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후서 4장 1절 10절 질그릇 속에 보배
그러므로 우리가 이 직분을 받아 긍휼하심을 입은 대로 낙심하지 아니하고, 이에 숨은 부끄러움의 일을 버리고 속임으로 행하지 아니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하게 하지 아니하고 오직 진리를 나타냄으로 하나님 앞에서 각 사람의 양심에 대하여 스스로 추천하노라.
만일 우리의 복음이 가리었으면 망하는 자들에게 가리어진 것이라. 그 중에 이 세상의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하게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치지 못하게 함이니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이니라, 우리는 우리를 전파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 예수의 주 되신 것과 또 예수를 위하여 우리가 너희의 종 된 것을 전파함이라
어두운 데에 빛이 비치라 말씀하셨던 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추셨느니라.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심히 큰 능력은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박해를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 우리가 항상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
오늘은 ‘어버이 주일’입니다.
믿음의 부모님들에 대한 칭찬과, 아울러 믿음의 부모님들이 나가야 할 길에 대하여, 말씀을 전하려고 합니다.
요즈음 경제에 대하여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워렌 에드워드 버핏’--참으로 유명 하지요.
국적은 미국입니다. 나이는 올해, 만,90세입니다.
현재 ‘버크셔 해서웨이’라고하는 조그만 회사의 현역 CEO 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자산으로는, 전세계 4위의 거부로 이름을 올리고 있습니다.
‘워렌 버핏’은, 회사가 크지 않지만, 투자를 너무나 잘합니다.
워렌 버핏의 투자의 방법은, 경제에 교과서로 통합니다. ‘가치 투자’입니다.
외형이 아니라 내면을 살핍니다.
현재가 아니라 미래를 살핍니다.
‘내재가치’가 ‘진짜 가치’라고 보고, 투자를 합니다.
일반적으로 경기가 좋지 않고, 경제가 내리막이다 하면, 사람들은 불안해 합니다. 회사 주식을 갖다 팔고, 회사에 투자한 것을 거둬 들입니다.
하지만 '워렌 버핏‘은 시장의 상황에 편승하지 않고, 주식의 등락에 흔들리지 않습니다.
투자할 회사의 겉모양을 보고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그 회사의 내재적 가치를 바라 봅니다. 즉 그 회사가 튼튼한 실력이 있는가를 살핍니다.
또, 투자할 회사의 현재를 보는 것이 아니라, 그 회사의 미래를 바라 봅니다.
즉 그 회사가 미래에 잘 될 수 있는 회사인가를 봅니다.l
그래서 겉모양이 아니라 속에 있는 건실함을 살피고,
현재가 아니라 미래에 가능성을 살펴서~,
남들은 투자를 거둬 들여도, ‘워랜 버핏’ 반대로 엄청나게 투자를 합니다.
3년 5년 10년 뒤에, 보니까 그 회사는, 갈수록 큰 회사가 되어, ‘워랜 버핏’은 엄청난 수익을 얻게 됩니다.
이런일이 반복 되니까, ‘워랜 버핏’은 90살인데도, 미국경제에서 가장 유명한 투자가로, 현재도 이름을 날리고 있습니다.
믿음은 여러 가지로 설명할수 있습니다만, 오늘 본문을 보면 ‘내재 가치를 바라보는’것이 믿음이 하닌가? 하는 것입니다.
본문 7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심히 큰 능력은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
즉 겉모양으로는 질그릇입니다. 하지만 그 속에 내재되어 있는 것니까, 보배가 들어 있습니다.
구원이 들어있고, 복음이 들어있고, 하나님의 심히 큰 능력이 그 속에 역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1. 믿음의 부모님은, 자녀의 미래를 위하여 헌신하고 있습니다.
사실 ‘가치투자’를 제일 힘써 실천하고 있는 분들은, 부모님들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부모님은 ‘어린아이’의 현재의 모습, 현재의 가치를 보고 ‘헌신’하는 것이 아닙니다.
