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1장 20절 25절 온전한 감사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가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려졌나니 그러므로 그들이 핑계하지 못할지니라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하지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 어리석게 되어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새와 짐승과 기어다니는 동물 모양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그들을 마음의 정욕대로 더러움에 내버려 두사 그들의 몸을 서로 욕되게 하게 하셨으니
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 것으로 바꾸어 피조물을 조물주보다 더 경배하고 섬김이라 주는 곧 영원히 찬송할 이시로다 아멘
----------------------
11월은 ‘감사함으로 영광돌리는 달’입니다. 지난 주일은 추수감사절로 보내었습니다. 한해동안 걸어왔던 나의 길을 돌아보며, 하나님을 향하여 감사드리는 절기입니다.
한해동안 걸어온 길을 생각하면, 올해도 다사다난 하였습니다. 사회적으로는 아직은 진통이 있습니다만, 그러나 포스트 코로나, 위드코로나로, 코로나 고개를 넘어 서고 있습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가을이 시작되면, 겨울이 찾아오고, 겨울 다음에는 봄이 예약되어 있지요. 가을만 바라보는 사람은, 가을이 한창이구나 하지만, 가게에서 옷을 파는 사람은 겨울 옷을 가게에 내어 놓습니다. 그런데 공장에서 옷을 만드는 사람은, 봄 옷을 준비하지 않겠습니까?
마찬가지입니다. 어떤이는, 아직도 올해가 많이 남아있고 한창인것 처럼 여깁니다. 하지만 달력을 보며 내가 가야할 길을 바라보는 사람은 한해를 돌아 봅니다. 더욱이 믿음으로 올 한해를 돌아보는 사람은, 지나온 길을 되돌아 보면 하나님 앞에 감사하고, 하나님 앞에 영광 돌리며, 감사의 절기를 지키게 된다고 하는 것입니다.
자, 나는 차분한 마음으로, 나에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돌아보며, 하나님 앞에 감사와 영광을 돌리며, 가을을 보내고 있습니까?
1. 하나님을 알되 감사도 영광도 돌리지 않는 마음이 있습니다.
21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하지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께 영광돌리지 않고, 하나님 앞에 감사하지 않는 경우가 있습니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온 세상의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섭리로 가득한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우리는 당연히 봄, 다음에 여름이 오고, 여름 다음에 가을이 온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들에 곡식들은 당연히 열매를 맺어야 하고, 가을에 추수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 아닌가? 하고 당연시 합니다.
하지만, 하늘을 연구하는 과학자들은, 지구는 하나님의 특별하신 은혜가 충만한 행성이라고들 이야기 합니다. 이름하여 ‘지적 설계론’‘인본주의적 우주론’이 되겠습니다.
마치 사람을 위하여 어떤 분이 심혈을 기울여, 정성스럽게 지구를 만들지 않았느냐? 하는 이론입니다.
왜냐하면, 화성만 하더라도, 달이 두개나 있는데, 이름하여 ‘포보스’와 ‘데이모스’입니다. 화성에 달이 두개나 있다고 하다면, 다들 깜짝 놀라실 것입니다. 화성사진을 아무리 보아도, 화성만 덩그러니 있지, 화성 옆에 큰 달 두개는 본적이 없습니다.~
맞습니다. 화성의 달 포보스와 데이모스는 마치 비유를 하자면, 사람옆에 있는 호두와 같고 콩과 같습니다. 화성에 비하면 크기가 너무너무 작습니다.
그러다 보니, 화성은 자전을 할 때, 자기 맘대로 자전을 합니다. 누워서도 회전을 하고, 엎드려도 회전을 하고, 꺼꾸로도 회전을 합니다. 그러니까 화성은 봄 다음에 여름이 올지, 겨울이 올지, 예측이 않됩니다.
어떨때는 봄 다음에 거꾸로 겨울이 올 수도 있습니다. 어떨때는 계속하여 겨울만 될 수도 있습니다. 이러다보니, 언제 씨를 뿌리고, 언제 열매를 맺을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화성은 황량하고 열매 맺을수 없는, 생명이 살수 없는 행성이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상식적을 알고 있는 이 사실 하나만 하더라도, 우리는 얼마나 하나님 앞에 감사해야 하겠습니까? 하나님, 어김없이 시간이 딱딱 맞게, 봄이 오고, 여름이 오고, 또 가을이 되어 항상~ 일정하게 변함없이 추수하게 하여 주시니, 참으로 감사 합니다.~
20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가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려졌나니 그러므로 그들이 핑계하지 못할지니라”
만물의 모든 것이 분명히 하나님의 능력과 권능과 은혜를 나타내기에, 조금만 눈을 열어 살펴 본다면, 핑계할수 없게 됩니다. “하나님 감사 합니다.”~ 가을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올한해도 다사다난 한 가운데에도, 항상~ 인도하여 주시니 감사를 드립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을 보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 영광돌리지 않고 하나님께 감사하지도 아니하는 사람들이, 세상에는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왜? 감사하지 않는것입니까? 20절 하반절과 21절에 말씀합니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 어리석게 되어”
그렇습니다. 생각이 허망하여지고, 미련하여 지고, 어두워 지고, 스스로 지혜있다 하다 어리섞게 되어~ 하나님의 은혜와 권능과 사랑이 내가 살아가는 모든 것에 충만한데도 불구하고 하나님께 영광돌리지 아니하고, 하나님께 감사하지 아니하더라고 하는 것입니다.
