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22장 11절 20절 여호와이레
여호와의 사자가 하늘에서부터 그를 불러 이르시되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하시는지라 아브라함이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매
사자가 이르시되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그에게 아무 일도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까지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
아브라함이 눈을 들어 살펴본즉 한 숫양이 뒤에 있는데 뿔이 수풀에 걸려 있는지라 아브라함이 가서 그 숫양을 가져다가 아들을 대신하여 번제로 드렸더라
아브라함이 그 땅 이름을 여호와 이레라 하였으므로 오늘날까지 사람들이 이르기를 여호와의 산에서 준비되리라 하더라
여호와의 사자가 하늘에서부터 두 번째 아브라함을 불러
이르시되 여호와께서 이르시기를 내가 나를 가리켜 맹세하노니 네가 이같이 행하여 네 아들 네 독자도 아끼지 아니하였은즉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가 크게 번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성문을 차지하리라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니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니라 하셨다 하니라
이에 아브라함이 그의 종들에게로 돌아가서 함께 떠나 브엘세바에 이르러 거기 거주하였더라
이 일 후에 어떤 사람이 아브라함에게 알리어 이르기를 밀가가 당신의 형제 나홀에게 자녀를 낳았다 하였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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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어버이 주일입니다.
그래서 이삭이 바라보았던 ‘아버지 아브라함’에 대하여 말씀을 전하려고 합니다.
모든 자녀들은 부모님을 기억합니다. 나를 사랑하는 부모님, 나와 동행하는 부모님,
오늘 본문에 나오는 이삭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삭은 부모님의 외동아들입니다. 어릴 때부터 최고의 사랑받으며 자라 났습니다.
더욱이 아브라함이 100세, 사라가 90세에 이삭이 태어 낳습니다.
그래서 이름이 이삭-웃음입니다. 기쁨의 웃음이요, 또한 놀라움의 웃음입니다. “우리 가정에 이삭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브라함이 100세, 사라가 90세 인데, 아이가 태어 낳어요.~” 아브라함과 사라이 가정에 이삭이 태어난 것은, 정말 하나님의 특별하신 은혜가 아닐수 없습니다.
이삭은 무럭무럭 자라서 젖을 떼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조그만 등짐을 질 수 있는 어린이로 자라났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은, 아마도 이삭의 나이가 초등학생 때 정도가 되지 않았을까? 생각해 봅니다. 초등학교 1학년은 8살 이지요. 초등학교 2학년은 9살 입니다. 그러니까 아버지 아브라함으로써는 108살 109살 정도 되던 때의 사건이라고 할수 있겠습니다.
1. 아브라함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아버지 였습니다.
어느날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말씀 하십니다. 오늘 본문 위쪽에 2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일러 준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
하나님께서는 조건적 신앙을 넘어서서, 온전히 하나님과 동행하는 신앙에 이르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의 믿음도 점점 깊어지고 점점 성숙하도록, 끊임없이 단련시키시고 연단 시키셨습니다.
자, 아이일때는 과자를 사주면 너무너무 좋아합니다.
하지만, 초등학생이 되어서도 과자를 사주면 너무너무 좋아합니까? 아닙니다. 초등학생 정도가 되면 스마트폰 이라도, 사주어야 좋아합니다.
중학생 고등학생이 되면 또 틀려집니다. 그때가 되면 호기심도 생기고 꿈도 생깁니다.
장성하게 되어 어른이 되면, 무엇을 받으므로 기뻐하는 것을 넘어서, 책임을 잘 완수하였을 때 성취감을 느끼며 기뻐합니다. 또한 가정과 자녀들에게 헌신하며 기뻐합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아브라함도 처음에 시작할때는 조건적 신앙으로 시작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복의 근원이 되게 하여 주시겠다는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출발하였습니다.
하지만 곧 아브라함은 믿음이 점점 성장 합니다. 조카롯 살고있는 소돔과 고모라가 죄악으로 인하여 멸망 당한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럴 때, 아브라함은 책임감 있는 믿음으로, 하나님께 기도를 드립니다. “하나님 소돔 고모라에 의인 10명이 있으면, 소돔과 고모라가 멸망 당하지 않게하여 주시옵소서”
또, 조카 롯이, 엘람왕에게 잡혀갔다는 소식을 듣을 때는,~ 아브라함은 자신의 안위는 돌보기 보다는, 조카 롯을 구하기 위하여, 다메섹 까지 쫓아가서, 롯을 구하여 돌아옵니다.
그렇습니다. 아브라함은 믿음의 책임감, 믿음이 성숙하여 가족들에게 헌신함으로 기뻐하며 살아가는, 장성하고 성숙한 믿음의 소유자가 되었습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는 또 한번,~ 아브라함의 믿음이 더~ 깊어지도록, 만드십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아브라함,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는 아브라함이 되도록 하나님께서는 백세에 낳은 독자이삭을 번제로 드리라는 명령을 주십니다.
