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데스다의 기적 요한복음 5장 1절 9절
2004.10.07 13:32:16 조회44078
베데스다의 기적 요한복음 5장 1절 9절
명절되면 즐겁고 반갑고 기쁘다는 생각을 많이 합니다. 하지만 여자들, 그중에서도 며느리들에게 오히려 ‘고난의 시기’라고 합니다.
그래서 며느리들은 ‘명절증후군’이라는 신종병에 걸리기도 한다는데, 증상은 두통, 불면증, 등이 있다고 합니다. 심할 경우 우울하고 원통한 심정을 토로하기도 한고. 가족 내에서 ‘나는 누구인가’라는 정체성 문제로 갈등을 겪으며 허탈감과 굴욕감을 느끼기도 한다고 합니다.
이번 주일에는 추석이 있습니다. 명절증후군 없이 잘 넘기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오늘 말씀에도 명절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습니다.
명절이 되자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 성으로 올라가셨습니다.
우리나라 명절에는 서울에 있는 사람들이, 각기 고향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하지만 이스라엘의 명절에는 반대로 교향에서 서울인 예루살렘 모이게 되어집니다.
그래서 예루살렘에서 예배를 드리는 것이 이스라엘의 명절의 특징이라 겠습니다.
자 명절이 되면 어떤 일이 있게 됩니까?
사람들이 많이 모이다 보니, 여기저기에서 잔치가 벌어질수 있습니다. 또 그동안 만나지 못하였던 사람들이 모여서 밤늦도록 이야기 꽃을 피우게 됩니다.
노래도 부름니다. 춤도 춥니다. 그러면서 응겹게 밤을 세우게 됩니다.
이것이 이스라엘 민족의 명절 모습이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게서는 명절에 어디에 가셨을까요?
2절 3절 말씀에 보면, 에수님께서는 베데스다 연못가를 찾았던 것입니다.
히브리 말로, 벧이란 말은 집이란 뜻입니다.
그래서 벧엘 이라고 하면, 하나님의 집이지요.. 벧들레엠 이라고 하면, 추수의 집 이란 뜻이지요.
그런데 에스다 란 말은 은혜, 자비 란 뜻이 되겠습니다.
그래서 ‘베데스다’ 는, 자비의 집, 은혜의 집이 되겠습니다.
그런데 이름처럼, 베데스다 연못은, 자비롭고 은혜로운 곳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환자들, 학성환자들, 그리고 고치다 고치다, 더 이상 어떻게 할수 없는 병인들이 모여있는 곳이 베데스다 였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명절에 즐겁게, 밤을 지세우며, 흥겹게 보내기 보다는, 오히려 이 베데스다 연못을 조용히 찾으셨던 것입니다.
오늘은 명절에 예수님의 발걸음을 통하여 예수님께서 주시는 은혜를 나누려고 합니다.
첫째로 예수님께서는 나의 베데스다 연못을 찾아 오십니다.
4절 말씀에는 ‘천사가 가끔 못에 내려와 물을 동하게 하는데’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베데스다 연못은 ‘간헐천’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가끔씩 물이 끓어 오르는 때가 있는데, , 특별히 물이 끓기 시작할때에 처음 들어간 사람은 깨끗이 낫게 되는, 기적같은 일이 일어났던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마지막 희망을 끌어오르는 연못에 걸고, 하나 둘씩 모여서, 베데스다 연못이 되었던 것입니다.
자 오늘날.... 이러한 베데스다 와 같은 곳은 어떤 곳이 있을까요?
중환자 실이 있습니다. 중한 병에 걸려 있는 사람들이 모여있는 곳이, 베데스다 라면, 오늘날에는 병원, 또는 중환자실이 있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병이라면 육체적 병만 있습니까? 아닙니다. 마음에 병도 있고, 삶에 병도 있고, 또 신앙에 병도 있을 수 있습니다.
또 병이란 한 개인에게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사회가 병들게 될 수 있습니다.
우리사회를 보더라도 얼마나 병적인지 모릅니다.
옛날에는 추석이다 그러면 고향에 내려가서 일어나는 안타까운 사고소식을 뉴스에서 심심찮게 접할 수 있었습니다.
