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21장 38절 46절 신실함의 기쁨
농부들이 그 아들을 보고 서로 말하되 이는 상속자니 자 죽이고 그의 유산을 차지하자 하고
이에 잡아 포도원 밖에 내쫓아 죽였느니라
그러면 포도원 주인이 올 때에 그 농부들을 어떻게 하겠느냐
그들이 말하되 그 악한 자들을 진멸하고 포도원은 제 때에 열매를 바칠 만한 다른 농부들에게 세로 줄지니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성경에 건축자들이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나니 이것은 주로 말미암아 된 것이요 우리 눈에 기이하도다 함을 읽어 본 일이 없느냐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의 나라를 너희는 빼앗기고 그 나라의 열매 맺는 백성이 받으리라
이 돌 위에 떨어지는 자는 깨지겠고 이 돌이 사람 위에 떨어지면 그를 가루로 만들어 흩으리라 하시니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예수의 비유를 듣고 자기들을 가리켜 말씀하심인 줄 알고
잡고자 하나 무리를 무서워하니 이는 그들이 예수를 선지자로 앎이었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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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9월달 둘째주일입니다. ‘신실한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사모함이 있습니다.’라는 주제로 말씀을 전하려고 합니다.
사람은 목표가 있을 때,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하여 신실함으로 살아갑니다.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인도 ‘하나님 나라’에 대한 소망이 있을 때, 신실함으로 살아가게 됩니다.
1. 농부들은 목표는 있으되, 신실하지 못하였습니다.
오늘 본문 38절 39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 농부들이 그 아들을 보고 서로 말하되 이는 상속자니 자 죽이고 그의 유산을 차지하자 하고, 이에 잡아 포도원 밖에 내쫓아 죽였느니라 ”
오늘 본문은 예수님께서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에게 하신 ‘비유의 말씀’이 되겠습니다.
주인이 표도원을 만들고, 농부들에게 세를 주고 타국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농부들은 포도원을 가꾸면서, 포도원에 대하여 욕심히 생기기 시작하였습니다.
포도원의 자리가 너무너무 좋습니다. ‘배산임수’ 천하명당입니다.
뒤에는 산에 둘러서 바람을 막아 줍니다. 그러니까 아무리 바람이 불어도, 포도나무가 피해를 입을 일이 없습니다.
땅은 물이 풍족합니다. 또 물이 잘 빠집니다. 그러니까 포도에게 너무너무 좋은 땅입니다.
여름이 되어 햇볕만 비추면, 포도는 자동적으로 주렁주렁 열릴수 밖에 없습니다.
농부들이 생각을 합니다. “땅이 이렇게 좋으니, 이런 좋은 땅이라면, 무엇을 심든지 거져 먹기요, 누가 하더라도 땅집고 헤엄치기가 아닐수 없습니다.~ 이렇게 좋은 포도원을 내가 가지고 싶습니다.~”
가을이 되어서, 주인이 열매를 받으려고 종들을 보냅니다.
“포도열매를 받아서 건포도도 만들고, 설탕을 가득 넣어서 포도쨈도 만들어서, 극상품 포도제품을 만들어 시장에 팔아야 되겠구나”
그러자 농부들은 주인이 보낸 종들을 때리고, 죽이고, 돌로 칩니다.
“주인이 보낸 종들을 죽이면, 이 포도는 내것이 되고, 이 포도원도 내것이 되겠지~”
주인이 깜짝 놀라서, 다시 자기의 아들을 보냅니다. “나의 아들을 보내면 존대 하리라”
그랬더니 농부들이 아들을 보고 서로 말합니다. “이는 상속자니, 그를 죽이고 그 유산을 우리가 차지하자” 그리고 아들을 죽입니다.
이 포도원의 농부들 어떻습니까?
농부들은 이 포도원이 좋은 것을 알았습니다. 그렇다면, 신실하게 이 포도원을 가꾸고, 포도를 소출하면, 주인이 신실한 농부라고 청지기로 귀하게 삼지 않겠습니까?
또 삮을 넉넉히 줄 때, 신실하게 저축하여 그 포도원 옆에 한 모퉁이를 구입하여, 신실하게 가꾸면, 자신의 포도원도 점점 넓어지지 않겠습니까?
포도원 농부들은 분명 목표가 있었습니다. “나도 이렇게 좋은 포도원을 가졌으면 좋겠다.~”
하지만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하여 신실함은 없고, 목표한 것만 가지려는 욕심을 낼때,
포도원 농부들은 주인의 종들을 돌로치고 죽이고, 주인의 아들을 내쫓아 죽이는, 큰 불의를 만드는 자가 되었습니다.
신실함으로 나아갈 때, 풍성하고 은혜롭고 복되게 되는 것입니다.
