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9장 22절 26절 사순절에 걷는 자
이르시되 인자가 많은 고난을 받고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버린 바 되어 죽임을 당하고 제삼일에 살아나야 하리라 하시고
또 무리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구원하리라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자기를 잃든지 빼앗기든지 하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누구든지 나와 내 말을 부끄러워하면 인자도 자기와 아버지와 거룩한 천사들의 영광으로 올 때에 그 사람을 부끄러워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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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달에는 부활절이 있습니다. 또한 지금은 사순절로 보내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하나님의 자녀로써, 사순절에 십자가의 길을 어떻게 걸어가야 하는가? 라는 주제로 말씀을 전하려고 합니다.
잘~ 사순절, 십자가의 길을 잘 걷고 있으 십니까?
질문을 조금 바꾸어 보겠습니다. 사순절 나는 어떻게 십자가의 길을 걸어가고 있습니까?
오늘 본문 23절에서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 하십니다.
“또 무리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그리스도인은 예수님을 따라가는 사람이라 하겠습니다.
예수님께서 가신 길을 따라갑니다.
예수님께서 만들어 놓으신 길을 따라갑니다. 그길은 어떤 길입니까? 바로, 십자가의 길, 구원의 길 이 아니겠습니가?
사순절은, 내가 가고 있는 그 길을 다시 한번 더~ 살피고, 내가 걷고 있는 그 길을 다시 힘을 내어, 걸어가는 절기가, 사순절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1. 나는 그 길을 걷는 것을, 기뻐하고 있습니까?
예수님께서 닦으신 십자가의 길, 구원의 길을 걷기 전 우리는 어떤한 상태 였습니까?
에베소서 2:2
“그 때에 너희는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예수님께서 닦으신 십자가의 길, 구원의 길을 걷기전, 우리는 세상 풍조를 따르고, 마귀가 유혹하는 것을 거스르지 아니하며, 불순종의 자녀가 되어, 불신앙의 길로 걸어갔던 것이,
바로 우리의 옛사람의 모습이요, 옛사람의 길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십자가의 길의 반대는 불신앙의 길이요, 세상 풍조를 따라는 길입니다.
자~ 세상풍조 속에 살아가는 세상 사람들은, 십자가의 길을 어떻게 봅니까? 당연히 십자가의 길이 귀하게 보지 않습니다. 오히려 부끄럽게 여기고 이상하게 봅니다.
“교회 다니는 사람은, 왜 십자가의 길로 걸어 갑니까? ”
“편하게 세상적으로 살면 되지, 구체여 힘들게 십자가의 길을 걸어갈 필요까지 있습니까? ”
그러면서 오히려 십자가의 길을 걸어가는 사람들이 잘못되었다는 식으로, 바라보기 까지 합니다.
예전에 전도하면, 가끔씩 그런분을 만날 때가 있었습니다.
“목사님, 교회 다니는 건, 다 좋은데, 담배를 피우지 말하고 하니까, 그거 때문에 교회 못 나가겠습니다.
담배 피워도 괜찬다고 하면, 교회 나가가겠습니다.“
그런데 건강검진 해 보면 그런 분들이 있지요? 엑스레이 폐사진을 찍어 보면, 폐가 허옇게 나옵니다.
계단을 오르면 숨이 가빠서, 힘들어 합니다. 조금만 걸으면 숨이 차서, 헐~헐~ 합니다.
“의사 선생님, 왜 이렇게 숨이 찰까요? ”
의사선생님이 설명을 해 줍니다. “폐의 세포들이 많이 망가지고, 폐의 기능이 떨어져서, 산소를 받아들이는 폐의 능력이 엄청나게 저하되어 있습니다.
이정도 생활하는 것도 기적입니다. 혹시 담폐를 피우고 있다면, 당장 담배를 끊는게 건강에 좋습니다.”
자 그럴 때 어떤 분이, “ 의사선생님, 말씀은 다~ 좋은데, 담배를 끊으라고 하니까, 그거 때문에 의사선생님 처방은 않 듣겠습니다.
