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전서 15장 45절 49절 형상을 입으리라
기록된 바 첫 사람 아담은 생령이 되었다 함과 같이 마지막 아담은 살려 주는 영이 되었나니
그러나 먼저는 신령한 사람이 아니요 육의 사람이요 그 다음에 신령한 사람이니라
첫 사람은 땅에서 났으니 흙에 속한 자이거니와 둘째 사람은 하늘에서 나셨느니라
무릇 흙에 속한 자들은 저 흙에 속한 자와 같고 무릇 하늘에 속한 자들은 저 하늘에 속한 이와 같으니
우리가 흙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은 것 같이 또한 하늘에 속한 이의 형상을 입으리라
--------------
오늘은 대강절 셋째주일입니다.
대강절 첫째주일은 천사가 소식을 전하여 주어서, 대강절을 준비를 한 사가랴와 엘리사벳에 대하여 말씀을 전하였습니다.
대강절 둘째 주일은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고 즉 세상의 죄와 불신앙과 다른 사람의 눈에 티를 바라보며 믿음이 떨어지는자가 아니라, 믿음으로 눈으로 바라 보아야 할것을 바라보고, 아기 예수님을 맞이할 준비를 하는 믿음이 되자,~ 준비하는 믿음은 바로 믿음의 열매를 맺는 것이라고 말씀을 전하였습니다.
오늘은 “아기 예수님이 왜 이 세상에 찾아 오셨는가?”라는 주제로 말씀을 전하려고 합니다.
1. 아담은 아름다운 형상을 잃어 버리게 되었습니다.
오늘 본문 45절, 46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 기록된 바 첫 사람 아담은 생령이 되었다 함과 같이 마지막 아담은 살려 주는 영이 되었나니
그러나 먼저는 신령한 사람이 아니요 육의 사람이요 그 다음에 신령한 사람이니라“
하나님께서는 본래 사람을 복되고 아름답게 만들어 주셨습니다. 하지만 아담과 하와는 그 복되고 아름다운 모습을 잃어버리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이 세상에 찾아 오셔서 잃어버렸던 본래의 모습, 복되고 아름다운 모습을 회복하게 하시고, 더 나가서, 처음 보다가도 더 좋은-- 하늘의 속한이의 형상을 입도록, 우리를 회복시키시려, 이 땅에 찾아 오셨습니다.
그렇다면 아담과 하와가 처음 가졌던, 복되고 아름다운 형상은 어떠 하였습니까?
먼저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사람이었습니다.
창세기 1장 27절에는 말씀합니다.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또, 그 밑에 창세기 1장 31절에는 말씀합니다. “하나님이 지으신 그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여섯째 날이니라”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창조하실 때, 하나님의 형상대로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셨습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았다는 것~ 얼마나 복되고 좋은 일입니까?
어릴 때, 아이들이 유치원에 가면, 노래를 배웁니다. 무용을 배웁니다. 연말이 되면, 발표회를 하지요.
그런데 연말에 유치원 발표회에 가 보면, 아이들이 발표할 때, 성악가 처럼 아름답게 노래를 하고, 발레리나 처럼 멋있게 춤을 춥니까? 아닙니다.
노래를 할때는, 박자 음정 무시하고, 가사까지 잊어버려서, 다시 할때도 있습니다.
무용을 할때는, 다른 아이들과 손과 발이 맞지 않아서 참석한 부모님들을 웃게 할때도 있습니다.
이러한 데도~발표회에 참석한 부모님들은 발표회가 끝날 때 까지, 자리를 뜨는 사람이 없습니다. 모두 너무너무 기뻐하고~ 좋아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바로 나의 형상을 닮은, 나의 자녀가 노래를 하고, 춤을 추니까...노래가 틀리고 맞고는 문제가 않됩니다. 무용히 틀리고 맞고는 문제가 않됩니다.
방송사의 기자들이 총출동한것 처럼, 부모님들이 모두 스마트폰 켜고, 사진기 켜고, 조금이라도 놓칠세라, 촬영을 하고, 박수를 치고, 기뻐합니다.
저도 유치원 발표회에 가 본적이 있습니다만, 어떤 극성부모님은 커다란 삼각대를 가지고 와서, 커다란 카메라를 세우고, 처음부터 끝까지 촬영하는 부모님도 보았습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누구를 보시고 기뻐하시고, 좋아하시고, 흐믓해 하시겠습니까?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하나님의 자녀가 예배를 드릴 때, 하나님께서는 기뻐하시며 봐~ 주십니다.
예배의 순서, 찬송, 좀 부족하여도, 하나님께서는 끝나기 전에 나가시고, 그러지 않으십니다.