경제적으로 어렵다 보니, 고향에 내려갔다가, 그만 더 낙심을 하고 자살을 하고 맙니다. 그래서 텔레비전에서는, 이러한 안타까운 소식을 뉴스로 보도 하였습니다.
하지만 요즈음에는 방송에서 이런 사고소식을 접할수 없습니다. 아니, 경제는 더 나빠졌다고 하는데..., 그런 사고들이 않나서 뉴스에 나오지 않는 것일까요?
그렇지 않타고 하는 것입니다. 인터넷을 보니까, 우리나라에서 경제문제로 매일, 평균 30 명씩, 자살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러니 이제는 이런 현상이 일반화 되다 보니, 뉴스에서는 아예 보도 조차 하지 않더라는 것입니다.
얼마나 병적인 사회가 되고 말았습니까? 증상이 너무 깊어 이제는 일반화 되어버린 것이 우리 사회의 모습이라는 것입니다.
자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그런곳에 찾아가 셨습니다.
좋은곳, 잘되는곳, 그래서 사람들이 모이는 그런곳에 예수님께서는 찾아가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베데스다를 예수님께서는 찾아가셨던 것입니다.
5절 말씀에는 ‘거기 삼십, 팔년 된 병자가 있더라’ 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베데스다 못에 가셔서도, 더욱이 38년된 병자를 만났셨던 것입니다.
38년 된 병자라는 것은 완전한 실망의 상태를 뜻한다 하겠습니다.
베데스다 물이 1년에 딱 한번 끓어 오른다고 가정하더라도, 이 사람은, 한 40 번의 기회를 눈앞에서 보면서 놓첬습니다.
한 두 번 실패해도, 마음에 상심일 클텐데, 한 40번 정도 실패를 했으니 얼마나 마음속에 답답함이 있겠습니까?
예수님께서는 바로 그러한 38년된 병자를 만나셨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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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오늘날 우리도 생활속에서 상심함 가운데 놓일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이 38년된 병자보다 더 심한 실패와 더 쓰라린 좌절을 경험한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되겠습니까?
예수님께서는 명절에 그런 사람에게 찾아와 주셨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조용한 나의 삶의 자리에, 찾아와 주시는 분이십니다.
다른 사람은 모릅니다. 나의 근심, 나의 눈물, 나의 마음의 바로 그 자리...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다 아시고, 함께해 주시는 분이, 우리 주님, 사랑의 예수님 이십니다.
둘째로 예수님께서는 절실한 마음에 필요함을 주십니다.
6절 하반절에서 에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예수께서 병이 벌써 오랜줄 아시고 이르시되 네가 낫고자 하느냐 ?”
7절 말씀에서 병자는 예수님께 이렇게 말씀드립니다.
“병자가 대답하되 주여 물이 동할 때에 나를 못에 넣어 줄 사람이 없어, 내가 가는 동안에 다른 사람이 먼저 내려가나이다”
네 내가 낫고자 합니다. 내가 낫고자 하는데, 나를 물에 넣어줄 사람이 없습니다.
그러면서 예수님을 올려다 보았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병자의 모습을 귀하게 봐 주셨습니다.
보통 38년된 병자 라면, 삶의 의지를 보이지 않는 것이, 보통일 것입니다.
괜찬습니다. 한 40년 동안, 내가 병들어서, 나이도 많은데, 이제 더 이상 어떻게 하겠습니까? 그래도 여기에 있으면, 도와주는 사람들도 있고, 그래서 그 나마 여기가 좋습니다.
그러고 자신을 상황을 그냥 받아들이는 것이, 한 40년 누워있는 병자의 보통의 모습이 아니겠습니까?
하지만 38년된 병자는 그렇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절실하게 예수님께 도움을 필요로 하였던 것입니다.
신앙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나는 절실하게 예수님을 바라고, 예수님을 꼭 필요로 하는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가? 점검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왜 예수님을 믿습니까? 라고 질문할 때, 의외로 가족들 때문에, 아내 때문에, 심심하니까 옆집 할아버지 하고 친하게 지내려고,
예수님 믿는다는 사람이 의외로 많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구원을 베풀어 주시면 좋고, 뭐 안주셔도 괜찬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래서는 않되겠습니다.
예수님은 절실하게 에수님을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찾아 가시는 분이시라는 사실입니다.
