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9장 10절 20절 아나니아의 순종
그 때에 다메섹에 아나니아라 하는 제자가 있더니 주께서 환상 중에 불러 이르시되 아나니아야 하시거늘 대답하되 주여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니
주께서 이르시되 일어나 직가라 하는 거리로 가서 유다의 집에서 다소 사람 사울이라 하는 사람을 찾으라 그가 기도하는 중이니라
그가 아나니아라 하는 사람이 들어와서 자기에게 안수하여 다시 보게 하는 것을 보았느니라 하시거늘
아나니아가 대답하되 주여 이 사람에 대하여 내가 여러 사람에게 듣사온즉 그가 예루살렘에서 주의 성도에게 적지 않은 해를 끼쳤다 하더니
여기서도 주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사람을 결박할 권한을 대제사장들에게서 받았나이다 하거늘
주께서 이르시되 가라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
그가 내 이름을 위하여 얼마나 고난을 받아야 할 것을 내가 그에게 보이리라 하시니
아나니아가 떠나 그 집에 들어가서 그에게 안수하여 이르되 형제 사울아 주 곧 네가 오는 길에서 나타나셨던 예수께서 나를 보내어 너로 다시 보게 하시고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신다 하니
즉시 사울의 눈에서 비늘 같은 것이 벗어져 다시 보게 된지라 일어나 세례를 받고
음식을 먹으매 강건하여지니라 사울이 다메섹에 있는 제자들과 함께 며칠 있을새
즉시로 각 회당에서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전파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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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달은 ‘성령으로 평강이 충만한 달’...‘성령의 달’입니다.
성령님은 누구십니까?
인격적인 하나님의 영이십니다.
인격적으로 탄식하십니다. 기뻐하십니다.
나를 위하여 기도하시고, 나를 인도하여 주십니다.
그래서, 내가 기를 모은다고, 명상을 한다고, 능력이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인격적인 성령님을 내가 만날 때, 성령님께서 나에게 능력으로....역사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모세는, 성령충만할 때, 온유하여 졌습니다. 순종하게 되었습니다.
말과 행실이 거룩하게 변하게 되었습니다.
구약시대에는, 성령님께서 한사람, 한사람에게 역사하여 주셨습니다.
하지만 신약시대에는, 성령님께서 교회에 역사하여 주십니다.
예루살렘 교회 성도들은, 더불어 마음을 같이하여, 오로지 기도에 힘쓸 때,
오순절날 강하고 급한 바람같이, 불꽃으로 성령님께서 임하셔서
예루살렘교회가 성령충만한 교회가 되었습니다.
예루살렘교회가 성령충만하게 되니까, 교회에서 생활속에 일어나는 모든 일들이, 은혜의 사건, 형통의 사건이 충만하게 되었습니다.
자. 오늘은, 성령님께서 ‘하나님 나라를 세워 나가신다’는 주제로, 말씀을 전하려고 합니다.
성령님께서는 왜? 역사하여 주십니까?
성령님의 역사의 최종목적은 무엇을 향하는 것입니까? 바로 ‘하나님 나라’ 라고 하는 것입니다.
1. 아나니아는 성령님께서 순종하였습니다.
성령님은 나에게 형통으로 역사하여 주십니다.
성령님은 내가 매일매일 승리하도록 역사하여 주십니다.
그렇습니다. 성령님은 나의 형통, 나의 승리를 위하여 역사하여 주십니다. 하지만, 나의 형통, 나의 승리는, 성령님의 역사의 일부분입니다.
성령님의 역사의 전체적인 향방은, 바로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가 든든히 서게 되는 것입니다.
이부분을 이해해지 못하면, 작은 부분에서 나의 형통, 나의 승리만 바라보게 됩니다.
그러다 보면, 나의 형통, 나의 승리에서만 끝나고, 믿음이 더 나가지 못하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오늘 말씀에 배경은, ‘다메섹’ 이란 도시가 되겠습니다.
지난시간...예루살렘에서 오순절에 성령님의 엄청난 역사가 있었습니다. 하루에도 3천명씩 회개하고, 교인이 되었습니다.
일곱 안수집사님이 세워졌습니다.
그 중에, 스데반 집사님은 순교를 하였습니다.
자 이러한 역사가 일어나는 예루살렘 위쪽에, ‘다메섹’ 이라는 도시에도, 성령님께서...어김없이 역사~ 하십니다.