전에 한번은 서면제일교회, 아시는 분도 계실 것입니다. 저의 아버지가 목회를 하시던 시골교회에 간적이 있는데, 할머니 세분이 앉아서 예배를 드리는데, 똑같은~ 찬송가를 부르는데, 세분이 다 다르게 부릅니다. 음정무시, 박자무시, 세분이 같은것은 ‘가사’ 밖게 없습니다.
그래도 얼마나 그 찬송이 은혜가 되는지, 저는 큰~ 은혜를 받으며 예배를 드렸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지으시고,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사람을 보실때, 여섯째 날은 심히~ 좋았더라고 말씀 하십니다.
또한, 처음사람 아담과 하와는 ‘능력이 있는 사람’으로 지음을 받았습니다.
창세기 1장 28절에 말씀합니다. “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하나님게서는 아담과 하와를 만드시고,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고 하셨습니다. 다스리려면 다스릴 능력이 있어야, 다스릴수 있지 않겠습니까?
우리나라의 영토는 한반도입니다. 하지만 헌법에 적어만 놓았지, 북한지역은 우리가 다스릴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북한지역을 다스릴 능력이 우리에게는 아직 없기 때문입니다.
자~ 하나님께서 ‘다스려랴~’고 하실 때, 아담과 하와에게 능력도 않주시고, 다스려랴~고 하셨겠습니까? 오늘날 사람은 다스릴 능력에 더하여 욕심이 발동하여, 너무 다스려서, 다스리는것이 아니라 부작용과 환경파괴가 일어나기 까지 할~ 정도입니다.
또한, 처음사람 아담과 하와는 ‘지력이 있는 사람’으로 지음을 받았습니다.
창세기 2장 19절에는 말씀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각종 들짐승과 공중의 각종 새를 지으시고 아담이 무엇이라고 부르나 보시려고 그것들을 그에게로 이끌어 가시니 아담이 각 생물을 부르는 것이 곧 그 이름이 되었더라”
아담과 하와는 얼마나 지적 능력이 대단하였는지, 하나님께서 각종 들짐승과 공중의 새와 모든 생물들을 지으시고, 그 이름짓는 것을 아담에게 지어 보라고 하셨습니다.
그럴 때 아담은 하나님께서 지으신 각 동물의 모양과 습성에 맞도록, 그 동물에게 맞는 이름을, 모두~ 지어 주었습니다.
오늘날 아이가 태어나면, 아이 이름 지을때도, 우리는 얼마나 힘들어 합니까?
한문사전을 찾아보고, 한글사전 찾아보고~ 그래도 힘들어서, 어른들 한태 물어보고, 심지어는 작명가 한테 찾아가, 이름을 대신 지어달라고 부탁을 할 정도로 어려워 합니다.
우리는 한명, 두명 이름짓는 것도, 이렇게 힘들어 하는데, 왜 이렇게 되었습니까? 죄로 인하여 우리가 하나님께서 주신 능력을 많이 잃어버렸기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처음사람 아담은 한명 두명이 아니라, 수천 수만의 이름을 막힘 없이 지었습니다.
이름은 짓는다고 끝나는 것이 아니지요. 그대로~ 불러 주어야 합니다. 사자를 보고 계속하여~ 사자라고 불러 주어야, 됩니다. 토끼를 보고 계속하여~ 토끼라고 불러 주어야 합니다.
기억력이 떨어지면 다음날 사자를 만나서, 토끼였던가? 그러면 사자가 어떻 되겠습니까? “제가 토끼 였지요?” 사자가 헷갈려 하지 않겠습니까?
저는 창인이, 창진이 하고 이야기 할 때도, 창인이 보고 “창진아~” 창진이 보고 “창인아~”하고, 틀리게 부를때가 있습니다.
아이가 두명 밖게 않되는데도, 이름을 헷갈려~ 틀리게 부릅니다. 다~ 죄로 인하여 처음 형상이 망가져서, 지력이 상당히 약해 졌기 때문에 아니겠습니까?
마지막으로 처음사람,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과 교통하는 사람”으로 지음을 받았습니다.
창세기 3장 9절 10절에 말씀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부르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디 있느냐
이르되 내가 동산에서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
처음 사람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하나님과 대화하는 존재로 지음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부르시면 아담은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수 있었습니다. 또 하나님을 향하여 대답을 하였습니다. 즉 하나님과 교통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죄가 들어올때, 사람은 이 좋은능력을 잃어버리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아무리 하나님께서 말씀하셔도,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죄악이 찾아오고, 죄악이 하나님의 형상을 병들게 할 때,
사람은 하나님의 사랑받는 자녀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진노하시는 자리에 찾아가는 탕자같은 사람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것을 잘 관리하고 다스리는 사람이 아니라, 욕심과 나태함과 태만으로 인하여, 주신것을 잘 관리하지 못하는, 한달란트 청지기 같은 사람이 되었습니다.
