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겔 14장 1절 14절 긍정과 성숙함으로 나감
이스라엘 장로 두어 사람이 나아와 내 앞에 앉으니,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이르시되
인자야 이 사람들이 자기 우상을 마음에 들이며 죄악의 걸림돌을 자기 앞에 두었으니 그들이 내게 묻기를 내가 조금인들 용납하랴. 그런즉 너는 그들에게 말하여 이르라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이스라엘 족속 중에 그 우상을 마음에 들이며 죄악의 걸림돌을 자기 앞에 두고 선지자에게로 가는 모든 자에게 나 여호와가 그 우상의 수효대로 보응하리니. 이는 이스라엘 족속이 다 그 우상으로 말미암아 나를 배반하였으므로 내가 그들이 마음먹은 대로 그들을 잡으려 함이라
그런즉 너는 이스라엘 족속에게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너희는 마음을 돌이켜 우상을 떠나고 얼굴을 돌려 모든 가증한 것을 떠나라. 이스라엘 족속과 이스라엘 가운데에 거류하는 외국인 중에 누구든지 나를 떠나고 자기 우상을 마음에 들이며 죄악의 걸림돌을 자기 앞에 두고 자기를 위하여 내게 묻고자 하여 선지자에게 가는 모든 자에게는 나 여호와가 친히 응답하여, 그 사람을 대적하여 그들을 놀라움과 표징과 속담 거리가 되게 하여 내 백성 가운데에서 끊으리니 내가 여호와인 줄을 너희가 알리라. 만일 선지자가 유혹을 받고 말을 하면 나 여호와가 그 선지자를 유혹을 받게 하였음이거니와 내가 손을 펴서 내 백성 이스라엘 가운데에서 그를 멸할 것이라. 선지자의 죄악과 그에게 묻는 자의 죄악이 같은즉 각각 자기의 죄악을 담당하리니, 이는 이스라엘 족속이 다시는 미혹되어 나를 떠나지 아니하게 하며 다시는 모든 죄로 스스로 더럽히지 아니하게 하여 그들을 내 백성으로 삼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려 함이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여호와의 말씀이 또 내게 임하여 이르시되. 인자야 가령 어떤 나라가 불법을 행하여 내게 범죄하므로 내가 손을 그 위에 펴서 그 의지하는 양식을 끊어 기근을 내려 사람과 짐승을 그 나라에서 끊는다 하자. 비록 노아, 다니엘, 욥, 이 세 사람이 거기에 있을지라도 그들은 자기의 공의로 자기의 생명만 건지리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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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달은 다섯주일이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8월 마지막 주일이요, 다음 주일은 9월달 첫째주일,‘가을 1차 총동원 주일’이 되겠습니다.
오늘은, 8월달을 마무리 하며, 9월달은 바라보며,“나의 믿음은 얼마나,긍정과 성숙함으로 충만하여 졌습니까?”라는 주제로 말씀을 전하려고 합니다.
에스겔 선지자는 두가지, 큰 소용돌이 속에 살아갔던 선지자입니다.
그 소용돌이는, 남유다의 멸망과 남유다 백성의 멸망이 되겠습니다.
남유다는 바벨론이 처들어와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남유다 백성들은 바벨론에 포로가 되어, 남유다 백성의 정체성을 잃어버리고, 바벨론 사람이 되어 갑니다.
나라가 사라지고 역사속에 지워지는 소용돌이, 또 그 속에서 살아가던 유다백성들은, 스스로를 이제는 남유다 백성이 아니라, 바벨론 백성이라고 생각하는, 민족의 의식, 민족의 정체성이 바뀌는 소용돌이 속에서--에스겔 선지자는 살아갔습니다.
1. 남유다 백성은 자기우상을 마음에 들이며 살아갑니다.
오늘 본문, 3절 4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인자야 이 사람들이 자기 우상을 마음에 들이며 죄악의 걸림돌을 자기 앞에 두었으니 그들이 내게 묻기를 내가 조금인들 용납하랴
그런즉 너는 그들에게 말하여 이르라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이스라엘 족속 중에 그 우상을 마음에 들이며 죄악의 걸림돌을 자기 앞에 두고 선지자에게로 가는 모든 자에게 나 여호와가 그 우상의 수효대로 보응하리니”
세상의 사람들은 당연히, 민족은 영원하며, 민족이 역사를 만들어 간다~고 생각을 합니다.