그 도시에는, ‘아나니아’라는 제자가 있었습니다.
아나니아는 믿음이 깊은 사람입니다. 성령님과 교통하는 사람입니다.
하루는 환상중에 예수님께서 나타나셔서, 아나니아를 부르십니다. “아나니아”야~
아니나아가 깜짝 놀랐습니다.
빈들에서 말씀을 전하시던 예수님, 십자가를 향하여 걸어가시던 예수님, 부활하신 예수님.
어찌~ 그 예수님의 얼굴을 잊어버릴수가 있겠습니까?
아나니아는 너무나 기뻐서, “예수님...어쩐 일 이십니까? 예수님 보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천천히 말씀하십니다. “일어나 직가라 하는 거리로 가서, 다소출신, 사울이라는 사람을 찾으라. 그리고 그 사울에게 손을얹고, 안수기도를 해 주어라.”
예수님의 이 말씀을 들을 때...‘아니니아’의, 마음이 복잡해 졌습니다. 아나니아가 찬찬히 자기의 생각을 예수님께 말씀드립니다.
“예수님, 사울 그 사람은 못쓰는 사람입니다.
예루살렘에서 주의 성도들에게 엄청난 해를 끼졌습니다. 스데반 안수집사님이 순교할 때, 그 옷을 맡은 사람이 사울 그사람이고요... 예루살렘에 집집마다 들어가서 예수믿는 사람을 끌어내어 옥에 집어 넣은 사람이 그사람이고요...
이번에 다메섹에 온 것도 예수믿는 사람을 붙잡으려고 왔다고 합니다.
예수님, 사울은 믿을수 있는 사람이 아닙니다. 교회에 도움이 않되는 사람이고, 그리스도인에게 해악을 끼치는 사람입니다.“
자 아나니아의 이 말, 잘못된 말입니까? 아닙니다. 100프로 맞는 말입니다.
사울은 교회에 도움이 않되는 정도가 아니라, 교회에 해악을 끼치는, 정말 나쁜 사람이었습니다.
사울은 자신의 출세를 위하여, 앞뒤 가리지 않는... 사람 이었습니다.
믿음은 하나도 없는 사람입니다.
사도행전 8장 1절에 보면.. ‘사울은 그가 죽임당함을, 마땅히 여기더라. 그 날에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에 큰 박해가 있어’
스데반 안수집사님을 죽이는데 앞장을 서고, 예루살렘 교회를 크게 박해하는데 앞장을 섰습니다.
그리고 오늘은, 다마섹에 까지 와서, 박해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악질 일본 순사’와 같은 사람이, 사울 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아나니아에게, 그 사울에게 찾아가서 안수기도를 하라고 말씀합니다.
안수기도는 특별한 의미가 있는, 기도입니다.
병을 고칠 때, 사람을 세울 때, 특별히 선지자, 제사장, 왕을 세울 때, 기름을 붙고 안수기도를 합니다.
예수님께서 아니니아에게, 그 악질순사 같은 사울에게.... 병을 고쳐주고, 믿음의 사명자로 세우기 위하여, 안수기도를 해 주라고 하는 것입니다.
자, 이 명령, 내가 받았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절대로 나는 그 명령은 못 받들겠습니다. 다른사람은 몰라도 사울 그사람 만은 절대로 않됩니다. 그 사람이 어떻게 안수기도를 줄수 있습니까?’ 그렇게 하시겠습니까?
성령님의 역사는, 순종하는데서 시작됩니다.
하나님께서는 겉모양을 보시는 것이 아니라, 마음중심을 보십니다.
사무엘상 16:7 에 말씀합니다.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그의 용모와 키를 보지 말라, 내가 이미 그를 버렸노라 내가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하시더라”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부르시는데, 겉모양으로 부르는 것이 아니라, 마음중심을 보고 부르십니다.
겉으로는 키가 크고, 언변이 좋아도, 키로 언변으로... 그 사람을 보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그 사람의... 마음중심을 보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하나님을 만날때는, 마음중심으로 만나야 하는 것입니다.
지금 이순간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예배드릴 때...하나님은 마음중심을 보시고 만나 주십니다.
아는 동기목사님 교회에, 70이 넘은, 남자 집사님이 있습니다.
평소에 조용히 예배드리는 집사님입니다.
그런데 이 집사님이 병에 걸려서 생명이 위태롭게 되었습니다. 병원에 실려 가서, 겨우 살아 났습니다.