어떤 선교사가 아프리카에 가서 선교하였습니다.
그런데 마을에 한 어린이가 열병에 걸리게 되었습니다. 얼마나 열이 오르는지...
그런데 병원은 강 하구 한 20~30 KM 를 가야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빨리 아이를 베에 싣고 노를 저어가는데, 어떻게 단숨에 그 먼길을 갈수 있겠습니까?
날씨는 덥고, 해뼡은 뜨겁고, 아이의 열은 오르고... 그런데 갈길은 멀고....
더 이상 희망이 없어 보입니다. 이대로 아이는 죽게 된다는 것인가?
그런데 옆에서 노를 젓던 원주민 아이아버지가 말합니다.
선교사님 안되겠습다. 예수님께 기도해야 겠습니다.
선교사가 생각했습니다. 글쎄, 예수님께 기도하는 것은 좋지만, 답답한 내 마음이 위로를 받을찌는 몰라도. 이 상황에서 기도한는 것이 의미가 있을까? 그렇게 생각을 하였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아이 아버지는 간절하게 기도합니다.
그러자 노를 젓고 있던 옆에 사람들도 노를 손에서 놓고, 손을 모아 기도합니다.
예수님 도와 주십시오..예수님 꼭 도와 주tu야 합니다... 절실하게, 간절히 예수님께 기도하였던 것입니다.
그러자 하늘에서, 우박이 떨어자 배에 하나가득 쌓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우박으로 아이를 덮어, 아이에 열을 식히게 되었고, 아이는 무사히 병원에 도착하여, 건강하게 회복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나의 신앙은 어떤 신앙입니까? 예수님을 절실히 소망하고, 내 생활속에 예수님이 꼭 필요하다고, 바라는 신앙입니까?
예수님을 절실히 바라고, 꼭 필요로 하는 신앙이 있으시기 바랍니다.
셋째로 에수님께서는 가장 좋은 것을 얻게 하십니다.
8절에서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하시니”
남편은 아내가 말하는 말속에, 속뜻을 잘 알아야, 사랑받는다고 합니다.
아내가 ‘부엌이 너무 불편해요’ 라는 말은 ‘이제 새 집으로 이사해요’ 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당신은 남성다워’ 라는 말은 ‘면도 좀 하고, 땀 좀 그만 흘려’ 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자기 나 사랑해?’ 라는 말은 ‘나 아주 비싼 거 갖고 싶은데’ 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집에 가서 ‘날 사랑해?’ 라는 말을 들으시면, 남편들은 수중에 돈이 얼마 있는지 세어보시기 바랍니다.
예수님께서는 38년된 병자가 한 말이, 무슨 뜻인지 다 아셨습니다. 그래서 38년된 병자에게 가장 필요한것, 가장 좋은 것을 얻게 해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나의 마음을 제일 잘 아십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나에게 제일 좋은 것을 주십니다.
저는 신학대학원 시절을 돌아보면,
나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예수님께서는, 가장 잘 아시고,..... 좋은 것으로 주신것을 고백하지 않을수 없습니다.
등록금이 없어서 등록하지 못하고 있을 때에는, 저의 실력에도, 장학금을 타도록 해 주시고... 또 믿음이 적을 때에는 기도탑에 올라가서 기도하며, 신앙훈련 하게 하셨습니다.
한번은 한참 기도하고 있으려니, 뚝뚝 소리가 너무 시끄러워서, 무슨 소린가 하고, 눈을 떠보니, 저의 눈에서 기도하면서, 눈물이 떨어지는 소리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연단시키시고, 단련시키셔서, 귀한 김포상도교회를 섬기도록 인도해 주셨습니다.
38년된 병자는 예수님을 진정으로, 절실하게, 꼭 필요하였기 때문에, 예수님게서는 38년된 병자의 마음을 아시고, 가장 좋은 것들을 베풀어 주셨던 것입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명절에 예수님께서는 베데스다 못에 찾아와 주셨습니다.
내가 절실하게, 꼭, 진정으로 예수님을 바랄때에, 예수님께서 찾아와 주십니다. 필요한 것들을 베풀어 주십니다.
오늘 말씀이 힘이 되어 예수님을 더욱 바라고, 또 기도한 대로 이루게 되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 드립니다.