마태복음 3:9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고 생각하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
이삭은 아브라함에게 너무나 소중한 아들입니다. 하지만 이삭이 아브라함의 아들인가? 물론 이삭은 아브라함의 소중한 아들입니다. 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이삭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 주신, 생명의 선물이요, 태의 열매라고 하는 것입니다.
즉, 이삭을 이 세상에 보내어 주시고 태어나게 하신분은, 먼저 하나님 이시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에게 있어서 이삭은 나의 아들인 동시에, 하나님께서 주신 아들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즉, 소유권과 근원이 나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있음을 깨닫고 고백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나에게 있는 건강, 그 소유와 근원이 나에게 있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건강을 주셔서, 건강이 나에게 있는 것입니다.
만일, 건강이 원래 나에 소유였으면, 건강은 영원히 나에게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건강은 점점 어디론가 사라집니다.
예전에 시골에 어머니들을 보면,~ 물동이를 양손에 들고, 머리에 빨래 다라이 이고, 그러면서도 걸어갑니다. 얼마나 건강이 좋습니까?
하지만 10년이 지나고 보니까? 얼굴에 주름살이 생깁니다. 머리에 빨래 다라이 이고, 이제는 도저히 양동이를 들지를 못합니다. 이제는 물동이 들때마다 허리가 아파서 허리를 두드립니다.
그러면서 또 10년이 지나면, 이제는 허리가 굽어지기 시작합니다.
아니, 나에게 있던 건강이 왜 점점, 어디로 사라지는 것입니까?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셨던 건강을, 하나님께서 가지고 가시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본향은 이 세상이 아닌것을 깨닫게 하시기 위하여서 입니다.
히브리서 11:16 에는 말씀합니다.
“그들이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들의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시고 그들을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
그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는, 이 세상에 나의 본향이요, 이 세상의 것은 나의 소유요, 이 세상이 나의 전부이다.라는 편협한 생각에서, 성숙해져야 하겠습니다.
오늘 본문에 아브라함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100세에 낳을수 없는 아들을 낳게 해 주셨으니, 이삭을 주신분은 하나님이신줄 분명히 알고, 그 이삭을 하나님께 번제로 바치라~ 고 말씀 하셨던 것입니다.
그럴 때, 아브라함은 그 말씀에 순종하여, 이삭을 하나님께 번제로 드리기 위하여, 모리아 산으로 올라~ 가기로 하였습니다.
오늘 본문 위쪽에 4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제삼일에 아브라함이 눈을 들어 그 곳을 멀리 바라본지라”
즉 아브라함은 이삭을 번제로 드리기 위하여 집에서 출발하여 삼일동안 모리아 산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자~아브라함의 이 3일동안의 모습을 누가 지켜 보았습니까? 아들 이삭이, 삼일동안 아버지의 그 얼굴, 그표정, 그 근심, 그 결심을 모두~ 지켜보게 되었습니다.
아이가 아무리 센스가 부족하고, 눈치가 없고, 목석이라고 하여도, 아버지의 자기를 대하는 느낌을 어떻게 모를수가 있겠습니까?
아버지 아브라함이 모리아 산을 향하여 가는 3일동안, 시시때때로, “주여~ 주여~”하면서 하루에도 몇 번씩, 힘들어 하지 않았겠습니까?
또한 아무리 아이라도, 다~ 생각이 있는데, 이삭이 나이가 어려도, 너무 이상하여, 아버지 아브라함에게 묻습니다.
7절 하반절에 말씀합니다. “이삭이 이르되 불과 나무는 있거니와 번제할 어린 양은 어디 있나이까?”
어린아이라 하더라도, 평소에 아버지가 어떻게 예배드리는지 지켜보아서, 알건 다~ 압니다.
예배를 드리려면, 먼저 다듬지 않는 돌로 단을 정성드려서 쌓아야 합니다.
단을 다~쌓으면, 그다음에 예배를 시작합니다. 기도를 드리고, 나의 죄를 대신하여 제단위에 번제를 드립니다.
집에서 기르는 양과 염소중에서 제일~정하고 깨끗한 것을 구별합니다. 구별한 제물을 정성스럽게 잡아서, 제단 위에 올려 놓습니다. 그리고 불을 피워, 제물이 다~ 없어질 때 까지 태웁니다.
“이 양은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셨는데, 이제 그 양을 모두 태워 다시 하나님께 드립니다.”