그런데 이 집사님이 그 시간에, 천국에 갔다가.. 왔습니다.
천국에 가보니, 꽃들이 만발하고, 천사가 안내를 합니다.
너무나 은혜로워서... 나중에는 금요기도회 시간에, 1시간동안 천국간증을 들었다고 합니다.
이분이 천국을 보고, 병원에서 깨어나서... 지금 미국에 있는.. 아무개 친구가 장례식을 하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알아보았더니, 진짜 그 시간에 미국에 있는 그 친구분이 돌아가셔서, 장례식을 하였다고 합니다.
책이나 먼이야기가 아니라, 바로 자기교회에서, 평소 알고 지내던 집사님 그러니까, 느낌이 틀리 더랍니다.
하나님은 마음중심이, 하나님을 향하고 있는 그 사람을 알아 보십니다.
마음중심이 믿음으로 충만한 사람을, 부르시고, 세우시고, 구원의 길로 이끌어 가시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으로 돌아와서 예수님께서는 아나니아에게 설명하십니다.
15절, 16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주께서 이르시되 가라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
그가 내 이름을 위하여 얼마나 고난을 받아야 할 것을 내가 그에게 보이리라 하시니“
에수님께서는 사울은, 나의 택한 그릇이라고 말씀 하십니다.
그리스도인은. 예수님이 택한 그릇이 되기를 힘써야 합니다.
젊을때는 세상에 자기가 최고인것 처럼 살아갑니다. 주위에서 말해 주어도 귀담아 듣지 않습니다.
한번은 어떤 젊은이가 저에게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목사님...담배 끝는것이 얼마나 힘든지 모르겠습니다.’
정말 유치해서 속으로, 웃음이 나왔습니다.
아직도 철이 없어서 그런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폐암으로 한쪽 페를 짤라 내고, 그 나머지도 제 기능이 않나와서, 힘들어 하는 분을 보았습니다.
이분은 종합병원에 부원장급...입니다.
뭘 모르니까, 세상에 지금 자기가 최고인줄 알고 살아가지, 진짜 최고는, 예수님의 그릇으로 쓰임받는 것인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사울도, 처음에는, 대제사장들이 잘한다 잘한다 하니까... 그게 듣기 좋고, 그게 명예와 목표가 되어서...
대제사장들 앞에서, 앞장서서 스데반 안수집사님을 죽입니다.
예루살렘 교회를 핍박하는데 앞장을 서고...다메섹까지 가서, 그리스도인을 박해 합니다.
하지만, 다메섹 도상에서, 하늘로부터 해보다 더 밝은 빛이 내려 비칩니다.음성이 들립니다.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
“누구십니까...”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라“ 그길로 사울이 눈봉사가 되었습니다.
시력을 잃고 나니,
어제까지만 하더라도, 사울사울 떠 받들었는데... 사람들이 쑥덕쑥덕 합니다. “그 사람 아무짝에서 쓸모 없어.. 눈봉사가 되었 다더 구만...”
사울은 마음이 무너져 내립니다. “내가 박해한 예수님이 진짜 계시다니...”
“나는 저주를 받아, 눈봉사가 되었는데... 이제 어떻게 되는 것인가”
자 이모든 상황이 바로, 성령님의 역사하심, 강하게 섭리하심, 하나님 나라를 세워나가시는
거~대한 경륜이셨던 것입니다.
2. 성령님의 역사하심을 기대해야 합니다.
시편 51:6
보소서 주께서는 중심이 진실함을 원하시오니
이사야 26:9
밤에 내 영혼이 주를 사모하였사온즉 내 중심이 주를 간절히 구하오리니
하나님은 겉으로 만날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중심을 보시는 분 이십니다.
그래서 내가 중심으로, 하나님을 만날 때, 하나님께서는 나의 중심을 꿰뚫어 보시고, 나를 만나 주십니다.
아나니아는, 예수님의 말씀을 들을 때, 순종합니다.
이때의 순종은, 몸만 순종하는 순종이 아닙니다. 하라고 해서 억찌로 하는 순종이 아닙니다.
마음중심도 순종을 합니다.
아나니아는, 사울이 있는 집에 찾아가서 사울에게 말합니다. “형제 사울아”
‘나쁜 사울’이 아닙니다. ‘나를 박해하였던 사울’이 아닙니다. “형제 사울아..”