신실함이 아니라 불신실 하면서 욕심을 낼 때는, 시샘과 분노와 불의가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6장 14절 15절
이르시되 내가 반드시 너에게 복 주고 복 주며 너를 번성하게 하고 번성하게 하리라 하셨더니, 그가 이같이 오래 참아 약속을 받았느니라
야고보서 1:12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나니 이는 시련을 견디어 낸 자가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이기 때문이라
그리스도인의 믿음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성경에는 하나님께서 주시고마 약속하신 복이 너무너무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복은 어떤 사람이 받는 것입니까? 롯 처럼, 눈에 좋게 보인다고 ‘나는 소돔과 고모라가 좋게 보이는데 저 땅을 내땅으로 하겠습니다.’ 라고 할 때, 하나님께서 소돔과 고모라 땅을 통하여 롯에 복을 주셨느냐? 그렇지 않다고 하는 것입니다.
신실함은 없이, 욕심만으로 소돔과 고모라땅을 선택할 때, 그땅은 오히려 심판의 땅이 되어, 롯의 욕심을 재가루로 만들어 사라지게 하는 땅이 되었던 것입니다.
반대로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약속은 반드시 이루어 질줄로 알고, 광야의 땅이라도 신실함으로 오래참고 인내하며 믿음으로 살아갈때, 하나님께서 약속하신것이 반드시 이루어 지게하셔서,
아브라함은 믿음의 조상이 되고, 그 후손들이 그 땅에서 큰 민족을 이루는, 큰~축복을 받도록 하여 주셨습니다.
아무리 목표가 좋고~, 또한 내가 가지고 싶은 것이 있다 하여도,
신실함이 아니라 불신실하고, 또한 인내함이 아니라 조급함으로 살아며,
더욱이 믿음이 아니라, 불신앙으로--하나님으로 멀어지면~
그 목표는 목표가 아니라 욕심이 되고, 그 삶은 불의의 곁길이 될 가능성이 너무너무 높다고 하는 것입니다.
더 나가서,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천국의 목표가 있을 때, 신실한 믿음으로 살아갑니다.
반대로 천국의 목표가 없는 그리스도인은, 불신실한 믿음으로 살아갑니다. 믿음생활이 불신실하고, 믿음에 인내하지 못하며, 말씀대로 살아가지 않습니다. 그럴 때 천국과는 상관없는 사람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참새 두 마리가 논을 바라 봅니다. 가을이 되어 벼가 익어, 고개를 숙이고 있습니다.
“저 벼들을 먹을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선듯 갈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 논 한가운데, 허수아비가 서 있습니다.
한참을 망설이던 참새가 말합니다. “저게 허수아비 일가? 진짜~ 사람일까? "
옆에 있던 똑똑한 참새가 말합니다 “걱정마, 저건--> 진짜~사람이 아니니까, 빨리 가서 벼를 먹자”
참새가 말합니다. “그걸 네가,~ 어떻게 알아”
똑똑한 참새가 말해 줍니다. “핸드폰을 않보고 있잖아. 요즘 사람들은 서~있어도, 길을 걸어도, 엘리베이터를 타도, 무조건 스마트폰을 보거든~ ”
“맙소사 그렇구나.” 그래서 참새들이 때를지어 날아가, 그 논의 벼를 다 먹었다고 합니다.
왜 이 말씀을 드리는고 하니..
마귀들이 사람을 보면서 머뭇머뭇 하지 않겠습니까?
“저 사람이, 하나님의 자녀일까? 아닐까? --하나님의 자녀라면, 잘못 건들이면 ”예수님의 이름으로 물리치면“, 우리가 엄청나게 당하는데~..”
옆에 있덕 똑똑한 마귀가 말합니다. “걱정마, 저 사람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니까, 맘대로 홀리자”
그러자 아둔한 마귀가 다시 묻습니다. “그걸 네가,~ 어떻게 알아”
똑똑한 마귀가 가르쳐 줍니다. “저 사람을 봐~ 천국의 소망이 없잔아. 천국에 소망을 두는 사람은, 항상 기도하고, 항상 찬송하고, 열심히 예배드리고, 직분 감당하고....예수님 말씀대로 신실하게 믿음생활하거든~ ”
“그렇구나. 저 사람은 그러고보니까 그러네... 이제는, 마음놓고-->이생의 염려와 재리의 유혹과, 각종 시험과 어려운일로, 마음껏 괴롭혀야 되겠다.”~ 그러고 몰려가지 않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오늘 본문의 비유의 말씀을 교훈하시면서, 천국에 대하여 말씀 하십니다.
그래서 2. 신실함으로, 믿음의 열매를 맺는 성도는, 복되다~고 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43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의 나라를 너희는 빼앗기고, 그 나라의 열매 맺는 백성이 받으리라”
자~ 예수님께서는 오늘 비유말씀을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에게 하여 주십니다. 그랬더니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은 포도원의 불의한 농부들과 똑같이~ 반응을 합니다.
