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립보서 3장 1절 14절 성령님과 달려가는 믿음
끝으로 나의 형제들아 주 안에서 기뻐하라 너희에게 같은 말을 쓰는 것이 내게는 수고로움이 없고 너희에게는 안전하니라. 개들을 삼가고 행악하는 자들을 삼가고 몸을 상해하는 일을 삼가라 하나님의 성령으로 봉사하며 그리스도 예수로 자랑하고 육체를 신뢰하지 아니하는 우리가 곧 할례파라. 그러나 나도 육체를 신뢰할 만하며 만일 누구든지 다른 이가 육체를 신뢰할 것이 있는 줄로 생각하면 나는 더욱 그러하리니. 나는 팔일 만에 할례를 받고 이스라엘 족속이요 베냐민 지파요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요.
열심으로는 교회를 박해하고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라.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부터 난 의라.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여함을 알고자 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어떻게 해서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하노니,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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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6월달을 마무리 하는, 6월달 넷째주일입니다. 뿐만 아니라 상반기를 마무리 하는 주일이 되기도 합니다.
상반기를 돌아보면서, 나의 성령의 열매를 얼마나, 달려 있습니까?
상반기를 돌아보면, 아무일도 없이 지나온것 같지만, 한편으로 보면, 여러 가지 일이 있었던 것을 떠올리게 됩니다.
코로나가 갑자기 퍼지면서, 일상생활에서 조심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교회에서는 주차장 확장 공사를 하였습니다. 주차선을 그리고, 스톱바, 안전대를 설치 하였습니다. 교회 지붕에 물받이를 살폈습니다.
뿐만 아니라, 성도들이 일치단결하여, 부활절 예배를 드리고, 각종 절기를 지키고,
인터넷 방송으로 수요예배, 금요기도회를 하고, 그룹전화로 구역예배를 드리면서,
믿음생활에 소홀함이 없도록 힘써 왔습니다.
이 모든 수고와 정성은, 하나님께서 다 지켜 보시고, 살펴 보시고 계시는 줄로 믿습니다.
오늘은 상반기를 돌아보며, ‘성령님과 함께 달려가는 믿음’에 대하여 말씀을 전하려고 합니다.
1. 성령님과 함께 달려 갈 때 온전하게 됩니다.
11절 12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어떻게 해서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하노니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
바른 믿음, 온전한 믿음은, 성령님과 함께 달려가는 믿음이라 하겠습니다.
그리스도인은 멈추어 설 때, 넘어지게 됩니다. 걸어가야 합니다. 아니 달려 가야 합니다.
그래서 12절 상반절에서 사도바울은 말씀 합니다.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건강한 믿음의 정적이지 않습니다. 동적입니다.
건강한 믿음은, 상태가 아니라 방향성입니다.
수학에는, ‘백터’라고 하는 개념이 있습니다. 학생들은 잘 이해가 될 수 있습니다.
좌표는, 값을 갖습니다. 3이다. 5다 10이다.
하지만 백터는, 값이 없습니다. 방향입니다. 어느 방향으로 3만큼 가고 있다. 어느 방향으로 5만큼 가고 있다. 그래서 백터는 움직임이 없으면, 방향이 없으면, ‘0’ 이 되는 것입니다.
믿음도 마찬가지입니다. ‘나는 믿음이 이만큼이다.’ 라고 멈추어 서면, 그 믿음은 ‘0’이 되는 것입니다.
‘나는 많이 받았다. 나는 많이 이루었다’ 고 멈추어 서면, 그 믿음은 자화자찬, 교만, 태만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내가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고 사도바울은 고백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인은 어떻게 해야 합니다. 건강한 믿음은-- 방향을 향하여 움직이는 믿음입니다.
“오직 내가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 가노라”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예수 안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 가노라”
그렇습니다.
자, 나는 예수님께 잡힌바 된, ‘부활’에 참여하기 위하여, 달려가고 있습니까?
예수님께서 불러주신 사명자가 받는 상을 위하여, 목표를 향하여 달려 가고 있습니까?
만약 달려가지 않고, 멈추어 서 있으면, 아무리 많이 왔다고 하여도, 0 이 됩니다.
만약 천천히 걸어가고 있습니다. ‘1’이 되는 것입니다.
