.
아침저녁으로 법궤 앞에서 예배를 드리며 조심을 하였을 것입니다.
온 가정이 법궤 중심으로 살아가니까...하나님께서는 이방인의 가정이라도...그 가정에 복을 쏟아 부어 주시더라고 하는 것입니다.
법궤라는 것이 사실 별다른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십계명을 담고 있는 상자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십계명대로 살아가면, 오늘날도 하나님께서는 오벳에돔의 집에 복을 주시듯이, 그 복을 그대로 주시는 것입니다.
간단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가정 중심에 세우고
성경말씀 중심으로 살아가면,
그 온 집과 소유에는, 하나님께서 복이 부어질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렇다면.
2. 가정이 말씀중심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어떤 것입니까?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생활하는 것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바램과 기대와 욕심이 있다. 이렇게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하는 일들이 잘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보면, 사람이 하는 ‘일의 영역’이 있고,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의 영역’이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내가 계획을 세웁니다. 내가 힘을 씁니다. 내가 노력을 합니다.
하지만 결과는 나의 일이 아닙니다.
결과는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입니다.
내가 힘은 쓰지만, 일의 결과는 주어지는대로 받을수 있는, 믿음의 태도가 필요합니다.
일의 결과가....내가 계획한 대로, 될 때도 있고 않될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내가 계획한 대로 되는 것이, 반듯이 좋은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소아시아로 가고 싶었지만 계획대로 않되었습니다. 길이 자꾸 막히는 것입니다.
바울은 결과를 그대로 받기로 하였습니다. 기도하면서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데로...소아시아가 아니라 데살로니가로 갔습니다.
그래서더니 그 발걸음이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는 발걸음이 되어, 유럽에 복음이 전파되는, 서양이 기독교의 대륙이 되어지는, 출발점이 되었습니다.
요셉은 종으로 팔려 갔습니다. 왕의 감옥에 끌려 들어갔습니다. 이이 자꾸 않되는 것입니다.
요셉은 결과를 그대로 받기로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을...인내하면서 기다렸더니
그 옥에서 왕의 신하를 만나, 꿈을 해몽해주고, 애굽의 총리가 되는, 지름길이 되었습니다.
이사야 55:9 에는 말씀합니다.
“이는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의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의 생각보다 높음이니라 ”
내 생각과 나의 지혜를 중심으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성경말씀대로,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나의 결과를 맡기고, 순종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으로 돌아와서,
가드사람 오벧에돔의 집에, 법궤가 들어오는 것이, 오벳에돔 자신의 계획이었겠습니까?
방금도 그 법궤 옆에서, 사람이 죽어 넘어지는 것을 보았습니다.
어떻게 기쁜마음으로,....법궤를 나의 집에 모셔드릴 맘이 있겠습니까?
부담스럽습니다. 엄청나게 꺼려질수 밖게 없습니다.
하지만 순종하였습니다. 나의 생각, 나의 계획을 내려놓고
법궤가 들어오는 것을 보면서...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맡겼습니다.
사실, 사람이 힘쓰고, 아무리 좋은 계획을 하여도, 결과는 ‘결과의 법칙’에 의하여 나타나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과학자들이 실험을 하는데, 쌍둥이가 있습니다.
이 일란성 쌍둥이가, 각각 다른 집에 입양을 가게 되었습니다.
한 사람은 좋은집에 입양을 갔습니다. 잘먹고, 잘 배우고, 다이어트도 하고, 운동도 하고, 병원도 자주가고, 건강검진도 받고...
다른 한 사람은 가난한 집에 입양을 갔습니다. 못먹고 못배우고, 다이어트는 커녕, 운동이 아니라 막노동을 합니다.
그리고 30년이 지나서 우연히 만나게 되었습니다. 만나고 보니, 키가 똑같습니다. 1센치도 않틀립니다. 몸무게도 똑같습니다. 건강상태도 똑같습니다.
키가 몇센치가 자라는지, 이미 정해져 있습니다.
머리가 좋고, 공부를 잘하고, 성격이 좋고...이미 정해져서 태어 났습니다.
하드웨어는 어머니쪽을 닮고, 소프트웨어는 아버지쪽을 닮는 다고 하지요?