허망은 빌허 망령될 망, 영어로는 멜리셔스입니다. 한글 사전으로는 ‘거짓되고 망령됨’ 이란 뜻이 되겠습니다.
그러니까 오늘 본문에, ‘생각이 허망하여 지며’ 라고 말씀 하는데, 즉 생각이 거짓되고, 생각이 망령되어 지고, 라는 뜻이 아니겠습니까? 스스로 생각하는데 스스로도 알면서 거짓된 생각을 하며, 망령된 생각을 하며, 미련한 마음이 되어, 마음이 어두워 집니다.
마음이 어두운 사람은, 침울 합니다. 우울합니다. 모든 것을 어두운 색깔로 바라보고, 어두운 색깔로 생각하고, 어두움으로 살아 갑니다.
“왜 그래요, 요즈음 무슨 걱정이라도 있어요? ” “네 세상에 왜 이렇게 어두운지 모르겠어요”~ 이렇게 어두운데 어떻게 하나님께 영광돌리며, 하나님께 감사하며, 기쁨으로 살아갈수 있겠습니까?
하는 모든 일이 점점 어둡게 되고, 나중에는 인생 자체가 어둡게 됩니다.
그렇습니다. 그리스도 인은, 빛 되신 예수님 앞에 나오기를 힘써야 합니다.
또, 스스로 지혜있다 하면서 어리섞은 길로 걸어가는 사람은, 하나님께 영광돌리지 못합니다. 하나님께 감사하지 못합니다.
내가 생각 할 때 이것은 맞고 이것은 틀리고~ 나의 지혜로 생각하고 판단 합니다.
그러니까 어떻게 이런데 감사하며, 어떻게 이런데 하나님께 영광돌릴수 있느냐?고 반문하며, 감사가 아니라, 불평과 분노와 절망으로 스스로 판단하며 살아갑니다.
지난, 목요일입니다. 저의 왼쪽 눈이 얼마나 아리는지 모릅니다. 눈에 모래가 들어갔나? 눈에 돌이 들어갔나? 아무리 숫돋물에 눈을 씻어도 시원하지가 않습니다.
저녁이 되어, 거울로 왼쪽눈을 보았습니다. 그랬더니 왼쪽 눈 안쪽에 핏줄이 얼마나 팽창이 되어 있는지 모릅니다.
왼쪽 눈은 아리고, 눈 안쪽에 핏줄은 팽창이 되어 있고, 겁이 납니다.
다음날 아침 일찍, 안과 전문병원에 찾아 갔습니다. 한참동안 검사를 하고, 의사선생님이 심각한 표정으로 설명 합니다.
“여기선, 해드릴수 있는게 없습니다. 진료 의뢰서를 써 드릴테니, 늦기전에 빨리 대학병원으로 가보시기 바랍니다.”
가슴이 덜컥 합니다. 바로, 일산에 있는 대학병원으로 갔습니다. 그랬더니 대학병원 마다 예약이 잡혀 있어서, 진료를 받을수가 없습니다.
발을 동동 구르고 있는데, 한곳에 연락이 되었습니다. “오후 3시쯤 병원으로 오시면 진료를 받을수가 있습니다.”~
가서 정밀 진단을 받았습니다. 박사님이 심각한 얼굴로 설명을 하여 줍니다. “의학교과서에도 없고, 사례도 없어서, 제가 뭐라고 설명 드릴수 가 없습니다. ”
답답하여 질문을 해 봅니다. “그러면 시간이 지나면, 증상이 자연스럽게 좀 숙지거나 하는 경우는 없습니까? ”
“아니요, 나아지거나 자연스럽게 숙지지 않습니다. 평생 간다고 보셔야 됩니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다시 질문을 합니다. "그러면 혹시, 이 증상에 도움이 되는 약은 없습니까? “
“네, 지금으로써는 딱이 없습니다. 약을 먹어도, 별 도움이 않될 겁니다. ”
차를 타고 돌아오는데, 얼마나 마음이 착찹한지 모릅니다. 왼쪽 눈은 더 아리고 아픕니다. 이제는 왼쪽눈 자체가, 잘 않보이는 것 같습니다. 세상이 시커멓게 보이고, 마음은 더 어두워 집니다.