담배 피워도 괜찬다고 하면, 의사 선생님 처방대로 할 용의가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3:19
“이 세상 지혜는 하나님께 어리석은 것이니 기록된 바 하나님은 지혜 있는 자들로 하여금 자기 꾀에 빠지게 하시는 이라 하였고”
세상에서 지혜있다,고 하고, 똑똑하다고 하면서, ‘자가당착’이 되어, 자기 꾀에 스스로, 자기가 빠지는 줄도 모르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없지 않아 있습니다.
스스로 자기의 건강을 나쁘게 하면서, 오히려 자기가 맞다고, 그 길로 걸어 갑니다.
스스로 자기의 행복과 유익과 인생이 멸망을 향하여 가고 있는데, 오히려 진리의 길 구원의 길을 비웃으며, 그 길이 멸망의 길인 줄도 모르고, 즐겁게~ 멸망의 길로 걸어 갑니다.
지난 주간, 전세계 사람들의 마음을 아프게 하였던 뉴스영상이 있었습니다.
한 어린 아이가 혼자서 울면서 1600 키로를 걸어가고 있는 뉴스영상이 방송이 되었습니다.
러시아 군의 폭격이 점점 가까이 옵니다.
할머니는 연로하여 몸을 움직이지 못합니다. 그러니까 어머니는 이 아이에게 말을 합니다.
“할머니가 몸을 움직이지 못하니, 나는 할머니를 돌보아야 되겠구나. 너는 혼자, 폴란드로 빨리~ 가거라”
그리고 비닐 봉지에, 아이에 여권을 넣어서, 아이 손에 들려 줍니다.
이 아이는 어머니의 말을 듣고, 집을 나서서 울면서 걸어갑니다. 그런데 그 집에서 폴란드 국경까지의 걸리가, 1600키로가 됩니다. 서울에서 부산까지가 340키로인데, 1600키로 라면 서울에서 부산까지를 네 번 정도 왕복해야 되는 거리가 되겠습니다.
그 긴~ 거리를 아이는 혼자서, 엄마 생각을 하면서, 엉엉 울면서 걸어 갑니다.
폴란드 국경 가까이 와서, 아이가 엉~엉~ 울면서 혼자서 걷고 있으니까 주위에서 물어 봅니다. “얘, 너는 왜 혼자서 울고 있니?”
“네,~ 엄마가 나 혼자, 폴란드로 가라고 해서, 울면서 여기까지 걸어 왔어요. 저는 폴란들에 들어가고 싶습니다.”~
폴란드 정부에서 그 아이의 뉴스를 보고, 불쌍히 여겨, 그 아이가 입국할수 있도록, 허가를 내주고, 폴란드에 있는 아이의 먼 친척을 찾아내어, 연결 시켜 주었다고 합니다.
오늘 본문 25절에는 말씀합니다.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자기를 잃든지 빼앗기든지 하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십자가의 길을 걸어가는 것은, 나를~ 얻으려고, 걸어가는 길입니다.
응답을 얻고, 축복을 얻고, 구원을 얻기 위하여 걸어가는 길입니다.
즉, 내가 하나님 앞에 응답을 받고, 내가 하나님의 앞에 축복을 받고, 내가 예수님을 통하여 구원을 받으려고 걸어간느 길입니다.
그런데,~
십자가의 길을 걸어갈때, 세상의 풍조 멀리 해야 한다고 하니까~
그 좋은 세상풍조, 그 즐거운 세상풍조를 멀리해야 된다고 하는 것 때문에, 십자가의 길을 걸어가지 못하겠습니다.~
세상풍조 마음대로 해도 괜찬다고 하면, 십자가의 길을 가겠습니다.
만약 그런 그리스도인이 있다면, 그 그리스도인은 천하를 얻고도, 자기를 잃어 버리고
세상 풍조를 얻고, 구원의 예복은 잃어버리는
무엇이 최고로 자기에게 유익한지, 자가당착이 되어, 자기 꾀에 스스로 자기가 빠지는 그리스도인이 아닐수 없다고 하는 것입니다.
