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25장 19절 23절 착한 청지기
오랜 후에 그 종들의 주인이 돌아와 그들과 결산할새
다섯 달란트 받았던 자는 다섯 달란트를 더 가지고 와서 이르되 주인이여 내게 다섯 달란트를 주셨는데 보소서 내가 또 다섯 달란트를 남겼나이다
그 주인이 이르되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하고
두 달란트 받았던 자도 와서 이르되 주인이여 내게 두 달란트를 주셨는데 보소서 내가 또 두 달란트를 남겼나이다
그 주인이 이르되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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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2019년을 마무리하는 마지막 주일이 되겠습니다.
이 자리에 계신 한분한분, 모두 수고 많으셨습니다.
‘복음의 길’을 잘 달려왔으니, 우리의 주 되신, 예수님께서 큰 칭찬과, 의의 면류관을 주실 것입니다.
올 한해도 시작할때는, 엄청나게 많이 남았다고 생각하였습니다만, 막상 마지막 주일이 되고 보니까? 그 많던 시간이 어디로 가버리고 없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예수님을 만나는 때가 오게 됩니다.
그때가 되면, 그 많던 시간이 어디로 가버리고 없습니다.
오늘 말씀은 ‘그 때’에 대한 말씀이 되겠습니다.
마태복음 25장을 시작하는 1절 상반절에 말씀합니다. “그 때에”
그렇다면 그 때는 구체적으로 어떤 때입니까? 31절 상반절에 말씀합니다.
“인자가 자기 영광으로 모든 천사와 함께 올 때에”
그렇습니다. 그 때는 예수님께서 오시는 때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만나는 때가 되겠습니다.
1.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기회를 주십니다.
갑작스럽게, 예수님을 만나면, 당황할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저기 누구세요? ”
“정말 예수님 이세요. 그럼 저는 어떻게 되는 건가요?”
그런데, 오늘 본문을 보니까, 의외로 담담한 사람이 있습니다.
다섯달란트를 가지고, 두달란트를 가지고 주인을 기다리는 사람입니다.
“예수님, 어서 오십시요”
“예수님, 빨리 제가 남긴 달란트를 봐~ 주십시요”
왜 이렇게 예수님을 만나는 자세가, 판이하게 틀리게 되는 것입니까?
‘그 때’가 되면, 사람들은 두 자세 중에, 한쪽이 될 수 밖게 없습니다.
그래서...예수님께서는 두번 세번, 강조하여 오늘 본문을 말슴하고 있습니다.
마태복음 24장은, 마지막 때에 일어날 일들에 대하여,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혹시, 마지막 때에는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관심이 있는 분들은, 집에 가서, 마태복음 24장을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마태복음 25장은, 마지막 때에 대한, 비유과 설명이 되겠습니다.
마태복음 25장을 시작하면서, 예수님께서는...‘마지막 때’, ‘그 때’는, 마치 등을 들고 신랑을 맞으러 나간 열처녀와 같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면서, 혹시나 이 비유의 말씀을, 잘 이해를 못하는 사람이 있을까봐, 한번 더 다른비유로 또 설명해 주십니다.
그래서 본문 19절에는 말씀합니다. “또.... 어떤 사람이 타국에 갈 때, 그 종들을 불러 자기 소유를 맡김과 같으니”
자, 이시간 한번 질문을 드려 보겠습니다.
예수님을 빨리 만났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분, 손을 들어보겠습니다.
예수님을 될 수 있는데로 나중에 만났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시는 분, 손을 들어보겠습니다.
손을 않드신 분은, 예수님을 않만났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시는 건, 아니시겠지요?
예수님은 언제 오시느냐?,
예수님은 언제 만날수 있느냐?
5절 말씀에 보면, “신랑이 더디 오므로” 라고 말씀 합니다.
19절 말씀에 보면, “오랜 후에” 라고 말씀 합니다.
즉...두 비유에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다행인지 모르겠습니다만, 예수님이 오시고, 예수님을 만나는 것은, 매우 늦어지게 된다고 하는 것입니다.
열처녀 비유에서는, “신랑이 더디 옵니다.” 예상한 시간이 훨씬...지난 것 같은데도, 신랑이 도무지 오지 않습니다. 그래서, 기다리던 사람들이 다 잠이와서 졸다가, 쿨쿨~ 잠을 자게 됩니다.
달란트비유에서도, 마찬가지로, 주인이 “오~랜 후”에 돌아오게 됩니다.
자~, 예수님께서 ‘더디오시고’, ‘오랜후’에 오신다고 하니까? 마음이 놓이는 분이 있으십니까?