내가 이 양의 모든 것을 하나님께 드리오니, 나의 정성을 받으시고,
이제 나의 죄를 도말하시사, 하나님의 얼굴을 나에게 돌리시고, 나의 기도와 간구를 들어 주옵소서”
그리고 가족들이 모두, 마음의 소원을 하나님께 아룁니다.
이삭은 아버지 아브라함이 평소에 예배드리는 것을 다~ 지켜 보았기 때문에, 예배드릴 때 무엇을 준비하여야 하는지, 어떻게 예배드려야 하는지 다~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옛말에 아이들 앞에서는 냉수도 못 마신다는 말이 있지요. 아이들은 부모님의 모든 것을 배우고, 습득하고, 흡수하여 자신의 것으로 만듭니다.
부모님의 말과 행동, 부모님의 성격, 부모님의 일을 처리하는 지혜, 또한~ 부모님의 믿음까지, 다~ 지켜보고, 배우고, 습득하고, 흡수를 합니다.
본문으로 돌아가서, 이삭의 이러한 질문에 아브라함은 마음이 얼마나 철렁하겠습니까? 하지만 담담하고 조용하게 이삭을 바라보며, 대답을 합니다.
8절 하반절에 말씀하니다. “아브라함이 이르되 내 아들아 번제할 어린 양은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시리라”
자~ 어린 이삭이, 이러한 아버지의 대답을 들을 때, 아직도 도무지 이해가 않됩니다.
아니, 지금 당장, 번제할 어린양이 없는데, 어떻게 아버지는 하나님께서는, 그 양을 준비해 주신다고 말씀 하실까?
없던 양이 하늘에서 떨어질까? 땅에서 솟을까? 하나님께서 어디 계신는지도 알수 없거니와, 없던 양이 생긴다는 말은, 더더욱 전혀 이해가, 도무지 않되는데요...
가만히 보면, 자녀들 가운데 당돌하고 고집쎈 아이가 한명 씩 있습니다. 자기가 이해가 않되면, 끝까지 받아들이려 하지 않고, 수긍을 않합니다.
아무리 배워도, 자기가 직접 체험하고, 직접 경험하여, 확실할때~ 그때서야 고개를 끄덕입니다.
어떻게 보면, 아직 ‘믿음’을 잘~ 모르는, 어린 이삭이 딱~ 이 경우라고 할수 있겠습니다.
아버지의 이~ 대답.... 얼마나 이해가 않되고, 책임을 미루는, 무책임, 무대책, 무심경한 대답으로 들려지지 않을수 없습니다.
자~ 우리에게도 가끔씩 이러한 경우가 있습니다.
어떤~ 중요한 문제가 생겨서, 자녀들이 부모님과 의논을 할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부모님이 말씀을 합니다. “그래~ 열심히 기도를 해보자~, 하나님의 응답을 기다려 보자꾸나”~
그럴 때 자녀들은 너무너무 답답하게 느껴질수 있습니다. 이렇게 중요한 문제를, 하나님께 기도하자고 하시다니, 나로써는 이해가 어렵습니다.~
본문으로 돌아가서 9절 10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하나님이 그에게 일러 주신 곳에 이른지라 이에 아브라함이 그 곳에 제단을 쌓고 나무를 벌여 놓고 그의 아들 이삭을 결박하여 제단 나무 위에 놓고
손을 내밀어 칼을 잡고 그 아들을 잡으려 하니“
어린 이삭이 이해가 않되는 것이 아니라, 조금 후에~ 놀라도 너무 놀랄 일을, 이삭이 체험을하게 됩니다.
아버지 아브라함이, 갑자기 이삭을 결박하여 제단에 올려 놓고 칼을, 손에 쥡니다.
어린 이삭도~ 이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를수가 없습니다.
아마 이때, 어린 이삭은, “엄마~ 엄마~” 엄마사라를 엄청나게 부르면서 살려달라고, 엄청나게 울지 않았을까? 생각을 해~ 봅니다.
이삭이 이 일을 당하면서 얼마나 놀랬겠습니까?
자 그럴 때 성경을 보면, 하늘에서 음성이 들려 옵니다.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어린 이삭은, 정신이 없는 가운데, 처음으로 경험 해보는 신령한 체험을 하게 됩니다. “하늘에서 음성이 들리다니...”
12절에 하반절에 말슴합니다.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그에게 아무 일도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까지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
그러면서 또~ 옆을 보니까? 숫양이 수풀에 걸려서 있습니다. 이삭대신 번제물로 사용하면 됩니다. 정말 결과적으로~ 아버지 아브라함의 이야기 대로~ 이루어졌습니다. 즉 번제할 양은 가지고 가지 않아도 하나님께서 주셔서, 이삭은 풀려나고, 숫염소가 대신하여 번제물이 되었습니다.