“아유, 그 성질 꼭 자기 아빠를 닮았어” 성격, 감정 등은 아버지 쪽입니다.
반대로 키, 아이큐.. 이런 부분은 어머니 쪽에 영향을 더 받는다고 합니다.
“우리 어머니는 키가 작은데, 나는 키가 큰데요...”
그럼 외삼촌들 가운데, 키가 큰 사람이, 있을 수 있습니다.
한 사람의 건강, 라이프 스타일, 생활..어떻게 보면, 다 정해져서 시작되는 것입니다.
자 그렇다면, 이미 정해진 대로 살아가는 것이, 인생인가?
그런데 오늘 말씀보니까, 오벳에돔은, 법궤를 모셔드리는 순간, 이미 정해진 것이 아니라,
법궤중심의 생활을 살아가면서, 하나님께서 이끄시는 생활로 바뀌게 되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말씀대로 살아가는 가정, 말씀에 순종하는 가정에서 일어나는 역사라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중심으로 살아가면, 하나님의 계획과 인도하심으로 그 가정이, 바뀌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3번째로...하나님 중심으로 살아가는, 경건한 생활은 어떤 생활입니까?
하나님 앞에서 조심하는 생활입니다.
상스러운 말을 않쓰고,
함부로 화를 않내고, 욕하지 않고,
성경말씀에 있는데로 생활하는 것이, 거룩한 생활이요, 하나님께 가까이 나가는 생활인 것입니다.
세상에 어떤 가정을 보면, 욕으로 시작해서 욕으로 끝나는 가정이 있습니다.
십원짜리 욕은 그냥 양념이고, 말의 종결어가..욕으로 끝이 납니다.
남편이 욕을 하면, 아내가 욕을 하고, 자녀가 욕을 하고...
제가 어릴 때, 중학교 선생님이 학교에 딸을 대리고 왔습니다.
다섯살 쯤 되어 보입니다.
선생님이 너무너무 자기 딸이 이쁘니까....
자기 딸을 보고 말합니다. “세상에 누구집 딸인지, 더럽게 예쁘네...”
딸이 셀쭉 웃더니 말합니다. “아빠 빙...시~~”
‘빙시’라는 말이 뭔지 모르시죠? ‘병신’의 사투리입니다.
예쁘면, 예쁘다고 할 것이지..‘더럽게 예쁘다’는 말은 무엇입니까?
거기다가..아빠를 보고, 다섯 살 짜리 아이는, ‘빙시’라고 하고...
제가 그 대화를 듣고, 어린마음에 얼마나 충격을 받았는지, 학교선생님과 딸이.... 대화를 하는데 욕을 사용하다니...깜짝 놀랐습니다.
임마누엘의 가정은 어떤 가정입니까?
임마누엘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계시는 가정은 어떤 가정인가?
하나님이 계실수 있도록, 삼가고, 조심하면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것은 불편한 것이 아닙니다.
성숙하여 지고, 인격이 높아지고, 품격이 깊어지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4:40 에는 말씀합니다.
“모든 것을 품위 있게 하고, 질서 있게 하라”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인으로써 향기가 나야 합니다.
사탄이 그 향기를 맡고, 깜짝 놀라서 얼씬도 못하고 물러가고...
악한 것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향기를 맡고, 깜짝 놀라서 도망가 버리고...
반대로 더러운 곳에는 구리구리한 냄새가 납니다. 그러면 어떻게 알았는지 파리가 몰려 오는지...
그리스도의 향기가 아니라, 나쁜냄새 더러운 냄새가 나면...악한 것들이 좋아하면서 몰려오게 되는 것입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가정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가정에서 다시 출발해야 합니다.
가정중심에 법궤가 있고, 십계명이 있고, 하나님의 말씀이 있으면, 그 가정은 성경말씀 그대로 이루어지는 가정이 되어 집니다.
임마누엘의 가정은, 하나님께 맡기고 순종하는 가정입니다. 믿음의 품격과 품위가 있어서 예수그리스도의 향기가 나는 가정입니다.
예배에 참석한 모든 가정은, 이러한 믿음의 가정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