두가지가 동시에 양립할수 없는 것이 있습니다.
건강을 버리는 것과, 건강을 얻는 것은 동시에 양립할 수가 없습니다. 건강을 버리든지, 건강을 얻던지 하게 되지, 건강을 버리는 것을 하면서, 동시에 건강을 얻을수는 없습니다.
저는 요즈음 다이어트가 정말~ 힘들다는 것을 몸으로 채득하며,~ 깨닫고 있습니다.
조금만 운동했다~ 싶으면, 손이 저절로 빵을 막 잡고, 입으로 넣고 있습니다. 왜 몸을 움직이고 먹는 빵은, 그렇게 달고 맛있는지 모릅니다. 또 밤늦게 먹는 빵도 엄청나게 달고 맛있습니다.
그런데 빵을 먹으면, 살은 정직 합니다. 절대로 먹은것은 어디로 가지 않고 다 나에게 붙게 됩니다.
마귀가 왜 예수님께 돌을 떡이 되게 하시라고 유혹을 하였는지, 처음에는 별것도 아닌 것으로 유혹을 한다고 생각을 하였습니다.
하지만 요즈음은, 마귀가 정말 간교하기가 대단하구나~ 깨닫고 있었습니다.
친구와 적은 동시에 양립할수 없습니다.
나혼자 친구 겠거니 만만히 여겼지~ 러시아가 심통을 부리니까, 우크라이나에게는 심통이 아니라 나라의 존망이 경각에 달리게 되었습니다.
마찬가지로 구원과 멸망, 십자가의 길과 세상의 길은 나에게 동시에 양립할 수가 없습니다.
야고보서 4:4
“간음한 여인들아 세상과 벗된 것이 하나님과 원수 됨을 알지 못하느냐 그런즉 누구든지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 되는 것이니라”
하나님의 자녀는 구원의 길을 걸어가는 자요, 하나님과 원수된 마귀는 구원의 길이 아니라, 멸망의 길로 유혹하는 자입니다.
마찬가지로, 사순절에는,~ 어떤이는 구원의 길, 십자가의 길로 걸어 가는가? 하면, 똑같은 그 사순절 기간에 어떤 사람은 반대로 구원의 길, 십자가의 길로 않가는 사람도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김포상도교회 성도들은, 사순절, 구원의 길, 십자가의 길로 걸어가기를 기뻐하여야 하겠습니다.
그 길은 하나님의 자녀가 걸어가는 길이요,
나를~ 얻는 길이요,
내가 하나님 앞에 응답과 축복과 구원의 얻는, 예수님께서 열어 주신 참으로, 복된 길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2. 구체적으로 무엇을 하여야 합니까?
오늘 본문 23절 말씀을 다시 보도록 하겠습니다.
“또 무리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예수님께서는 어떻게 십자가의 길을 걷는 것을 기뻐하십니까? 오늘 본문 23절 하반절을 보니, 날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르는 것을 기뻐 하십니다.
그렇습니다. 사순절은,~ 예수님께서 나에게 주신, 나의 십자가를, 다시 점검하고, 확인하고, 살펴보는 절기라 하겠습니다.
가끔씩, 어떤 그리스도인은, “예수님께서 나에게 주신 십자가 있다고요?”하고 깜짝 놀랄 때가 있습니다.
또한, 나는 예수님께 받은 십자가가 하나도~ 없다고 생각하는 그리스도인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여기는 그리스도인은, 아마도 예수님께서 주신 십자가를 잊어 버렸거나, 어디에 놓아 두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에게는 누구에게나, 그 사람에게 합당한 십자가를 하나씩 주셨습니다.