어린아이의 현재의 가치는, 보잘것 없습니다.
육체적으로도 어린아이 입니다. 정신적으로도, 능력적으로 ‘어린아이’는 보잘것 없습니다.
어린아이가 길거리에 나가면, 부모님이 신경쓰고, 돌보지 않으면, 위험에 처할수 밖게 없는 것이 ‘어린 아이’입니다.
요즘 어린이들을 보면, 걸어갈 때 ‘핸드폰’을 보느라고 정신이 없습니다.
턱을 잘못 딪어서 휘청~ 합니다.
차가 빵빵~ 해야 돌아보고, 총총 걸음으로 걸어갑니다.
현재의 ‘어린아이’의 모습은, 부족하고 걱정스럽고, 보호해 주어야 할 부분이, 너무나 많습니다.
하지만, 내재적 가치, 즉 이 어린아이 속에 들어있는, 미래를 바라보면 이야기가 틀려 집니다.
어린아이는 자라납니다. 육체적으로 자라나고, 능력이 자라나고, 역량이 자라납니다.
나중에는 핸드폰을 보는 것이 아니라, 핸드폰의 프로그램을 만들고, 핸드폰에 들어가는 반도체를 만드는, 전문가로 성장합니다.
또한 어른이 되어서 가정을 이루고, 자녀들을 낳습니다.
그러니까, 부모님은 미래에 어린아이가 훌륭한 사람으로 성장할 것을 바라보면서,
어린아이에 헌신하는 것을, 기쁨으로 여깁니다.
부모님은 당장의 외형으로-- 어린아이가 가지고 있는, 부족함과 연약함을 발견할 때 실망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내면적으로-- 어린아이가 가지고 있는 가능성과 꿈을 보고-- 부족함은 기쁨이 되고, 연약함이 사랑이 되어, 자녀들을 돌보며, 감사함으로 살아갑니다.
자~ 그 길로 걸어오신, 믿음의 부모님들에게, 그 길이 헛되지 않고, 그 길이 옳은 길이었으며,
앞으로, 기대하고 바라는 것~ 이상으로 하나님께서 나타나게 하실 것을
주님의 이름으로 축 원 합니다.
그렇습니다. 사도바울은 믿음의 ‘내재적 가치성’에 대하여, 오늘 본문을 통하여,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 1절을 보겠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 직분을 받아 긍휼하심을 입은 대로 낙심하지 아니하고”
어린아이를 대하는 믿음의 부모님들과 마찬가지로, 복음을 대하는 믿음의 사명자들도, ‘믿음의 내재적 가치성’을 바라보며서, 살아가야 된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겉모습, 겉모습의 연약함, 현재의 불완전함을 볼 때, 세상사람들은 낙심하게 됩니다.
지금 당장 어렵고, 지금 힘들면, 큰일났구나~ 하면서, 믿음이 없는 사람들은 낙심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헌신하는 것을 멈추고, 희망을 거둬 들입니다. 가는 길을 멈추게 됩니다.
하지만, 예수님께, 이~ 직분을 받은 믿음의 사람은, 세상사람과 같이 쉽게 낙심하지 않습니다.
외형이 아니라 내면을 살핍니다.
현재가 아니라 미래를 바라봅니다.
외재적 가치가 아니라, 내재적 가치에 주목을 합니다.
그러면서 믿음의 눈을 열어, 하나님의 계획을 바라보고, 하나님의 역사함을 바라봅니다.
그럴때, 기도하면서, 믿음의 길을 갑니다.
믿음의 부모님들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세상의 일반적인 부모님들과 믿음의 부모님들은 다릅니다.
믿음의 부모님들은, 괴로울때에도 낙심하지 않고, 믿음의 길을 갑니다.
어려울 때 찬송하고, 힘들 때 기도하며, 믿음으로 살아가는 것이 어떤 것인지, 자녀들 앞에서, 보여 주고, 가르쳐.. 줍니다.
그러니까...자녀들이 그 모습을 보고 기억을 하고, 배웁니다.