예수님이 그릇으로 쓰겠다고 하시는데, 그럼 이제부터 ‘너는 나의 형제다’
겉모습으로 그 사람을 대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중심으로 그 사람을 대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나니아는 사울을 향하여 ‘형제 사울아’
그 다음에 중요한 말을 합니다. “예수께서, 너로.... 성령충만하게 하신다.”
예수님께서, 아나니아를, 보내어 눈을 뜨게 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하지만 제일 중요한 것은,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신다.’ 바로 이부분이 아니겠습니까?
예수님이 쓰시는 그릇은...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시는 것이, 예수님이 계획 입니다.
예수님을 저주하면서 모른다고 세 번이나 부인하던 베드로도, 예수님의 그릇으로 다시 세 번 부름을 받습니다. ‘나의 양을 먹이라 나의 양을 먹이라. 나의 양을 먹이라’
예수님의 그릇으로 부름을 받을 때, 오순절 성령충만을 경험하니까..
베드로는 이제는 사람눈치 보고, 사람들 때문에 예수님을 부인하고, 그러는 베드로가 아닙니다. 이제는 반대로 담대하게 오직...예수님을 전하는데 힘을 씁니다.
성령으로 충만하여 예수님을 전하였더니, 3천명이나 회개하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그 모습을 보고, 대제사장들도 어떻게 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대제사장이 베드로에게“전도를 하지 말라고 으름장을 놓습니다.”
옛날 같으면,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굽신굽신하고 줄행랑을 치겠지만,
성령충만하여, 예수님의 그릇이 되니까, 이제는 대제사장 앞에서도 당당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너희의 말을 듣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
성령님이 함께하니까, 대제사장도 그 말을 들을때에, 꿀먹은 합죽이가 됩니다. (끄떡 끄덕)
사울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의 그릇이 되기전에는 온갖 죄를 지으면서, 자기 맘대로 살아 갔습니다.
하지만...아나니아에게 안수기도를 받을 때, 즉시 다시보게 됩니다. 바로 일어나서 세례를 받습니다.
그리고 즉각, 회당에 가서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전파’하기 시작합니다.
22절 하반절에 보면 ‘다메섹에 사는 유대인들을 당혹하게 하니라’ 고 말씀합니다.
유대인들 사이에서는, 사울 그러면, 예수믿는사람을 박해하는데 앞장서는 젊은이로 소문이 났습니다.
그런데 그 사울이 다메섹에 왔다.~ 그러니까, 다메섹에 있는 예수믿는 사람을, 얼마나 잡아들일까? 그리고 기다리고 있는데,
그 사울이, 회당에 들어와서는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다’ 그리고 열심히 전도를 하기 시작합니다.
유대인들이 얼마나 당혹하고 혼란하였겠습니까?
한가지더, 주목할 사실은, 안수기도를 받은 사울은, 꾸준하였다는 사실입니다.
한번 반짝하고 끝내는 것이 아니라, 꾸준히 사명을 감당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름도 사울에서 바울로 바꾸었습니다.
얼마나 열심히 전도하였는지, 고린도 후서 11장에서, 설명합니다.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하였으니,
유대인들에게 사십에서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고,
일 주야를 깊은 바다에서 지냈으며
여러 번 여행하면서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며~”
사도바울은 아나니아에게 안수기도 받고, 예수님의 그릇이 되어,
그냥~ 안수기도 받았다로 끝난것이 아니라, 이 안수기도는 예수님께서 나에게 해주신 것이라고.... 분명히 알고,
예수님께서 주신 사명을 끝까지 붙들고 가는..... 믿음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즉, 사도바울은 성령충만의 시작, 성령충만의 과정, 성령충만의 결과가 무엇인지를........분명히 보여주는 모범된 삶을 살았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순종하지 않으면, 성령충만의 역사가 일어나지 않습니다.
겉모습이 아니라, 마음중심이 순종하는 믿음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끝까지 꾸준하게, 예수님의 그릇이 될때, 성령충만의 역사가... 완성되는 것입니다.
자 말씀을 정리합니다.
나는 성령충만의 어느곳을 걸어가고 있습니까?
시작 부분입니까? 중간부분입니까?, 완성부분입니까?
마음중심으로...완전히 순종할 때, 성령충만은 시작됩니다.
김포상도교회 성도들은 6월 한달 성령님께 순종하고, 예수님의 그릇이 되어,
하나님 나라에 크게 쓰임받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