하지만 성경은 하나님께서 민족을 일어나게도 하시고, 민족이 사라지게도 하시며, 아울러 하나님께서 역사는 만들어 가시는 주인이심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성경은 남유다를 멸망하게 하신분도 하나님이시요, 남유다백성들에게 진노를 내리신분도 하나님 이심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남유다 백성들의 어떤 모습을 보시고, 하나님께서는 진노 하시게, 된 것입니까?
3절 상반절에 말씀 합니다. “인자야 이 사람들이 자기 우상을 마음에 들이며”~
그렇삽니다. 남유다 백성들은 자기우상을 마음에 들이며 살아 갔습니다.
‘자기우상’은 영어성경으로는 ‘데어 아이돌’ 입니다. 요즈음 ‘아이돌’이란 말을 많이 씁니다만, ‘아이돌’은 ‘우상’이란 뜻이 되겠습니다. 맹목적으로 섬기고, 맹목적으로 숭배하는 우상을 ‘아이돌’ 이라고 부릅니다.
그리스어 ‘에이돌론’, 라틴어 ‘이돌룸’에서 나온 말로써, 사람을 홀리는 허깨비,란 뜻이 들어 있습니다.
히브리어 성경에는 ‘길룸’이라고 쓰고 있습니다. 나무나 통나무로 만든 우상이 되겠습니다.
우리나라는, 온 산이 나무로 가득합니다. 하지만 이tm라엘은 온 산이 광야입니다. 나무가 없습니다.
그래서 보기좋은 나무가 있으면, 그 나무를 나의 길룸으로 삼습니다. 그 나무에 천을 걸고 치창을 합니다. 그리고 그 나무앞에 가서 절을 합니다.--바로,‘길룸’이 되는 것입니다.
또, 큰~통나무를 보면 아깝지요, 그 통나무를 세워놓고 나의 ‘길룸’으로 삼습니다. 그 통나무에 글씨를 세기고, 조각도 합니다. 그러면서 통나무 ‘길룸’으로 만들고, 그 통나무 길룸 앞에 가서 절을 합니다.
사람들이 서로 자랑을 합니다. 나의 길룸--나의 아이돌은, 3개나 있습니다.
하하~ 길룸--아이돌이 3개라니,.... 부러워하지 마십니다. 나는 4개나 있습니다.
자~ 이런 남유다 사람들의 모습, 얼마나 유치하고, 얼마나 어리섞습니까?
산에 있는 돌, 산에 있는 나무를~ 내것으로 찜한다고~ 그것이 무슨 자랑이 될 수 있겠습니까? 그 돌과 그 나무는--사람이 먹을수도 없습니다. 그 돌과 통나무는, 새끼를 놓고 자라지도 않습니다. 무생물입니다.
사람이 먹을수도 없고, 살아서 새끼를 쳐저 많아지지도 않는, 그냥 통나무요, 돌인데..
남유다 사람들은, 그 아이돌--그 길룸을 3개 가지고 있다~ 4개 가지고 있다고 면서 자랑으로 여깁니다.
또한, 그 길룸--그 아이돌을...나의 마음속에 들이고--나의 마음 중심에 세우고... 가장~중요하게 여기며, 숭배하며, 떠받들였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4절 하반절입니다. “나 여호와가 그 우상의 수효대로 보응하리니”
길룸과 아이돌이 3개 있으면 3개 만큼 보응하시고, 4개 있으면 4개 만큼 보응하시겠다고 하십니다.
나의 마음 중심에 세우고, 가장 귀하게 숭배하는 것이 있으면, 그만큼 되돌려 보응하실 것이라~고 말씀 하셨던 것입니다.
‘임계점’이란, 용어가 있습니다. 일어날 임, 지경 계, 점점 입니다.
물리학, 수학에서 사용하는 용어 이지요. 간단하게 설명을 드리자면, ‘그대로 있을 수 없어, 변화기 일어나는 시점’을 ‘임계점’이라고 합니다.
조금 더 멋있게 설명을 드리자면, “본질이 왜곡되어~, 품을수 있는 양을 넘어설때, 변화가 폭발적으로 발생하는 시점”이 임계점 이 되겠습니다.
