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27장 20절 31절 십자가의 회상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이 무리를 권하여 바라바를 달라 하게 하고 예수를 죽이자 하게 하였더니, 총독이 대답하여 이르되 둘 중의 누구를 너희에게 놓아 주기를 원하느냐 이르되 바라바로소이다. 빌라도가 이르되 그러면 그리스도라 하는 예수를 내가 어떻게 하랴 그들이 다 이르되 십자가에 못 박혀야 하겠나이다.
빌라도가 이르되 어찜이냐 무슨 악한 일을 하였느냐 그들이 더욱 소리 질러 이르되 십자가에 못 박혀야 하겠나이다 하는지라 빌라도가 아무 성과도 없이 도리어 민란이 나려는 것을 보고 물을 가져다가 무리 앞에서 손을 씻으며 이르되 이 사람의 피에 대하여 나는 무죄하니 너희가 당하라 백성이 다 대답하여 이르되 그 피를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돌릴지어다 하거늘이에 바라바는 그들에게 놓아 주고 예수는 채찍질하고 십자가에 못 박히게 넘겨 주니라
이에 총독의 군병들이 예수를 데리고 관정 안으로 들어가서 온 군대를 그에게로 모으고
그의 옷을 벗기고 홍포를 입히며 가시관을 엮어 그 머리에 씌우고 갈대를 그 오른손에 들리고 그 앞에서 무릎을 꿇고 희롱하여 이르되 유대인의 왕이여 평안할지어다 하며 그에게 침 뱉고 갈대를 빼앗아 그의 머리를 치더라
희롱을 다 한 후 홍포를 벗기고 도로 그의 옷을 입혀 십자가에 못 박으려고 끌고 나가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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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종려주일이 되겠습니다.
마태복음 21장 9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들어오실 때, 사람들이 환영을 하였습니다.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
그래서 ‘종려주일’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실 것이라는 사실을 전혀 예상하지 못하였습니다.
사람들의 환영은 완전히 ‘비극’으로 결말이 납니다.
예수님은 로마군병에게 끌려가서 무자비하게 채찍을 맞으시고, 십자가에 달려서 피를 흘리시고 나중에는 창에 찔리시고 그리고 죽으십니다.
즉, 사람들의 생각과 예상과 예수님께서 가셨던 길은 전혀 “다른 길” 이었던 것입니다.
저는 어릴 때 텔레비전 드라마를 본 기억이 납니다.
한 유태인 소녀가 있습니다.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나 하녀를 부리며, 남부럽지 않게 생활을 합니다.
하녀가 사과를 가지고 옵니다. “아가씩 사과 드세요”
“이따위 맛없는 사과를, 나보고 먹으라고 가지고 온 것이냐” 소녀는 하녀가 가지고온 사과를 내동댕이 칩니다.
그런데 갑자기 예상도 못한 독일군이 몰려 옵니다. 그리고 그집 대문에다가 못을 ‘땅땅’ 박아 버립니다.
“이 집은 유태인의 집이니, 재산을 몰수 합니다. 이 집에 사는 유태인들은 수용소로 붙잡아 가니까...준비 하시오”
부모님들은 괜찬을 꺼라고 위로를 하는데, 소녀는 어떻게 되는 것인지, 상황이 파악이 않됩니다.
다음날 소녀와 부모는 독일군에게 끌려 갑니다. 생전 경험해 보지 못한, 허름한 기차짐칸에 타고 어딘지 모르는 곳에 끌려 갑니다. 수용소에 도착해서 독일군들이 괴롭힙니다.
음식은 형편없습니다. 마치 가축에게 주는 사료와 같은 것을 줍니다.
유복했던 소녀는 정신이 없습니다. 옛날을 떠올리며 지금의 현실을 괴로워 합니다. 그때는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이, 이제는 꿈에서나 생각할수 있는 행복이 되었습니다.
최후로 아유슈비츠로 끌려 갑니다. 독일군이 사과를 먹으려다가 비웃으면서, 소녀에게 던져 줍니다.
소녀는 사과를 잡고서 눈물을 흘리면서, 사과를 먹기 시작합니다. 나중에는 껍질~씨앗~까지 하나도 남김없이 꼭꼭씹어 먹고, 손에 뭍어 있는 사과의 단물을 핥아 먹으면서, 스스로 복밭쳐서 통곡을 합니다.
어릴때는 이따위 사과를 어떻게 먹느냐?고 내동댕치 치며 살았는데, 이제는 자신도 모르게, 손에 뭍어 있는 사과의 단물도 맛있어서...핥아 먹는 현실 보면서... 괴로워하고 또 괴로워 합니다.
시간이 지나서, 해골만 남게 된 소녀는, 흉측한 몰골이 되어서 화장장으로 끌려 갑니다. 그런데 독일군은 도망가고 미군이 들어옵니다. 미군이 화장장 앞에 있는 누워있는 이 소녀의 모습을 보고 놀랍니다.