어린이삭으로써는, 이제 당돌하고 고집쎄게, 꼬치꼬치 질문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역사하심은 무섭고도 확실하며, 구체적이고도 분명하구나...”
번제를 드리며 예배드리는 것을,~ 평소에 형식적인것인 줄 알았는데, 예배는 한사람의 생명이 왔다갔다 할수 있는 것이구나.~
또한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고, 아버지가 믿음으로 이야기 하던데로 하나님께서 역사하여 주시는 구나..
그래서 이삭과 아버지--아브라함은 그땅의 이름으로 여호와 이레 “하나님께서 준비하여 주심” 이라고 짓기로 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이삭은 아버지의 믿음이 무엇인지, 자기가 죽음과 생명의 자리에 직접서서 경험하고 체험하고 체득하면서,
하나님 앞에서 신앙의 길이 무엇인지? 깨우치게 되었습니다.
2. 그 길을 함께 잘되는 길입니다.
오늘 본문 15절로, 18절 까지 교독으로 함께 읽도록 하겠습니다.
“여호와의 사자가 하늘에서부터 두 번째 아브라함을 불러
이르시되 여호와께서 이르시기를 내가 나를 가리켜 맹세하노니 네가 이같이 행하여 네 아들 네 독자도 아끼지 아니하였은즉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가 크게 번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성문을 차지하리라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니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니라 하셨다 하니라“
아버지 아브라함이 모리아 산에서 걸어갔던 그~믿음의 길을, 이삭에게 뿐만 아니라, 아브라함에게도, 믿음이 더욱 깊어지는 연단의 과정, 축복의 과정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의 이 믿음의 결단을 보시고, 아브라함을 크게 칭찬하여 주시고, 또한 더욱 아브라함이 받고자 하던 큰 복을, 확실히 주시겠다고 약속하여 주셨습니다.
그렇습니다. 부모님의 믿음의 길은, 자녀들이 평생에 두고두고 기억하고, 깨우치고, 배우게 되는 교훈의 길이요,
더 나아가서는, 자녀들과 후손들과, 가족전체가 잘 되고 흥하게 되는, 밑바탕이 된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17절에 아브라함이 받은 복은 정말좋은 복입니다만, 아브라함이 다~책임질수 있는 것을 넘어서는, 큰~복 입니다. 17절 상반절에 보면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가 크게 번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당장, 자녀들이 잘 되는 것도, 부모님에게는 평생에 숙제가 아닐수 없습니다.
부모님에게는 어떻게 보면 손자 손녀들 까지가 한계입니다.. 아니 손자 손녀들 조차도~ 할아버지 할머니는 마음만 바랄뿐이지, 손자 손녀들이 잘되는 것을, 책임을 져~ 줄수가 없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 보니까, 아브라함은, 그 후손과~ 후손의 후손들이 계속하여 잘되도록 해 주시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자녀들이,~ 손자손녀들이,~ 그리고 후손들이 대대로~ 잘되는 것은, 하나님께서 보증하여주시고, 책임 져 주시고, 역사하여 주셔야만~ 가능한 일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을 보니까,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이같은 복을 주시고, 아브라함의 후손들이 다 잘되도록,~해 주시겠다고 말씀하시며, 그렇게 하시는 이유도 말씀하고 있습니다.
18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니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니라 하셨다 하니라”
그렇습니다. 아버지 아브라함의 믿음,~ 할아버지 아브라함의 믿음을 하나님께서 보실 때, 그 믿음이 좋으니까,
하나님께서는 아버지 어머니, 할어버지 할머니의 믿음을 기억하실 때, 그 후손들이 천하만민에게 복을 끼치는 훌륭한 후손이 되게하여 주시겠다고, 약속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부모님들이,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걸어가는 믿음의 길은, 가정전체를 복되게 하는, 너무나 소중하고 존귀한, 헌신이요, 밑마탕이 아닐수 없다고 하는 것입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이삭은 아버지 아브라함의 믿음을 보고 깨우치며, 자라나게 되었습니다.
아버지 아브라함의 믿음의 길은, 가정 전체를 잘되게 하는, 밑바탕이 되었습니다.
김포상도교회 믿음의 부모님들은, 아브라함과 사라와 같이, 가정을 튼튼히 세우는, 복된 부모님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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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아브라함과 사라같이, 가정에 믿음의 주춫돌을 놓게 하시고, 가정에 믿음이 흐를수 있도록 하여 주시니 감사를 드립니다.
오늘날도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가정을,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같이 훌륭한 믿음의 가정이 되도록 하여주시는 줄로 아오니,
우리가정의 매일매일이, 하나님께서 준비하여 주시고, 하나님께서 역사하여주시는 형통의 매일매일, 은혜의 매일매일이 되도록,
우리 김포상도교회 모든 믿음의 가정과 함께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 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