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께서 아끼시는 것 요나서 4장 8절 11절
2004.10.24 18:49:57 조회5426
하나님께서 아끼시는 것 요나서 4장 8절 11절
누구나 아끼고 소중이 여기는 것들이 하나씩은 있습니다.
그것이 명예가 되었던, 친구가 되었던 또는 골동품이 되었던, 아니면 부동산이 되었던 간에, 누구나 소중히 여기고, 아끼는 것들이 하나씩은 있다는 것입니다.
주신말씀에는 요나가 아끼는 것과, 하나님께서 아끼시는 것에 대한 말씀이 나오고 있습니다.
이 시간에는 내가 소중이 아끼는 것들을 통하여, 하나님의 사랑과 바른 신앙자세에 대하여 은혜를 나누려고 합니다.
가을은 추수의 계절입니다.
얼마전 상도농장에서 고추를 추수하게 되었습니다.
얼마나 탐스럽게 열렸는지...권사님의 표현을 빌리자면, 유사이래로 좀처럼 보기 드문 풍년이었다는 것입니다.
따도 따도 계속 숨어 있는, 고추를 따면서, 곡식의 소중함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전에는 귀하게 생각하지 않았는데, 직접 땀을 흘리며, 추수를 해보니....., 땅에 떨어진 것이 있으면, 나도 모르게 줍게 됩니다. 또 우리 상도교회 식구들에게 많이 나누어 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였습니다.
그런데 하나에 100원도 하지 않을 고추하나를, 왜 그렇게 소중하게 여기며, 씻고, 말리고, 추수를 하는가 하는 것 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50억 인구로 따지면, 나의 존재란 얼마나 하찮은 존재입니까?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바로 나를 살리기 위하여, 왜 그렇게 십자가 까지 마다하지 않으시며, 나를 구하셨다 하는 것입니다.
오늘 이시간에는 진정으로 아끼고 소중하게 여겨야 될 것들을 찾아 볼려고 합니다.
첫째 나의 아끼는 것은 무엇입니까?
6절 말씀 하반절에 보면 “요나가 박 넝쿨을 인하여 심히 기뻐하였더니 ” 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요나는 선지자 였습니다.
그 당시 니느웨는 이스라엘을 핍박하고, 식민지로 삼고 있는 강대한 나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니느웨라고 하는 강대한 제국의 수도에 가서, 하나님 앞에 회개하라는 말씀을 전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요나의 나태함과 게으름이었습니다.
니느웨는 먼 길입니다. 가자면 한참 멀리 힘들게 가야 합니다. 또 생판 모르는 사람들에게 가서 힘들게 하나님의 말씀도 전해야 합니다. 그런데 니느웨는 유대백성을 핍박하는 민족입니다.
여러 가지로 따져볼때, 요나에게는 정말 가기 싫고, 귀찮고, 마음이 썩 내키지 않는 명령이었던 것입니다.
오늘 우리 크리스챤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말씀대로 사는 것은 우리가 보기에 즐겁고, 환상적이고, 스릴 만점에 좋은 때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주일에는 10분씩 일찍 오라고 말씀합니다.
수요에배도 있습니다. 금요기도회도 있습니다. 또 새벽기도도 있습니다.
중보기도학교도 하라고 합니다. 이제는 행복전도대 활동도 시작합니다.
즐겁고 기쁜 마음으로 따라오는 분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마음내켜 하지 않는 경우도 없지않아 있을 것입니다
오늘 요나가 그러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마음 내켜 하지 않아 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요나는 과단성 있게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내맘대로 하기로 결단하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러 니느웨로 가지 않고, 다시스로 도망첬던 것입니다.
물론 결국 요나는 물고기 배속에서 회개하며, 니느웨에 도착하게 되었습니다.
자.... 물고기 배속에서 회개 하였으면, 이제 니느웨에서 열심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니느웨에 도착해서도, 또 게으름을 피웁니다.
가로지르려면, 사흘길이나 되는 큰 도성 니느웨로에서, 딱 하루만 하나님 말씀을 전하고는 그만, 성에서 빠져 나와 동편언덕에 초막을 짓고 누워 버렸습니다.
아마도 그 하루, 하나님 말씀 전할때에도 대충대충, 듣던 말던, 그냥 외치고 나와 버렸지 않나? 생각해 봅니다.
