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할 때 좋아집니다. 고린도전서 15장 57절 58절
2004.10.07 13:33:07 조회8351
감사할 때 좋아집니다. 고린도전서 15장 57절 58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이김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고하며 흔들리지 말며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을 앎이니라
한 포털 사이트 게시판에 한 학생이 글을 올려 놓았습니다. 글의 내용인 즉슨 아버지를 걱정하는 글이었습니다.
이런말 하기는 뭐하지만.. 우리 아버지는 교회에 너무 빠졌습니다...
일요일, 수요일, 금요일은 밤에도 교회갑니다. 새벽에는 하루도 거르지 않고 교회에 갔다 오십니다.
저는 아버지를 집에서 많이 보고 싶습니다.
이거 어떻게 고치는 방법 없을가요..?
그러자 그 글 밑에 누가 답글을 올려놓았습니다.
아버지가 교회에 빠지다니, 당신은 행운아 입니다..
저희 아버지는 불교에 빠셔서, 지금 산에 올라가서 아예 안내려오십니다..
교회에 빠진걸 다행으로 생각하세요...
아, 아버지 보고싶습니다...T.T
그래서 밑에 글을 덪붙혀 놓았습니다.
그렇군요. 그런줄 몰랐습니다. 저는 행운아 였군요..
우리는 조건을 따져서 감사를 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하지만 감사는 조건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되는 것입니다.
지금 감사하고 계십니까?
첫째로 하나님은 감사하는 사람을 이기게 하십니다.
57절에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이김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김은 시험이 있을때 이길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시험이 없는 이김, 고난이 없는 이김을 간구할때가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 생활은 성도의 인생여정에 비유할수 있습니다.
광야생활은 믿음을 훈련하는 훈련의 시간이라 할수 있겠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께 말씀드립니다.
“하나님 배가 고픔니다. 무엇인가 맛있는 것을 배부르게 먹게 해 주십시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만나를 하늘에서 부어 주셨습니다. 만나는 먹어 보니, 달고 고소하여서 꿀과자를 먹는 것 같았던 것입니다.
자 그러면 감사가 나와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도 성경에 보면 민수기 11장에서 만나를 주셨는데, 바로 같은 장에서 또 불평이 나옵니다.
4절에보면, “이스라엘 중에 섞여 사는 무리가 탐욕을 품으매 이스라엘 자손도 다시 울며 가로되 누가 우리에게 고기를 주어 먹게 할꼬”
그렇게 맛있는 만나를 마음껏 먹을수 있는데도, 다시 곳, 고기를 먹고 싶다고 하면서 이스라엘 백성이 울었던 것입니다.
성경은 이것을 탐욕이라고 말슴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고기냄새를 싫어할 정도로, 한달간 고기를 먹도록 해 주겠다고 하시고, 메추라기를 몰아 오셔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마음껏 고기를 먹을수 있도록 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벌을 내리셨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이 그곳의 이름을 기브롯핫타와라 칭하였는데, 그 뜻은 탐욕에 무덤이라는 뜻이 되겠습니다.
우리는 살아갈 때, 나는 시험 하나도 않만나도, 어려움 하나도 않겪고 살아가다가, 예수님 앞에 서게 해주십시오. 이렇게 기도하지는 않습니까?
나만은 어려움들에서 쏙 빼 내어 주십시오.. 그렇게 기도하지는 않습니까?
요즈음 몸이 건강한 야구선들이 병역에서 빠지려하는 것을 보고, 우리는 손가락질을 하곤합니다.
그런데 우리 또한 믿음의 대열에서 빠지고, 면류관만 쓰려고 한적은 없습니까?
디모데후서 1장 8절 바울은 디모데 권면합니다.
디모데야...주를 위하여 갇힌 자 된 나를 부끄러워 말고, 오직 하나님의 능력을 좇아,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 그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신앙생활은 그냥 있으면 성숙하게 됩니까?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많은 시련과 고난을 믿음으로 극복한 성도의 신앙에, 깊은 은혜와 기도와, 찬송이 있게 되는 것입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가만이 있다고 교회가 그냥 세워집니까?
많은 시련과 고난을 신앙으로 극복한 교회만이, 역사와 예수님 앞에 자랑스러운 교회가 되지 않겠습니까?
초대교회 성도들은, 고통속에서, 콜로세움 경기장에서, 사자밥이 되는, 시련을 극복하면서, 생명의 면류관을 썼던 것입니다.
사도 요한이 새하늘과 새땅을 보면서 이렇게 기록합니다
요한계시록 [Revelation] 21장 4절에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
얼마나 눈물을 많이 흘렸으면, 새하늘과 새땅에는 눈물이 엎더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믿음생활 하면서 얼마나 많이 아팠기에, 아픈 것이 새하늘과 새땅에는 없더라는 것입니다.
우리 예수님께서는 고난을 많이 당하셨습니다.
그렇지만 예수님께서는 하나님께 요리조리, 나는 시험과 어려움에서 싹 빼주시고, 구원사역은 이룰수 있도록 해주십시오.. 그렇게 기도하지 않으셨습니다.
에수님께서는 고난을 받으며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하나님께 순종함으로 고난을 극복하고, 이기시고, 구원사역을 이루었던 것입니다.