목사님, 그래서 멈추어 서 있다고 ‘0’ 이면 너무 심한것 같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나라의 법은 세상의 법과 다른 것입니다.
세상에서는 큰자를 작은자가 섬깁니다. 큰자는 ‘에헴’ 하고 목소리를 높힙니다. 작은자는‘굽신굽신’하게 됩니다.
하지만 하나님 나라는 반대입니다. ‘큰자가 되려면,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종이 되어야 합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마가복음 10장 31절에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고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가 많으니라”
고린도전서 9:27 에는 말씀 합니다.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신이 도리어 버림을 당할까 두려워함이로다”
내가 먼저 출발하였습니다. 많은 은혜를 받았습니다. 많은 능력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다른 그리스도인이 걸어가는데, 나는 멈추서 서 있습니다.
다른 그리스도인은 신령과 진정으로 믿음생활, 헌신생활, 직분생활, 전도생활을 합니다.
그런데 나는 믿음생활을 소홀이 합니다. 직분생활을 소홀히 합니다. 교회생활을 소홀히 합니다.
어느 순간 돌아 보니까, 토끼와 거북이가 되어 있습니다.
먼저 되었는데 나중되고, 나중된자가 먼저 됩니다.
마지막 구원의 문 앞에 도착하고 보니, 처음에는 남에게 전파하며 출발한 사람이 있는데 믿음생활을 소홀히 하고, 예수님께서 주신 구원의 표를 잃어버려, 천국에 입장 불가가 됩니다.
그러면 보통 문제가 아니지요.
그래서 사도바울은, 멈추어 서 있지 않고, 걸어가기를 힘쓰며, 더욱, 성령님의 능력으로 달려가기를 노력하였던 것입니다.
8절 9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부터 난 의라”
그런데 우리가, 부활을 얻으려고, 사명자의 상급을 받으려고 달려가는데, 가장 방해가 되는 것이 바로, ‘자기자랑’이 되겠습니다.
사도바울은 자랑할 것이 많았습니다.
나는 8일만에 할례를 받고, 이스라엘족속이요, 베냐민 지파요. 히브리인 중에 히브리인이요~
율법으로는 바리새 인이요. 열심히는 교회를 박해하고... 의롭기로는 율법으로 보면 흠이 없는 자다~.
그런데 내가 어떻게, 예배 안내나 할수 있을까? 전도나 할수 있을까? 대표기도나 할수 있을까? 주방봉사를 할수 있을까? 헌금위원을 할수 있을까?~
나 정도 되면, 거의 희옷입고 다리는 땅에 않닫게 둥둥뜨고, 예수님께서 나에게 나타나셔서, 복을 쏟아 부어 주셔야...급이 맞고 레벨이 맞지 않은가?
나의 자랑을 생각하다 보니, 교회에서 직분을 하찮게 생각해서 봉사 않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물론 초신자요. 믿음이 없어서 그렇겠지만...
내가 감히 어떤 사람인데, 목사님이 나한테 이런 일을 하라고 맡기고..
나는 그런것은 않합니다.
나에게 주신것은 다 내려놓고, 혹시나~ 나보고 설교를 하라고, 단에 세워주면, 가끔씩 해볼까 합니다~
오늘 말씀보니까, 사도바울은 자신의 모든~ 자랑, 자신의 모든 육체적인 존귀함은...오히려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가는데 해~로 여기고, 배설물로 여깁니다.
그리고, 다시 철저하게 복음안에서 태어나서,
나의 모든 세상의 자랑을 ‘리셋’ 시키고, ‘초기화’ 시키고...
예수님안에서 발견되어, 시작되려 한다고 말씀합니다.
왜냐하면, 믿음으로 하나님께 난 의..~ 딱 그것 하나만 얻기 위하여, 즉 이신칭의, 에수님 안에서 거듭 태어나서, 하나님 앞에 의로운 자로 서기 위하여..
세상의 모든 자랑을, 사도바울은 버리기로 하였던 것입니다.
믿음생활할 때, 세상자랑을 가지고 있으면, 달려가지 못합니다.
성령님께서는 기도하라고 하시는데, 세상자랑이 있으면, 내가 누군데, 무릎꿇고 기도할수 있습니까?