게으른 요나, 나태한 요나, 하나님의 말씀 대로 살지 않던 요나...
자 그런 요나에게도 아끼는 것이 하나 있었습니다. 니느웨 동편 언덕위에 초막에 있으려니 햇볕이 너무 비쳐서, 덮고 무덮습니다. 그런데, 그 햇볕을 가려줄 박넝쿨이 돋아 났던 것입니다.
그래서 요나는 박넝쿨을 아끼고, 소중하게 여기며, 거기서 기쁨을 얻고, 초막에 누워 버렸던 것입니다.
니느웨 도성의 12만 명의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야 할 요나......하지만 요나는 오히려 박넝쿨 키우는 재미에 빠져, 박 넝쿨을 아끼고 있었던 것입니다.
어떤 부자가 추수를 하였습니다.
재미있습니다. 하나 하나 느는 재미가 얼마나 좋은지 모릅니다.
그래서 계획을 세웁니다. 그래 곳간도 하나 더 장만하고, 탈곡기도 신형으로 들여 놓고, 그러면 너무너무 좋을꺼야..
자........물건을 많이 쌓아 추수하였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그럴때 그 밤에 하나님께서 나타나셨습니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예비한 것이, 뉘 것이 되겠느냐 ?”
누가복음 12장 20절 말씀입니다.
연기, 공주 지역에는 땅투기꾼들이, 얼마나 많이 땅을 샀는지, 땅값이 몇배나 뛰고, 그래서 돈 많이 벌었다고 좋아하는데, 순식간에, 헌재 결정이 나면서 전세값만 하더라도, 2틀만에 6000 만원이나 폭락을 했다고 하는 것입니다.
나는 지금 무엇을 아끼고 있습니까?
나는 지금 무엇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있습니까?
어떤 어린아이가 사고를 당하게 되었습니다. 졸지에 다리를 잃게 되었습니다. 그 사건으로 어머니는 화병으로 죽고 말았습니다. 이 아이는 혼자 버려지게 되었습니다.
이 아이는 성장하면서, 삶을 저주하였습니다. 왜 나에게만 이런 고난이 닥치는가? 왜 세상은 이리도 불공평 하다는 것인가?
그러다 교회에 나와서 말씀을 듣고, 예수님 앞에서 회개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할 수 있는 것부터 열심히 시작하였습니다. 그리고 미국으로 건너가서, 교수가 되어, 지금은 부시대통령의 장애자 자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고 합니다.
내가 아끼고 있는 것이, 요나의 박넝쿨 과 같지는 않는지 점검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둘째 아껴야 될 것들을 찾아 보는 지혜가 있어야 합니다.
요나의 눈앞에는 니느웨 사람 12 만명이나 있었습니다. 또 요나에게는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말씀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요나는 박넝쿨만 보았다는 것입니다.
하루는 벌레가 와서 줄기를 깕아 먹어버리자, 박넝쿨이 시들어 버렸습니다.
요나는 하나님을 원망하였던 것입니다.
9절 말씀에 보면,
하나님께서 요나에게 “네가 이 박 넝쿨로 인하여 성냄이 어찌 합당하냐 ?” 그렇게 말씀합니다.
그때 요나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 내가 성내어 죽기까지 할찌라도 합당하니이다”
얼마나 요나의 사고가 외곡되어 있는지 잘 보여 주고 있다 하겠습니다.
현대인의 감기라고 하는, 우울증... 그래서 누구나 한번쯤은 우울증인지도 모르면서, 앓게 되는 병이 우울증입니다.
무기력하고, 슬퍼지고, 심하면 자살로 까지 이어지 우울증이, 사실은 감정의 병이 아니라, 생각이 병이라는 것이 밝혀진 것은 비교적 최근이 일입니다.
외곡되고, 잘못된 생각으로 인하여, 우울증에 빠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성도님 한분이 이렇게 말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목사님. 저는 자녀들도 잘되었고, 사업도 잘되고, 이렇게 큰 복을 받고 있는데도, 하루에 몇 번씩, 아파트에서 뛰어내리고 싶어집니다.