나중에 자녀들도 어려운일을 당할 때, 그때~...우리 아버지는 찬송하였는데, 그때~.. 우리 어머니는 기도하였는데, 그러면서 찬송하고 기도하며, 믿음의 자녀들도, 어려운 일을, 믿음으로 이겨 나갑니다.
성경을 보면, ‘요셉’이 나옵니다.
요셉은 자수성가한 사람입니다. 출세를 잘~하여, 애굽의 ‘총리’의 자리에 올라 갔습니다.
요셉의 아버지가 누구입니까? ‘야곱’ 이지요.
가만히 살펴보면 ‘요셉’과 ‘야곱’은 그 인생이 겹쳐지고, 아들 요셉이, 아버지 야곱의 길을 따라갔던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요셉의 아버지 야곱은, 형이 받을 축복을 가로채어 받다가, ‘미움’을 받아서, 집에서 쫓겨나게 되었습니다.
야곱은 쫓겨나서 가면서, 벧엘에서 기도를 합니다. 사닥다리 환상을 보고, 믿음으로 살기로 다짐을 합니다.
외삼촌 라반의 집에 가서, 어려운 일을 당할때에, 항상 믿음으로 살아갑니다.
그랬더니 나중에 하나님께서 복을 내려 주셔서, 큰 거부가 되어, 금의환향 하게 됩니다.
아버지의 이~ 이야기를 듣고, 배운 요셉도, 마찬가지입니다.
형들의 미움을 받아서, 종으로 팔려 갑니다.
하지만 믿음으로 살아가는 것을 버리지 않습니다. 아버지도 믿음으로 살아갔는데, 나중에 하나님께서 큰~ 복을 내려 주셨는데, 하나님께서 금하시는 것을, 어떻게 내가 할수 있으랴?
그러면서, 요셉은 유혹과 낙심이 찾아와도, 절대로 믿음을 버리지 않습니다.
보리발의 장군의 아내가, 유혹을 하여도, 넘어가지 않습니다.
왕의 감옥에 들어가도, 낙심하여.... 믿음을 버리지 않습니다.
그럴때에, 나중에 하나님께서 그 믿음을 보시고 때가 되어 역사 하시니까, 요셉은 애굽의 총리로 출세를~ 할수 있게 되었습니다.
요셉이, 아버지 야곱이 걸어갔던.... ‘믿음의 인생’에 대하여 몰랐다면,
어떻게 어려운 일을 당할 때, 믿음으로 이겨낼 생각을 할수 있었겠습니까?
자녀의 교과서는 누구이겠습니까? 자녀에게는 부모님이 최고의 교과서 입니다.
배운만큼 그 길을 걸아가게 되고, 아는 만큼, 행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의미에서, 아버지 야곱의 ‘믿음의 인생’이 없었다면, 어떻게 요셉의 성공이 있을수 있었겠습니까?
아버지 야곱의 ‘고난 중 믿음’은, 요셉의 삶에... 믿음에 지침이 되고,
아버지 야곱의 ‘훌륭한 믿음의 인생’은, 요셉이 닮고 싶은, ‘믿음의 목표’가 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믿음의 부모님들이 가는 길은, 불신앙의 부모들이 가는 길과는, 전혀 다른 길~입니다.
세상사람들은 겉모습만 볼줄알고, 지금 당장의 일만 따져보고,
어려움이 있으면 낙심하고, 힘든 일이 생기면, 손을 놓아 버립니다.
하지만, 믿음의 부모님들은, 겉모습이 아니라 내재적 가치를 바라봅니다.
지금 당장이 아니라, 미래를 보고 살핍니다. 그냥 보고 살피는 것이 아니라,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고, 하나님 앞에서, 자녀들을 향하여 헌신하며 살아갑니다.
그럴 때, 그 위에~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것이, 믿음의 부모님이 나아가는 길~ 이라고 하는 하는 것입니다.
2. 믿음의 부모님에게는, 하나님의 역사하심이 나타 납니다.