성령님께서는 예배드리라고 하시는데, 세상자랑이 있으면, 내가 눈군데, 온 정성을 다하여 예배드릴수 있습니까?
내가 누군데, 봉사할수 있습니다. 헌신할수 있습니까?
그래서 그리스도인은 성령님께 순종하기 위하여서는, 철저하게 성령님 앞에서 나의 자랑을 버려야 된다고 하는 것입니다.
2. 성령님과 함께 달려 갈 때 삼가 해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1절 3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끝으로 나의 형제들아 주 안에서 기뻐하라 너희에게 같은 말을 쓰는 것이 내게는 수고로움이 없고 너희에게는 안전하니라
개들을 삼가고, 행악하는 자들을 삼가고, 몸을 상해하는 일을 삼가라
하나님의 성령으로 봉사하며 그리스도 예수로 자랑하고 육체를 신뢰하지 아니하는 우리가 곧 할례파라”
요즈음, 전 세계가 코로나로 인하여, 스트레스가 높아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언제까지 코로나로 참아야 하는가? 그리고 분통을 터트리고, 답답해 합니다.
미국에서는 폭동이 일어나고, 폴란드와 독일에서는 경찰들을 공격하는 사건도 발생하고 있다고 합니다.
보통 때 같으면, 법적 테두리 안에서 원만하게 해결될 문제도, 서로가 참지 못하고, 폭력적인 반응으로, 문제가 크게 발생이 됩니다.
자 이런 때일수록, 그리스도인은 찬송으로, 감사로, 온유함으로 이겨 나가야 하겠습니다.
자 옆에 사람을 보면서, “당신은, 예수님 안에서 최고로 멋있습니다.” 라고 축복 하겠습니다. 좌, 우 두 번 하겠습니다.
한번더 하겠습니다. “예수님 안에서, 당신을 존경합니다.” 이것도 좌, 우 두 번 하겠습니다.
자~ 내안......성령님과 함께 달려가는 것을 방해하는 것이, ‘자기자랑’ 이라면,
내밖에........외부적으로....그리스도인이 성령님과 함께 달려가는 것을 방해하는 것이 있습니다.
2절에 말씀합니다. “개들을 삼가고”~
자 여기서 ‘개’는 ‘애완견’을 기르지 말라는 말이 아니지요... 개는 동물개가 아니라, 신명기 23장 18절에도 나와 있는 “개 같은 자~” 가 아니겠습니까?
사도바울이 말씀하는 삼가야 할 ‘개’ 는 구체적으로 누구 입니까? 뒤에 설명이 나오고 있습니다. “행악하는 자들을 삼가고”~
구체적으로 무엇을 ‘행악을 하는 자’들 입니까? 복음에 대하여 행악하는 자 들입니다.
즉 몸을 상해하는 일을 하는 자입니다. ‘할례파’입니다.
‘할례파’는 초대교회 안에 들어온, ‘바리새’인과 같은, 사람들입니다.
3절 말씀을 거꾸로 하면, 할례파가 어떤 사람인지 알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3절을 보면서, 거꾸로 할례파를 설명하겠습니다.
“하나님의 성령으로 봉사하며” 라고 말씀하는데, 그러니까 할례파의 특징은, 하나님의 성령으로 봉사를 하지 않습니다.
그 다음 “그리스도 예수로 자랑하고” 라고 말씀하는데, 그러니까 할례파의 특징은, 그리스도 예수를 자랑하지 않습니다. 예수님 사랑, 아무것도 아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아무것도 아니다.~ 에수님의 부활하심 아무것도 아니다.~
그러면 할례하는 예수님을 자랑하지 않고, 무엇을 자랑하고, 신뢰 합니까? “육체를 신뢰하지 아니하는 우리” 라고 말씀하는데, 그러니까 할례파의 특징은 “육체를 신뢰하는 우리” 가 되겠습니다.
즉 할례파는, 자신의 육체를 자랑하고 자신의 육체를 신뢰합니다.
자기자랑, 자기 의, 자기공덕, 을 자랑하고, 신뢰합니다. 그래서 자랑하려고 할례를 자기육체에 행하고...‘나는 할례를 하는 사람이다.’ 라고 자기육체로 자랑을 하여, 할례파~ 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자 우리가 교회에서 봉사할 때, 왜 봉사하는 것입니까? 무엇을 위하여 봉사 하는 것입니까?