또한, 지혜와 지력이 출중한 사람이 아니라, 잊어버리고 망각합니다. 방금전에 잘못에도 교훈을 발견하지 못하는 멸망한 이스라엘 백성과 같은 사람이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아무리 말씀하셔도 듣지 못하고 대답하지 못하는-- 하나님 앞에서, 영적으로 귀머거리와 벙어리들린 사람과 같이 되고 말았습니다.
자~ 이렇게 병든 모습, 어떻게 하면 회복할수 있는 것입니까?
이미 죄악으로 병들고 망가진 인간이기에~ 스스로 어떤 노력도 할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마치, 응급실에 실려가 “너무너무 아픔니다. 빨리 약을 주세요.”~하고 힘들어하는 병자와 같은 상황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2. 우리를 구하시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찾아오셨습니다.
오늘 본문, 49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우리가 흙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은 것 같이, 또한 하늘에 속한 이의 형상을 입으리라”
치료의 과정은, 병이 얼마나 깊으냐?에 따라 달라 집니다.
그저 두통 정도이면, 진통제 한알 먹고 기다리면 낫습니다.
그저 손가락에 상처가 나면, 포비돈 액을 바르고 기다리면, 낫습니다.
그런데 간이 망가지면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수술을 해야 합니다. 간이 너무 망가지면, 간을 떼어내어서 버리고, 건강을 간을 이식해야 합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죄로 병든 사람을 영적--엑스레이로,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펴 보았더니, 상태가 너무너무 심각합니다.
로마서 3:23 에는 말씀합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죄로 병들기 전에는 하나님께서 주신 형상이 건강하여, 하나님과 교통하는 사람이었는데, 죄로 병들고 난 다음에는, 하나님의 영광에는 이르지 못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거룩한 하나님 앞에~ 가지를 못합니다. 왜냐하면 본성이 죄로 병들었기 때문입니다.
그전에는 하나님께 가까이 나가는 것을 좋아하였습니다. 예배드리고, 성경말씀보고, 기도하고, 찬송하고, 믿음생활 하는 것을 좋아하였습니다.
하지만 영혼이 병들게 되니까, 나도 모르게 내가 바뀌게 됩니다. 예배 않드리는 것에 끌립니다. 성경말씀 않보는 것이 편합니다. 기도하지 않습니다. 찬송하는 것을 부끄러워 합니다. 믿음생활 하는것을 힘들어 합니다.
왜냐하면, 사람이 죄의 체질로 바뀌고, 영혼은 죄로 물들어 멸망의 영혼으로 바뀌었기 때문입니다.
체질이 바뀌고, 하나님께서 주신, 형상을 잃어버릴 때 사람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에베소서 2장 2절에 말씀합니다.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라, 본질상 ‘진노의 자녀’가 바뀌게 되었습니다.
나의 형상을 닮은 나의 자녀가 아니라, 생판 모르는 사람이 아무리 노래를 잘 부른다고, 귀하게 여기는 부모님이 있겠습니까?
세종문화회관이라도 두세시간 있으면, 지켜워 하면서, 일어납니다.
같은 방송이, 두세시간 되면, 지겨워 하며, 텔레비전 채널을 돌립니다.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진노의 자녀들이 아무리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춘다고 하여도, 기뻐하며 흡족해하며 사랑으로 봐~주시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소돔과 고모라에게 내린것은 불과 유황이요, 노아시대에는-- 전세계를 덮는 물을 내리심으로 심판이 임하게 하셨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다시 하나님의 사랑받는 자녀게 되도록 하시려고, 이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에 달립니다.
우리를 죄를 대신하여 채찍에 맞으십니다. 가시관을 쓰십니다. 창에 찔리십니다. 손과 팔에는 못이 밖힙니다. 그래서 십자가에서 우리 대신 죽으십니다.
간이 너무 망가지면, 간을 떼어내어고, 건강한 간을 이식 받듯이,
우리의 영혼이 죄악으로 망가질때,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머리와 손과 발과 허리를 대신하여 찔리고 피를 흘리 시면서, 우리의 병든 부분을 사라지게 하시고, 대신 예수님의 거룩한 새몸을 덧입도록 하여 주셨습니다.
누가복음 22장 19절, 마태복음 26장 28절 말씀입니다.
“또 떡을 가져 감사 기도 하시고 떼어 그들에게 주시며 이르시되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주는 내 몸이라 너희가 이를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그렇습니다.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심은, 죄로 인하여 병들고, 망가지고, 잃어버린 우리의 형상, 즉 하나님의 형상을 다시 회복시켜 주시려, 이 세상에 찾아 오셨습니다.
방금 대수술을 받은 사람이, 수술 끝났다고, 바로 짐싸서, 병원문을 걸어나가는 사람은 없습니다.