45절 46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예수의 비유를 듣고 자기들을 가리켜 말씀하심인 줄 알고
잡고자 하나 무리를 무서워하니 이는 그들이 예수를 선지자로 앎이었더라“
즉, 대제사장과 바리새인들은 마치 불의한 농부들이 포도원의 상속자인 주인의 아들에게 하듯, 예수님을 잡고, 예수님을 죽이고자 하였습니다.
천국에 대한 소망이 있는 사람과 천국에 대한 소망이 없는 사람...
천국소망으로 신실하게 믿음으로 살아가는 사람과, 천국소망이 없어 불신실하게 불신앙으로 살아가는 사람과는 분명한 차이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2:9
“연회장은 물로 된 포도주를 맛보고도 어디서 났는지 알지 못하되 물 떠온 하인들은 알더라”
요한복음에는 ‘신실한 하인들’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가나 혼인잔치에 갔더니 잔치가 시작되자말자, 포도주가 떨어집니다.
그 혼인잔치를 측은히 여겨~, 예수님께서 하인들에게 명령 하십니다. "항아리에 물을 가득~ 채우라"
하인들은 예수님의 명령에 따라, 두세통 드는 돌항아리 여섯 개에, 찰랑찰랑하도록 물을 가득~ 채웁니다.
제가 갈릴리 가나에 가~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곳에 전시해 놓은 두세통 드는 돌항아리를 직접 보았습니다.
두세통 드니까 두말, 세말 정도 드는가? 했는데, 이스라엘에서 두세통 드는 돌항아리는 제 키보다 더 컸습니다. 뿐만 아니라, 두사람이 팔을 벌리고 안아도, 손이 닫지 않을만큼 큰~ 항아리 였습니다.
이 항아리에 물을 채우자면, 얼마나 수고가 대단하였겠습니까?
또~ 지금 모자란 것은 포도주 인데, 예수님께서는 왜 맹물을 이렇게 큰 항아리에 채우라고 하실까? 하인들이~ 생각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또 다시~ 말씀 하십니다. “연회장에게 갖다 주라”~ ~
아무리 하인들이라도, 예수님의 이 명령에 얼마나 당황하고 주저가 되었겠습니까?
하지만 성경을 보면, 하인들은 예수님의 마지막 명령까지, 끝가지~ 신실하게 순종을 합니다.
그랬더니, 연회장에 있던 사람들의 눈이 휘둥그래 집니다.
“이렇게 맛있고, 이렇게 귀한 포도주를 어디에서 구해서 왔습니까?”~
자~ 여기서, 하인들이 으쓱하며, 설명을 할수 있습니까? “저기~ 예수님이 맹물을, 항아리 에 채우라고 하셨고요~ 또 갖다 주라고 하셔서, 우리가 맹물을 가지고 왔는데, 그게 지금 마시고 계신, 그겁니다.”~
자~ 그렇다고 한다면, 그 하인들의 설명을 듣는 연회장 사람들 가운데, 고개를 끄득이며 “일이 이렇게 되어서 맹물이 극상품 포도주로 바뀌었구나” 하고 이해할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열이열, 백이면 백, 맹물이 포도주로 바뀌었다는 것에 대하여, 어떻게 그게 가능한 설명이냐?고 오히려 고개를 가로졌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그런지 요한복음 2장을 보면, 하인들이 그 자초지종을 상세히 설명하더라~라는 대목은 당연히 나오지 않습니다.
단지, 아까전에 읽었던 구절 밖에는 없습니다. 즉 “하인들은 알더라~”하고 끝이 나는 것입니다.
맹물이 포도주가 된 비결을 아는 사람은, 예수님과 아울러, 예수님의 말씀에 처음부터 끝까지 신실하게 순종하였던, 하인들만-- 물론 하인들 스스로도 설명할수 없고, 이해할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 사실이 어떤 연고로 그렇게 되었는지, 아는 증인이 되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천국의 소망을 가지고, 살아갈 때,
마지막 때가 되가 되면 요한계시록에 보면, 예수님께서 생명책에 기록된 성도들의 이름을 부릅니다.
그럴대 예수님의 십자가의 대속의 피가, 그 사람의 모든 죄를 대속 하였기에~
생명책에 이름이 호명된 그 사람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천국을 상속받는자로써, 천국에 들어 가게 됩니다.
자~ 그럴 때, 그 사실을 이해하고, 설명할수 있는 사람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우리는 맹물과 같이, 거룩하신 예수님과는, 한방울도 피도 섞이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죄속에서 살아가며, 매일매일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해드립니다. 모든부분에서 부족하고 또~ 부족합니다.