3절, 4절 말씀
만일 우리의 복음이 가리었으면 망하는 자들에게 가리어진 것이라
그 중에 이 세상의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하게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치지 못하게 함이니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이니라
어떤 집에 초등학생이, 학기말 고사를 쳤는데, 성적표를 가지고 오지 않습니다.
부모님이 이야기 합니다. “예야, 학기말 고사를 쳤는데, 성적표는 어떻게 되었니?”
아이가 대답합니다. “선생님이, 부모님께 걱정을 끼쳐 드리는 일은 절대로 하면 않된다고 하셨어요. 그래서 걱정하실까 봐, 성적표를 않가지고 왔습니다.”~
사도바울은, 예수님께 받은 “이 직분”--‘복음의 직분’을 가장 귀하게 여겼습니다.
그래서 세상사람들이 생각하는 길과는 반대로, ‘복음의 길’로 걸어 갔습니다.
세상사람들은 이해를 하지 못합니다. 다소에서 철학을 배웠으면, 훌륭한 교수님이 될텐데, 왜 그 길은 버리고, ‘복음의 사명’을 감당하는 길로 걸어 갑니까?
가말리엘 밑에서 율법을 배웠으면, 훌륭한 변호사가 될텐데, 왜 그 길은 버리고, ‘복음의 사명’을 감당하는 길로 걸어 갑니까?
세상사람들이, 어떻게 다~ 이해를 하겠습니까? 지금은 알지 못합니다. 지금은 깨닫지 못합니다.
하지만 나중에 예수님 앞에 섰을 때, 훌륭한 교수님 보다가 더 귀한 것은, 훌륭한 변호사 보다가 더 귀한 것은, ‘복음의 사명’을 감당한 것임을 알게되지 않겠습니까?
사도바울이, 열심히 복음을 전합니다. 그런데 세상사람들은 도무지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오히려, 온갖 트집을 잡아서, 복음을 전하는 사도바울을 괴롭게~ 합니다.
“어이~ 예수님 전하는 사도바울이 여기에 왔습니다. 또 괴롭혀~ 봅시다.”~ 그래서 사람들을 선동을 하고, 없는 누명을 씌우고, 감옥에 들어가고, 돌에 맞고, 죽을 고비를 몇 번이나 넘기게 됩니다.
보통 멘탈이 아니면, 감당하기가 힘이 듭니다.
믿음이 연약하면....오히려, 예수님 않믿는척~, 불신앙자~ 처럼 살아가야지~...그렇게 쉽게 생각할~ 정도입니다.
세상사람들이, 사도바울을 향하여, 스스로 행한 죄를 어떻게 다~ 알겠습니까? 그 모든 트집과, 훼방과 행위는 모두, 자기 머리에 숫붙을 쌓아 올리는 것이 되어,
하나님 앞에서 자기에게 도리어 갚음이 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사도바울은 3절에서 말씀합니다. “만일 우리의 복음이 가리었으면 망하는 자들에게 가리어진 것이라”
잘되는 길을 가르쳐 주어도, 싫어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좋은 것을 주려고 하여도, 왜 이런것을 주느냐고? 반색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스스로 기회를 놓치고, 스스로 복을 차버리는 것은, 스스로의 행동이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사도바울은 열심히 복음을 전합니다. 때를 얻든지 못었든지, 복음을 전합니다.
하지만, 사도바울이 복음을 전할 때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복음이 가리운 자인 것입니다.
멀쩡히 눈이 있는데, 눈에 왜 복음이 가리운 자가 되는 것입니까?
눈에 무엇이 덧씌워져, 생명의 복음, 구원의 복음, 축복의 복음을 볼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눈에 덧씌워져 있는 것입니까? 죄와 불신앙과 멸망이 눈에 덧씌워져, 귀한 복음이, 귀하게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런 사람을 3절 하반절에는 “망하는 자들에게 가리어진 것이라” 고 말씀합니다.
어쩔수 없습니다.~ 사실은 사실인 것입니다. 망하는 자들이 있고, 구원받는사람이 있습니다.