소녀는 들것에 실려서 살아서 수용소 문을 나오게 됩니다.
1. 축복을 빼앗기는 어리섞은 예루살렘 백성들...입니다.
방금 말씀드린 스토리의 주인공....즉 환난앞에 무기력한 유태인 소녀는, 오늘 본문의 나오는 예루살렘 백성의 미래의 모습, 즉 그 후손의 모습이 아니겠습니까?
예루살렘 백성들은 평소에, 예수님께서 말씀을 전하여 주시는 것이 얼마나 귀한지, 도무지 깨닫지 못하였습니다.
더우기, 그 말씀의 내용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지 못하였습니다.
그 결과, 예수님께서 주신, 그 많은 기회를 놓치고, 불행과 환란의 길로 들어서게 되었습니다.
성경을 보면, 예수님께서는 환영을 받으시면서, 예루살렘에 들어가셔서 중요한 말씀을 하십니다.
마태복음 21장에, 예루살렘에 입성 하셔서, 그 마태복음 21장 43절에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의 나라를 너희는 빼앗기고 그 나라의 열매 맺는 백성이 받으리라”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상한 자존심과 고집이 있었습니다.
“이래뵈도 우리가 아브라함의 자손인데, 우리가 대충 좀 잘못하여도, 하나님은 우리를 천국에 들어가게 해 주실 것이다.~”
그리고 이상한 자존심과 고집으로 생활하였습니다.
하지만, 그 자존심과 고집은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예수님께서 아무리 “좁은길로 가야 구원을 받을수 있습니다.” “회개해야 구원을 받을수 있습니다.” 아무리~ 말씀을 하셔도, 한귀로 듣고, 한귀로 흘려 버립니다.
“내가 아브라함의 자손인데, 내가 알아서 다 하지~ 왜 예수님께서 나에게 이래라 저래라 합니까?~”
자 언제까지 그럴 수 있습니까?
내가 기준대로 구속사가 짜여지고, 천국문이 열립니까?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에 들어오시지 마시자, 금요일에 십자가를 지시고 죽으시고, 3일후에 부활하십니다.
벌써 은혜의 새날이 밝고, 구원의 새 세상으로 확~ 바뀌게 됩니다.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하면서, 정신 차리지 못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하여,
종려주일에 예루살렘성에 입성하신 예수님은, “너희는 하나님의 나라르 빼앗기리라~”고 말씀하시고,
“하나님 나라의 열맺를 맺는 백성”...누구입니까? 오늘날 우리 그리스도인입니다. “그 백성이 받으리라~” 고 말씀 하셨습니다.
아무리 하나님을 멀리해도, 혈통 때문에~ 무조건 자동적으로 천국에 들어가고, 그런 것은 없습니다.
아브라함의 족보에 기록되어 있기 때문에, 나는 자동적으로 천국을 상속받는다~, 그런것은 절대로 없다는 사실을, 오늘 우리도... 발견하여야 하겠습니다.
그 다음장 마태복음 22장 30절 31절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 하십니다.
“부활 때에는 장가도 아니 가고 시집도 아니 가고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같으니라”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성에 들어오시니까, 사람들끼리 논쟁이 붙었습니다.
부활이 있다 없다.~ 부활때에는 이렇다 않이렇다.
그럴 때 예수님께서 조용히 말씀하십니다. “부활 때에는.....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같으리라”
자 천국의 주인은 누구 이십니까? 하나님 이시지요.
지금 예루살렘 성에 사람들은, 주인은 제쳐두고, 객이, 천국의 주인인 마냥~ 천국은 이렇다 저렇다. 부활은 이렇다 저렇다 논쟁을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요즈음 인터넷에서 보면, 가끔 기독교는 이렇다 저렇다~ 기독교는 구원은 받는다 못받는다.
그리스도인이 이렇게 하면 된다 않된다. 하는 글을 가끔....발견할 수 있습니다.
아니, 하나님의 자녀들은 가만히 있는데, 전혀 예수님을 믿지도 않고, 예배도 않드리는 사람이
기독교는 구원을 받는다 못받는다~ 그리스도인이 이렇게 하면 된다~ 않된다..~
그 말... 자체가 앞서가도 너무 앞서가고, 오버해도 너무 오버하는 말이 아닐수 없다 하겠습니다.
오늘 본문 20장에 보면, 대제사장과 장로들이 바라바를 풀어 주고, 예수님을 죽이고자 합니다.
23절에 보면 빌라도 총독이 그렇게 하면 무죄한 예수님의 억울한 피흘림과 죽음은 어떻게 책임지려고 그러는가? 고 반문 합니다.
그럴 때, 25절에 보면, 백성들이 다 대답하여 “그 피를 우리와 우리자손에게 돌릴지어다”라고 대답을 합니다.