예를 들면, 물의 임계점은 100도 입니다. 10도에 물에, 불을 땝니다. 1도 올려 11도가 되어도 물은 가만히 있습니다. 더 세게 불을 땝니다. 또 1도 올려서 12도 되어도 물은 가만히 있습니다.
자, 본질은 무엇입니까? 물입니다. 그런데 불을 때는 왜곡을 가합니다. 그러면 본질에 왜곡이 축척 됩니다. 그렇다면 무한정 왜곡을 가하여도, 물은 천천히, 그냥~ 1도씩 올라 가기만 하느냐? 아닙니다.
99도에서 1도가 올라가, 100도가 되는 순간? 임계점이 됩니다. 임계점을 넘어서면, 본질에는 폭팔적인 변화가 나타납니다. 물이 부글부글 끓게 되고, 증기가 뿜어져 나오고, 물이 그릇에 넘치게 됩니다.
물만 그렇습니까? 아닙니다. 플류토늄, 우라늄 235, 등등 모든 것에는, 다~ 임계점이 있습니다.
그 전에는 그냥 돌이나 다름 없습니다. 망치로 두드려고 아무런 반응이 없습니다. 하지만 임계점--임계질량을 넘어서면, 그때는 핵분열을 일으켜, 원자폭팔을 하게 됩니다.
오늘 본문으로 돌아와서, 남유다 백성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무한정 자기우상을, 자기마음에 들이며, 살아가도 괜찮은가? 아닙니다. 임계점이 있습니다.
5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이는 이스라엘 족속이 다~ 그 우상으로 말미암아, 나를 배반하였으므로 내가 그들이 마음먹은 대로, 그들을 잡으려 함이라”
즉,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두, 다~ 하나같이, 하나님을 배척하고, 자기길룸--자기우상을, 자기 마음 중심에 세울때, 하나님께서는 진노하게 되십니다.
창세기 18장 26절 에는 말씀합니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만일 소돔 성읍 가운데에서 의인 오십 명을 찾으면 그들을 위하여 온 지역을 용서하리라”
소돔 성읍에 사람들이 얼마나 많았겠습니까? 그런데 모두~ 하나님을 배척하고, 죄악과 길룸을 자기 마음중심에 세웁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의인 오십명을 찾으면, 그 의인들을 위하여, 소돔성읍을 용서 하리라~말씀 하십니다. 아브라함이 간곡하게 기도를 드립니다.
그래서 의인의 숫자가 내려 갑니다. 50명, 45명, 40명, 30명 20명 열명까지 내려갑니다.
하지만, 소돔과 고모라는, 열사람의 의인이 없습니다. 그결과 심판이 임하게 됩니다.
남유다는 어떠 하였습니까? 남유다가 멸망할 때--예레미야 선지자에게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예레미야5장 1절
“너희는 예루살렘 거리로 빨리 다니며, 그 넓은 거리에서 찾아보고 알라, 너희가 만일 정의를 행하며 진리를 구하는 자를, 한 사람이라도 찾으면 내가 이 성읍을 용서하리라”
남유다는, 소돔 성읍 몇십개를 합쳐놓은것 보다, 더~ 크고, 사람도 더~ 많습니다.
그런 남유다의 백성을 내려다 보시는데--백성들이 모두 똑같습니다.
모두 다~, 빠짐없이, 하나같이, 하나님을 배척하고, 자기 마음에는 자기우상을 들이고 살아가는데,
반대로 하나님을 섬기며, 마음중심에 하나님을 모시고 살라가는 사람을 찾아보려고 하여도, 한사람도 없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럴 때, 남유다는 의인 한명이 없음으로 인하여, 임계점에 도달 합니다.
이제는, 하나님의 진노가 남유에게 임하기 시작합니다. 그럴 때 바벨론이 처들어 옵니다. 남유다는 힘 한번 쓰지 못하고, 우왕좌왕 하다가, 모래성 무너지듯, 무너집니다.
남유다백성들은 바벨론에 포로가 되어 끌려 갑니다. 포로가 된 남유다 백성들을 향하여, 하나님께서는 에스겔 선지자를 통하여--자기 마음에 들인, 자기우상 만큼, 보응하시겠다~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분명 사랑의 하나님 이십니다. 축복에 하나님 이십니다. 이스라엘을 도우시는 하나님 이십니다.