김포로 들어오면서, 너무나 눈이 아려서, 동네 안과에 들러, 아무 안약이라도 좀 받아서 가야 되겠다 싶어,~ 가장 가까운 동네안과로 찾아갔습니다.
동네안과 의사 선생님, 이리저리 눈을 보면서, 말씀 합니다. “눈 다레끼 나셨네요”
“네~ 그게 눈 다레끼 인가요? ”
“네, 왼쪽눈 끝에, 눈다레끼 나서, 잘 않보이지만, 좀~ 아리실 겁니다. ”
“3일치 약 지어 드릴테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금방 나을 겁니다.”
저는 하나님께 감사기도를 드렸습니다. "하나님 눈다레끼 나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너무나 기쁜 마음에, 소고기를 사서, 구워 먹기로 하였습니다.
“한명도 아니도 두 명의 박사님이, 의학 교과서에도 없는, 처음 보는 사례라고 하여서, 얼마나 걱정을 했는데, 눈다레끼라니 얼마나~ 감사 합니까?
그 전에도 눈다레끼는 많이 났습니다만, 눈다레끼 났다고 이렇게 기뻐하며 감사한 마음으로, 소고기까지 사서, 구워 먹으며~,
하나님 앞에 정말, 눈다레기로 감사 하기는, 생전 처음 이었습니다.~
본문으로 돌아와서, 스스로 지혜있다 하며, 감사할까 말까? 하는, 사람의 지혜, 사람의 기준, 얼마나 어리섞고 미련 합니까?
똑같은 상황, 똑같은 문제에... 어떨때는 불평하고 원망합니다. 하지만 반대로 그 상황 때문에, 좋다고 기뻐하고 다행으로 여길 때도 있습니다. 이러한 사람의 변덕, 자기 중심적 감사, 원망... 얼마나 간사하며, 가볍 습니까?
그리스도인은, 자기가 중심이 되어, 변덕스러움으로 어떨때는 기뻐하고, 어떨때는 감사하고, 어떨때는 불평하고 어떨때는 감사하지 않는, 이런 마음을 내려 놓아야 합니다.
고린도전서 15:57 에는 말씀합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그렇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우리 주 되신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항상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변함없는 감사, 온전한 감사, 믿음으로 감사를 드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2. 온전한 믿음의 사람은 하나님께 감사 합니다.
25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 것으로 바꾸어 피조물을 조물주보다 더 경배하고 섬김이라 주는 곧 영원히 찬송할 이시로다 아멘”
조물주 보다, 피조물을 더 경배하고, 조물주 보다가 피조물을 더 귀하게 여길 때,
사람은 영원하신 하나님께 감사하지 않게 됩니다.
나는 하나님 보다가 더 섬기는 것이 있습니까?
나는 예수님 보다가 더 사랑하는 것이 있습니까?
그럴 때 하나님 보다가 그것을 더 섬기며, 예수님 보다가 그것을 더 사랑하게 됩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사도행전 1:4
“사도와 함께 모이사 그들에게 분부하여 이르시되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서 들은 바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그런데 베드로는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습니다. 다른 제자들까지 구슬려 데리고~ 예루살렘을 떠나 다시 갈릴리 바다로 내려 갑니다.
“예수님께서 아무리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고 하여도, 우리는 본래 어부인데, 자~ 어부인 사람은 나한네 붙어라~” 그리고 제자들을 데리고 갈릴리 바다로 돌아 갑니다.
오후 찬양예배때, 예수님의 12제자에 대해서,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만, 12제자중에 어부는 누구 입니까?
먼저 베드로가 있습니다. 그리고 형제 안드레가 있습니다. 또, 벳세다에서 같이 동업 한, 야고보와 요한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어부는 베드로, 안드레, 야고보, 요한이 되겠습니다.
그렇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의 말씀 보다가, 물고기 잡는 것을 더~ 중요하게 생각 하였습니다.
또한, 예수님 보다가, 동업하여 같이 고기잡던 사람을 더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라는 예수님을 말슴을 뒤로하고, 예수님의 말씀과는 반대로 예루살렘을 떠나, 다른 제자들 까지 구슬려, 다시 옛사람의 길로 돌아가게 되었습니다.
요한복음 21장에 보면, 다시 갈릴리 바다로 내려간 베드로는, 밤이 새도록 그물을 내리지만, 밤새도록 물고기를 한마리도~ 잡지 못하게 됩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뒤로하고, 예수님의 말씀에 불순종 하였는데, 물고기인들 베드로의 그물에 들어가 주겠습니까?