자 이스라엘 백성들은 축복을 받으며, 시작한 민족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사랑하여 주시고 그 후손을 잘 되게 하여 주시겠다고 약속을 하여 주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괴로워 할 때, 모세를 보내어 구출해 주십니다.
또한 어려움에 빠질때 마다, 선지자들을 보내어, 해결할 방법을 가르쳐 주십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사랑을 너무 당연하게 생각하고, 오히려 분에 넘처~ 선지자들이 전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 싫어 합니다.
“저~ 저~ 세상 물정 모르는 선지자님은...회개해야 된다고 하는데...
세상 물정을 몰라도 한~참 모르지...요즈음이 어느시대인데 회개를 하고,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고...
지금 애굽에 붙을까? 바벨론에 붙을까? 계산을 해도 모자랄 판에... 하나님께 회개가 먼저 라니...참 답답한 소리 하십니다. 아직 세상을 한참 더 살아봐야 되시겠습니다.~”
그러다가 선지자가 아니라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니까...
이젠 간단하게 해결 하려고 합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죽이면 되지요~”
“혹시나 누가.... 책임, 책임 그러면.. 만약~ 그러한 책임이 있다손 치더라도.....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돌리라고 하면 그만이지요”
그럴 때 예수님은 단호하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하나님의 나라를 빼앗길 것이다.”
“부활의 때에는,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같으리라”
미래에 후손에게 돌리라는 말이 얼마나 무책임한 말입니까?
그 결과 유태인은 유럽에서 큰 환란이 나타날때마다, 표적이 되어서 고통을 당하였습니다.
흑사병이 돌때는, 유태인들이 우물에 독을 넣었다. 그래서 유태인이 엄청나게 죽었습니다.
전쟁이 발생하면, 이게 다 유태인 때문이다. 그리고 유태인이 쫓겨 났습니다.
나중에 세계대전이 발생할때는, 아예 유태인의 재산을 몰수를 하고, 수용소에 집어넣어, 모두 죽여 버리자...그러면서 인종청소의 대상이 된 것이, 역사의 현실이 아니겠습니까?
요즈음은 전도를 하기도 힘듭니다만... 세상 사람들이, 구원에 대하여 너무나 안이하게 생각하는 것이... 불안할 정도입니다.
“알아서 되겠지요.. 나중에 어떻게 되겠지요...천국가든 지옥가든 내가 다 책임지면 되지요뭐..
요즈음 바쁜일이 얼마나 많은데, 그런 사소한 일까지 신경써야 합니까?”
거기에다가 미래에 대하여, 무책임한 사회풍조는, 걱정스럽기 까지 합니다.
미래를 위하여, 저축을 하고 절약을 하는 사람은, 찾아 보기가 힘이 듭니다.
미래는 어떻게 되든지, 후손들은 어떻 되든지...당장 오늘 내맘대로 누릴꺼 누리며 살고... 레저와 취미 활동에 엄~청난 의미를 부여 합니다.
저는 얼마전, 우리교회와 인연이 있던 ‘막씨 아버지’라는 분이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고 깜짝 놀랐습니다.
이강백장로님께서 아시고, 칠레에서 사업을 하시는 분인데...우리교회에서 전에 동해로 “전교인 여름 수련회”를 갔을 때, 함께 갔던적이 있습니다.
얼마나 젠틀하고 멋있는지 모릅니다.... 사업도 대단합니다. 우리나라 동대문,남대문에서 옷을 가져다가, 칠레에서 판매를 하여, 엄청나게 히트를 쳤습니다.
그런데, 그 젠틀한 모습, 그 많은 가게는 뒤로하고, 갑자기, 돌아가셨다니, 멍~한 기분이 듭니다.
주중에는 제가 아는 후배에 대한 소식도, 가슴을 아프게 하였습니다.
청년부에서 함께 예배드리고, 함께 교회활동을 하였던, 후배입니다.
그런데 대장암에 걸리고, 그 암이 간에 다~ 퍼져서...그런데도 전혀 모르고 있었다고 합니다.
오늘 본문으로 돌아와서, 종려주일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실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얼마나 중요한 의미인지, 전혀 깨닫지 못하였습니다.
오히려 마음문 꼭닫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으라는 말도 서슴치 않고 하였습니다.
그럴 때, 금방~ 예수님은 십자가 지시고, 부활하시고, 그러면서 한주간이 지나고,
이스라엘 백성은 아브라함의 자손에서, 하나님 나라를 빼앗기는 백성으로, 순식간에...... 차가 떠나가고 말았습니다.
이번주간은 ‘고난주간’입니다.