하지만, 마음을 너무 놓으면 않되겠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더디’오시고, ‘오랜후에’오시니까...그 사이에 어떤 일이 일어 나게 됩니다.
긴장이 풀어집니다. 하던 일을 잊어 버리게 됩니다.
‘열처녀’는, 졸다, 잠이들다...완전히 쿨쿨 잠을 자게 됩니다.
‘청지기’도 마찬가지입니다. 한달란트 청지기가 나타납니다.
주인이 주신 달란트가 귀찮다고 땅에 파뭍어 버립니다.
18절 하반절에 기록하고 있지요? “가서, 땅을 파고, 그 주인의 돈을 감추어 두었더니”
너무 오래도록 주인이 않오니까... 주인이 맡겨준 달란트가.... 보기 싫어 집니다. 갖다 버리고 싶어 집니다.
하지만 않볼수 없고, 갖다 버릴수 없으니까...주인이 오면, 달란트를 꺼내서 다시 그대로 돌려 줘야 되겠다고.... 땅을 파고 달란트를 파붙어 버립니다.
한편...반대로, 두달란트, 다섯달란트 청지기들은 너무 오래도록 주인이 않오니까... 그동안 주인이 맡겨준 달란트를 가지고, 두달란트를 더 남기고, 다섯달란트를 더 남기게 됩니다.
혹시 사업을 하시는 분들은, 이 구절이 가슴이 와 닿을 수 있습니다.
사업을 하여, 갑절을 만든다는 것은, 엄청나게 어려운 일이 아닐수 없습니다.
우리나라 대기업들의 마진폭도 10%가 채 않된다고 하는 기사를 본적이 있습니다.
2%, 3%...심지어 어떤 기업은, 마이너스를 기록하기도 한다고 합니다.
현실이 이러하다면, 주인에게 받은 달란트를 가지고 갑절을 만들었다면....엄청나게 많이 남긴 것이 아닐 수 없습니다.
마진이 10%가 된다고 하여도, 100%로를 만들려면, 계속하여 열 번을 남겨야 합니다. 십년동안 매 해마다 10%를 남겨야, 100프로--갑절을 만들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장사를 하면, 매달 꼬박꼬박 일정하게 장사가 않되지요...
한번, 대박 하기도 힘이 드는데, 계속하여 열 번을 연달아, 장사가 잘 될 수 있겠습니까?
즉, 두 달란트, 다섯달란트 청지기는, 받은 달란트를 갑절로 남기기 위하여, 주인이 오랜후에 올때까지...쉼없는 수고와 열심과 고난이 있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어떨때는 20% 남겼습니다. 하지만, 그 다음에는 마이너스를 기록하여 까먹습니다.
어떨때는 해가 쨍하지만, 그 다음에는 비가와서 까먹습니다.
어떻게 하면 손해를 않볼까? 어떻게 하면 조금이라도 더 남길까?
한순간도 마음편할 날이 없이, 달란트를 남기기 위하여, 두달란트, 다섯달란트 청지기는 노력을 하였던 것입니다.
참고로 한달란트는 금20키로에 해당하는 돈입니다. 요즈음 금값으로 계산을 해보았더니, 11억원에 해당하는 가치였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예수님 앞에 청지기와 같습니다.
예수님께서 각사람에게 재능을 주시고, 건강을 주시고, 능력을 주시고, 시간을 주십니다.
무한하게, 영원히.... 주신 것이 아닙니다.
분량으로 한계가 있게 주시고, 시간으로도 한계가 있게 주셨습니다.
세상에는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늙지 않는 사람은 없습니다.
젊을때는, 무엇이라도 할수 있을 것 같지만,
조금만 시간이 흐르면, 눈도 침침하고, 허리도 아프고, 다리도 아픈것이, 사람입니다.
어떤 분은, 예수님께서 주신 것을 사용할수 있을... 그 동안에... 복음의 열매를 맺기위하여 달란트를 열심히 사용합니다.
수고 합니다. 봉사 합니다. 노력 합니다.
성과와 칭찬이 있을수 있습니다. 반대로 마이너스가 생길수 있습니다.
마이너스가 생길때는 가슴아파하며, 회개하며, 돌아보며, 달란트를 남기기 위해, 애를 씁니다.
반대로...어떤 분은, 달란트 자체를 부담스러워하고, 거추장스러워 합니다.
“뭘 이런걸 다 주셔서, 사람 힘들게 하시고...” 그럴 때...땅을 파고 파뭍어 버리고, 않볼려고 합니다.
기도를 파뭍어 버리고, 않봅니다.
예배를 파뭍어 버리고, 않봅니다.
성경을 파뭍어 버리고, 않봅니다.