제자들이 걱정합니다. 예수님께서 가시면 어떻게 됩니까? 그럴때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하시니라
요한복음 [John] 16장 33절
믿음에 사람은 시험에서 뒤로 빠지는 것이 아닙니다. 고난을 요리조리 피하는 삶이 축복이 아닙니다.
고난은 있으데, 에수님께서, 능력주시고, 힘을 주셔서, 극복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시험이 있다 할 찌라도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최후에는 이기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도의 감사는, 조건의 감사가 아니라 소망의 감사요, 믿음의 감사인 것입니다.
요한1서 [1 John] 5장 4절 말씀에
대저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긴 이김은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그르므로 이기게 하시는 예수님께 감사하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둘째로 하나님은 주의 일에 힘쓰는 사람을 이기게 하십니다.
58절 말씀에는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고하며 흔들리지 말며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을 앎이니라 ” 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얼마 전만 하더라도 음식이 참 귀한 때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손님들은 일부러 음식을 조금 남기는 것이 예의로 통하는 때도 있었다고 합니다.
한 아이가 어머니에게 말합니다. “엄마 엄마. 우리 강아지 줄건 없어요? ”
“얘 사람먹는 것도 없는 판에 강아지에게 뭘 준다는 거니? 마침 손님이 오셨으니, 먹고 남기면 강아지 갖다 주렴..”
집을 방문한 손님이 밥을 먹는데, 아이는 뚫어져라 손님의 밥그릊만 바라봅니다.
그런데 이 손님이 얼마나 배가 고팠는지 밥을 다 먹어 버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 숟가락 까지 깨긋하게 먹어버리자.. 아이가 그만 울음을 터트립니다.
“ 앙~~ 엄마..엄마.. 이 손님이 내 개밥을 다 먹어버렸어요..”
손님이 깜짝 놀랐습니다. ‘아니 내가 먹은 것이 개밥이었다고 ?’
우리는 어떤 일에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까?
어린아이는 손님을 대접하는 것보다, 강아지에게 밥 주는 것을 더 소중하게 생각하였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어리섞은 일입니까? 아무리 강아지가 소중하다고 하지만, 사람보다 더 소중하겠습니까?
성공하는 사람은 중요한 일과 중요하지 않는 일을 구분할줄 아는 사람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중요한 일이라면, 여유가 있더라도 먼저 합니다. 많은 댓가를 치루어도 중요한 일이라면, 먼저 해결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리섞은 사람은 어떻습니까? 나에게 편하다고, 내가 관심있다고, 중요하지 않은 일을 먼저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이들이 재미있는 텔레비전 만화영화를 보고 오느라고, 아이들이 교회에 늦게 오더라는 것입니다.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내 생명이 영원히 하나님 앞에서 복을 누리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입니까?
내가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자가 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입니까?
내가 노력한다고 하여, 키를 한자나 더 자라게 할 수 있습니까?
내가 힘을 쓴다고 하여, 넘어가는 해를 멈출수 있겠습니까?
결정적인 때에, 기울게 하시고, 이루도록 섭리하시는 분은 우리 하나님 이시라는 사실입니다.
그러기에 신앙이란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제일로 알고,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이런 마음이 흔들리지 않는 것이 믿음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섬기는 일이 가장 가치있는 것임을 알고, 그것을 힘쓰는 것이 신앙생활입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권면하는 것입니다.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고하며 흔들리지 말며,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을 앎이니라 ”
이러한 신앙의 자세와 수고는 예수님 안에서 헛되지 않더라는 것입니다.
상도교회 박병원 장로님...지금은 하늘나라고 가셨기 때문에, 예화로 말씀드릴수 있습니다.
항상 정한시간에, 항상 정한자리에 앉아서 예배를 드립니다. 한번은 안보여서, 알아보니 병원에 입원하였습니다. 찾아갔더니만, 눈물을 흘리면서, 목사님 기도해 주세요...그러는데, 저는 박장로님이 그러는 걸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교회 증축할 때, 앞장서고, 신혜의원을 담보 하기까지 하면서, 성전증축하고....
그래서, 아드님이 박영근 장로님으로 병원과 약국을 하시고, 손자가 또 의사가 되어, 군의관으로 입대하는 것을 축하해준 적이 있습니다.
그렇다고 박장로님의 가정이, 뻥 터짓듯 복받고, 시련은 하나도 겪지 않고, 잘된 것은 아닙니다. 긴 시간동안, 오려움도 있었고, 힘든일도 있었지만...
삶에 방향이...... 잘되는 쪽으로 하나님께서 인도하여 주시 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앙의 사람은 어떤 지혜가 있어야 하겠습니까?
예수님 안에서 수고하 헛되지 않은 줄을 알고,
흔들리지 않고,
주의 일을 더욱 힘쓰는 것이 지혜가 아니겠습니까 ?
말씀을 맺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믿음으로 감사하는 성도에게 시험과 고난을 극복하고 이기게 해 주십니다.
예수님 안에서 살아가는 성도는 수고하는 애쓰는 모든 일을 헛되지 않게 해 주십니다.
오늘 말씀이 힘이되어, 한주가 동안도, 이기고 극복하는, 우리 김포상도교회 성도님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