마태복음 22장 11절에서 14절에는 말씀합니다.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임금이 손님들을 보러 들어올새 거기서 예복을 입지 않은 한 사람을 보고
이르되 친구여 어찌하여 예복을 입지 않고 여기 들어왔느냐 하니 그가 아무 말도 못하거늘
임금이 사환들에게 말하되 그 손발을 묶어 바깥 어두운 데에 내던지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게 되리라 하니라
청함을 받은 자는 많되 택함을 입은 자는 적으니라”
요즈음은 학생들의 교복은 이쁘고 멋있습니다.만 하지만 옛날에 교복은 모두 검은색 이었지요.
남학생은 목카라가 없고 후크로 거는 교복 이었습니다. 여학생은 힌색 카라에, 검은색 상하의, 검은색 스타킹에 검은색, 운동화나 구두를 신었습니다.
만약, 어떤 학생이 학교에 등교를 하는데 교복을 입지 않고, 그냥 사복을 입고 학교에 등교를 합니다.
그리고 수업시간이 되었는데, 교실에 들어와서 수업을 듣지도 않습니다. 혼자 운동장에서 공을 차면서 놉니다.
중간고사 기말고사도 치지도 않습니다. 그리고 맘대로 학교에서 나가서 짜장면을 사먹고, 맘대로 집으로가 갑니다.
만약 이런 학생이 있다면, 학교 선생님이 이 학생에게 어떻게 하겠습니까?
“학생, 학생은 학교에 왔는데 교복도 입지않고 오고, 수업도 듣지않고, 시험도 치지않고, 맘대로 왔다가 마음대로 집에 가니,~ 더 이상 우리학교에 나올 필요가 없네”~ 그리고 그 학생을 학교에서 내보지 않겠습니까?
마찬가지입니다.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인에게 합당한 길이 있습니다.
구원의 예복을 입어야 합니다. 진리의 길로 걸어가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 가기를 힘써야 하는 것입니다.
학생이 더 상급학교로 올라갈수록, 학생은 상급학생으로써 챙겨야 할 것이 더욱더 많아 집니다.
초등학교는 교복을 않입습니다. 그러나 중학교 가면 교복을 입어야 합니다.
고등학교에 가면, 배우는 과목이 얼마나 많이 늘어납니까?
대학교에 들어가면, 성숙하게 되어, 스스로 공부를 하고, 스스로 학문에 분야를, 연구하게 합니다.
그렇습니다. 믿음도 성숙하면 성숙할수록, 십자가도 그 믿음의 합당하게, 그 믿음에 걸맞는 십자가를 예수님께서는 그 사람에게 주신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자녀는 십자가가 작은것으로 기뻐하여서는 않되겠습니다.
누구의 십자가가 더· 작고, 누구의 십자가가 더~ 가벼운가? 작고 가볍운 십자가가 좋다고 여겨서는 않되겠습니다.
얼마전, 사람들의~ 고개를 끄득이게 한 뉴스가 있었습니다.
어떤 엄마가 어린 남매를 버리고, 바람이 나서 다른 남자에게 갔습니다.
버려진 어린 남매는, 할머니가 키우게 되었습니다.
세월이 흘러, 아이들은 자라서 고등학생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할머니가 죽게 되었습니다.
한편, 할머니에게는 집과 재산이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어떻게 알고 나타났는지, 어릴 때 아이들을 버리고 갔던 그 어머니가 다시 나타나, 할머니의 집과 재산을 상속받아야 되겠다고, 법원에 상속의견서를 제출 하였습니다.
아이들은 고등학생 미성년자 이니까, 재산을 상속받을 자격이 않됩니다.~ 나는 이 아이들의 어머니 이기 때문에,
미성년자 아이들을 대신하여, 할머니의 집과 재산을 상속을 자격은 나에게 있습니다. 법원에서 확인 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법원이 이례적으로 판결을 내렸습니다. 단순히 가족 관계만 보면, 받을 자격을 주장할수 있습니다. 하지만 사실관계에서 어머니는 어릴 때 아이들을 버리고, 한번도 양육권을 행사하지 않았습니다.