수술이 끝나면, 회복실에 내려가서, 수술한 부위가 잘 자리잡고, 아물도록 회복해야 합니다.
회복실에서는 몸을 회복 하기 위하여, 먹는 음식을 조절을 합니다. 운동을 하도록 합니다.
“힘들어도, 많이 걸으세요, 수술한 곳에 가스가 빠져나가야 하니까, 방귀 나오면 좋은현상입니다.”
그래서, 수술 끝나고, 수액병을 들고, 입원실 복되에서, 왔다갔다 하는 분들을 본적이 있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지금 우리의 상태는, 마치 십자가에서 예수님의 몸을 덧입게 하여 주심으로, 방금 수술을 마친 상태와 같습니다.
이제는 내 안에 예수님의 거룩한 몸이 잘 자리잡고, 치료한 부위가 잘 회복되도록 하여야 합니다.
즉, 치료는 하였지만, 벌써 완전히 나은 것은 아닙니다.
아직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처음~지음을 받았을 때 처럼, 하나님의 음성이 잘 들리지 않습니다.
아직은 치료는 하였으되, 하나님과 교통하는 것이 서툽니다. 그러니까 회복이 빨라 지도록~ 음식을 조절하고, 운동을 하여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나를 고쳐 주셨기 때문에, 이제는 열심히 나의 영의 귀를 여는 연습을 하여야 합니다.
처음에는 하나님의 음성이 세미하게 들립니다. 하지만 계속하여 힘을쓰면, 성경말씀을 읽을 때, 예배를 드릴 때, 찬송을 할 때... 하나님의 음성이 또렷하게 들리기 시작합니다.
하나님과의 교통도 마찬가지입니다. 아직은 하나님의 형상을 잃어버리기 전처럼 기도하지 못합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나를 고쳐 주셨기 때문에, 열심히 기도하면, 점점 기도의 말문이 열리기 시작합니다.
나중에는 예수님께서 하나님께 기도 드리듯, 나의 기도도 회복이 되어 집니다.
요 16장 1절 4절 을 보겠습니다.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너희로 실족하지 않게 하려 함이니”
그런데 회복되지 못하고 악화되고, 다시 실족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고, 다 나았다고 자신감이 생겼는지, 나의 뜻대로 살아갑니다.
이렇게하면, 정성 들여서 고쳐 주셨지만, 치료한 것이 자리를 잡을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좁은 길로 가라고 하시지만, 나는 넓은길로 가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믿음으로 살아가로 하시지만, 나는 세상 먼저 생각하며 살아가겠습니다.
그러면서 넓은 길로 걸어가고, 세상을 향하여 걸어가면, 믿음에 실족이 발생이 됩니다. 다시 치료전 상태로 돌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통하여 나를 고쳐주시고, 예수님의 거룩한 몸을 덧입어, 하나님의 자녀로 부름 받게 되었음을, 귀하게 여겨야 하겠습니다.
또한 하나님의 말씀을 잘 준행하여, 내가 점점 회복되고 성장하기를, 예수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까지 이르도록 성장할수 있도록, 힘써야 하겠습니다.
베드로후서 1:10
“그러므로 형제들아 더욱 힘써 너희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하라 너희가 이것을 행한즉 언제든지 실족하지 아니하리라”
성탄절은~ 예수님께서 나를 고쳐 주시려, 이 세상에 찾오셨음을 우리로 알게 합니다.
또한 내가 고침을 받았으되, 아직은 회복되고 있는 가운데 있음을 우리로 깨닫게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마치 깨끗하게 회복되고 있는 환자가, 기뻐하면서, 성탄절을 보내듯,
우리는 희망과 소망과 믿음으로 성탄절을 보내여야 하겠습니다.
말씀을 정리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담과 하와를 복되고 아름답게,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드 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잃어버린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게 하시고, 다시 하나님의 자녀로 부름받게 하시려고, 이 세상에 찾아 오셨습니다.
한주간 동안, 내속에 있는 하나님의 형상이 더욱 회복되고, 예수님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도록 성장성숙하며 보내는, 대강절 주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합니다.
----------------
하나님 감사를 드립니다.
하나님의 자녀로 불러 주시고, 하나님의 형상을 입어, 하나님과 교통하며 살게 하여 주시니 감사를 드립니다.
성탄절,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죄로 병든 나를, 깨끗하게~ 고쳐 주셨사오니,
이제는 내 속에, 하나님의 형상이 더욱 회복되게 하여주시고, 더 나아가 예수님의 장성한 분량을 향하여 믿음이 자라나게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한주간 동안도, 말씀과 기도와 찬송과 믿음의 생활로 나의 영혼은 더욱 건강하여 지고, 더욱 왕성하게 회복해 가는~ 한주간으로 보내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 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