그러나, 임계점을 넘어갈 때, 자기우상을 자기 마음중심에 세우고,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을 배척할 때,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는 남유다, 하나님이 보응하시는 남유다 백성으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오늘날 세상은 어떠 합니까?
사도바울은 디모데후서 3:4에서 말씀합니다.
“배신하며 조급하며 자만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마지막 때가 되면 될수록, 사람이 하나님 사랑하는 것 보다, 더 사랑하는 것이,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자만이든, 쾌락이든, 자기 목표를 이루지 못하여 생기는 조급함이든, 아니면 예수님을 배반하고 세상을 쫓는 것이든... 하나님 보다가 더~ 그것을 사랑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자기의 마음에 들이고, 자기중심의 왕좌에 모시더라는 것입니다.
어떤 분이 질문을 합니다. “목사님,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다~ 자기 맘대로 살아갑니다.
믿음생활도 이제는 자기 맘대로 해도, 하나님께서 봐주시지 않을까요?”
자기 소견에 있대로--맘대로 행하는 것이,.. 자유이지 방종인지, 판단하기가 쉽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자기 소견에 있는대로 행하는 결과가, 하나님을 배척하고 멀리하는 것이 되고
또한 반대로, 자기우상, 자기길룸을 나의 마음에 들이고, 나의 삶의 중심에 세우는 것이라면....
무한정 그렇게 하여도 괜찬은가? 아닙니다. 임계점이 찾아 온다고 하는 것입니다.
나의 마음에,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하나도 없게 되고,
나의 마음에, 하나님이 아니라, 소견대로 쫓는 길룸으로 가득하게 되면,
그 다음 임계점이 됩니다. 그 사람은--하나님과의 관계에~‘심각한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2. 그리스도인은 노아, 다니엘, 욥의 신앙을 본받아야 하겠습니다.
14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비록 노아, 다니엘, 욥, 이 세 사람이 거기에 있을지라도 그들은 자기의 공의로 자기의 생명만 건지리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오늘 본문을 보니까, 비록, 임계점을 넘어선 유다백성들을 향하여, 하나님의 진노하심이 계시지만, 감사하게도 자기 공의로 자기의 생명을 건지게 되는 예가 있는데, 그 믿음의 예로써, 노아, 다니엘, 욥을 말씀 하고 있습니다.
자, 노아는, 지난 주일 말씀이 나갔습니다. 세상이 죄악으로 관영할 때, 하나님의 물심판이 임하지만, 하나님과 동행하던 노아는 방주를 만들고, 노아의 가족은 구원을 받게 되었습니다.
다니엘은, 남유다 백성이 바벨론에 멸망하였지만, 하나님을 섬기던 다니엘은 높임을 받고 바벨론의 총리가 되어, 다시 이스라엘이 해방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욥은, 사탄의 시험으로 괴로움을 당하지만, 하나님을 향하여 굳은 믿음으로 살아갈 때, 사탄의 시험을 이기고, 전보다 갑절의 축복을 받게 됩니다.
세사람에게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세사람은 공통적으로 급격한 변화를 경험하게 됩니다.
노아 때에는 세상이 모두 죄로 관영하고, 다니엘 때에는 남유다가 모두 망하게 되며, 욥은 생활이 온통~ 시험으로 괴롭게 되었습니다.
아무리 심지가 강한 사람이라도, 급격한 혼란이 찾아오면, 생각이 요통치게 됩니다.
“본질이 무엇인가? 왜곡이 무인인가? ”
“예수님이 중심인가? 세상이 중심인가? ” 가치관과 판단에 혼란이 찾아오고, 망설임이 찾아오게 됩니다.
그런데, 이 세사람은 그때, 본질을 분명히 바라 보았습니다. 그리고 본질을 붙잡았습니다.
즉, 죄악이 관영한 세상은 뒤로하고, 멸망한 남유다는 뒤로하고, 사탄의 시험은 뒤로하고, 하나님을 굳게 붙잡았습니다.
그럴대, 이 세 사람은, 그 혼란한 상황속에서 구원받고, 보호하심을 받고, 다시 일어서서 갑절의 축복을 받는 사람이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오늘 본문말씀이 어렵습니다만, 더 확대하여 오늘날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급격한 변화를 마주하고, 나에게 혼란이 찾아오면, 그리스도인은... 노아, 다니엘, 욥의 지혜를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무엇이 본질인가? 무엇이 왜곡인가? 왜곡은 뒤로하고, 본질을 붙잡을 때...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발견할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또, 노아 다니엘, 욥은 주위사람을 복되게 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 54장 13절 15절에서 말씀 하십니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 데 없어 다만 밖에 버려져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겨지지 못할 것이요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에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 안 모든 사람에게 비치느니라“
소금이 없으면, 음식에는 부패가 발생 합니다. 그런데 소금이 있으면, 음식이~ 부패하지 않습니다.