멸망의 사람이 있고, 축복받는 사람이 있습니다.
나중에 천국에 들어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지옥에 들어가는 사람도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알때에, 사도바울은 아무리 설명을 하고, 복음을 전하여도~ 않받아들이는 사람이 있을 때, 사도바울은 최선을~ 다할뿐입니다.
그 다음 일은, 사도바울이 다~ 책임질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길은, 스스로가 가는 길입니다.
복음이 가리운자는, 멸망의 자기의 길로 걸어가는 것이요, 복음을 귀하게 여기는 자는, 구원의 길로 걸어가는 것입니다.
한가지 더~ 생각해볼 것은, 믿음이 부모님들이 자녀들을 위하여, 온~ 정성을 기울 입니다.
좀 더 공부하여, 훌륭한 사람이 되기를 원~합니다.
좀 더, 믿음이 깊어져서, 하나님 앞에 복받는 일생이 되기를 원합니다.
하지만 자녀들는 부모님이 원하는대로, 100퍼센트, 변하지 않습니다.
공부해야 하는데, 게임을 합니다.
믿음이 깊어져야 하는데, 믿음이 점점 없어지는 것 같습니다.
그러면~ 자녀들을 향한,부모님의 간절함은 있는데, 자년들은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하지만 믿음의 부모님들은, 다행히~ 너무 큰~ 걱정을 않하셔도 되겠습니다.
고린도전서 3장 7절 8절 말씀,
“그런즉 심는 이나 물 주는 이는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자라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뿐이니라
심는 이와 물 주는 이는 한가지이나 각각 자기가 일한 대로 자기의 상을 받으리라”
심는것 보다, 물주는것 보다가 더 중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자라게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지만 아무리 많이 심, 물을 많이 준다고 해도, 자라게 할 수는 없습니다. 열매를 맺도록 할 수는 없습니다. 오직 자라게 하시는 분은 하시는 분은, 열매맺도록 하시는 분은 하나님 이십니다.
마찬가지입니다. 믿음이 부모님들이, 자녀들을 위하여, 간절한 마음이 있습니다. 하지만 자라게 하시고, 열매를 맺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 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큰 열매를 맺도록, 선하게~ 역사하여 주십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믿음으로 심고, 기도로 심고, 헌신과, 봉사와, 복음으로 심은 것은, 각각 자기의 상을 받도록 하여 주십니다.
“내가 자녀들을 위하여 30년을 기도하였는데, 이제 자녀들이 훌륭하게 되어서, 너무 감사합니다.”
기도한 만큼, 하나님께서는 그 상을 받도록 하여 주십니다.
때를 얻든지 못었든지, 알고 깨닫든지 못깨닫든지, 믿음의 본을 보이며, 말씀으로 자녀를 키운, 그 수고는,
절대로 헛되지 않도록, 하나님께서는 믿음의 부모님들의 수고를, 보호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말씀을 정리 합니다.
믿음의 부모님은 자녀의 겉모습과 지금 당장을 보는 것이 아니라, 자녀의 미래를 위하여 헌신을 합니다.
자녀에게 쏟은 믿음의 수고와 사랑이 자라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 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믿음의 부모님의 수고가, 열매맺도록 선하게~ 역사하여 주십니다.
자 이 좋은 역사하심이 나타나는, 믿음의 가정이 되시고, 믿음의 부모님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 원 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믿음의 부모님들 한분한분, 지금까지 건강으로, 믿음으로 걸어올수 있도록, 하여 주시니 감사를 드립니다.
자녀를 향한 끝없는, 소원과 간절함이, 하나님께 상달되어,
부모님들의 그~ 믿음의 수고와 믿음의 여정이, 합당하게 상을 받게 하시고,
또한, 그 믿음을 이어받는 자녀들은, 한사람 한사람 모두~ 요셉처럼 크게 발전하고, 크게 믿음으로 성공하는 자녀들로,
하나님께서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 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