그런데도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대속의 피를 흘리실때, 그 피가 나를 씻어, 내가 하나님 앞에 사랑을 받는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그리고 천국에 들어가 영생복락을 누리게 됩니다.
사람의 지혜, 사람의 능력으로써는 이 구원의 과정이 도무지, 이해가 않되고 설명이 않됩니다. 하지만 한가지~ 예수님께 끝까지 순종하였던 하인들은 최고로 귀한 붉은~포도주가 어디서 낫는지 알더라 ~ 한것처럼,
신실하게 예수님의 말씀에 끝까지 순종하며 살았던 그리스도인은, 우리가 어떤 연유로 구원받는지, 증거하고 고백하고 영광돌리지 않겠습니까?
“나는 죄중에 살았지만, 예수님의 십자가에 피를 흘리실때, 나는 하나님의 자녀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자~ 그 은혜, 그 기쁨, 그사랑는 누구만 아는 것입니까? 구원받는 하나님의 자녀만 알게 된다고 하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고린도전서 13:11에서 말씀합니다.
“내가 어렸을 때에는 말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깨닫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생각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다가 장성한 사람이 되어서는 어린 아이의 일을 버렸노라”
학생들이 처음 수학을 배우면, 만났다 하면, 서로 싸웁니다. 이문제의 답은 맞다, 이렇게 풀면 틀리다... 정답 가지고, 서로 엄청~ 싸웁니다.
그런데 공부를 잘 하는 둘이 학생들이 만나면, 자랑을 합니다. 이번 시험에, 내가 100점 받았는데~... 이번에는 한개 틀려, 99점 받았는데~...
그런데 대학에 들어가면, 정답 자랑, 점수 자랑은 사라집니다. 그저 조용히~ 겸손해 집니다.
‘페르마의 정리’는 분명히 참인데, 아무리 증명한 것을 보아도, 도무지 이해가 않됩니다.~~
그리스도인과 않믿는 사람이 만나면, 다툼이 일어날때가 있습니다. 기독교가 그러면 된다. 않된다. 맞다 틀리다....어떨대는 말싸움이 될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그리스도인 끼리 만나면, 서로 자랑을 하게 됩니다. 우리교회 제일 좋아요. 우리 교회는 제일 커요~. 우리교회는 이런 것도 하는데...
그런데...믿음이 엄청나게 성숙하고, 믿음이 엄청나게 깊은사람 둘이 만나면, 그저 조용히~ 겸손해 집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사랑으로, 내가 구원을 받았는데....그 사실은 알지만, 도무지 어떻게 나 같은 사람을 구원하여 주시는지...그 한량없는 사랑, 아가페 사랑...갚을 길이 없습니다.~
...그저 빙긋빙긋~ 웃기만 하며~, 겸손하게 봉사 하고... 마치 누구와 같습니까? 물떠운 하인 처럼, 그저 가슴에 간직한체, 순종하지 않겠습니까?
그렇습니다. 예수님의 깊은 은혜는 설명이 않됩니다.~ 이해도 않됩니다.
방언해 본 사람은 방언을 알고, 환상을 본 사람은 환상을 알고, 축복을 받아 본 사람은 축복을 알고, 응답을 받아본 사람은 응답을 압니다.
옆에서 묻습니다. 어떻게 하니까? 응답을 받았어요? 어떻게 하니까? 축복을 받았어요?
설명을 해줄수가 없습니다. “그저~ 물떠온 하인들은 알더라..”
예수님 말씀에, 순종하여 물을 떠~ 보고, 순종하여 기도를 해~보고, 온정성을 다하여 예배를 드리고, 그럴 때 알게되는
예수님과 나만이 아는 기쁨이 아니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말씀을 정리 합니다.
농부들은 목표는 있으되 신실하지 못하였습니다.
대세자장과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을 만났으되, 천국과 관계없는 길로 걸어 갔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천국의 소망이 있을 때, 신실한 믿음으로 살아 갑니다.
예수님께 순종한 사람만, 알게 되는 기쁨이 있습니다.
김포상도교회 성도들은 예수님의 말씀에 신실하게 순종함으로,
세상이 알수 없는, 귀한 은혜, 귀한 능력으로 살아가는 기쁨의 한주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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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예수님의 십자가 사랑으로,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 삼아 주시니 감사를 드립니다.
세상은 알수 없는, 큰 소망, 큰은혜, 큰 기쁨을 하나님의 자녀에게 주셨으니,
천국 소망을 가지고, 신실하게 믿음으로 살게 하시고,
예수님의 말씀앞에 끝까지 순종하며 살게 하시고,
그리하여 세상은 알수 없는, 하나님의 자녀만 받고, 그리스도인만 받게되는
하나님의 큰 사랑, 큰 은혜, 크신 동행하심 속에...
한주간도, 성숙한 믿음으로, 살아가는... 김포상도교회 성도들로, 다~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 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