등불이 없으면, 깜깜하게 됩니다. 그런데 등불이 있으면, 길을 찾게 됩니다.
그렇습니다. 노아, 다니엘, 욥은, 임계점을 늦추고, 임계점에 도달하지 않도록 하는, 긍정적이고 성숙한,--‘믿음의 사명자’의 역할을 하였습니다.
혹이 어떤분이 “이제 세상에는 소망이 없습니다. 임계점을 넘은것 같습니다. 근심과 절망으로 괴롭습니다.~”
맞습니다. 세상은 소망이 없고, 어떻게 보면 임계점을 넘어선것 같아 보입니다. 또 근심과 절망으로, 괴로움을 경험할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성경을 보면, 노아 한사람으로 인하여, 노아에 가정은 방주를 만들고 구원받게 됩니다.
다니엘 한사람으로 인하여, 남유다백성은 믿음의 모범을 알게되고, 믿음이 자라, ‘회생’의 역사를 보게 됩니다.
욥 한사람이, 굳건한 믿음으로 시험을 이길 때, 욥의 가정에는 어려움이 물러가고, 그전 보다 갑절의 축복을 받게 됩니다.
즉, 한사람의 긍정적인 믿음, 한사람의 성숙한 믿음이, 너무너무 중요~ 합니다.
그 사람이, 가정에 있고, 사회에 있고, 나라에 있음으로 인하여, 세상에서는 표시가 나지 않습니다만,
영적으로 하나님께서 살펴 주시고, 인정하여 주시고, 돌이켜 주십니다.
그럴 때, 부폐함이 멈추게 되고, 어둠은 물러가게 되며, 아울러 가정이 구원을 받고, 사회가 의를 보게 되고, 그 가정에 갑절의 축복을 다시받는 역사가...,
바로 그 한 사람으로 인하여 시작 되더라고 하는 것입니다.
로마서 5장 19절, 17절 에는 말씀 합니다.
“한 사람이 순종하지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 된 것 같이, 한 사람이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
한 사람의 범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그 한 사람을 통하여 왕 노릇 하였은즉, 더욱 은혜와 의의 선물을 넘치게 받는 자들은, 한 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생명 안에서 왕 노릇 하리로다”
온 세계가 한분 예수님으로 인하여, 생명이 충만하게 된 것럼,
한사람의--긍정과 성숙함이 충만한 믿음은... 능히 그 가정과 사회와 생활속에 좋은 역사를 시작하게 되더라고 하는 것입니다.
말씀을 정리 합니다.
남유다 백성들은 자기우상을, 마음에 들일 때, 마이너스의 길을 가게 되었습니다.
반대로, 노아, 다니엘, 욥은 빛과 소금되는--믿음으로 살아갈 때,
가정이 구원을 받고, 유다민족이 다시 믿음을 깨우치고, 또한 시험을 이기고 갑절의 축복이 임하게 되었습니다.
김포상도교회 성도들은 긍정과 성숙함으로, 나의 중심에 예수님을 모셔,
노아와 다니엘과 욥과 같은, 믿음의 역사가 나타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 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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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오늘날 빛과 소금과 의인으로 불러 주시니, 감사를 드립니다.
한분 예수님으로으로 인하여 죄악이 물러가고, 생명이 찾아온것 처럼,
한사람 노아로, 가정이 구원을 받고, 한사람 다니엘로 민족이 믿음을 배우게 되고
한사람 욥으로, 가정이 시험을 이기고, 갑절에 축복을 받게 되었사오니,
오늘 우리 김포상도교회 성도들 한사람 한사람은, 긍정과 성숙한 믿음으로 살아갈때에
믿음으로-- 구원의 방주를 만드는 가정,
자녀들은-- 세상에서 다니엘 처럼 높임받게 되고
시험은 물러가고, 갑절의 축복을 받게 되는--빛과 소금됨의 역사가 나타나게,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 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