벌써 ‘수요일’, 벌써 ‘성금요일’, 그리고 ‘부활절’ 되었다고 그냥 지나치지 마시고,
날~위하여 십자가 지신 예수님을 분명히 바라보고,
매일매일 십자가에서 하신, 예수님의 일곱 말씀을 매일매일 묵상하며, 보내시기를 바랍니다.
2. 나를 위한 십자가입니다.
경기도에 사는 초등학교 학생이 가출을 해서, 부산 해운대에서 발견이 되어 뉴스가 된 적이 있습니다.
이 초등학생은 학원을 6개나 하는데, 학원에서 내준 수학숙제를 않하고 미루다가, 수학숙제가 쌓이니까.... 너무 괴로워하다가 ...가출을 결심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엄마의 채크카드를 가지고, 여름 가족들과 함께 가서 행복하였던, 해운대를 떠올리며, 버스 터미널에 가서 부산행 표를 끊었다고 합니다.
부산에 도착했는데 하루동안 아무것도 먹지를 못하고, 나중에 경찰 아저씨가 ‘돼지국밥’을 사주었는데, 국물도 남기지 않고, 다 비웠다고 합니다.
초등학생이 있는 가정은....절대로, 특히~ 수학숙제를 않해서 쌓여도, 가만히 놓아 두시기를 바랍니다.
본문으로 돌아가서, 26절에는 말씀합니다.
“이에 바라바는 그들에게 놓아 주고 예수는 채찍질하고 십자가에 못 박히게 넘겨 주니라”
당시에 가장 극형은, ‘십자가 형’ 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달리셨기 때문에, 너무나 익숙하고, 때로는 거룩하게까지 느껴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당시 로마는 자인하고 무력으로 다스리던 나라입니다. 사람들에게 로마의 잔인성과 힘을 보이기 위하여, 로마는 십자가 형을 개발 하였습니다.
십자가 형은 가장 잔인하고, 가장 괴롭고, 가장 비참한 형이라고 설명을 드릴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는 왜 그렇게... 잔인하고 괴로운 십자가를 향하여 올라 가셨습니까?
그것은 역설적으로 그만큼, 나를 멸망으로 끌고가는 나의 죄악이, 크고 깊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종려주일에 예루살렘에 입성하셔서, 마태복음 23장에서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을 향하여 “화있을 전지” 라는 말씀을 일곱 번 반복하십니다.
산상수훈의 8복이 있습니다.
십자가에서 가상 7언이 있습니다.
그런데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에게는 7화를 말씀하셨습니다.
7화의 마지막은 마태복음 23장 29절, 30절입니다.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선지자들의 무덤을 만들고 의인들의 비석을 꾸미며 이르되
만일 우리가 조상 때에 있었더라면 우리는 그들이 선지자의 피를 흘리는 데 참여하지 아니하였으리라 하니”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외식’ 즉 하나님 앞에서 ‘위선자’의 길을 걸어 갑니다.
내가 그때 그자리에 있었다면 나는 선지자의 피를 흘리는데 참여하지 않았을텐데...라고 말하면서... 예수님을 십자가에 넘겨 줍니다. 예수님을 향하여 십자가에 못박으소서. 바라바를 풀어주소서...라고 소리를 쳤습니다.
이런 외식에 대하여 예수님께서는, 겉은 회칠하여 희고 반듯하지만, 속은 썩은 것으로 가득한...‘회칠한 무덤’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 앞에서, 누구나 진실되며, 내속에 있는 모든 뿌리깊은 죄악이 도말되기를 바라십니다.
하지만 서기관과 바리새인은....그 십자가를 극악한 형벌받을 자가 달리는 곳이라고 보고,
나는 불의하지 않다고 여기며, 하나님 앞에서 위선자가 될 때... 예수님은 그것을 화있다고 보셨던 것입니다.
저 십자가는 내가 달릴 십자가가 아니라, 당연히 예수님이니까 달릴 십자가 이고...
나는 죄가 없고, 십자가와 상관도 없다고 보는 그 외식을,
예수님은 회칠한 무덤이라고 보셨던 것입니다.
세상에는 아직도, 십자가와 나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뻔뻔한 마음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아직도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이러한 세대 속에서, 그리스도인은 이번 고난주간을, 나의 죄가 도말되어 지는 주간으로 여기고,
이번 성금요일을 나의 죄를 대속하시기 위하여,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신날로 여기고..
감사와 찬양으로 보내어야 하겠습니다.
자 이 믿음으로, 은혜롭게 보내는 고난주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우리를 한량없이 사랑하여 주시니 감사를 드립니다.
나의 뿌리깊고 대단한 죄성과 죄악을 대속하시려고, 예수님을 십자가에 내어 주심으로..
나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예수님은 고통과 죽음을 당하셨습니다.
이번 고난주간을 보낼 때, 나를 위하여 지신 사랑의 십자가, 구원의 십자가, 부활의 십자가를 바라보며, 큰 은혜속에 보낼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