아마, 물고기들이 그랬을것 같습니다. “저 불순종 하는 베드로가, 지금 그물을 내리고 있으니까, 절대로 베드로의 그물에는 들어가지 말자~”
날이 샐때까 되어, 새벽녁에 갈릴리 바닷가에, 한 사람이 서서 말씀 합니다.
“예들아 너희에게 고기가 있느냐? ”
제자들이 이구동성으로 대답 합니다. “없나이다”~
그 사람이 다시 말씀 합니다.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지라. 그리하면 잡으리라”
베드로와 제자들이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지는데, 순간~ 물고기들이 그물에 물려 듭니다. 얼마나~ 물고기가 그물에 가득차는지, 물고기들이 많아서 그물을 들어 올릴수가 없습니다. 그물이 찟어질듯 합니다.
자, 이 모습, 어디서 많이 본 모습이지요. 바로 베드로가 처음 예수님을 만났을 때, 바로 그 장면과, 똑같은 장면이 아니겠습니까?
제자들이 예수님을 알아치라고, “예수님”이라고 이야기 합니다.
베드로는 얼른 옷을 입고, 바다에 뛰어들어, 예수님이 계신 해변으로 나옵니다.
그런데 누구도 말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조용한 새벽,~ 깊은 침묵이 흐릅니다.
너무나 어색한 장면이 아닐수 없습니다.
예수님의 말씀 않듣고, 예수님께 불순종하면, 크게 잘되고, 성공할 줄 알았는데, 오히려 반대 였습니다. 베드로는 물고기 한 마리도 잡지 못하였습니다.
사실 물고기는 다~ 누구에 것입니까? 그물을 내린다고, 바다의 물고기가 베드로의 것이 되겠습니까?
물고기를 지으신 분도 하나님이시요, 물고기를 잡히게 하시는 분도 하나님 이십니다.
나를 건강하게 하시는 분도 예수님 이시요, 나를 천국에 들어가게 하시는 분도 예수님 이십니다.
아무리 평범한 눈다래끼도, 박사님들에게 의학교과서에도 없는, 생전 처음보는 불치병으로 보일수 있습니다.
반대로, 예수님께서 동행하시면, 동네 의사선생님도, 족집게 의사선생님으로 사용하시는 분이, 우리 예수님 이십니다.
내가 예수님을 떠나, 바다 끝에 이른다 할지라도, 예수님께서는 거기에서 나를 찾아와 주시며,
내가 예수님께 불순종하여, 땅 끝에 이른다 할지라도, 그곳에도 예수님께서는 계십니다.
예수님을 떠나 어디로 가며, 예수님께 불순종 하며, 얼마나 멀리 갈수 있겠습니까?
예수님을 멀리 떠나, 물고기 한 마리도 잡지 못한, 베드로에게 찾아오셔서,
다시 베드로에게, 많은 물고기를 잡게하신 예수님께서는 요한복음 21장 15절에서 말씀 하십니다.
요한복음 21:15
“예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하시니“
예수님은, 감사하지 않고~ 예수님을 멀리 떠나고~,
하나님께 영광돌리지 않고, 마치 베드로와 같은 마음이 되어버린 사람들에게 오늘도 말씀 하십니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하나님의 자녀 아무개야, 너가 애지중지 여기는 그것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베드로는 예수님께 대답하였습니다. “주님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나의 마음 속을 꿰뚫어 보시는 예수님, 내가 예수님께 감출수가 있겠습니까? 주님께서는 보시는 그대로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 보다가 더 사랑하는 것이 있으면, 더 사랑하는 그것의 사람이 되지 않겠습니까?
하나님의 자녀는, 하나님을 제일 사랑하고, 하나님께 제일 귀한 영광을 돌리며, 하나님께 감사하며 살아가는 사람이, 온전한 하나님의 자녀~ 입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변함없는 감사, 온전한 감사, 믿음으로 감사를 드리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또한 하나님의 자녀는, 하나님을 제일 사랑하고, 제일 귀한 영광을 돌리며, 하나님께 감사하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한주간동안도, 이 믿음으로, 생활하여, 범사에 감사의 제목이 충만하게 되는, 김포상도교회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합니다.
--------------
하나님, 나를 이 세상에 어떤것과도 비교할수 없이, 제일 귀하게 사랑하여 주심으로,
독생성자 에수님를 아낌없이 십자가에 내어 주시니, 감사를 드립니다.
하나님께 제일 귀한 영광을 돌리며,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매일매일 감사할 제목이 충만하게 되는, 은혜의 한주간으로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 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