교회에서 봉사할 때, ‘성령의 열매’를 맺으면, 최고로 성공하는 것입니다. 목적을 이루는 것입니다.
만약 봉사를 하는데, ‘성령의 열매’가 열매 맺지 않고, ---성령으로 봉사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자랑을 위하여 봉사하고,
내가,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높임받으려고, 봉사를 하면...
하나님의 성령으로 봉사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유익을 위하여 봉사하는 것이, 되어 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생활할 때, 무엇을 위하여 살아가는 것입니다. 무엇을 이루려 살아가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자랑하고, 그의 덕을 높이기 위하여 살아가면, 최고로 성공하는 것입니다. 목적을 이루는 것입니다.
그런데 만약에, 내가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높임을 받으려고 살아가면..
예수님을 자랑하고 그의 덕을 높이는 것이 아니라, 나의 자랑을 위하여 살아가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은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아가는 ‘생활에 목표’가 분명해야 되는 것입니다.
또한, 내가 이루었다고 그것으로 안심하고, 그것을 신뢰하고, 하나님의 의지하지 않는다면,
하나님을 믿으며 신뢰하는 아니라, 그것을 더 믿음며 신뢰하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은, 항상~ 금송아지를 섬기던 북이스라엘의 혼동을, 교훈 삼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반대로 영적 할례파가 되어, 하나님의 성령으로 봉사를 하며, 주께 받은 사명을 잘 감당하는 성도는 어떻게 됩니까?
디모데후서 4:8절에는 의의 면류관을 주시고,
야고보서 1:12절에는 생명의 면류관을 주시고,
베드로전서 5:4절에는 시들지 않는 영광의 면류관을 주신다고 말씀합니다.
뿐만 아니라 예수님께서는, 주님의 뜻을 따르는 성도들에게 귀한 약속을 하여 주셨습니다.
마태복음 18장 18절 20절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무엇이든지 너희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진실로 다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의 두 사람이 땅에서 합심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그들을 위하여 이루게 하시리라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주님 앞에 설 때 뿐만 아니라, 이 땅에서도,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 매어 주시고, 풀면 하늘에서 풀어주시는 약속을 하여 주셨습니다.
특히 사명의 사람이, 두세사람, 합심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면, 하나님께서는 구하는 성도를 위하여 이루게 하시리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혹시 풀고 싶은 것이, 무엇이 있으 십니까?
혹시 열고 싶은 것이, 무엇이 있으십니까?
앞길을 활짝 열어 주시옵소서.
건강의 막힌것을, 활짝 풀어 주시옵소서.
우리 가정에 꽁꽁 묶여 있는 문제가 있습니다. 이 문제를 풀어 주시옵소서.
아직도 시간이 있습니다. 이해가 다~ 가기 전에, 예수님의 이름으로, 하나님께 구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성령으로 봉사하며, 예수님의 사랑과 구원을 자랑하며, 믿음으로 살아가는 성도가
말씀에 의지하여, 구하면...
하나님께서는 이땅에서 이루게 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말씀을 정리 합니다.
온전한 믿음의 사람은, 성령님께 순종하여 달려가는 사람입니다.
성령님과 동행하며 달려가는 사람은, 삼가야 할 것은 삼가고, 순종해야 할 것은 순종해야 합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는 이 땅에서나 천국에서나, 또한 상급의 면류관을 주시고, 무엇이든지 매고, 풀고, 열고, 닫을수 있도록, 응답을 더하여 주십니다.
자 이런 ‘성령의 능력’으로, 한주간을 생활하시는, 김포상도교회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 6월달을 마무리 하며, 상반기를 마무리 하며, 조용히 하나님 앞에 고개를 숙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성령님과 동행하며 달려가는 믿음을 온전히 여기시고,
하나님께서는 말씀에 의지하여 간구하는 기도를 물리치치 않으시는 줄로 아오니,
더욱 심기일전하여, 성령님과 동행하며 달려가는 믿음의 생활이 되게하여 주시옵소서.
또한 말씀에 의지하여 구한것은 응답받아, 풀고, 열고, 감사하고 찬송하는
성령의 능력으로 살아가는, 매일매일 생활이 되게하여 주시옵소서.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