어머니는 아이들의 부모의 역할을 사실상 포기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미성년자 아이들이 상속받을, 할머니의 재산에 대하여, 어머니에게는 어떠한 권리도 없습니다.·
오늘 본문으로 돌아가서,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자녀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로써 권리와 권한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자녀라면, 하나씩 그 사람에게 맞는 십자가를 하나씩 주셨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은 보면, 제 십자가, 즉 자기 십자가입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인생의 고비요, 계획이요, 마음의 짐이요, 건강일수 있습니다.
또 사명이요, 직분이요, 직업이요, 가정에서의 역할 일수 있습니다.
더 나가서 근본적으로, 하나님 나라와, 구원과,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가는, 주님께서 나에게 주신 복음의 명령입니다.
자, 이 제~십자가를 지고, 걸어갈 때, 힘이 않들수가 없습니다.
어떨때는 기도를 하게 됩니다.
어떨때는 아무도 모르게, 하나님의 앞에 눈물을 흘리며 힘들어 하게 됩니다.
그런데 만약, 그 십자가가 힘이 들고 버겁게 느껴져, 버리게 된다면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인생의 고비를 마주하지 않고, 옆길로 가버립니다.
사명과 직분을 망각하고, 세상길로 갑니다.
가정과 직업과, 더 나가서 하나님의 나라와 구원과 나에게 부탁하신 주님의 당부를 기억하지 않고, 곁길로 갑니다.
그럴 때 나중에 십자가의 길, 구원의 길의 종착역에 도착하게 되면, 하나님의 자녀는, 천국을 상속받기 위하여, 예수님 앞에 서게 됩니다.
“예수님, 나는 하나님의 자녀로써 부름받은 적이 있습니다. ~ 하나님의 자녀로써 부름받은 적이 있으니, 이제 저 천국으로, 들어가면 되겠지요?”~
그럴 때 예수님께서 질문하지 않으시겠습니까? “내가 맡겨준 십자가는 어디 있느냐?, 내가 맡겨준 사명은 어떻게 되었는냐?”
그럴 때 대답을 합니다. “아~ 그 십자가요, 무겁고 힘들어, 내려 놓았는데, 어디 있는지 잊어버렸습니다.
그리고 맡겨주신 사명은, 세상 사람들 앞에서 부끄러워, 숨기고 감추었습니다.”
만약 그렇게 대답한다면, 예수님께서 말씀 하시지 않으 시겠습니까? 오늘 본문 26절 말씀이 되겠습니다.
“누구든지 나와 내 말을 부끄러워하면, 인자도 자기와 아버지와 거룩한 천사들의 영광으로 올 때에, 그 사람을 부끄러워하리라”
그렇습니다. 십자가의 길, 구원의 길은 하나님의 자녀로써, 구원과 상급과 면류관이 예비되어 있는, 너무나 복된 길~ 입니다.
십자가를 지고 그 길을 걸어가는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자녀가, 믿음으로 십자가 지고 달게~ 가면, 십자가 앞에서 흘렸던 눈물과 기도는 바꾸어 주십니다.
예수님께서 변하여 기쁨이 되게하시고, 승리가 되도록 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말씀을 정리 합니다.
사순절은 예수님께서 가신 십자가의 길을, 따르는 절기 입니다.
사순절에는~ 나에게 주신 십자가를 다시 믿음으로 붙들고, 출발 하여야 하겠습니다.
그럴 때 예수님께서는 나의 십자가가 변하여, 기쁨과 응답과 축복과 구원과 면류관이 되도록 바꾸어 주십니다.
한주간 동안, 이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로써, 복된 십자가의 길을 걸어가는, 김포상도교회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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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하나님의 자녀로 불러 주시고, 십자가의 길로 걸어갈수 있도록 하여 주시니, 감사를 드립니다.
이 길은, 예수님께서 먼저 걸어가신 길이요, 하나님의 자녀가 걷는 길인줄로 아오니,
나의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께서 주실 승리의 면류관을 바라보며,
믿음으로 걸어가는 사순절 주간으로,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 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