소중한 것은 보지 않고, 자꾸 박넝쿨만 보는, 요나의 눈을 버리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감사도 감사할 제목을 볼 줄 알아야, 감사하게 됩니다.
모든 것이 다 있어도 감사의 눈이 없으면, 감사할수 없게 되어 집니다.
기뻐하는 것도, 기뻐할 것을 볼줄 알아야, 기뻐하게 됩니다.
모든 것이 다 있어도 기쁨의 눈이 없으면, 기뻐할수 없에 되어 지는 것입니다.
링컨대통령이 합동유세를 하는데, 상대편 후보가 말합니다.
링컨은 이중인격자입니다. 그렇습니다. 링컨은 두얼굴을 가지고 있습니다.
모두들 깜짝놀랐습니다.
링컨은 올라가서 말합니다.
여러분 만약 제가 얼굴이 두 개라면, 무엇 때문에 이렇게 못생긴 얼굴을 달고 나왔겠습니까? 맞습니다. 못생긴 얼굴이지만, 이 얼굴 주신 하나님께서 감사하며, 정직하게 나왔습니다.
결국 링컨은 그 얼굴로 대통령에 당선이 되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지혜있는 성도는, 나에게 주신, 진정으로 아껴야 할 것들을 볼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셋째 하나님이 아끼시는 것은 무엇입니까?
11절에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하물며 이 큰 성읍, 니느웨에는 좌우를 분변치 못하는 자가 십 이만 여명이요 육축도 많이 있나니 내가 아끼는 것이 어찌 합당치 아니하냐 ?
먼저 예수님은 여러분 한사람 한사람을 소중하게 아끼십니다.
그래서 십자가에서 대신 죽으면서 까지도,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을 구하시려 하셨습니다.
십자가라는 것이 요즈음 너무 추상적인 의미가 되어버렸습니다. 그래서 악세사리로, 연예인들도 많이 달고 다닙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의 수난이라는 영화에 어떻습니까? 살이찟기고, 피가 터지고, 그것을 견디려고, 이빨을 덜덜 떨면서 까지 견디던 그 십자가...
예수님께서는 바로 나를 살리려고 그 십자가를 지셨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렇게 나를 귀하게 아끼시는데, 오히려, 나는, 나 자신는 너무나 쉽게 폄하하고, 유기해 버리는 모습을 보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쉽게 버릴수 있는 존재였다면, 예수님께서 십자가 까지 지지 않을셨을 것입니다.
또 옆에 있는 우리 교우들 한사람 한사람... 이 믿음의 공동체를 예수님께서는 아끼시고 소중히 여기십니다.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천국에 가서도, 우리는 김포상도교회 출신으로 기억될 것입니다.
피부색은 기억되지 않을 것입니다. 또 몸무게도, 그리고, 우리의 국적도 잊혀지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김포상도교회에서, 전도받고, 예수믿고, 구원받았고, 신앙생활 하였다는 것은 잊혀질 래야 잊혀질수 없는 소중한 감사의 흔적이라는 것입니다.
또 에수님께서 주신 가정.........아버지 어머니, 형제 자매.. 믿음 가운데에서 천국의 소망을 품게 하신, 귀한 가정 얼마나 소중합니까?
한 유대인 아이가 랍비에게 질문합니다. 그런데 선생님 하나님은 왜 이방인을 만드셨어요?
그러자 랍비가 대답합니다. “예야 지옥 불이 타자면, 땔감이 필요하지 않니? ”
그래서 요나는 니느웨 영혼들이 회개하고 구원받는 것은 용납할수 없었던 것입니다. 요나는 어떻게 니느웨가 망하는가 보려고, 니느웨가 잘보이는 동문 언덕 위에서 지켜보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니느웨 12만 불신 영혼들을, 지옥의 땔감으로 생각지 않니하시고, 구원받아야 할 소중한 영혼으로 아끼셨다는 것입니다.
지혜있는 성도는 예수님이 아끼고 소중히 여기시는 것들을 아끼고 소중히 여겨야 한다는 것입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나는 무엇을 아까와 하며 살아가고 있습니까?
영의 눈으로 바라보며,
감사하고, 기뻐하고, 찬송의 제목을 바라 보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이번 한주간은 예수님게서 아끼고 소중히 여기는 것을, 아끼고 소중히 여기며 살아가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