파뭍어 버리니까, 마이너스가 생길일이 없습니다. 가슴아플 일도 없고, 회개하고, 돌아볼 일도 없습니다.
항상, 손님대접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음식점에 가보면, 손님과 일하는 사람의 차이를 극명하게, 볼수 있습니다.
짜장면 집에 가면, 들어갈 때부터, 소리가 납니다. “어서 오세요” “이쪽 자리에 앉으세요” “뭘 드시겠어요”
게중에 성격급한 손님은, 큰 소리를 냅니다. “왜? 빨리 단무지 않갖다 주세요” “짜장면 시켰는데, 짬뽕 갖다 주고, 이집 왜 이래요?”
이때 일하는 사람은 정신이 없습니다. “네 단무지 빨리 갖다 드리겠습니다. 어떻게 짬뽕이 나왔지, 짜장면 갖다 드리겠습니다”
소록도의 애향원 교회에서, 목회를 하다가 6.25때 북한 공산군에게 순교하신, 손양원 목사님은,
평소에 하늘에 노을만 붉어도, 예수님이 오시는가? 하여... 하늘을 물끄러~미 바라보면서, 예수님 오시기를 기다리셨다고 합니다.
옛날에는, 전국 곳곳에 나환자촌이 있었습니다. 서울에도 곳곳에 있었다고 합니다. 그것을 ‘소록도’로 이동을 시킵니다.
나환자촌이 떠난 자리에, 가구단지들이 들어섭니다. 의왕, 일산, 마석, 헌인, 고양등 수도권 가구단지는 대부분, 과거 나환자촌 자리 라고 합니다.
한편, 소록도에는...점점 나환자들이 많아집니다.
나환자들을 돌보려고 하니까, 얼마나 힘이 들겠습니까?
소리 큰 나환자, 성격급한 나환자,...
손양원 목사님은 달란트를 갑절로 남기는 청지기로써 살아가려고 하니까.... 이만저만 힘이 드는것이 아닙니다.
예수님 빨리 오셨으면~, 예수님 빨리 오셨으면~, 그래서 하늘에 노을만 붉어도, 혹시 예수님 오시려고 하늘이 붉은가? 하며, 예수님 오시는 것을 기다렸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갑절로 남기는 청지기는 수고없이 되지 않으며,
기도없이 되지 않으며,
열심없이 되지 않는다고 하는 것입니다.
2. 갑절로 남긴 청지기는 칭찬을 받았습니다.
지난주간 ‘성탄절 예배’는 너무나 은혜로웠습니다.
특히 ‘특송’이 은혜가 있었습니다.
오카리나 연주, 제1여전도회 찬양, 섹소폰연주, 핸드벨 연주....
새해, 봄에 부활절에는, 워십도 하고, 중창도 하였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본문에 보니까, 그 때에, 예수님께서 오실때에, 칭찬받은 청지기가 있었습니다.
칭찬의 내용은 2가지 였습니다. ‘착하고’ ‘충성되다’는 것입니다.
헬라어로는 “아가도스 카이 피스토스” 즉 ‘착하다 그리고 충성되다’ 라는 뜻이 되겠습니다.
먼저는 ‘착하다’라는... ‘아가도스’는 ‘선하다’,‘좋다’는 뜻이 되겠습니다.
성탄절 특송이 은혜로웠다고 칭찬을 드렸습니다만....가만히 생각을 해보면, 그때 특송하겠다고 하여서 할 수가 없습니다. 특송하려면, 상당기간 연습하고 준비하는 수고를 해야 합니다.
또 순종하는 마음으로, 특송을 하겠다고 결심을 해야 합니다.
특송 자체도 은혜롭습니다만, 그 특송을 준비하고, 순종하는 그 모든--전과정이... ‘착하고, 선하고 좋은 것’ 아니겠습니까?
‘충성되다’ ‘피스토스’는 ‘신실하다’, ‘신뢰할만 하다’, ‘믿음직하다.’라는 뜻이 되겠습니다.
특송을 가지고, 한가지만 더 말씀을 드리면....핸드벨 연주는, 다섯 사람이 한 사람 처럼 연주를 해야,.. 연주가 됩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까...한사람에게 바쁜일이 생겼습니다.
주보에는 ‘핸드벨연주’라고 이미 올렸는데....한사람이 빠지게 되면, 연주가 않될수도 있는데...걱정이 않될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다른 한사람이, 대신 그 종을 가지고 연주를 하여서, 헨드밸 연주가 잘 되었습니다.
이럴 때, ‘믿음직’하지요, ‘신뢰할만’합니다. ‘피스토스’입니다.
가변적인 상황에도 불구하고 사명을 잘 완수할 때, 그 다음에는 더 큰일도 의뢰하고, 책임을 맡길수 있지 않겠습니까?
즉,‘ 아가도스 카이 피스토스’ 착하고 충성되다는 칭찬은, 그 청지기의 모든 상황과 노력에 대한, 예수님의 ‘신뢰와 기쁨’이 들어 있는 ‘칭찬’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자 그렇다면 칭찬받은 청지기는, 칭찬으로만 끝나느냐? 아닙니다.
상급을 두가지로 주십니다.
21절 하반절에 보면,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 지어다”
많은 것은 헬라어로 ‘폴류스’입니다. ‘구체적으로 수가 많은 것’을 뜻합니다.
사도행전 6장 7절에“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왕성하여, 예루살렘에 있는 제자의 수가, 더 심히 많아지고”
여기서, ‘수가 더 심이 많아지고’, 할 때, ‘폴류스’ 라는 단어를 씁니다.
하나님께서는 복을 주실 때, ‘마음만’ 주시고, ‘생각만’ 주시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으로 주시고, 수가, 더 심히, 많아지도록 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인에게 ‘가난하게 살아라’, 그리고 ‘마음만 좋아라’ 그렇게 복을 주시지 않습니다.
구체적으로, ‘수가 더 심히’ 많아지도록’ 셀수있게 분명히... 복을 주시는 것입니다.
창세기 26장 12절 13절에는 말씀합니다.
“이삭이 그 땅에서 농사하여, 그 해에 백 배나 얻었고, 여호와께서 복을 주시므로,
그 사람이 창대하고, 왕성하여, 마침내 거부가 되어“
하나님께서, 믿음의 조상 이삭에게, 복을 주실 때, ‘믿음이 좋아라’고 복을 주시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구체적으로 ‘폴류스’하게 복을 주십니다.
농사를 지었더니, 백배가 거두고, 창대하고 왕성하여, 거부가 되었는데, 이것이 바로 여호와께서 복을 주셔서, 그렇게 되었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부인하고, 기독교인들을 수용소로 보내어 죽이는, 북한이 복됩니까? 얼마나 가난한지 모릅니다.
사회가 복잡하고 혼란하지만, 곳곳에서 예배드리고 전도하는, 대한민국은 얼마나 부유한지 모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복입니다.
오늘 본문으로 돌아와서, 신실한 청지기를 보실 때, 예수님께서는 ‘말과 마음’으로 칭찬하고 끝내신 것이 아니라, 그 ‘신실함과 충성’에 맞도록.. ‘폴류스’의 복을 주십니다.
우리 김포상도교회 성도들은 예수님 앞에 ‘폴류스’의 복을 받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해 드립니다.
‘아멘’하신 분들은, 새해에, 백배다 재산이 늘어나게 되고, 사업이 갑절이나 잘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해 드립니다.
아직도 ‘아멘’ 않아신 분들은, 다음 기회를 기다리시기 바랍니다.
자~ 착하고 충성된 청지기는, 많은 것을 맡겨주시고, 또한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하할 지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때 ‘즐거움’은 헬라어로 ‘카라’입니다. 의인 아흔 아홉보다가...죄인 한명이 회개할 때, 기뻐하는 ‘그 기쁨’입니다.
즉 이 ‘카라’의 기쁨은 영혼구원의 기쁨이요, 하나님 나라의 기쁨이요, 영원한 기쁨이 되겠습니다.
세상에서 즐거움, 성취감, 소유욕, 우월감으로 얻어지는 기쁨과는 완전히 차원이 다른, 구원받은 성도만 가지는, ‘영혼구원의 기쁨’입니다.
이 기쁨을 맛보아야, 진정한 그리스도인, 진정한 청지기, 주인의 기쁨과 함께 하는 하나님의 자녀라고 할수 있겠습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선한 청지기, 착하고 충성된 청지기로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착하고 충성된 청지기를 칭찬하여 주시고,
많은 것으로 맡겨주시며, 예수님과 함께 기뻐할수 있게 하여 주십니다.
한해 동안 믿음의 길을 잘 달려 오셨습니다.
앞으로도 선한 청지기, 충성된 청지기로써 달려가서,
우리의 주님되신, 독생성자 예수님 앞에, 큰 칭찬과 상급을 받는, 훌륭한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해 드립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올 한해동안 믿음의 선한길을 잘 걸어오게 하여 주시니 감사합니다.
그 때가 될 때를... 바라보며, 더디다고, 오래걸린다고 여유가지지 않고,
신실하고 선하고 착한 청지기로 생활하여,
주님앞에 영원한 상급과 영원한 기쁨의 자리에 앉게 되는
김포상도교회 성도들이 다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의 주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